해설 엿보기
오른쪽 주머니에 사탕 있는 남자 찾기(푸른사상)
김임선
경북 경산에서 태어나 1993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중편소설이 당선됐다. 소설집으로 『섹시하거나 은밀하거나』, 『봄을 여의다』, 장편소설 『직지』, 『바람집』이 있다. 2020년 세계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었다.
김임선 시에는 세계를 인식하는 남다른 감각이 있다. 시인은 쉽게 볼 수 있는 화려한 것들, 네온사인처럼 선명한 빛에서 시선을 거두고 잘 보이지 않는 흐릿한 것을 보기 위해 집중한다. 그러기 위해서 시인은 어둠을 응시해야 한다. 태양이 만물을 다 밝혀 보여주는 존재인 데 반해, 어둠은 존재의 윤곽을 감추고 가려준다. 모든 비밀들, 타자의 신비는 어둠 속에 존재한다. 시인의 첫 시집 오른쪽 주머니에 사탕 있는 남자 찾기 속에 담긴 시인의 시선은 빛에서 어둠으로, 다시 어둠에서 빛으로 오고 가며, 어떤 곳에 계속 머물거나 고정되지 않는다. 소음 속에서 귀를 기울이고, 더 많은 소리를 듣기 위해 침묵을 택하기도 한다. 더 많은 것을 보고, 듣기 위해 시인은 계속 걸음을 옮긴다.
이 시집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것은 ‘집’ ‘길’ ‘문’과 같은 시어들인데 이것들은 ‘눈’과 관련이 있다. 시인은 머무르기보다는 움직이려고 하는데 그 움직임을 강제로 멈추게 하는 ‘벽’이나 고립되고 단절된 ‘집’과 같은 내부 공간들은 부정적으로 인식된다. 이에 반해 내부와 외부를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문’의 존재는 긍정적으로 여긴다.
「조요오옹 1」에서 “문도 없고 공기도 없는 어딘가의 속 같았다 뜨겁지도 않고 차갑지도 않은 무언가의 내장 같았다 미지근한 국밥 속을 헤엄치는 것 같았다 한 숟가락을 떠먹은 후 우웩 뱉어내는 맛이었다”고 묘사되는 내부 공간은 ‘문’이 없으면서 ‘공기’도 없는 곳으로 상정된다. 문이 없으면 숨을 쉴 수 없고, 심지어 시야까지 차단되는 것이다. “아직도 안 보여?”라는 질문이 던져진 후 울음이 터진다. 문이 없는 곳에서 “울음”은 결국 갇혀 있는 곳에 작은 구멍을 만들어낸다. “울음은 뚜껑을 열고 바깥으로 고개를 내밀었다”는 것이지만, 완전히 빠져나온 것이 아니라 머리만 내민 것이어서 이번에는 “안을 들여 다 볼 수 있게 되었다.”
바깥을 차단시키는 “문도 없고 공기도 없는 어딘가의 속”에 갇혀 있는 것도 문제지만 바깥에서 안쪽을 들여다볼 수 없는 것도 문제이다. 안과 밖 중 하나만 선택할 수 있는 것처럼 침묵과 소음 중 하나만 택할 수도 없다. 때로 침묵을 “울음”이 깨어줄 수 있어야 하고, 울음이 다시 고요해질 수도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 시의 제목은 “조요오옹”이지만 침묵이 너무 오래되면 목소리를 잃는다. 소음이 지속되면 작은 소리들이 모두 의미를 상실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목구멍에 수제비처럼 목소리가 둥둥 뭉쳐있는데 얼굴도 없는 주먹 같”은 상태가 되는 것이다.
시야를 빼앗긴 시선은 무기력해진다. “고양이 눈썹에 걸린 오렌지는 눈 속에서 썪어가”는 것이다. 고립되어 갇힌 곳에서 자폐적 시선은 타인의 시선과 얽힐 수 없다. “오렌지 발톱에 찢긴 연애는 내 방에서/혼자 눈을 뜨고” 만다.
이런 시간이 길어지다 보면 시야가 제한된 현실에 익숙해지곤 한다. 보이는 것만 보고, 믿으면서 살게 되는 것이다. 「집」의 구절처럼 “눈앞에 보이지 않으면 잊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나중에는 그것에 길들여져서, 나갈 길이 생겨도 스스로 나가지 않게 된다. 더 많은 것을 보게 되고, 발견하고, 알게 될 일이 두려운 것이다. 그렇게 “자정은 어둡고 무서워서 자정의 미로에 스스로 갇힌다.” 심지어 “갇혀서도 갇힌 걸 모”르고, “문이 열려 있는데 나가지 않는다”. 그러나 이 시집은 되풀이해서 말한다. 시가 생겨나는 자리는 길 위이며, 끝없이 다시 길을 떠나는 것이 시인이라고.
자기만의 시야를 확보해야 하는 것이 시인의 사명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범위는 제한되지 않고 점점 더 확장될 수 있어야 한다. 어둠 속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어둠에 시야를 빼앗기기보다는 그 속에서 더 잘 보이는 것들을 찾아 새롭게 바라보는 능력을 얻으려 하는 것이다. 어둠 속 존재들은 완전히 확인되지 않아 낯설고 두려운 마음을 갖게 하지만, 그럼에도 시인은 빛뿐 아니라 어둠에도 깊은 관심을 가진다. 어둠은 파악할 수 없는 비밀스러운 공간을 남겨두며, 비밀은 알 수 없는 미지의 길을 탐험할 원동력이 된다. 시야時夜는 밤이 되는 때이다. 시인은 시야時夜를 맞은 시야視野를 안다. 엄둠 속에서는 희미한 빛도 더 밝게 빛나고, 낮의 찬란한 태양 아래에선 모르던 것들이 보인다.
-김지윤(문학평론가), 작품해설 「이어지는 길, 잇는 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