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한삼희·논설위원
12년도 넘게 지난 1997년 2월 익산천을 취재한 일이 있다. 우리나라 최고 오염 하천이 어디냐고 수소문했더니 익산천이라고 했다. 가봤더니 정말 눈 뜨고 못 볼 상태였다. 개울은 역겨운 거품과 시궁창 냄새로 가득했다. 오염이 특히 심한 지점에서 백지를 물속에 넣어봤다. 종이가 3㎝ 깊이만 들어가도 보이지 않게 됐다. 그해 2월의 익산천 오염도(생물화학적산소요구량·BOD)가 50.5PPM이었다. 당시 시점에서 익산천 오염도가 최고로 올라갔던 건 1995년 11월로, 무려 265.3PPM이나 됐다.
얼마 전 새만금의 친(親)환경 개발을 논의하는 토론회가 있었다. 거기 참석하면서 12년 전 일이 생각났다. 익산천은 만경강의 지류다. 만경강은 새만금으로 들어가는 두 개의 강 중 하나다. 새만금 수질을 유지하려면 익산천 오염부터 해결돼야 한다.
환경부 수질측정 자료를 찾아봤다. 내가 보고 있는 이 수치가 진짜가 맞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익산천 수질은 올 1월 152PPM에서 시작했다. 2월엔 190PPM, 3월엔 217PPM으로 올랐다. 4월엔 무려 574PPM이었다. 12년 전 찾아갔을 때 오염도의 10배다. 도대체 어느 정도 더러운 건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한강 하류 노량진 지점의 올 4월 오염도가 5.6PPM이었다. 말하자면 한강 하류의 100배 오염도인 것이다.
새만금 토론회에선 정부의 새만금 개발안이 소개됐다. 한마디로 명품 도시, 수변(水邊) 레저도시를 만든다는 것이었다. 관광레저단지·생태환경단지·과학연구단지를 지식창조형·환경친화형으로 조성해 인구 73만명을 수용한다는 계획이 화려했다. 구름 속을 떠다니는 황당한 소리로만 들렸다. 냄새 나고 녹조 피는 구정물 같은 호수를 옆에 두고 어떻게 세계적 호수도시를 만든다는 것인가. 호숫가로는 코를 막아야 갈 수 있다면 거기서 어떻게 요트 띄우고 뱃놀이를 하나.
익산천 오염이 500PPM을 넘기까지 하는 건 상류에 축산단지가 있기 때문이다. 돼지 11만 마리를 키우고 있고 하루 1100t의 축산폐수가 나온다. 이곳 가축 배설물이 새만금을 오염시킨다는 사실은 10년, 15년 전부터도 다 알려진 얘기다.
정부가 논란 끝에 새만금 개발 강행의 결론을 내린 것이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1년 5월 일이다. 당시 환경부가 새만금을 담수호(淡水湖)로 조성할 경우 수질이 어떻게 변할지를 시뮬레이션해봤다. 더러운 만경강 강물을 파이프로 먼바다까지 뽑아낸다는 비현실적인 방안까지 강구한다고 쳐도 수질을 맞출 수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래서 나온 것이 동진강 쪽만 먼저 개발하고 만경강 쪽은 나중에 수질을 봐가며 개발 시점을 정한다는 '순차적 개발안'이었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나면서 새만금 개발안은 몇 차례 요동을 쳤다. 순차 개발 아이디어는 아예 없던 일이 됐다. 원래 전체 개발지의 70%를 농지로 만든다는 것이었지만 농지 비중은 30%로 줄었다. 대신 '명품 도시'라는 콘셉트가 떠올랐다. 글로벌 명품 수변도시를 만들려면 농지를 조성할 때보다 더 깨끗한 물이 필요하다. 호수를 매립해 물속 한가운데에 짓는다는 호수도시가 1년에 한 계절이라도 냄새 나는 물로 둘러싸인다면 세계인이 그 도시를 '명품 도시'로 불러주기를 바랄 수는 없다.
이러다 결국 담수호를 포기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지금처럼 계속 바닷물을 끌어들이지 않으면 수질 유지가 불가능해질 수가 있다. 시화호도 수질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결국 해수호(海水湖)로 방향전환을 했다. 새만금이 해수호가 되면 당초 개발 목표 가운데 중요한 부분 하나가 실패로 귀결되는 셈이다. 10년 넘게 지나도록 익산천 오염 하나 해결 못하는 정부 능력을 보면 그런 예감을 떨칠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