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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회를 진달하는 상소〔陳所懷疏〕
숙종 26년 1700년 10월 17일
병산 이관명 선생의 소회를 진달하는 상소[진소회소(陳所懷疏)]
삼가 아룁니다. 신이 일전에 예사롭지 않은 자연재해를 목격하고는 너무나도 놀랍고 두려운 나머지, 마침내 동료들과 함께 신들의 비루한 견해를 대략 진달하긴 했지만 구구하게 나라를 걱정하고 임금을 사랑하는 마음을 모두 말씀드리지는 못하였습니다. 감히 어전에서 일부 아뢰었던 내용과 평소 개탄해 오던 생각을 지엄하신 성상께 진달하오니, 부디 밝으신 성상께서는 망녕되고 참람됨을 용서하시고 헤아려 채택해 주십시오.
아, 오늘날 나라의 형세가 위태롭습니다. 안으로는 조정에 온갖 법도가 무너져서 수습할 수 없고 밖으로는 민생에 수많은 폐단이 한꺼번에 발생하여 지탱할 수 없으니, 안팎으로 하나도 믿을 만한 것이 없습니다. 비유하자면 백년 된 큰 집의 기둥이 썩고 부패하였는데 참새와 쥐가 파먹고 비바람이 몰아치며, 일만 섬을 실은 배의 키와 노가 부러졌는데 교룡과 악어가 뒤흔들고 파도가 배를 요동치게 하는 것과 같으니, 보는 사람마다 위태로워하고 두려워하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우리 전하께서 조종(祖宗)의 어렵고 큰 왕업을 물려받아 조정에서 치세를 도모한 지 26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스린 효과는 막연한 채 위태로운 징조가 점차 출현하더니, 한해 두해 나날이 쇠퇴 일로를 걸어서 여울 따라 내려가는 형세처럼 걷잡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삼가 생각건대, 성상께서는 늦은 밤 침상에서도 분명 애통하여 기쁘지 않으실 것인데 더구나 지금은 막대한 자연재해가 성상의 마음을 크게 놀라게 하였으니, 전하의 두렵고 불안함이야 어떠하겠습니까.
그러나 재해를 당해도 몸을 바르게 닦고 반성하면 재해가 상서로움으로 바뀌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상(商)나라의 임금은 상곡(桑穀) 때문에 번창하였고 송(宋)나라의 군주는 법성(法星)으로 인해 장수를 누렸던 것입니다. 전하께서 만약 놀랍고 두렵게 하는 단서를 통해 걱정하면서 훌륭한 행실을 극진히 닦으신다면 하늘의 노여움을 거두고 백성의 원망을 풀 수 있어서 국가가 오래도록 그 혜택을 입게 될 것이니, 오늘의 재앙이 훗날 태평성세의 기반이 되지 않으리라 어찌 알겠습니까.
만약 그렇지 않고 비록 재앙을 두려워하는 생각은 있으나 끝내 하늘에 대응하는 실제가 없고, 잠시 경계심이 생겼으나 끝내 태만함으로 귀결됨을 면치 못한다면 또한 종국에는 혼란 속에 멸망하고야 말 것입니다. 이것의 관건은 다만 성상께서 뜻을 세우고 세우지 않는 데에 달려 있을 뿐이니, 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전하께서는 지금이 어떤 때인지 한번 살펴보셨습니까? 기근이 여러 해 지속되고 전염병이 재차 창궐하여 이 땅의 백성들이 대부분 죽어 나가고 도적이 팔도에서 들끓는 바람에 부고(桴鼓 비상시에 치는 북) 소리가 자주 울리며, 사나운 짐승은 인명을 무수히 살해하고 있는데, 설상가상으로 하늘마저 포학하여 재해가 속출하고 놀랄 만한 변고가 달마다 발생하니 위태로운 현상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런데 전하께서는 성지(聖志)를 수고롭게 하지 않으시고 느긋한 행보로 그럭저럭 세월을 보내면서 목전에 아무 일이 없기를 바라시는 것입니까. 이는 바로 군신 상하가 겨울에 얼음을 쥐고 여름에 불을 잡듯이 하늘이 부여한 큰 명〔景命〕을 맞이하여 지속시키는 일에 한결같이 뜻을 두고서 밤낮으로 조심하고 두려워해야 할 때인데, 신은 전하께서 뜻을 세움이 과연 이와 같으신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지금 나라의 형세가 이와 같은데도 남북은 평온하여 변방에는 전쟁의 위기감이 없고 군주가 위에 있음에 조정에는 발호하는 간신(奸臣)이 없으니, 전하께서는 혹여 여러 대에 걸쳐 잘 다스려진 왕업을 기반으로 삼고 조종(祖宗)에서 너그러운 정사로 길러낸 백성을 어루만지면서 법궁(法宮 정전(正殿)) 안에서 고요히 굳게 팔짱을 낀 채 안정된 나라에 다른 걱정거리가 없다고 여기실 것입니다.
아, ‘두려워하지 않으면 두려운 상황으로 들어간다.〔不畏入畏.〕’라는 옛 가르침이 분명하게 있으니, 그렇다면 안정 속에서도 위기의식을 갖는 것이 나라를 보존하는 방법이거늘 지금 나라가 이토록 위태로운데도 오히려 근심할 줄 모른다면, 이 또한 위태로운 것입니다. 밝고 거룩하신 전하께서 분연히 큰 뜻을 일으켜서 기강을 진작하고 엄숙하게 한다면 시행한 지 두세 달 만에 기필코 크게 변화시키는 효과가 있을 것인데, 어찌하여 게으르고 느슨하여 나라가 쇠퇴하도록 방치하고서 종전의 방식을 바꾸지 않는 것입니까.
신 또한 지난날 비국(備局 비변사)의 여러 신하들을 따라 경연(經筵)에 입시한 적이 있습니다. 여러 신하들의 말이 비록 조정의 정책을 도모하고 국론(國論)을 결정할 만한 훌륭한 논의는 없었지만 전하께서 아침저녁으로 원대한 계획을 함께 도모할 사람은 비국의 한두 명의 재보(宰輔)가 아니면 달리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넓은 궁궐과 고운 털방석이 깔려 있는 자리에서 강구한 것이라곤 진실로 백성과 국가를 위한 중대한 계책은 구경하지 못한 채, 성상께서 하문하고 신료들이 논의한 것은 끝내 두세 가지 의례적인 거행 조건(擧行條件)을 다루기만 하고 자리를 파했습니다.
성상께서 만일 국운을 만회하고 백성의 고통을 구제하는 일에 뜻을 두어 언제나 이것을 생각하며 밤낮으로 게을리 하지 않는 가운데 실행하는 도중에 마음에 납득되지 않는 것을 가지고 아침을 기다려 신하들과 토론하신다면 반드시 볼만한 군신 간 도유우불(都兪吁咈)의 정사가 있게 되었을 것이니, 어찌 오늘날의 평범한 수준에서 그칠 뿐이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 먼저 성지(聖志)를 세워 형식적인 규정이나 사소한 절목에 구애받지 않고 반드시 지극한 정성과 참된 마음으로 정사를 집행하되 견고히 정한 이 뜻을 오래도록 변치 않고 묘당(廟堂)의 신하들을 자주 접견하여 송나라 인종(仁宗)의 천장각(天章閣) 고사와 같이 신하들의 소견을 모두 진달케 하여 오늘 하나의 정사를 시행하고 내일 하나의 은혜를 베푸신다면 훌륭한 정치를 회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 필부(匹夫)가 뜻을 세울 때에도 오히려 온 천하 사람들과 선(善)을 함께 나눌 것을 기약하거늘, 전하께서는 하늘이 내신 성군으로서 다스릴 만한 권력을 잡고 시행할 만한 지위를 차지하고서 한번 성지(聖志)를 견고히 하여 훌륭한 정치를 회복하기를 생각지 않고 그럭저럭 세월만 보내신다면, 점차 나라는 혼란 속에 멸망하는 지경에 이르고 말 것입니다. 신은 매번 옛사람의 “성왕(聖王)의 출현은 천년에 한 번 있는 일이고 세도의 쇠퇴는 물이 더욱 깊어지는 것과 같다.”라는 말을 읊조릴 때마다 세 번을 되뇌면서 크게 탄식을 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아, 전하께서 뜻을 세우는 것은 진실로 오늘날의 큰 근본이거니와, 선비의 지향(志向)을 바로잡고 백성의 폐단을 개혁하는 것도 오늘날 서둘러 힘써야 할 부분입니다. 선비의 지향을 바로잡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이겠습니까. 선비의 지향의 득실은 참으로 국가의 성쇠와 관계되니, 군주는 반드시 이들을 양성하고 진작할 적에 인륜을 바르게 하고 의리를 밝히는 방도로 선비를 가르쳐서 도덕적인 교화 안에서 이들을 함양시킨 뒤에야 민심은 나아갈 방향을 알게 되고 세도는 나날이 밝아질 것입니다. 만일 조금이라도 이와 반대로 한다면 윤리는 사라지고 풍속은 무너져서 점차 혼란 속에 멸망하는 지경에 이르는 자들로 온 세상이 가득찰 것이니, 아, 소홀히 할 수 있겠습니까.
《서경》에 이르기를 “하늘이 백성을 도우려고 군주를 만들고 스승을 만들었다.〔天佑下民, 作之君作之師.〕”라고 하였으니, 상고(上古) 시대에 복희(伏羲)와 신농(神農)ㆍ황제(黃帝)가 하늘의 뜻을 계승하여 법칙을 세웠고, 요 임금과 순 임금이 백성을 평안케 하고서 오교(五敎)를 펼쳤으며, 성탕(成湯)이 인륜을 닦아 백성들에게 중도(中道)를 세웠던 것들이 모두 군주를 두고 스승을 두었던 도리를 최상으로 구현한 것입니다.
옛날 태평성세에 정치가 위에서 융성했던 이유는 군주가 사도(師道)를 맡아 군주와 스승의 도리를 둘로 나누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삼대(三代, 하(夏)ㆍ은(殷)ㆍ주(周)) 이후로는 총명한 군주가 출현하지 않아, 사도가 아랫사람에게 있었으므로 하늘이 백성을 도우려고 군주를 두고 스승을 둔 뜻이 다시 세상에 밝아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천년 동안 적막한 상태로 훌륭한 정치를 회복하지 못하였으니, 탄식을 금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전하의 총명함은 옛사람보다 뛰어난 데다가 항상 학문을 익혀서 계속 밝히시며 군주를 두고 스승을 둔 도리에 대해서도 그 이치에 밝아서 책임감을 갖고 계시니, 오늘날 신하들이 전하께 기대하는 것도 어찌 삼고성왕(三古聖王)으로 기약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신이 삼가 들으니 지난번에 전하께서 간신(諫臣)의 말로 인하여 스승과 어버이의 경중을 논하는 하교가 있었다고 하는데, 신은 개인적으로 온당치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무릇 사람에게 교육이 없다면 금수에 가까울 것이니, 가르쳐서 금수가 되지 않게 하는 것은 스승의 공입니다. 어찌 감히 나를 낳아 준 은혜보다 가볍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이 때문에 난공자(欒共子)가 말하기를 “사람은 세 사람 덕분에 살아가는 것이니, 이들 섬기기를 똑같이 해야 한다.〔民生於三, 事之如一.〕”라고 했던 것이니, 돌아보건대 그 도리가 어찌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군주나 스승은 의리로 결합하지만 부모와 자식은 은혜를 위주로 하는 사이이니, 만일 처한 환경이 다르다면 은혜와 의리를 따져 봄에 때때로 경중의 차이가 존재할 수는 있겠지만 현재 섬기고 있는 대상에 목숨을 바쳐야 하는 의리로 말하면 애당초 경중의 구분이 없는 것인데 지금 갑자기 스승이 부모보다 가볍다는 것으로 온 세상을 가르치셨고, 전하께서 한번 하신 말씀을 사방에서 모두 듣게 되었습니다.
아, 세상의 교화가 날로 무너지고 윤의(倫義 윤리와 의리)가 점점 어두워지니, 군신과 부자의 윤리를 강구하고 밝혀서 그 직분을 다하는 사람이 드물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또 은혜와 의리가 다르다고 하면서 스승과 부모의 사이를 구분 지으시니, 신은 사도(師道)가 장차 없어지려고 나날이 안 좋은 국면으로 치닫는 가운데 군신의 의리마저 뒤따라 가벼워질까 두렵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스승이란 진실로 옛날 군주의 책무로써 신하와 제자는 똑같이 의리로 결합한 사이인데, 만약 의리보다 은혜를 중시하면서 그들의 마음속에 부모와 스승의 차이를 두려고 한다면 극심한 폐해의 파장이 장차 어떠하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인도하고 격려하는 방법을 날마다 강구하여 군주와 스승의 책무를 극진히 하시고 선비를 가르치는 사람에게 엄히 명하여 반드시 인륜을 바르게 하고 의리를 밝히는 방도로서 서로 강론케 하여 사도를 크게 밝히고 선비의 습속을 크게 변하게 한다면 어찌 사림(士林)만의 다행이겠습니까. 진실로 국가의 다행인 것입니다.
백성의 폐단을 개혁하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이겠습니까. 신이 지난번 경연에서 간략하게 그 단서를 진달하기는 하였으나 모두 말씀드리지 못하였으니, 모두 진달하고자 합니다. 오늘날 백성의 폐단을 사소한 것까지 열거하기는 어려우나 그 가운데 군포(軍布)의 폐단은 백성들에게 막대한 고질적 폐단이 되고 있습니다.
대체로 오위(五衛)를 혁파한 뒤로 군포가 백성에게 피해를 입힌 지 오래되었는데 오늘날에 이르러 폐단이 더욱 심해졌습니다. 거듭된 흉년으로 궐액(闕額)이 매우 많은데 양정(良丁)은 날이 갈수록 줄어들어 충당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외롭고 가난한 집에 너덧 명의 사내만 있어도 어린아이를 막론하고 전부 군보(軍保)에 편입시켜 해마다 포(布)를 거두어들입니다. 100묘나 되는 밭을 사내 한 사람이 경작하니 해를 마치도록 고생해 봐야 수확량은 십수 곡(斛)에 불과해, 시장에 죄다 팔아 관청에 납부하더라도 오히려 부족하여 소와 밭까지 팔아서 충당하고 있습니다. 당초 경제적으로 다소 넉넉했던 사람이라도 일 년 만에 점차 위축하고 이 년째는 더욱 궁핍해지는데, 해마다 더욱 악화되다가 결국 파산하여 뿔뿔이 흩어져 도망치고 맙니다.
또 죽은 사람의 부역을 인족(隣族 이웃에 사는 친척)에게 징수하니, 한 사람이 죽으면 열 사람이 피해를 입고 있습니다. 감옥은 붙잡혀온 사람들로 넘쳐나는데 매질을 요란하게 해 대며 살을 베고 창자를 잘라내어 눈앞의 급한 불을 끄고 있지만 도로에서 유리걸식하면서 하늘을 향해 울부짖는 백성들의 비통한 기운이 하늘로 전달되고 있으니, 백성의 눈과 귀를 통하여 보고 듣는 하늘이 슬퍼하며 진노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근년에 자연재해가 거듭 출현한 것은 이상할 게 없습니다.
성상께서는 깊숙한 구중궁궐에 거처하시니 백성들의 참혹한 실상에 대해서는 자세히 모르시는 부분이 있을 것입니다. 만약 직접 보셨다면 백성의 부모 된 마음을 가지신 전하께서 어찌 차마 하루라도 무관심하게 바라보면서 구제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또 백성들은 깊은 원한이 뼈에 사무치고 굶주림과 추위가 몸에 절실히 와 닿아 죽음을 면하기도 어려운 형편이니 무슨 일인들 못하겠습니까. 장영(張嬰)과 황건적(黃巾賊)도 유리걸식하는 백성을 불러 모은 데 지나지 않았던 것이니, 그렇다면 어찌 국가의 큰 근심거리가 아니겠습니까.
지금 말하는 사람 중에는 더러 “군포의 폐단은 모든 사람이 알고 있지만 진실로 개선시킬 방법이 없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이 곤궁한 백성들은 모두가 우리의 어린 자식 같은 존재입니다. 지금 어린아이가 화상을 입고 칼날에 다쳐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살리고자 하였으나 가냘픈 숨이 끊어지려 한다면 아이의 부모는 차마 ‘아이를 살릴 방법이 없다.’고 여기고 우두커니 바라만 보면서 구제하지 않겠습니까, 아니면 의원이나 무당을 맞이하여 갖은 방법을 시도해 가면서 기적을 바라겠습니까. 신의 용렬하고 어리석음으로는 진실로 이런 폐단을 구제할 수 있는 방책을 알 수 없으나 속수무책으로 방관하면서 스스로 죽어 나가기를 기다리는 것은 분명 불가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또 신이 들으니, 호포(戶布)의 설(說)과 균역(均役)의 법을 가지고 일찍이 전하께 아뢴 자가 있었다고 합니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 백성의 고통이 자신의 몸에 있는 것처럼 여기고 매번 이 폐단을 고치지 않으면 나라꼴이 되지 않는다는 뜻을 마음속에 새기시어 낮에도 강론하고 밤에도 생각하십시오. 또 집정(執政)하는 신하로 하여금 각자의 생각을 모두 진달하게 하여 훌륭한 것을 따라 변혁시켜 백성들의 위급한 상황을 해결해 주신다면, 이것이 바로 재앙을 그치게 하는 큰 방도일 것입니다. 만일 이 폐단을 고치지 않으신다면 성상께서 매일 위에서 정사를 수고롭게 다스리시고 어질고 훌륭한 신하들이 아래에서 분주히 일을 하더라도 백성의 곤궁함은 끝내 해결할 길이 없을 것이니, 바라건대 밝으신 성상께서는 신중히 생각하십시오.
신이 삼가 들으니, 지난번 연경(燕京)으로 간 사신의 장계와 묘당(廟堂 의정부)의 복계(覆啓)를 따라 특별히 왜인(倭人 일본인)에게 개시(開市)를 허락했다고 합니다. 신은 이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놀랍고 의혹스러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무릇 이웃 나라와 교린(交隣)하는 방법은 오직 사령(辭令)을 신중히 하고 거조를 살펴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고 사령이 일정하지 않거나 거조가 전도된다면 경시당하고 모욕을 받음에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것이 있게 될 것입니다.
지난번에 은화(銀貨)를 8성(成)을 변경해서 6성(成)으로 만든 것은 참으로 저들 고유의 속임수이니, 우리는 또한 옛 법을 굳게 지키고 따르지 말아야 할 것인데, 묘당의 논의가 처음에 득실을 자세히 살피지 못한 상태에서 느닷없이 들어주어 일마다 난처한 단서가 생겼으니, 식자들이 아직도 한스러워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은화를 내주지 않으면 오히려 연조(年條)를 한정하여 옛날에 포흠(逋欠)한 것을 책망하면서 호시(互市)를 허락하더라도, 우리에게는 진실로 근거할 바가 있는 것입니다. 지금 변신(邊臣)이 책유(責諭)를 가지고 치계(馳啓)한다면 저절로 처리할 수 있었을 것인데, 연행(燕行)하는 역상(譯商)들에게 동요되어 사신이 아방(兒房)의 꼼꼼하지 못한 일을 가지고 진청(陳請)하기에 이르렀고, 묘당에서도 이듬해에 피집(被執)의 잘못된 예를 인용해 가며 마침내 시행을 허락한 것입니다. 으레 행차하는 성절사(聖節使)의 역상(譯商)들이 가져오는 것이 없다 한들 국사와 무슨 관계가 있길래 전후로 사령이 일정하지 않고 거조가 전도되는 것을 생각지도 않고 마침내 이런 일이 발생하게 하는 것인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진실로 애석합니다.
저 내부(萊府 동래부(東萊府))에서 묵고 있는 자들이 우리 변방의 백성이나 상인과 정의(情義)를 통하고 있으니, 무슨 일인들 알지 못하겠습니까. 신이 걱정하는 것은 앞으로 교활한 일본(日本)이 더욱 우리를 가볍게 보는 마음이 생겨서 미래의 근심이 비단 호시(互市)의 득실에만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구준(寇準)이 약속한 금과 비단의 수량은 당시에 고식적인 방법에 익숙해 있던 터라 강력하게 간쟁하지 않았는데, 결국에는 중국에 무궁한 손해를 입혔던 것입니다. 이것은 작은 일이지만 또한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묘당에 거듭 명하시어 다시 상의하게 하여 명을 환수하신다면 더할 나위 없이 다행일 것입니다. 신이 이미 들은 것이 있으므로 덧붙여 아뢰지 않을 수 없었으니, 아울러 헤아려 주십시오.
[주-1] 소회를 진달하는 상소 : 《국역 숙종실록》 26년 10월 17일 기사에 보인다.
[주-D002] 상(商)나라의 …… 번창하였고 : 상곡은 뽕나무와 닥나무가 함께 붙어서 자라는 괴상한 나무이다. 상나라의 수도인 박읍(亳邑)에 이 나무가 돋아나 하루아침에 크게 자라자 군주가 이 변괴에 두려움을 품고 재상 이척(伊陟)에게 물으니, 이척이 “요망한 것은 덕을 이기지 못하는 법이니, 아마도 군주의 정사에 잘못이 있어서 이러한 변괴가 나타났나 봅니다. 임금께서는 더욱 덕을 닦으소서.”라고 하였다. 군주가 그의 말대로 덕을 닦고 훌륭한 정사를 펴니, 그 나무는 곧 말라 죽었으며 상나라는 다시 부흥하였다. 《史記 卷3 殷本紀》
[주-3] 송(宋)나라의 …… 것입니다 : 법성은 곧 형혹성(熒惑星)을 가리키는데, 이 별이 형법을 맡았다 하여 법성이라 이른다. 이 별이 나타나면 재앙이 생긴다고 하는데, 춘추 시대 송 경공(宋景公) 때에 형혹성이 나타나자 경공이 자위(子韋)에게 물으니, 자위가 “재앙이 임금에게 내렸습니다. 그러나 재상에게로 옮길 수는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경공이 “재상은 함께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이니 안 된다.”라고 하자, 자위가 “백성에게로 옮길 수도 있습니다.”라고 하니, 경공이 “백성이 죽어 버리면 내가 누구를 데리고 임금 노릇을 하겠는가.”라고 하였다. 자위가 “해〔歲〕로도 옮길 수 있습니다.”라고 하자, 경공이 “흉년이 들면 백성이 굶어 죽으리니, 백성 죽인 사람을 누가 임금이라 하겠는가.”라고 하였다. 그러자 자위가 “임금께서 덕 있는 말씀을 세 번 하셨으니, 하늘이 반드시 임금에게 세 번 상을 내리시어 형혹성이 반드시 세 자리〔三舍〕 옮길 것입니다.”라고 하였는데, 과연 그렇게 되어 무사했다 한다. 《史記 卷38 宋微子世家》
[주-4] 겨울에 …… 잡듯이 :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괴롭고 힘든 일을 참고 견딤을 비유하는 말이다. 《吳越春秋 卷5 句踐歸國外傳》
[주-5] 두려워하지 …… 가르침 : 《서경》 〈주관(周官)〉에 보인다.
[주-6] 군신 …… 정사 : 도유(都兪)는 긍정을 표시하는 감탄사이고, 우불(吁咈)은 부정을 표시하는 감탄사인데, 군신(君臣)이 화목하게 국정을 토론하는 뜻으로 쓰인다. 《書經 益稷》
[주-7] 송나라 …… 고사 : 천장각(天章閣)은 송나라 진종(眞宗)의 장서각(藏書閣) 이름인데, 인종이 즉위한 후 천장각을 다시 수리하고 여기에 조종(祖宗)의 어서(御書)들을 봉안하고서 가끔 대신들을 불러 어서를 관람하곤 하였다. 일찍이 이곳에 행차하여 대신들에게 조서하기를 “서쪽 변방을 방비하는 데 있어 군졸은 용잡하고 상(賞)은 넘치니, 내가 누구를 따라야 할지 모르겠다. 경들은 각기 소견을 조목조목 아뢰어라.”라고 하고, 또 자신의 잘못과 백성들에게 불편한 법령 등이 있는가에 대해서 모두 듣고 싶으니 자상하게 진술하라는 등의 조서도 있었다. 《宋史 卷11 仁宗本紀》
[주-8] 서경에 …… 하였으니 : 《서경》 〈태서 상(泰誓上)〉에 보인다.
[주-9] 난공자(欒共子)가 …… 것이니 : 난공자는 진(晉)나라 애후(哀侯)의 대부인 공숙성(共叔成)이고, 세 사람은 부모와 스승과 임금을 가리킨다. 이 내용은 《국어(國語)》〈진어(晉語)〉에 “사람은 세 사람에 의해서 생존하기 때문에 섬기기를 한결같이 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아버지는 낳아 주시고 스승은 가르쳐 주시고 임금은 먹여 주시니, 아버지 아니면 태어나지 못하고 먹여 주지 않으면 자라나지 못하고 가르침이 없으면 세상의 어떤 것도 알지 못하니, 이들은 나를 이루어 주는 분들입니다. 그러므로 한결같이 섬겨서 오직 내가 처해 있는 곳에 따라 죽음까지도 바쳐야 합니다. 이루어 준 은혜를 죽음으로 보답하며 베풀어 준 은혜에 노력으로 보답하는 것은 인간의 도리입니다.〔民生於三, 事之如一. 父生之, 師敎之, 君食之, 非父不生, 非食不長, 非敎不知, 生之族也. 故壹事之, 唯其所在, 則致死焉. 報生以死, 報賜以力, 人之道也.〕”라고 하였다.
[주-10] 군보(軍保) : 양인(良人)으로서 신역(身役)을 면제받은 자가 신역을 지는 정병(正兵)의 토지를 대신 경작해 주던 제도이다. 뒤에는 이 제도가 역(役) 대신 일정한 쌀〔米〕이나 베〔布〕를 바치게 해서 그 폐단이 막대하였다.
[주-11] 장영(張嬰)과 황건적(黃巾賊) : 장영과 황건적은 후한(後漢) 말기에 일어난 도적들을 모두 일컬은 것이다. 장영은 순제(順帝) 때 기병(起兵)하여 양주(揚州)와 서주(徐州) 일대를 장악하고 약탈하는 가운데 지방관을 살해하는 등 10여 년 동안이나 위세를 부렸던 인물이고, 황건적은 영제(靈帝) 때 장각(張角)이 10여 만의 무리를 모아 일으킨 난으로 머리에 노란 수건을 둘렀기 때문에 황건적이라 한다. 《後漢書 卷56 張綱列傳》《後漢書 卷101 皇甫嵩列傳》
[주-12] 호시(互市) : 국가 간에 물물 교역하던 무역장이나 그러한 무역활동을 말한다.
[주-13] 구준(寇準)이 …… 것입니다 : 구준은 송나라 재상으로, 북방의 거란이 침입해 오자 주전론(主戰論)을 펼치다가 결국 전연(澶淵)의 맹약을 맺게 되었다. 이때 구준은 사신으로 가는 조이용(曹利用)을 불러 “세폐는 30만이 넘지 않도록 하라.”라고 하였는데 결국 이에 맞춰서 송나라는 해마다 비단 20만 필과 은 10만 냥을 거란에 바치게 되었다. 《宋史 卷281 寇準列傳》
ⓒ 전주대학교 한국고전학연구소ㆍ한국고전문화연구원 | 유영봉 황교은 (공역) | 2015
<출처 : 병산집(屛山集) 제3권 / 소차(疏箚) 16수>
陳所懷疏
伏以臣於日昨。目擊天灾之非常。不勝驚懼之至。乃與同僚。略陳蒭蕘之說。而區區憂愛之忱。尙有未盡 o仰暴者。敢以前席發端之說。平昔慨然之懷。冒陳宸嚴。惟聖明恕其狂僭而裁擇焉。嗚呼。今日國勢。岌岌乎殆哉。內而朝廷。百度廢墜。莫可收拾。外而民生。衆弊叢生。不得支保。言內言外。無一可恃。譬如百年大廈。棟樑腐傷。而雀鼠剝啄。風雨萃至。萬斛龍驤。柂檝摧折。而蛟鼉作惡。波濤撼掣。見之者惴惴然莫不危懼。我殿下受祖宗艱大之業。負扆圖治二十六年于玆矣。而治效漠然。危徵漸出。一年二年。日就委靡。下灘之勢。莫可挽回。伏惟丙枕之上。亦必有衋然而不豫者矣。而况今者天出莫大之灾。大 o警動聖心。殿下之所以危厲戒懼者。爲如何哉。雖然遇灾而修省則灾轉爲祥。故商之王以桑穀昌。宋之君以法星壽。殿下若因警懼之端。克盡側身之修。則天怒可回。民怨可釋。而國其永賴矣。今日之灾。安知其不爲他日太平之基乎。若其不然。雖有懼灾之念。而終無應天之實。暫有警戒之萌。而未免終怠之歸。則其亦竟至於亂亡而後已。其幾只在於 聖志之立不立耳。嗚呼。可不懼哉。殿下試看今日何等時耶。饑饉連歲。癘疫荐臻。大東生靈。死亡殆盡。盜賊遍於八路而桴鼓數警。惡獸橫於近坰而殺害 o無數。加以上天疾威。灾異沓至。可駭可愕之變。式月斯生。危懍之象。不一而足。殿下其以爲不勞聖志。安步徐行。姑息翫愒。以冀目前之無事乎。此正君臣上下握氷操火。一以迓續景命爲志。而夙夜兢惕之秋也。臣未審殿下之立志果如是否。方今國勢雖如此。而南北晏然。邊無刁斗之警。威福在上。朝無跋扈之奸。殿下亦或以爲席累世重煕之業。撫祖宗休養之民。穆然深拱於法宮之中。而帖然邦域之無他虞矣。嗚呼。不畏入畏。古訓炳炳。則安不忘危。所以保邦。而今者國危如此。尙不知憂。其亦殆哉。以 o殿下之明聖。奮發大志。振肅綱紀。則行之時月。必有丕變之效矣。奈之何泄泄沓沓。一任其衰微而莫之改轍乎。臣亦嘗從備局諸臣之後。入侍於筵席矣。諸臣之說。雖無碩畫宏議可以謀王體斷國論。而殿下之所與朝夕訏謨者。非此一二宰輔。則無他矣。然其所以講究於廣廈細氊之上者。實未見生民 國家大計。而上之所詢。下之所論。終至於數三循例之擧行條件而罷矣。聖上若以回邦運濟民艱爲志。念玆在玆。不弛夙宵。行有不得於心。待朝而講問於臣隣。則其必有都兪吁咈之可觀矣。豈直爲今日 a177_050d之尋常而止哉。伏願殿下先立聖志。不爲虗文末節所拘。必以至誠實心行政。堅定此志。久而不輟。頻接廟堂之臣。使之畢陳所見。如宋仁宗天章閣故事。今日行一政。明日施一惠。則至治庶可復矣。嗚呼。匹夫立志。猶且以兼善天下爲期。以殿下天縱之聖。操可治之權。居可爲之位。不思一堅聖志。以回隆煕之治。而悠悠泛泛。以度歲月。將未免危亡之馴致。臣每誦古人聖王之作千載一時。世道之下如水益深之語。未嘗不三復而太息也。噫。殿下之立志。實爲今日之大本。而至若正士趍革民弊。亦今日之所 o當急務也。何謂正士趍。士趍之得失。實係國家之隆替。爲人君者必須培養振作。敎之以正倫明義之道。使之涵濡於德敎之中。然後民心知所向方。世道日臻光明。苟或反是則倫常斁風俗壞。漸至於亂亡之域者。滔滔皆是。嗚呼。其可忽哉。書曰天佑下民。作之君作之師。上古伏羲,神農,黃帝之所以繼天立極。堯,舜之平百姓敷五敎。成湯之修人紀而建中于民者。皆能盡其作君作師之道也。盖古昔盛世。所以治隆於上者。爲人君而任師道。不曾以君師之道。分而二之也。三代以後。明王不作。師道在下。上天之所以佑 o下民作君作師之義。不復明於世。是以寥寥千載。善治不復。可勝歎哉。今我聖明聰明冠古。典學緝煕。其於作君作師之道。未嘗不明其理而任其責矣。今日羣下之所望於殿下者。亦何嘗不以三古聖王爲期也哉。臣伏聞向者殿下因諫臣之言。有師親輕重之敎。臣竊以爲未安也。夫人而無敎則近於禽獸。敎之而免禽獸之歸者。師之功也。豈敢曰有輕於生我之恩也。是以欒共子之言曰民生於三。事之如一。顧其道豈不重哉。君師以義合。而父子主恩。苟或所遇之時不同。則量恩酌義。可以有時乎輕重。而至 o於所在致死之義則初無輕重之分也。而今者遽以師輕於親。爲訓於一世。王言一播。四方共聞。噫。世敎日頹。倫義漸晦。其於君臣父子之倫。講明而盡其分者。旣或鮮矣。今又以恩義爲別。而分之於師親之間。臣恐師道將廢。日趍於晦盲否塞。而君臣之義。亦隨而輕之矣。何以言之。師者實古君人之責。而臣與弟子。以義合則同也。若欲以恩勝義。有所輕重於其心。則流害之極。將復如何哉。伏願殿下日究誘掖激厲之方。克盡君師之責。深詔敎胄之人。必以正倫明義之道。相與講論。使師道大明士習丕變。則豈獨 o士林之幸。實國家之幸也。何謂革民弊。臣頃於 筵席。略陳其端。未畢其說。請得以悉陳焉。今日生民之弊。難以毛擧。而其中軍布之弊。爲生民莫大之痼弊。盖自五衛之罷。軍布之爲生民害。厥惟久矣。及至今日。其弊益甚。連歲大殺之餘。闕額甚多。良丁日縮。無以塡補。是以下戶殘氓。家有四五男口。無論兒弱。盡入軍保。歲徵其布。夫百畒之田。一夫耕之。終歲辛苦。其所收穫。未過十數斛穀。而盡賣於市。輸納於官。亦且不足。賣牛賣田。從而充之。當初稍饒者。一年漸削。二年益窘。歲歲轉加。終至於蕩敗散亡而後已。且 o死亡之役。徵之隣族。一人死亡。害及十人。囚繫滿獄。鞭撲狼藉。割肉剜肚。以救燃眉。而流離道路。呼天籲戚。愁痛之氣。上干玄象。視聽自我之天。安得不衋傷而威怒之乎。然則近歲。灾異疊出。無足怪也。聖明深居九重。閭里慘毒之狀。有未及備詳者。若有親經睿覽。則殿下父母斯民之心。豈忍一日恝視而不救哉。且怨毒次骨。飢寒切身。救死不贍。何事不爲。張嬰黃巾之徒。亦不過嘯聚流散之民者也。然則其爲國家深憂。豈不大哉。今之言者。或以爲軍布之弊。人皆知之。而實無善變之道云。凡此顚連無告之民。皆 a177_052b我赤子。今有稚兒弱息。爛於火傷於刃。宛轉求死。微喘將絶。則爲其父母者。其忍以爲此無可救之方而立視不救歟。抑亦迎醫速巫。雜試方技。以冀其萬一乎。如臣庸愚。固未知何策之可救此弊。而束手傍觀。以待其自斃。决知其不可也。且臣聞以戶布之說均役之法。曾復於殿下者有之矣。伏願殿下若恫在身。每以此弊不革則國不爲國之意。着在聖念。晝以講之。夜以思之。又使執政之臣。各盡所思。從長變革。以解生民倒懸之急。則此正弭灾之大者也。若使此弊不革。則聖明日勞於上。賢臣碩輔奔走於 o下。生民之困。終無可解之路矣。惟聖明惕念焉。且臣伏聞昨者因赴燕使臣之啓。廟堂覆啓。特許倭人開市云。臣於是竊不勝駭惑焉。夫交隣之道。惟在於愼其辭令。審其擧措而已。苟或不然。二三其辭令。顚倒其擧措。則其見輕而取侮。有不可言者。頃者銀貨之變八成而爲六成者。彼固詐也。在我亦當堅守舊法。勿爲曲循。而廟議初不能詳審其得失。遽爾聽許。節節有難處之端。識者尙以爲恨。見其銀貨之不出。猶得限其年條。以責舊逋。方許互市。此則在我誠有所據矣。今者邊臣。方以責諭馳啓。則自可有 o了當之期。而乃爲燕行譯商所動撓。爲使价者以兒房稀闊之擧。至於陳請。廟堂又引翌年被執之謬例。終以許施。例行節使之譯商無齎。未知有何關係於國事。而不念前後辭令之二三擧措之顚倒。乃有此事。良可惜也。彼館于萊者。與我之邊民商賈。情意流通。何事不知。竊恐自此狡隣益生輕我之心。而他日之憂。不但在於互市之得失而已。寇準所約金繒之數。當時狃於姑息。不爲力爭。終爲中國無窮之害。此事雖微。亦不可不慮也。伏願申命廟堂。更加商確。收還成命。不勝幸甚。臣旣有所聞。不得不附陳。並 o乞裁省焉。
<출처: 병산집(屛山集) 제3권 / 소차(疏箚) 16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