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우리나라는 최근 10년이래 가장 큰 풍수해 피해를 겪었다. 엘리뇨가 대기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던 작년은 전지구적인 기상이변이 발생하였으며, 그 여파로 동아시아지역의 양쯔강 유역, 한국, 일본에 집중호우가 있었다. 서울지역의 경우 서울전역에 걸쳐 게릴라성 집중호우가 년강우량의 83%에 달하는 약 1,100mm가 내렸으며 98년 8월 3일부터 6일까지의 3일간 강우량은 501mm로서 '90년 홍수 486mm를 능가하는 강우량을 기록하였다. 이로 인해 중랑천 유역이 범람하였고, 인명피해 19명, 공공시설 270억원, 사유재산 244억원의 재산피해와 4만세대의 주택침수가 있었다. 피해는 서울뿐만이 아니라 경기도 전역에 걸쳐 확산되었으며, 경기북부지역인 문산읍의 경우 850mm의 강우량과 910억원의 재산피해를 경험하였다(최충익, 1999: 68-71).
작년만 풍수해를 겪었던 것은 아니다. 매년 2-3차례에 걸쳐 우리나라를 내습하는 태풍과 집중호우인 장마 등으로 인해 우리나라는 한 해에 평균 7번 정도 물난리를 겪고 있으며 연평균 국민총생산(GNP)의 0.2%에 달하는 5,800여억원의 재산손실과 164명의 인명손실, 43,777명의 이재민 발생이 이어지고 있다. 자연을 상대로 한 전쟁상황이 매년 반복되고 있지만, 전과가 확실치 않은 지루한 전쟁의 전투지역이 도시지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현대 도시는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고도화되고 복잡해 지고 있다. 도시의 팽창과 토지의 고밀도 이용으로 도시내 인구가 밀집되고, 인공구조물이 수평적, 수직적으로 중첩됨에 따라 도시지역의 재해가 복합재난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대규모적인 자연환경의 개조로 인한 국지성 호우, 저지대 또는 급경사지의 도시개발, 지표면 포장에 의한 우수유출속도의 변화, 침수 수위 이하의 지하공간개발 등으로 도시지역의 재해취약성은 증폭되고 있으며, 지금까지의 전통적인 재해취약공간만이 아니라 새로운 도시공간들이 재해취약지역으로 편입되고 있는 실정이다. 고층건축물 지하층의 침수는 기계설비나 전기설비의 피해를 유발하여 침수에 따른 1차적 피해뿐만 아니라 2차적 재해피해로 확대될 수 있으며, 이와 같이 지하공간이나 초고층건물, 신매립지, 급경사지 등의 새로운 토지이용확대로 인해 도시지역은 자연과의 전면적인 전투지역으로 변모하고 있다.
2. 도시지역의 풍수재해 피해양상
우리나라 도시지역은 풍수해로부터 비교적 안전한 지역이다. 행정자치부 중앙재해대책본부의 시군별 우심피해발생빈도 자료에 의하면 수도권 지역과 중부내륙지방이 재해발생빈도가 낮으며, 서울, 부산, 대구, 인천, 대전 등의 대도시지역의 재해발생빈도가 낮게 나타나고 있다.
대도시 지역의 재해발생빈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것은 사실이지만, 대도시지역의 재해는 자연재해가 복합재해로 발전할 수 있는 개연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인적재난의 성격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일 례로, 1984년 서울 마포지역 홍수의 경우, 망원동지역은 내수에 의한 침수가 아니라, 수문파괴로 한강본류가 역류한데 따른 외수침수를 겪었다(서울특별시, 1994: 25). 망원동지역이 침수된 원인은 균열이 생긴 배수로 바닥 밑으로 한강의 압력수가 유출하여 공동이 커지면서 수압과 수문위의 토양자체중량을 견디지 못한 수문이 순간적으로 파괴되어, 한강본류가 역류한 것이었으며, 이는 자연재해와 인적재난이 중첩된 복합재해의 한 예라고 할 수 있다(서울특별시, 1994: 29-30).
도시지역의 자연재해가 복합재해로 발전하는 또 다른 양상은 수해를 입은 지역주민들이 각종 수인성 전염병에 노출되는 경우이다. 서울 풍납동, 성내동, 대치동일대가 집중수해를 입었던 1990년 홍수 당시, 서울시내의 방역지역은 2,412개소에 달했으며, 이들 지역에 대한 방역활동을 위해 장비 3,283대, 인력 10,635명을 동원하여 항공방역 65회를 포함한 4000여회의 방역활동과 54개반 418명의 이동진료반 활동이 실시되어야 했다(서울특별시, 1994: 22).
경미한 자연재해가 인명손실로 이어지는 것도 도시지역 자연재해의 두드러진 특징중 하나이다. 95년 8월 19일부터 21일까지 3일간의 호우는 일 최대 강우량 149.2㎜로 심각한 자연재해는 아니었지만, 이 때의 호우로 은평구 진관내동 오목교에서 54세의 시민이 급류에 휩쓸려 익사하는 사고가 초래되었다(서울특별시, 1996: 25). 같은 해 8월 23일부터 27일까지 6일간 제7호 태풍 제니스가 몰고온 집중호우 역시 두명의 시민을 제물로 삼켰다(서울특별시, 1996: 25-8). 이중 동대문구 이문동에서 발생한 사고는 8세된 남자아이가 하수암거 맨홀에 빠져 익사한 사건으로 경미한 자연재해가 도시공간에서 인명손실로 증폭될 수 있음을 웅변하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3. 도시지역 풍수재해 대책
1) 도시지역 풍수재해 대책 계획체계
우리나라에서 자연재해에 대한 체계적인 대응이 시작된 것은 1963년 건설부(현 건설교통부) 수자원국에 방재과가 신설된 것을 그 효시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근대화, 산업화, 도시화와 궤를 같이하면서 성장한 방재업무는 90년대 들어 내무부내 방재국의 신설, 국립방재연구소의 개소, 한국방재협회의 발족 등 중앙행정의 독립영역으로 위상을 정립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방재계획업무는 5년마다 수립하는 방재기본계획과 매년 수립하는 방재집행계획, 지방자치단체가 수립하는 지역방재계획과 수자원공사·한국전력공사 등 각급 행정기관에서 수립하는 방재세부집행계획으로 구분된다. 현재 정부는 제5차 방재기본계획(1997∼2001년)을 수립·집행중에 있으며, '재해로부터 안전한 삶'을 추구하기 위해 3대 목표와 10대 전략을 수립·추진하고 있다. 예방위주의 자연재해 종합 대응체제 구축, 방재정보체계 구축과 방재정책의 과학화, 방재분야의 국제협력 강화와 통일시대 대비를 3대목표로 삼고 있으며, 10대 전략으로 재해예방 사업의 지속적 투자 확대와 재해영향평가제의 정착, 최적홍수 및 방류량 결정 모형 구축과 홍수통제 능력 제고, 가뭄 및 지진방재체제 확립과 내진설계 기준의 대책 등을 추진하고 있다.
중앙정부의 방재계획을 기준으로 하여 서울특별시장, 광역시장 및 도지사 등 광역자치단체장은 시·도 지역방재계획을 수립, 시행한다. 시·도 지역방재계획의 주요 내용으로는 ① 방재시설의 신설 및 개축, 방재에 관한 교육·훈련 기타 재해 예방에 관한 사항, ② 기상 및 수문정보, 재해에 관한 예보·경보 및 피난대책에 관한 사항, ③ 수방·구조·위생·급수등 재해응급대책에 관한 사항, ④ 재해복구에 관한 사항, ⑤ 재해대책을 위하여 필요한 인력·시설·물자 등의 조달 및 비축·운송 및 통신에 관한 사항, ⑥ 관계지정기관의 장이 처리할 업무에 관한 사항, ⑦ 기타 재해대책에 관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사항 등이 포함된다. 시·도의 방재계획에 따라 기초자치단체인 시·군·구의 방재계획이 수립되며, 이는 시·도의 방재계획에 따라 당해 시·군·구에서 추진할 세부 방재사항을 구체화하는 것이다.
이상의 내용에서 보듯, 도시지역 풍수재해 대책 계획체계는 상명하달식 구조로 되어 있으며, 중앙정부에서 정한 계획기준에 따라 산하 지방자치단체들이 구체적인 실천계획을 작성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또한 방재기본계획이나 시·도 지역방재계획의 주요 내용중 상당수가 방재시설이나 설비측면을 강조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재해관리는 지역주민의 정치적 선택의 문제로 보는 것이 아니라, 기술적 측면으로 파악되고 있다. 중앙재해대책본부가 수립하는 방재기본계획이나 방재집행계획의 주제는 재해예방대책에 주로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반면, 재난대응계획이나 재난복구계획은 시·도지역방재계획의 수립내용으로 포함되어 있어, 중앙정부의 정책적 관심이 재해예방에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2) 도시지역 풍수재해 대책의 내용
도시지역의 풍수재해 대책은 '도시시설 및 토지이용체계를 도시방호를 위해 능동적이며 비상시 피해를최소화할 수 있게 구성하며, 방수·방화·방조·방풍 등 도시재해의 방지를 위한 계획 및 피해발생시에 대비한 재해대책계획을 수립'하고 시행하는 것이다. 도시지역 풍수재해 대책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기 위해 작년 수해를 입었던 서울시의 수재대책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작년 심각한 수재피해를 입었던 서울시는 집중호우가 채 끝나기도 전인 1998년 8월 11일 대학교수와 전문기술사로 '긴급안전진단반'을 구성하여 동년 9월 10일까지 하천 및 하수도, 산림녹지, 도로, 주택, 지하철 등 5개 시설분야에 대한 수해피해를 조사하였다. 이러한 조사결과를 토대로 서울시는 2003년까지 4,196억원을 투자하는 '수해없는 서울을 위한 5개년 종합대책'을 수립하게 된다. 서울시의 98년 수방항구대책의 기본방향은 '90년 한강대홍수와 '98년도의 국지적이고 돌발적인 호우 및 장기 폭우등과 같은 수해에 대비하는 수방시설 등을 획기적으로 보강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재해관리측면도 체계적으로 보완하는 것이었다.
수방시설의 보강은 펌프장신설과 시설보강, 하천의 제방보강과 수문설치, 하수도개량 및 신설, 산림과 녹지의 절개지보강 등의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재해관리측면의 내용으로는 도시개발에 따른 하천과 하수도에 우수량 유입을 최대로 지연시키는 시설을 보급하여 기존시설의 부하량을 줄이는 방안, 5년주기의 제방센서스 실시, 하천 수위관측시설과 교통관제시스템의 CCTV를 이용한 홍수 예·경보시스템 구축, 상습 침수도로의 강우시 전담관리자 지정관리, 침수지역의 신규건축 허가시 지하부분에 대한 별도의 건축기준선 설정 등이 상정되어 있다.
4. 도시지역 풍수재해 대책 개선방안
작년 게릴라성 집중호우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잃고 재산을 물에 떠내려 버렸다. 수재기간중 모든 언론이 이러한 재난을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방재투자가 확대되어야 하며, 방재행정분야에 기술전문가들의 수가 늘어나야 하며, 제도개선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도시지역 풍수재해 대책의 계획체계와 내용은 언론에서 주장하는대로 방재투자를 확대하며, 방재행정분야를 정비하여 재해발생을 사전에 예방하자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서울시의 계획목표대로 '수해없는 서울을 위한 5개년 종합대책'이 성공을 거둔다면, 5년 뒤 도시지역 풍수재해 대책은 현상을 유지하는 선에서 수방시설물의 유지와 일상점검만으로도 충분할 것으로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재해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다(정창무, 1999). 재난에 대한 오해중 하나는 재해발생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재해예방만 잘하면, 재해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고, 이런 오해 때문에 재해발생에 따른 응급대책이나 재해복구대책은 필요하지 않거나, 소홀히 취급된다. 재해를 예방하지 못한 수방시설의 실패에 대한 원인조사에 대해서는 심각하지만, 재해발생시 응급대책과 복구대책의 신속성과 실효성에 대한 관심은 뒷전으로 던져진다. 이로 인해 '추운 겨울은 점점 다가오는데, 수재민 6천명은 갈 곳이 없고,' 국가가 마련해주지 못한 수재민의 겨울내기용 임시숙소를 민간단체가 제공해 준다. 수마가 휩쓸었던 지역 주민들은 수해로 인한 재산손실 외에도 쓰레기와 질병,식수난에 시달리며, 심한 설사와 구토로 탈수증세까지 보이지만, 복구작업에 바빠 병원에는 갈 시간도 없게 된다.
재해를 예방할 수 있다는 환상은 풍수해와 같은 자연재해는 이미 알려져 있는 재해이며, 알려져 있기 때문에 지난번 재해예방대책을 실패로 이끈 실수나 착오만을 교정하면 예방이 가능하다는 오해도 가능하게 만든다. 이런 오해로 도시지역의 풍수해는 지역의 이름만이 바뀌고, 항구수방대책의 발표가 뒤따르는 연례행사로 바뀌게 된다.
재난관리의 출발선은 그 원인이 자연재해이건 인적재난이건간에 위기관리계획수립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위기관리계획의 첫단계인 위험분석이란 정해진 기간동안 특정지역에서 재해로 인해 예상되는 피해의 규모와 특성을 결정하는 과정이다. 즉 위험분석은 이론적.경험적 자료, 각 지역(재해지도)에서 발생하는 재해의 확률, 잠재적 재해(취약성 분석 및 예상피해평가)로부터 각 지역의 위험에 처한 요소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되는 물질적.기능적 피해를 분석하고 조합하는 것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파악할 수 있다(중앙재해대책본부, 1993: 19).
<그림> 재난관리 단계
위험분석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기존에 발생한 재해의 지역별.시간별 발생특성에 대한 조사가 선행되어야 하며, 이러한 조사결과에 기초하여 재해발생후부터 종료때까지의 상황변화를 시나리오모형으로 구성, 범주화할 수 있다. 시나리오 모형이란 현재의 응급처방적 수해대책과는 달리, 재해대응에 실패하였을 경우 과거의 실수를 복원하고, 실수나 착오를 수정한 새로운 재해지식을 축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재해관리를 위한 지식기반으로 작용하게 된다. 위험관리계획의 두 번째 단계인 능력분석은 효과적인 방재대책의 수립을 위하여 위의 기존 재해분석과 더불어 현재 지역적인 여건, 특성의 파악과 동시에 재해발생시 동원가능한 인력, 조직의 활용정도, 긴급상황 대처와 복구를 위하여 사용가능한 물자를 파악하는 것이다. 위험분석과 능력분석의 기반위에 피해상정작업이 이루어 지며, 이를 통해 재해의 파급범위 및 피해규모를 추정하여 재해대책수립시 우선순위 상정을 위한 기본자료가 만들어지게 된다. 효과적인 도시방재계획의 수립을 위해서는 예산과 조직이 뒷받침되어야 하므로, 피해상정과 시민의 정치적 선택에 따라 방재우선순위와 자원배치계획이 작성되어야 한다. 배정된 예산과 조직을 통해 재해예방계획과 재해대응계획, 재해복구 및 수습계획이 수립되며, 방재정책의 집행이 이루어지게 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재해대책은 위험관리계획이 철저히 생략되어 있으며, 재해대응과 재해복구대책이 소외된 채, 재해예방대책만이 유난히 강조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위험평가에 대한 시민의 정치적 선택이란 개념은 실무전문가나 일반 시민 모두에게 생소한 개념이며, 재해란 일종의 확률문제이며, 기대값의 문제라는 인식기반이 구축되어 있지 않다. 시나리오에 입각한 피해규모 상정이란 유치한 수치의 유희에 불과하며, 공연히 그런 유희를 벌이다, 틀릴 경우 구겨질 체면 때문에 시나리오에 의한 피해규모 상정은 시도되지도 않는다.
5. 결론
이제까지의 도시지역의 풍수재해 방지대책은 예방노력의 경주를 통해 재해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다는 환상 또는 오해에 기초해 수립되어 왔었다. 이러한 오해는 도시지역의 풍수재해를 자연재해로 파악하는 고정관념에 힘입은 바 크다고 할 수 있다. 도시지역의 풍수재해는 복합재해일 수 밖에 없다. 도시에 인구가 집적되고 시설이 고밀화될수록 복잡재해의 복잡성은 더욱 강화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그 모든 가능성을 예측해 풍수재해를 방지한다는 것은 더욱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복잡성 때문에 도시지역 풍수재해 대책중 재난대응이나 복구대책은 더욱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예방을 통해 재해발생을 방지할 수 있다는 환상과 오해가 재난대응과 복구에 대한 정책적 관심과 의지를 약화시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도시지역의 풍수재해는 자연재해이며, 예방노력의 경주를 통해 사전예방이 가능하다는 오해로 인해 도시지역 풍수재해 방지대책은 재해지식기반을 축척할 수 있는 시나리오에 입각한 재해대책이 아니라 오도된 응급처방식 재해대책을 증폭시켰다. 오도된 재해대책은 매년 도시의 수해피해지역의 이름만이 바뀌는 연례행사를 만들어 내었다. 재해관리는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선택의 문제이며(정창무, 1999), 운수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책임의 문제이다. 적국과의 전쟁이 군사무기의 기술적 선택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선택의 문제라는 점에서, 도시지역의 풍수재해 대책 역시 사회적 책임을 수반되는 정치적 선택의 문제가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재해예방노력에 앞서 위험관리계획의 수립이 전제되어야 하며, 시민적 합의에 의해 채택가능한 위험수준이 선택되어야 한다. 위험관리계획의 수립을 통해 행정청은 어느 지역이 어느 정도 위험한지를 시민들에게 알려야 하며, 시민들의 사회적 선호를 수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구비하여야 한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도시지역 풍수재해 대책 계획체계 역시, 하향적 계획체계가 아니라, 지역의 자율권을 존중하며, 지원할 수 있는 상향적 체계로 바뀌어야 하며, 재해대응과 복구에 대해서도 재해예방만큼의 정책적 노력이 경주되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내무부 중앙재해대책본부, 1993, 재해예방기법, 서울: 내무부.
서울특별시, 1994, 1994년 도시방재사례집, 서울: 서울특별시.
서울특별시, 1996, 1996년 재난사례집, 서울: 서울특별시.
서울특별시, 1997, 1997년 재난사례집, 서울: 서울특별시.
정창무, 1998, "재해에 대한 4가지 환상," 도시정보 통권 199(98년 10월), p. 12.
최충익, 1999, 지방자치단체의 자연재해관리에 관한 연구 - 파주시 수해를 중심으로,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환경계획학과 도시계획학 석사학위 청구논문.-------------------------------------------
장마와 이상기온이 생겨도 시름에 잠기는 농심
1959년은 다른 어느 해보다 천재지변이 많았다. 그 중에서도 태풍 사라 호는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막대한 피해를 주었다. 태풍 사라 호를 중심으로 영남일보가 보도한 59년의 재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59년의 재난은 6월부터 시작되었다. 모내기가 시작되는 그달 15일까지의 강우량은 불과 24밀리에 불과했다. 각지에서는 물싸움으로 유혈극까지 벌어졌다. 연일 기우제를 지냈지만 가뭄은 7월 말까지 계속되었다. 그러나 장마가 거의 끝나 가는 7월 30일부터 쏟아지기 시작한 폭우는 8월 8일까지 계속되었다. 이 폭우는 낙동강을 위험수위에 이르게 했으며, 봉화군에서는 산사태를 일으켜 두 가족 8명을 압사케 했다. 이 폭우는 사망자 15명, 수재민 5만 명, 피해액 9억 3천만환이라는 손실을 입혔다.
그러나 이 폭우가 그친 후 다시 비가 내리지 않아 다시 가뭄이 시작되었다. 그 여파로 8월 19일에는 국내 4개 수력발전소가 발전을 멈추어 전력 사정은 극도로 악화되었다. 다행히 벼농사는 잘 되어 풍년을 예상케 했고, 농민들은 벼이삭이 영글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9월 17일 새벽 추석 제사를 모시던 남부지방에 태풍 12호 '사라'가 느닷없이 들이닥쳤다.
시속 60마일의 강풍과 폭우를 동반하고서 대구를 거쳐 동해로 빠져 나간 사라 호는 거의 남부지방 전역을 일순간에 폐허로 만들었다. 강동과 안강에서는 형산강의 역류로 논밭이며 가옥들이 완전히 물에 감겼고, 보이는 것이라고는 그곳에서 가장 높은 안강지서의 지붕꼭지뿐이었다. 월성군에서는 탁류에 휩쓸려 79명이 목숨을 잃었다.
영양에서는 2개 부락이 빗물에 휩쓸려 자취도 없이 사라지면서 38명이 사망했고, 세 살짜리 어린 소녀만 남기고 10명의 가족이 모두 죽은 참극이 일어났다. 사라 호가 남긴 상처는 남긴 상처는 대구,영천,영덕,청송,안동,경산,청도,달성 등 도내 어디에고 있었다. 꼿꼿이 서 있던 전주, 가로수, 벼이삭은 모두 누웠고, 누렇게 익어 가는 벼이삭으로 가득했던 들판은 토사에 매몰되어 흔적이 없고, 곧게 뻗은 다리며 도로는 붕괴되었다. 사라호는 어느 것 하나 성한 것을 남겨 놓지 않았다.
사라호로 인한 피해는 사망자 2백 37명, 이재민 40만 명, 건물피해 6천 동, 피해 경작지 15만 정보, 도로 유실 3천 8백개소 등이었다. 그리고 총 피해액은 2백 84억환이었다.
② 태풍 매미
제14호 태풍 ’매미’로 인해 전국적으로 지금까지 61명이 숨지고 42명이 실종돼 모두 103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YTN이 자체 집계한 결과 경남과 부산이 가장 피해가 커 경남에서는 사망 31명 실종 28명 그리고 부산에서는 사망 4명 실종 4명의
인명피해가 났습니다.
또 대구 경북에서 11명이 숨지고 5명이 실종됐으며 강원도에서는 6명이 숨지고 2명이 실종됐습니다.
광주 전남에서도 7명이 숨지고 2명이 실종됐으며 제주에서 2명이 숨졌습니다.
특히 물에 잠긴 경남 마산시 해운동 해운프라자 안에 10여명이 매몰된 것으로 추정돼 사망자가 갈수록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또 남부지역을 중심으로 140만9천146 가구의 전기공급이 끊기고
농경지 317헥타르가 물에 잠겼습니다.
주택도 32채가 파손됐습니다.
철도의 경우 경부와 경전, 경전, 전라, 영동, 중앙선 등 5개 노선 10곳에서 열차탈선과 침수, 선로 유실 등이 발생해 현재 4개 노선에서 일부 열차 운행이 중단되고 있습니다.
도로는 중앙과 중부내륙,구마 등 3개 고속도로와 49개 국도에서
산사태와 낙석, 침수, 도로유실 등으로 차량운행이 부분 통제되고 있습니다.
이밖에 고리원전 1.2호기와 3.4호기가 송전선로 이상으로 원자로와 터빈발전을 정지했고 월성원전 2호기도 터빈이 정지되는 등 국내 원전 6기의 전력공급이 차질을 빚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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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하 기자
9월 13일 기사입니다.
③ 태풍 루사
제기억에 가장 크게 남은 태풍 정말 위력적이였죠? 태풍하면 이제 제15호 태풍 "루사"가 떠오르는군요...온 국민이 익히 들어 알고 있는 태풍 사라호와 필적할 정도의 위력으로 8.31~9.2일에 걸쳐 전 국토를 휩쓸었던 태풍이지요.
태풍 루사는 전국을 휩쓸면서 바람과 비의 종전의 기상기록을 전부다 바꿨는데요 그 기록을 살펴보면 대략 이렇습니다.
□ 강수량 기록
- 강릉 1시간최다강수량 1위 경신
80.0 mm (종전 60.0 mm 1987. 7. 16)
- 대관령 1시간최다강수량 1위 경신
67.5 mm (종전 43.4 mm 1987. 7. 15)
- 강릉 일최다강수량 1위 경신(전국 관측이래 1위)
870.5 mm (종전 305.5 mm 1921. 9. 24)
- 대관령 일최다강수량 1위 경신(전국 관측이래 2위)
712.5 mm (종전 349.0 mm 1993. 8. 10)
※ 지금까지 일최다강수량 : 장흥 (547.4 mm, 1981. 9. 2)
□ 바람 기록
- 고산 최대순간풍속 1위 경신 56.7 m/s (종전 41.2 m/s 1997. 1. 5)
- 수원 최대순간풍속 1위 경신 27.3 m/s (종전 26.0 m/s 1977. 3. 24)
※ 이 바람은 2000. 8. 31 태풍 '프라피룬'의 영향으로 기록된 흑산도 최대순간풍속 58.3 m/s 다음으로 강한 바람임
□ 남해안을 상륙하여 내륙을 통과한 태풍과의 비교
- 1959년 사라(1959. 9. 15∼9. 18) 통과시
9. 17 부산 최대순간풍속 52.7, 최저기압 952 hPa
- 1987년 셀마(1987. 7. 15∼7. 16) 통과시
7. 15 여수 최대순간풍속 40.3, 최저기압 972 hPa
- 2002년 루사(2002. 8. 30∼통과중)
8. 31 여수 최대순간풍속 39.7, 최저기압 970 hPa
기록을 본다면 강원도 영동지방에 기록적인 강수기록이 있었는데요 강릉에870.5mm, 대관령에 712.5mm가량으로 1000mm에 가까운 이러한 호우는 한반도에서 천년에 한번꼴로 일어날 법한 기상현상이라고 하니 정말로 대단한 일입니다.
제15호 태풍 '루사'는 2002년 8월 23일 09시경 괌섬 동북동쪽 약 1,800km 부근 해상(16.5。N, 161.0。E)에서 발생하여 26일 03시경에 태풍(TY)으로 발달한 후 일본 남쪽해상을 거쳐 30일 09시경 제주도 서귀포 남남동쪽 약 430km 부근 해상에서 세력을 유지하면서 북상하기 시작하였다.
31일 03시경 제주도 서귀포 남남동쪽 약 220km 부군 해상에서 중심기압이 955 hPa로 조금 약화됬으나 통상 이 정도의 위치에서 태풍의 중심기압이 950 hPa를 유지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제주 동쪽남해해상을 통과해 고흥반도 일대에 상륙 그후에 남원 보은 원주 평창 등을 거쳐 9월1일경 동해안으로 빠져나갔습니다.
태풍이 우리나라 까지 올라와서도 강력한 힘을 잃지 않았던 원인은 우리나라 동서로 북태평양 고기압이 놓여 있고 상층 편서풍이 약해 상층 기압골의 이동이 늦어 태풍의 이동속도와 전향이 늦고, 남해상의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높아 강한 태풍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편 태풍으로 인한 재산피해액은 우리나라 기상재해피해사상 최고 금액을 달성했습니다.
이하 중앙일보 기사
태풍 '루사'로 인한 피해 복구비용이 8조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행정자치부는 10일 조사단의 잠정집계 결과 태풍 '루사'의 피해액이 모두 5조5천억원으로 파악됨에 따라 이에대한 복구비용은 피해액의 1.5배 정도인 8조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행자부는 이에따라 복구비용의 70%인 5조5천억원을 국고로 부담하고 나머지 30%인 2조5천억원은 지방비로 충당하기로 했다.
국고부담액 가운데 4조1천억원은 추경예산으로 편성하고 부족분은 각 부처 불용예산(1조1천억원), 국고채 잔여액(3천500억원), 재해대책예비비(4천500억원)를 활용하기로 했다.
그러나 지방비로 충당키로 한 2조5천억원은 각 지방별로 추경예산을 따로 편성키로 해 지방채 발행 등으로 열악한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상태가 더욱 악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행자부는 이날 태풍 '루사'로 인한 특별재해지역 선포가 당초 18일에서 앞당겨져 다음주 초에 이뤄질 것 이라고 밝혔다.
행자부는 김석수 국무총리 서리가 지명됨에 따라 피해지역 복구를 위한 추경예산안의 국회통과가 예상보다 일찍 이뤄지면서 특별재해지역도 내주초인 16일이나 17일께에 선포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2) 폭설 피해의 사례
100년만의 3月폭설
탄핵에 파묻힌 민생… "TV가 원망스럽다!" 입력 : 2004.03.27 12:14 41'
[르포] 폭설 피해 복구 현장 수정 : 2004.03.27 12:18 02'
“이게유 좀 그래유. 다른 지역 사람들은 눈 때문에 고속도로 막힌 것만 알지, 우리 농사꾼들 맴(마음)을 알기나 한데유. 비닐하우스 세워 준다며 힘쓰던 군인이랑 경찰도 탄핵안 통과되고 나니까 다 떠나버리데유. 작년 태풍 매미 때는 TV에서 수해현장이 맨날 나오더만 이번엔 정치인들 얼굴만 나오네유. 그러면 섭섭하지유~~.”
충남 부여군 부여읍 저석2리에서 토마토 농사를 짓고 있는 김태홍(56)씨는 폭설피해에 무관심한 세상이 원망스러웠다. 김씨의 토마토밭은 지난 3월 5일 쏟아져 내린 눈에 비닐하우스가 무너져 쑥대밭이 됐다. 밭에서는 어른 주먹만하게 토실토실 살이 오른 토마토들이 밭고랑 사이에서 아무렇게나 뒹굴고 있었다. 김씨는 “겨우내 기름 태워가며 애지중지 키워 이제 막 수확하기 시작했는데 이번 폭설 때문에 다 갖다버려야 한다”며 매만지던 토마토를 집어던졌다.
▲ 지난 3월 5일 쏟아진 폭설 때문에 무너진 충남 공주의 양난 비닐하우스에서 한 농민이 복구작업을 하고 있다.
재산 피해 6734억원 중 충남 3529억원
대통령 탄핵 정국에 온 국민의 관심이 몰리는 사이 폭설 현장은 외면당하고 있다. 지난 3월 5일 충청도 지역에 100년 만의 기록적 폭설이 쏟아졌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복구작업은 신속하게 진행됐다. 이 폭설로 고속도로에서 수만명이 갇혀 지냈다는 소식이 워낙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폭설 후 곧바로 군·경 인력이 신속하게 투입됐고, 폭설 5일 만인 3월 10일에는 폭설 피해 지역이 특별재해 지역으로 선포됐다.
그러나 지난 3월 12일 이후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되면서 폭설 피해는 국민들의 관심 속에서 멀어져 갔다. 폭설 직후 고속도로가 막혔다는 기사를 쏟아내던 언론들도 탄핵과 동시에 모든 관심을 정치판에만 집중시켰다. 폭설에 따른 인명피해가 없고 피해가 일부지역에 국한돼 있다는 이유로 전국적인 성금모금도 실시하지 않았다. 폭설 피해가 가장 크다는 충청남도에도 3월 20일까지 공식적으로 접수된 성금은 한푼도 없다. 지난해 9월 태풍 매미가 남부 지방을 강타했을 때 전국에서 모여들었던 자원봉사자도 이번 폭설엔 예전같지 않다.
폭설 피해가 가장 심한 곳은 충남 지역. 전국적으로 총 6734억원의 재산 피해 중 충남 지역의 피해액은 3529억원에 달한다. 충남 지역에는 지난 3월 5일 새벽 4시부터 오후 5시까지 눈이 쏟아져 평균 45㎝의 강설량을 기록했다. 특히 비닐하우스가 밀집돼 있는 공주, 부여, 논산 일대 비닐하우스 농가의 피해가 가장 크다. 폭설이 내린 지 보름여가 지났지만 아직까지 충남 지역에는 주저앉거나 등이 휜 비닐하우스가 곳곳에 널려 있다.
김태홍씨가 경작하던 토마토 비닐하우스도 폭설에 10동 중 5동이 무너져 내렸지만 도무지 손쓸 방법이 없었다. 지난 3월 19일 폐허가 된 김씨의 토마토 밭에선 돈을 주고 불러 온 인부 4명이 비닐하우스 철근을 토막토막 썰어 1톤 트럭에 주워 담고 있었다. 김씨는 “원래 이 정도 재해가 발생하면 다른 지역에서 오는 자원봉사자도 있고 군인과 경찰들이 도와주는 데 이번에는 상황이 다른 것 같다”며 “무너진 하우스를 치우려고 군청, 경찰서 다 돌아다녀 봐도 일손 구하기가 힘들어 돈 주고 사람을 데려왔다”고 했다. 그는 또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일손을 구하지 못해 애가 타기는 마찬가지”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김씨는 보름 전까지만 해도 하루가 다르게 자라가는 토마토를 바라보며 꿈에 부풀어 있었다. 토마토의 비타민이 특별히 몸에 좋다는 소문이 퍼져 시세가 좋았기 때문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토마토 값은 10㎏ 한 상자에 3만원을 넘어섰다. 게다가 김씨는 연작장애(같은 작물을 연달아 재배할 경우 산출량이 감소하는 현상)를 줄이기 위해 지난 4년 동안 오이를 재배하다 올해 토마토로 바꾸었기 때문에 품질과 수확량도 제법 괜찮았다. 김씨는 “빚이 1억6000만원 정도 되는데 올해 농사만 잘 지으면 반은 갚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면서 “이 꼴을 당하고 나니 눈앞이 캄캄하다”고 말했다.
"눈앞이 캄캄… 다 부질없는 일예유"
폭설에 무너져 내린 비닐하우스도 문제지만 몇 년 간 기름값, 인건비를 들여가며 키워놓은 작물 피해도 심각하다. 그러나 작물 피해는 보상을 받을 수 없다. 중앙재해대책본부에서는 비닐하우스와 같은 시설 피해에 대해 45%는 보상, 55%는 돈을 융자해 주겠다고 밝혔지만 작물 피해 보상은 없다고 밝혔다. 다만 작물을 다시 심는 비용과 농약 값만 지원할 뿐이다.
특히 난(蘭), 알로에, 인삼 등 다년생 작물은 재배기간이 길어 시설비보다 작물 자체에 의한 농가 손실이 훨씬 크지만 작물 피해는 전혀 보상 받을 수 없다.
지난 3월 18일 충남 공주시 이인면의 양난(洋蘭)을 재배하고 있는 신기수(36)씨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신씨의 하우스도 폭설에 주저앉았지만 아직까지 찢어진 비닐도 다 걷어내지 못했다. 하얀 비닐 밑에선 새파란 난들이 짓눌려 있었다. 신씨의 어머니 윤금자(62)씨는 쓰러진 하우스를 오가며 그나마 쓸 만한 난을 부지런히 공터로 옮기고 있었다. 신씨는 이런 어머니에게 타박을 놓았다.
“다 부질없는 일이에유. (난은) 찬바람 맞고 짖눌리면 꽃대가 올라오지 않아서 다 쓸모가 없다고 했잖어유.”
“아 그래도 시퍼렇게 살아있는 이것들을 어떻게 다 내다버릴껴. 하나라도 건져야 할 것 아녀.”
“옮기는 데는 돈이 안드남유. 제발 그만혀유.”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던 신씨는 1998년 땅을 담보로 농협 융자 2억원을 받아 양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그 사이 틈틈이 난을 출하해 빌린 돈도 반쯤은 갚았다. 하지만 이번 폭설에 피해액이 3억원에 달해 신씨는 빚더미에 올라앉게 됐다. 이번에 피해를 입은 난은 2001년 모종을 심어 오는 6월이면 꽃망울을 달고 미국과 일본 등지로 수출할 예정이었다.
이 지역에도 폭설 직후 경찰 병력이 투입돼 복구작업을 시작했지만 대통령 탄핵안이 통과된 뒤 곧바로 철수해 버렸다. 신씨는 “우리 같은 시골 사람들이 정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며 “탄핵안이 폭설과 비슷한 시기에 통과되는 바람에 농사꾼들만 죽어나게 생겼다”고 했다. 비닐하우스가 무너졌더라도 4~5일 사이에 난을 다른 하우스로 옮겨 놨으면 전부는 아니더라도 60%는 상품으로 내다 팔 수 있었다.
공주시 이인면 일대에서 양난을 재배하는 농가는 다섯 집. 집집마다 200평짜리 하우스 8동이 있다. 이 지역은 다른 지역보다 더 많은 눈이 내려 적설량이 60㎝를 기록하는 바람에 하우스 40동이 모두 피해를 입었다. 이들 농가도 신씨네와 마찬가지로 작물 피해는 보상받을 수 없다.
담당 공무원도 농민들의 딱한 사정을 이해하는 편이었다. 충남 도청 관계자는 “다년생 작물은 시설비보다 재배기간 동안 들어가는 연료비나 인건비가 훨씬 큰 비중을 차지한다”며 “중앙정부에서 별도의 작물보상 규정을 만들어서라도 일정부분 보상을 해줘야 할 필요가 있다”며 농민들에게 동정표를 던졌다.
지난 3월 5일 새벽 4시부터 충청도 지방에 눈이 내렸지만 오전 9시까지만 해도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10시가 넘어서도 눈은 쉴새없이 쏟아졌다. 상황이 심상치 않다고 판단한 농민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비닐하우스 위로 올라가 눈을 쓸어내렸다. 쌓인 눈을 녹이기 위해 비닐하우스 난방기를 최고온으로 돌렸다. 그러나 폭설 뒤 뚝 떨어진 기온 때문에 눈이 얼어붙어 쉽게 털어지지 않았다.
철근 대란… 하우스 복구할 쇠파이프가 없다
폭설 피해를 당한 박상규(42·충남 논산시 노성면)씨는 “처음엔 이렇게 눈이 많이 쏟아질지 몰랐다”면서 “오전 10시쯤 눈이 좀 쌓여서 하우스 지붕으로 올라가 아내와 함께 눈을 치웠는데 끝도 없이 쏟아졌다”고 말했다. 눈이 많이 쌓인 곳부터 하우스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무너져 내린 박씨의 비닐하우스 안에는 지붕을 받치고 있던 35㎜ 철기둥이 눈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ㄹ’자 모양으로 꺾여 있었다.
특히 개별 비닐하우스 여러 동을 이어 만든 연동하우스의 피해가 극심했다. 하우스를 이은 골 사이로 흘러내린 눈이 모이는 바람에 철제 기둥이 힘을 이기지 못하고 주저앉은 것이다. 보통 4~5개 동이 연결돼 있는 연동하우스는 한 곳이 무너지면 다른 부분도 힘을 이기지 못하고 함께 무너지게 마련이다. 정부가 정한 규정에 따라 비닐하우스를 지으면 웬만한 풍수해는 견딜 수 있지만 이번처럼 폭설이 내릴 때는 대책이 없는 상황이다.
박씨는 마을에서 방울토마토를 재배하는 농가 25가구가 모여 공동판매하는 작목반을 꾸리고 있다. 이번 폭설로 작목반 전체가 피해를 입었지만 서로 눈치를 봐야하는 상황이다. 박씨는 “우리 작목반 평균 빚이 1인당 평균 9000만원은 된다”며 “서로 연대 보증으로 묶여 있는데 한 사람이라도 야반도주를 하면 마을 전체가 쑥대밭이 된다”고 말했다.
저녁 7시 이른 시간이었지만 마을 주민들의 얼굴은 식전에 걸친 소주 한 잔에 이미 발그레 달아올라 있었다. 한 농부는 폭설보다 탄핵 정국이 더 원망스러운 눈치다.
“농사지을 게 없는데 농사꾼이 뭐 할 게 있남유. 밤마다 모여서 ‘농사짓는다’ ‘더는 못 짓는다’ 하면서 소주나 마시는 거지유. 국회의원이 다녀가고 총리가 보고 가도 아무런 소용이 없시유. 다들 그놈의 탄핵에 정신 팔려서 우리 농민들한테 눈길 한 번 주는 사람도 없잖어유.”
폭설 현장의 또 다른 문제는 하우스를 다시 지을 쇠파이프가 없다는 것. 중국발(發) 원자재 품귀 현상이 폭설 현장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이 마을 주민들도 비닐하우스를 수리할 쇠파이프를 찾아 전국 각지로 돌아다니고 있다. 한 주민은 “아침에 서울에 올라가 공사장에서 쓰는 쇠파이프를 구해 왔다”며 자랑해 이웃 농민들의 부러움을 샀다.
정부에서도 이런 상황을 파악하고 철강 생산업체인 포스코에서 5000t, 동부제강에서 2000t의 파이프를 피해 지역에 우선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쇠파이프 가격은 하루가 다르게 치솟기 시작했다. 평소 하나에 1만1000원 하던 40㎜ 쇠파이프가 지금은 1만5000원을 넘어섰다. 그러나 폭설 현장에선 이마저 구하기 힘든 상황이다.
충남 부여군 내산면에서 양계장을 하고 있는 정재훈(54)씨는 이번 폭설에 11개 막사 중 7개가 주저앉았다. 정씨는 “막사를 다시 지을 자재를 구할 수 없어 답답한 마음에 농림부에 전화를 걸어 따졌더니 ‘물량을 확보해 농협으로 내려 보냈다’고 철없는 소리를 하더라”면서 “그 양반이 직접 내려와서 파이프를 구하러 다녀 보면 상황을 알 수 있을 것”이라며 역정을 냈다.
충남도청 김용교 정책기획관은 “현재 폭설 현장에 대한 응급 복구는 거의 마무리된 상황이지만 본격적인 복구 작업은 이제 시작 단계”라며 “피해 상황이 장기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선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뿐 아니라 국민적 관심이 절실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