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내가 대통령 부부를 보면서 두 가지 반성할 일이 생겼다. 내 생각의 협소함과 함께 무모함이다. 먼저 내 생각의 협소함인데, 나는 그동안 대통령 부부가 보기 드물게 매우 독특한 분들이라고 생각해 왔다. 누가 보아도 한 나라를 대표하는 대통령이란 위치에 적합하지 않은, 준비되지 못한 검찰총장 출신의 윤석열 대통령 모습을 보면서 어쩌면 저렇게 서투른 이가 있을까 싶었다.
알려진 바와 같이 대통령의 해외 순방은 이제 온 국민의 걱정거리다. 국외에서 보여주는 설익은 대통령 모습으로 인해 대통령 해외 여행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논란 거리를 최소한 하나씩은 만드는 행사로 자리잡았다. 그 뒷처리 역시 무조건 아니라고 우기다 보니 국민 대다수가 그의 발언을 다시 들어 보는 상황이 되었고, 이런 방식은 다른 나라의 문제제기에 대한 최근 대응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국내 정치 역시 말 실수는 물론,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막무가내로 밀고 간다. 인물 등용도 노골적으로 검찰 출신으로 채운다. 정책에 있어서도 국가 장래보다는 피상적으로 당장 눈에 보이는 것에 근간해 생각없이 던지는 경우가 많아, 발언 후에야 허겁지겁 대책을 마련하는 모습도 있다. 심지어 한국 대통령이 일본 입장을 대신하기도 한다.
대통령으로서 책임을 느껴야 할 사회 참사에 대해서도 제대로 된 사과나 조치는 없다. 또한 무엇보다 한반도 번영을 위해 필요한 남북 평화는 안중에 없고 격렬한 대북 자극 발언과 조치는 갑자기 한반도 역사가 거꾸로 흐르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한편, 김건희씨 역시 기존의 일반 관점에서 보면 이해가 불가능하다. 학계에서 종종 발견되는 표절 수준을 넘어, 논문 작성 대행 서비스의 결과물로 보이는 짜깁기 박사 학위 논문의 문제점이 드러나도 모른 체한다. 심지어 표절당한 교수가 전국 교수들과 함께 해명을 요구해도 다르지 않다. 주가조작 혐의 역시 새로운 의혹이 등장해도 오히려 문제 제기한 이들을 법으로 괴롭히는 상황이 되었고, 조용히 내조만 하겠다던 과거 발언은 허언이 되어 이제 대통령보다도 더욱 중심에 서는 경우도 종종 보인다.
이처럼 대통령이란 막중한 공직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김건희 부부 모습을 보면서 천공 등 사이비 무속인들과의 연관도 그렇고 나는 그들을 매우 특이한 이들로 생각해 왔다. 내 주변 사람들도 그들이 연구 대상감이라는 것엔 공감해 준 탓도 있다. 하지만, 그런 내 관점을 반성해야 함을 안 것은 김건희 부부가 전혀 독특하거나 특이하지 않고 우리 사회에서 그토록 관심을 끌 만한 유형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들은 탓이다. 양극화 속에 국내 부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강남에 가면 매우 일반적 유형이란다. 그들은 그저 자신 일에 집중하며 개인 욕심에 충실한 생활 속에, 본인의 사회적 위치에 수반된 권력을 행사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이들이다.
결국 사회 공적 가치나 공공선에 대한 인식 없는 이가 나라를 대표하는 공직에 선출된 것이 문제이지, 그런 사람을 특이하게 보는 것이 오히려 잘못되었다는 지적이었다. 보다 주목해야 할 문제는 그런 사적 유형의 사람이 공적 역할을 수행하고 국정을 운영할 높은 위치에 올라갈 수 있는 국내 체제나 문화라는 것이다.
듣고 보니 공적 관점에서 윤석열 씨나 김건희 씨의 행보를 보면 황당하지만, 철저히 사익에 집중하며 점쟁이들도 찾아다니면서 자신의 지위나 권력 사용을 충분히 즐기는 그런 유형의 사람으로 바라보니 진정 그리 새로운 유형도 아니다. 사회를 구성하는 여러 유형 중의 하나일 뿐이고, 돈 좀 벌었다고 갑질하는 이들 중에 쉽게 볼 수 있는 유형이다. 김건희 부부는 단지 공적 가치에 대한 사명의식 없이 그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익을 취하는 경향이나 정도가 강할 뿐이지 우리가 생각하듯 그리 유별난 이들이 아닐 수 있다는 얘기다. 그들을 유별난 이들이라고 생각한 내가 이상하다면 이상한 것이었다. 내 생각이 좁았다.
이들 부부가 나를 두 번째 반성하게 한 것은 그들이야말로 내가 평소 바람직하다고 강조하던 부부 모습이라는 데에 있다. 긴 삶의 여정 속에 부부란 살아가면서 볼 것 못볼 것 함께 겪으며, 상대가 아프면 똥오줌 수발까지 하는 관계다. 어찌 보면 어릴 때 모든 것을 나누던 부모와 같은 형태의 관계 맺음이 성인이 되어 이어진 대상이 배우자요, 부창부수의 부부 모습이다.
그렇기에 나는 주례를 설 때 종종 “배우자가 도둑질하면 말리려 하지 말고, 차라리 같이 하라”고 말해 왔다. 서로 옳다고 주장할 때 결과적으로 어느 한쪽이 옳기야 하겠지만 부부 사이에 서로 상처만 남기는 결과에 비해, 옳고 그름을 떠나 서로 상대방에 맞춰주는 부부 화목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서로 좋은 면만 보여주게 되는 연애와 달리 부부가 되어 함께 살아가는 결혼의 의미와 부부 화목의 중요성을 비유를 통해 강조한 셈이다.
하지만 김건희 부부를 보면서 내가 얼마나 무모한 주례사를 해 왔던가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공식 석상에서 김건희 씨가 윤석열 대통령에게 명령하는 듯한, 아이 다루는 듯한 장면에서 순종하는 윤석열 씨나, 김건희 씨와 그 일가의 비리 내지 불법 행위에 대한 검찰 수사나 관련 보도에 대한 적극적 차단을 보면, 이들 부부 사이가 얼마나 좋은지 짐작할 수 있다.
어찌 보면 내 주례사에 딱 맞는 부부다. 하지만 이들 부부가 우리 사회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과 폐해를 보니 내 주례사가 얼마나 잘못된 것이었나 반성하게 된다. 국내 가장 큰 권력을 쥔 이가 잘못 나갈 때, 혹은 사회나 학계 기준을 파괴하는 잘못을 할 때, 배우자는 단호히 말하며 뜯어말려야 한다. 부부 두 사람이 단지 개인이 아니라 공인이기 때문이다. 배우자가 도둑질하면 자꾸 따지며 제지하려 들지 말고 차라리 함께 하라고 하던 나의 무모함, 강남에 흔하다는 사적 유형의 인물인데도 특이하다고 생각했던 나의 협소함, 이들 부부는 진정 내게 교훈을 준 셈이다.
하지만 이와 별도로 다시 한번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어떻게 그런 졸부 유형의 사적 인간이 나라를 대표하는 공적 지위까지 갈 수 있었는가다. 공공 가치나 공적 활동에 대한 개념 없이 개인 일에나 충실하고 나름 실속 챙기며 살아가는 유형이 갑자기 국가대표가 된 기형 사회를 직시하자. 이는 단지 김건희 부부 사례만이 아니라 국내 정치계 전반의 상황이기 때문이다.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대통령 부부를 빨리 제 자리로 돌아가게 하고, 집단 내에서 어깨 힘주고 갑질이나 하면서 사익 챙기기가 상식인 이들을 국회나 정부 선출직에 보내서는 결코 안 된다는 생생한 사례를 우리는 몸으로 직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