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온가족이 모였다. 거가대교를 타고 부산에 도착한 시간이 아침이다. 내일이 설날인데도 국제시장에는 일찍 문을 여는 가게가 있다. 시장은 아직 가게문을 열 시간도 아니고, 손님들도 그닥 없다. 그래서인지 골목마다 모여들어 불어오는 바람이 을씨년스럽다. 열려있는 가게들을 기웃거리며 시장바닥을 어슬렁 어슬렁 누비고 다닌다.
먹는거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딸아이는 먹어보고 싶은 메뉴들을 줄줄이 읊는다. 여행도 맛집기행이 제일 좋다면서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부산음식이 나보다 많을 줄이야.
우선 소문난 분식에서 유부주머니를 시켜 주었다. 특이하고 괜찮다며 한방에 다 먹어 치운다. 우리가 시킨 떡볶이, 어묵에도 손이 넘어온다. 더운 국물까지 들이키더니 이제 몸도 녹고 배도 불러 좋단다. 그런데 웬걸! 세 발자국도 가기 전에 씨앗호떡을 사서 입에 넣는다. 한 번도 안 먹어 본거라서 꼭 맛을 봐야 한다나.
국제시장만 돌아다닐 줄 알았는데 자갈치 시장까지 걸어간다. 거기서는 초량어묵 고로께까지 사서 먹고는 또 하는 말, 음~, 맛이 괜찮네.
끝없이 이어지는 고등어구이 백반집. 가게마다 구워 놓은 생선들이 차곡차곡 빨래를 개켜 둔 것처럼 쌓아 올려져 있다. 화덕 위에는 백반을 시키면 그저 준다는 선지국이 펄펄 끓고 있다.
나는 비릿한 생선냄새가 진동하는 자갈치시장이 싫은데 딸아인 자꾸 휴대폰카메라를 누르며 재미있다고 신이 난 표정이다.
시장투어를 두 시간도 넘게 하고 주차한 곳으로 오는데 내가 좋아하는 18번 완당집이 보인다. 18번 완당 먹어봤냐고 물었더니 딸아이는 물론 아들까지 못 먹어 봤단다. 딸은 모르겠고 아들이 못 먹어 보았다는 말에 얼른 완당집으로 들어갔다. 완당 빗는 아주머니의 솜씨가 예술이다.
명주처럼 알른알른 내비치는 얇은 완당이 보기좋게 담겨 나온다. 아들도 딸도 다 좋아한다. 오늘은 어째 아침부터 한나절 온통 먹방을 찍은 기분이다.
숙소에 들어와 잠시 낮잠을 한 숨 잤다. 일어나자마자 낙지볶음과 어묵을 만들어 밥을 차렸다.
든든하게 저녁을 지어 먹고 해운대로 나갔다. 영화의 전당에서는 상영시간이 맞지 않아 보고싶은 영화를 한 편도 못 봤다. 그래서 더 베이 101에서 이것저것 구경을 했다.
딸아이는 숙소에 돌아가면 좋은 샴페인을 마실거라고 미리 입맛부터 짝짝 다신다. 칠링도 시켜 두고 왔다며 자랑을 친다. 그 좋은 술을 마시면서 아무리 그래도 종이컵에 마실수는 없지 않냐고 한다. 참내. 와인바도 아니고, 집도 아닌데 밖에 나와 언감생신 샴페인 잔 투정을 하다니. 여행지니까 할수 없으니 머그잔에라도 부어 마시라고 해도 자꾸 꽁알거린다. 그래도 샴페인 잔이 있으면 참 좋은데. 라고 하며 까탈을 부리길래 맘대로 하랬다.
홈플러스에 들어가 기어코 그놈의 샴페인 잔인지 뭔지를 사 온다. 하기사 나도 딸애에게 이런 말 저런 말 할 처지는 못 된다. 불과 하루 전에 꼬막 까는 집게도 샀으니까.
숙소에 돌아와 생갈비를 구워 샴페인을 마신다. 딸아이는 설겆이가 귀찮지도 않은지 접시마다 모양을 내서 음식을 담아 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