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은 가을이 남아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별로 춥지도 않았었고,
눈도 쌓이지 않았었는데, 12월이 되자마자, "이제 겨울이야"라고 선포을 하듯이
첫날 부터 눈이 내렸었다.
오늘아침엔 다행히 눈이 내리지 않았지만 낮에는 소강상태이다가
밤에는 다시 눈이 내리던 날들이어서
차가 다니는 큰 길을 제외하고는 눈이 녹지 않았고, 산에는 눈이 하얗게 쌓여 있었다.
겨울에 산에 올라 본 것은 젊을 시절에 나뭇지게를 지고서 눈이 쌓인 음달을 피해
양달로만 야산을 올라 본 것 밖에는 없다.
그것은 등산과는 전혀 별개의 것으로 추운 겨울을 견디려는 산골사람들의
생존을 위한 노동의 하나였을 뿐이었다.
겨울에 이름 난 산에 오르는 것은 눈을 보고 즐기기 위한 것으로 대개는
눈에 대한 즐거운 기억을 가진 사람들이 낭만적인 생각으로
평범한 일상을 떠나 보려는 행위일 것으로 생각된다.
눈에 대한 좋은 기억이 없었고, 행선지인 계룡산이 내 생존지인 정안면과
면만 다른 곳이었으므로 낯선 곳으로 향하던 때의 막연한 기대도 없었다.
다만 기분전환의 방법으로 자리매김한 산악회의 행사임으로
구태여 빠질 이유가 없었기에 참석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사람들마다 생각이 다르기에 눈에 대해서 낭만을 지닌 사람들도 많은 것
같았다. 지난 몇 달간 빠졌던 경성식당의 김ㄱㅅ여사와 처음 참석하는 남ㅅㅇ여사,
이ㅈㅅ여사,김ㅈㅈ여사 등이 조건이 좋을 수 없는 이 시기에 새삼스럽게
참석을 하는 것을 보고, 눈을 즐기려는 사람들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들었다.
그리고 그들과 산행을 같이 하면서 눈이 쌓인 산을 오르는 재미도 들어보며
겨울산에 대한 묘미도 알아 갈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생기기도 했었다.
등산코스는 '상신탐방지원센타'에서 출발하여,'남매탑'을 거쳐 '삼불봉'을 올랐다가
갑사로 내려와서, 갑사 앞의 '서울식당'에서 점심식사를 끝내고
망년회행사를 하는 것이었다.
농협 앞에서 20분정도 예정보다 지체 됐고, 모란에서 다시 10분 정도 지체 됐어도
계룡산 까지는 너무나 가까운 거리였다.
옆에 앉은 '이ㅅㅇ'씨와 비닐하우스에 심은 오이 수확을 하루 미루고
짬을 내어 왔다는 몇마디 이야기를 주고 받는 동안 벌써 동학사 쪽으로 도착했다.
주최측인 마을금고 측에서, 인솔자에게 워키토키와 기가 돌려기도 전이었다.
버스에서 산악대장 이ㄱㅈ씨가 아이징을 준비하지 못한 회원들은
등산로 입구에서 판매하는 것이 있으니 사서 착용하라는 안내처럼
입구의 노점에서 좌판을 벌리고 아이징을 팔고 있었다.
나는 며칠전 인터넷 쇼핑물에서 비교적 값이 비싼 아이징을 구매해서
배낭에 넣고 있으니 그럴 필요가 없어서
아이징을 설명하고, 신는 회원들을 구경했다.
거기까지는 눈이 치워있으니 본격 등산로가 시작 되는 지점에서 장착할 작정이었다.
눈이 치워져 있는 곳이 끝나는 곳에는 정갈한 화장실이 있었고,
회원들은 그곳에서 멈추어 아이징을 장착했다.
거기서 문제가 생겼다.
회원들 거의가 그저 덧신을 신듯이 가볍게 장착하는데, 나만은 그것이 아니었다.
사진처럼 못이 촘촘히 박혀있어 보기에도 전혀 미끌어질 이유가 없는 아이징은
투박 스러우나 튼튼한 끈이 매어져 있었고, 남들처럼 그 끝 사이에 등산화를 디밀고,
호크를 채우면 되리라고 생각하며 집에서도 연습을 하지 않았는데,
쉽게 들어 가지 않았고, 남에게 물어 보려고 해도
그런 아이징을 장착한 사람이 없어서 알지 못한다고 했다.
기다리다가 임ㄷㅇ이사장이 출발을 했고,
나는 그래도 침착히 하면 끼워보면 착이 되겠지 하면서
모자를 벗고 선글라스까지 벗고, 끼워보았으나 쉽게 되지 않았다.
하나 둘 회원들은 떠나가고, 나혼자 남아서이마와 등에 땀이 나도록 애를 썼으나
들어가지 않았다. 그 동안 워키토키가 후미의 사정을 물어왔고,
"곧 출발한다"고 대답을 했지만 쉽게 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장착된 호크를 떼고, 운동화 끈을 매듯이 얼기설기 얽어매고 출발했다.
회원들은 이미 멀리 가버린 것 같고,
다른 팀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해가며 앞질러 가다보니, 나 혼자가 되버렸다.
눈길은 그래도 다행인 것은 발자국이 다져 있고, 그것만 따라가면 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가다보니 공사판에서 쓰는 구멍이 뚤린 조그만 다리가 나왔고,
그것을 건너서 뛰듯이 갔더니 산막이 나왔고 길은 거기까지 였다. 참 막막한 일이었다.
사방을 둘러 보니 오른쪽 위쪽으로 사람들이 올라 가는 것이 보였다.
길을 잘못 들었구나 생각하고 돌아서서 달렸으나 급한 마음에 상당히 긴 길이었다.
겨우 길을 찾고, 주저 앉고 싶은 심정으로 워키토키를 눌렀으나 잘 되지 않았다.
휴대폰을 꺼내서 나 혼자 오던 길로 내려간다는 말을 하려고 하는데,
뒤에서 "여기 계셨네요"하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 보니 '정ㅎㅅ'대리였다.
내가 후미에 쳐저서 다니기는 하지만 오늘은 너무 늦기에 돌아서서
찾아내려 왔다는 것이다. 순간 "살았다"하는 기분이었다.
내가 언제까지 산행을 계속할지 모르고, 앞으로 어떤 일을 겪을지 알수 없지만
오늘 정대리를 만난 것은 두고 두고 잊지 못할 일이고, 고마움일 것이다.
이미 지친 탓인지 발걸음은 한없이 무겁고,
정대리도 나를 찾아서 뒤짚어 오갔기에 나와 마찬 가지로 지쳐 보였다.
놓친 일행을 잡기는 커녕, 다른 일행들이 앞질러 가는 것을 봐야만 했다.
내가 너무 처진 탓인지, 이ㄱㅈ 대장의 워키토키가 선두에게 남매탑에서
더 진행하지 말고, 쉬었다 간다는 멧시지가 나왔다.
옛날 산행에서 동학사에서 남매탑까지의 거리를 멀게 느낀 적이 없었으나
참으로 멀고도 먼길이었다. 이 겨울 이 눈밭에서 등과 얼굴에서 땀이 줄줄 흘렸다.
발을 한걸음 한걸음 내디디는 것이 고통 그 자체였다.
그래서 정대리에게 "우리 너무 지쳤으니 남매탑에서 삼불봉을 가지말고,
금잔디곡개로 해서 갑사로 내려갑시다"하고 말했더니 그래도 그는 젊은 이였다.
"여기까지 왔으니 산봉우리 중의 하나인 삼불봉은 밟아야죠"하는 것이었다.
나는 머리속으로 "이제 난 늙었어 늙었어"하는 말을 되뇌었다.
그래도 남매탑에서 기다리는 일행을 만난 것은
남매탑이 그리 먼 거리가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영차,영차 하며 응원해 주는 회원들을 만난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 였다.
아내의 친구인 '남ㅅㅇ여사. 좀 덜먹었지만 그래도 계를 같이 한다는 이 ㅈㅅ여사의
얼굴을 보니 창피한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이 모임에서는 초행인데, 그들의 페가 되었으니 말이다.
김ㄱㅅ여사의 걱정스런 얼굴을 보니 더욱 그러했다.
김여사는 "집에서 장착하는 것을 연습하지 그랬어요"하면서
내 아이징을 안타깝게 들여다 보았다.
나는 치처서 바위에 앉아있었고, 이대장은 '좋은 아이징 같은데, 하면서
몇번 끈을 만저보았고, 이ㅅㅇ씨가 엉망으로 얽어 놓은 것을 나름 것 단정히 매어 주었다.
지쳐서 퍼져 앉아 있으면서도 염치 없었다.
이ㅅㅇ씨는 나보다 훨씬 나이가 적었고, 이 모임에서 만난 사이인데,
고맙다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그 친절을 잊지 못할 것 같다.
거기서 카메라를 메고 있는 것이 억울해서 남매탑을 찍고,
남들이 출발하는 것을 보면서 잠시 앉아 있다가
삼불봉을 향하는 계단으로 되어 있는 길로 정대리와 함께 출발했다.
아이징의 따로 노는 듯한 느낌은 덜했지만 계단을 오르는 발은 천근처럼 무거웠다.
그래서 다시한번 정대리에게 "삼불봉 그만두고 금잔디고개로 해서 내려가자"고 했으나
정대리는 그래도 봉우리는 밟아야 된다고 했다.
가장 후미에서 삼불봉으로 향하는 정대리를 보면서 정말 헤어지기 싫은 친구와
헤어지는 느낌이었다.
삼불봉으로 가지 않은 회원들은 이미 앞서 갔기에
금잔디 고개를 내려 가는 사람을 나 혼자였다.
끊임 없이 다른 팀의 사람들이 앞서 가거나 반대 편에서 올라 오기는 했으나 외로웠다.
그러다가 길이 좁아서 길을 비켜주느라고 기다리면서 맞은 편에서 올라 오던 두사람이
"눈이 쌓여서 길을 구분할 수 없어서 한걸음 한걸음마다 스틱을 찔러서 낭떠러지기가 아니 것을
확인하며 걸었다"고 지난 고행담을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위험한 상황이 아니었지만 그사람이 느꼈었을 외로움은 같을 것 같았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계속해서 내려 가는 길이었고, 이미 몇차례의 다른 산행으로
갑사까지의 길이 그리 멀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걸음이 늦은지, 다른 일행과라도 같이 가겠다는 마음인지.
내 뒤에는 다른팀의 일행들이 따라 오고 있었고,
경사로 이어지던 길이 잠시 완만한 길이 두 갈래로 갈라지며
한쪽은 공사중이라고 막아 놓고 한쪽은 계단으로 되어 있었다.
그계단을 내려 오다보니 계단의 중간쯤에 오른쪽으로 길이 있었고
발자국이 나 있었다.
아까 공사중이란 팻말을 보았으니 공사중인 곳을 우회하는 길일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쪽으로 갔더니 길이 금방 없어졌다.
길이 없다고 돌아서서 계단을 향해 도루 갔더니 나를 따라서 오던 다른팀의 사람들이
"이 아저씨 뒤를 따라 오다가 엉뚱한 곳으로 왔네"하며 같이 돌아섰다.
순간 웃음소리들이 들렸고, 계단을 따라내려 오는 뒤에서 "이름이 뭐예요"하는
장난스런 말이 들렸다. 내 배낭에 쓰여있는 "대성금고산악회 박ㅅㄱ라는
명패를 보고서 놀리는 말이었다. 다른 때 같았으면 농담으로 받으며 대화를 했겠지만
너무나 피곤해서, "몰라요. 낙오자라 이름도 잃어버렸네요"하고 무뚝뚝히 대답을 했다.
군산에서 온 팀이라고 했다. 자주 산행을 하는 팀으로 나를 놀리던 그 여인도
다른 어떤산행에서 '저체온증'에 빠진 경험도 있다고 했다.
나는 "산행초보자 인데, 아이징 때문에 고행을 하고 있다"고 했다.
아무래도 이 아이징은 눈이 쌓이곳을 오르는 아이징이 아니라
등반용 아이징인 것 같았다. 처음에는 전혀 미끄럽지 않지만
촘촘한 못사이로 눈이 끼어서 그래잖아도 무거운 아이징이 더욱 무거워지고,
그것이 얼어서 미끄러워지기도 하는 것 같았다.
등산로가 끝나고 눈이 치워진 곳에 있는 화장실에 들어 갔을 때.
아이징에 매달려 얼어 붙은 눈으로 미끄러워서 엉뚱한 곳에서 넘어 질뻔했다.
거기서 조금 내려오니 마을금고 전ㅁㅎ양이 기다리고 있었다.
겨우 낙오를 면했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산악회까페의 까페지기인 전양과는 가까워질수 있는 사이면서도 별 기회가 없었었다.
오늘도 별대화가 없었지만 전양의 말소리는 상냥했고,
까페를 돕겠다고 자원한 내게 가졌던 어떤 경계심이 없어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조금 더 내려가니 김ㅈㅂ여사와 우ㅎㅊ씨가 보였다.
시간은 2시가 조금 못되 있었다. 사진한장 제대로 찍지 못하고,
허둥거리며 극기훈련을 하듯한 산행이 끝난 것이었다.
망년회를 위해서 잡은 '서울식당'은 앰프시설이 형편 없었고
모니타도 부라운관 모니터였다.
식사를 끝내고 몇사람이 노래를 하다가 노래방이 있는 곳으로 가자고 버스에 올랐다.
오늘의 산행은 회원들과의 에피소드가 아니라 낙오되서 고행하던
혼자만의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이야기를 읽어 주는 사람이 있고,
겨울산행을 해 본 일이 없는 사람이라면, 겨울 산행에서 아이징은 필수이며,
아이징을 고를 때 반드시 장착이 쉬운 아이징을 택하고,
되도록이면 남이 많이 사용하는 것을 사라는 것이다.
그래야 장착을 할 줄 몰라도 남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 말이다.
덧붙이자면 몇번 쓰고 망가지더라도 비싼 것이 아니니 가벼운 것을 사라는 말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고행으로 인해 종아리가 아프고
가벼운 걸음 걸이조차 불편하다.
고생 많이 하셨네요,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수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