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로맹 가리를 존경한다. 로맹 가리는 또 다른 필명인 에밀 아자르로 너무나 감동적인 소설, 모모의 이야기 “자기 앞의 생”을 발표하기도 했다. 때론 어떤 예술가와 함께 이 세계를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감사하는 마음이 차오를 때가 있다. 로맹 가리도 내겐 그런 예술가, 작가 중 한 명이다. 그가 없었다면 삶의 의미는 조금 황량했을 것이다. 이 날것인 세계에 던져져서 존재한다는 사실의 무의미를 견디게 하는 게 예술의 몫이라면 나는 로맹 가리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다. 아직 읽지 못한 그의 소설을 힘 닿는 데 까지 다 읽어 보리라 작정하고 인근 도서관에서 발견할 수 있는 책 몇 권을 대출해왔다. 그 중 한 권이 <노르망디의 연>이다.
그의 작품을 읽을 때면 인간다움에 대해서 깊이 성찰하게 되고 내 삶과 이웃들, 그리고 이 세계를 좀 더 따뜻한 경의를 품고 바라보게 된다. 그의 시선에 깊이 공감하게 되는 건 인간과 세계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내 청춘의 감수성과 겹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느덧 세상은 그의 시선을 잊어가고 있다. 그가 길어올리는 의미는 이미 지나간 세기, 20세기의 낡은 감성의 산물이며 21세기엔 어느덧 고리타분해서 오히려 생경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내게 큰 감동을 안겨주었던 그의 작품 “하늘의 뿌리”에 대해서, 인간성을 지키기 위해서 아프리카의 코끼리를 보호하는 영웅적 투쟁을 벌이는 이들의 이야기를 후배에게 들려주었을 때, 후배의 시선은 뜨악했다. 스페이스X를 창업하고, 아이언 맨의 모델이기도 한 일론 머스크의 상상력이 주도하는 시대에 아프리카의 코끼리를 지키는 투쟁이라니... 21세기는 이미 레지스탕스의 시대는 아닌 것이다. 인간의 분투의 영역은 로맹 가리의 레지스탕스들, 땅속에 은신처와 무기고를 마련하는 지하의 세계가 아니라 우주다. 지구 너머 저 멀리 우주로 바뀐 것이다. 중력을 떨치고 날아오르는 상상력의 시대 로맹 가리가 사랑했던 인물들은 이제는 역사책, 박물관에 박제되어 전시되는 유물이 되어 버린 것일까? 그의 인물들에 공감하는 내 감성도 이젠 시대에 뒤떨어진 것인가?
중력에 저항한다? 로맹 가리의 인물들 역시 중력에 저항하고 초월을 꿈꾼다. 이야기의 무대가 다른 것이다. 로맹 가리의 시대인 것이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이야기다.
연은 인간의 상상력과 자유, 기억해야 할 인간의 문화, 역사를 상징한다. 중력은 연이 파랑을 배경으로 하늘을 날지 못하게 통제하는 힘들이다. 그것은 폭력, 억압, 야만의 힘이다. 소설은 1차 대전에 참전했다가 부상을 입고 귀향한 후 평화주의자가 되어 연을 만들어 날리는 삼촌 앙브루아즈 플뢰리와 그의 조카 뤼도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플뢰리 집안은 지독한 광기와 기억력의 내력으로 유명하다. 두 사람은 이 두가지 내력으로 2차대전 당시의 중력의 힘에 저항하며 지켜내야 할 것을 지켜낸다. 문화를, 역사를 기억해야 하며, 현실 너머를 꿈꾸면서 내 삶의 이유를 위해 전부를 거는 광기.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 힘이다.
삼촌은 몸을 숙여 풀밭에 장 자크 루소 연을 조심스레 내려놓더니 앉았다. 나도 그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러니까 그 사람들이 나를 미친 사람으로 여겼다는 거냐. 생각해 보거라. 그 멋진 신사들과 아름다운 숙녀들이 옳아. 한평생을 연에 바친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 광기가 있는 게 분명해. 다만 해석이 문제 될 뿐이지. 그것을 ”광기“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숭고한 불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어. 그 둘을 구분하기가 때론 어렵지. 하지만 네가 정말 누군가를 혹은 무언가를 좋아한다면 네가 가진 모든 것을, 심지어 너의 전부를 바치거라. 그리고 그 나머지엔 마음 쓰지 마라...
-----------------------------------------------------------------------------------------------------------------
- 플뢰리, 안녕한가, 자네 옆에 계신 분께 인사를 좀 하겠네...
그는 몸을 살짝 일으키더니 빈 의자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계산대 뒤에서 유리잔을 닦고 있던 종업원 브리코가 아연해서 멈칫했다가 다시 닦기 시작했다. 그는 평생 한 번도 상상력을 발휘해 보지 못한 선량한 바보 녀석이었는데, 상륙작전 이후에 달아나던 SS대원들에게 그야말로 개죽음을 당했다.
-숭고한 광기에 경의를 표하네. 자네의 광기, 자네 삼촌 앙브 루이즈의 광기, 그리고 기억 때문에 완전히 머리가 돌아버린 이 나라 프랑스 젊은이들의 광기에도. 우리의 오랜 공교육에서 기억해야 할 것을 기억한 사람이 여럿인 것을 확인하니 기쁘네.
그는 살짝 웃었다.
‘이성을 지키라’는 표현을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지. 옛날에 자네들에게 이것에 관한 작문을 내준 적이 있어. 물론 프랑스어 작문이었지.
아주 생생히 기억납니다. 팽데르 선생님. ‘이성을 지키라, 양식의 규범에 따라 합리적으로 행동하라. 아니면 반대로, 자기 삶의 이유를 지키라.’
나의 늙은 선생님은 아주 흡족해하는 것 같았다. 그는 오래 전에 퇴직했고, 주름도 잔뜩 생겼고, 위풍당당한 표정도 살짝 피로해 보였지만 그에겐 전혀 다른 젊음이 있었다. 때론 일흔의 학교 선생까지도 강제수용소로 들어가게 만들 그럴 젊음이었다.
맞아. 맞네.
많은 상상력이 필요해. 많이 필요하지. 러시아인들을 보게나. 이 신문을 읽으면 저들이 이미 전쟁에서 패배한 것처럼 보여. 그러나 러시아인들은 패배를 깨닫지 못할 만큼 꽤나 상상력이 많아 뵈네.
그는 일어섰다.
-플뢰리 군. 아주 좋아. 자기 삶의 이유를 지키는 것이 때로는 이성을 지키는 것과 정반대일 수 있지. 자네는 아주 좋은 점수를 받을 거네.”
-----------------------------------------------------------------------------------------------------
- 뤼도비크 플뢰리, 너를 위해 내가 걱정하는 오직 한 가지는 말이야... 두 사람의 재회야. 어쩌면 그때쯤 나는 이미 없을지도 몰라. 그래서 실망할 일을 면제받게 될지도 모르지. 프랑스를 되찾게 될 때면 우리의 상상력도 많이 필요할 테고 공상도 많이 필요할 거야. 네가 3년 동안 그토록 열렬히 줄곧 상상해온 그 아가씨를 다시 만나게 되면... 온 힘을 다해 계속 그 아가씨를 만들어내야 할 거야. 틀림없이 네가 알았던 여자와는 아주 다를테니까... 프랑스의 경이로운 귀환을 꿈꾸는 우리 레지스탕스 대원들은 훗날 종종 꺼림직한 웃음으로 실망감을 드러내게 될 거야. 저마다 다른 정도의 실망감을....
-사랑이 부족해서죠.
내가 말했다.
팡테르 선생님은 텅 빈 파이프를 빨았다.
-상상의 작품이 아닌 건 살아볼 가치가 없어. 상상 없이는 바다도 한낱 짠물일 뿐일 테니까... 이를테면, 50년째 나는 내 아내를 줄곧 지어내고 있더. 난 아내가 늙어가도록 내버려두지 않았지. 그녀에겐 결점이 분명 많겠지만 그걸 나는 장점으로 바꾸었어. 그리고 내 아내의 눈엔 나도 특별한 남자지. 아내도 나를 지어내기를 그만둔 적이 없거든. 함께 50년을 살면서 우리는 서로 보지 않고서 서로를 지어내고, 매일 서로를 다시 지어내는 법을 배우고 있어. 물론, 있는 그대로의 현실은 놓지 말아야하지. 하지만 그건 그 현실의 목을 제대로 조르려고 붙드는 거야. 더구나 문명이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의 목을 계속해서 비트는 방식일 뿐이지...
팡테르 선생님은 1년 뒤에 체포되었고 수용소에서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
독일인에 대한 증오의 흔적이 내게서 떠난 건 오래전 일이다. 그래서 나치즘이 비인간적인 잔학함이 아니라면? 그것이 인간적인 것이라면? 그것이 고백이라면? 우리 속에 웅크린 채 감춰지고 억눌리고 위장되고 부인된, 그렇지만 언제나 결국엔 뛰쳐나오고 마는 진실이라면? 물론 독일인들, 그렇다. 독일인들이 문제였다... 역사에서 이번에는 그들의 차례였다. 그뿐이었다. 전후에 독일이 패배하고 나치즘이 달아나거나 묻히고 나면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의 다른 민족들이 교대하지 않을지 두고 보게 될 것이다. 런던에서 온 한 동료가 우리에게 프랑스 외교관 루이 로셰의 시가 적인 책자를 가져왔다. 전후를 말하는 시였다. 두 구절이 내 기억에 영원히 남았다.
엄마가 장담하건데
대학살이 있을거야.
나는 손전등을 켰다. 연은 언제나 그대로 있지만 그걸 날리지 말라는 금지는 여전했다. 사람 키 높이 이상 날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규칙이다. 당국은 이 신호들이 하늘에 오르는 걸 겁낸다. 암호를, 메시지 교환을, 지표를, 레지스탕스 대원들에게 보내는 신호를 겁낸다. 아이들은 연줄 끝에 연을 매달 권리만 가졌다. 하늘에 올리는 건 금지다. 장 자크 루소나 몽테뉴가 땅바닥에 끌리는 걸 보는 건 가슴 아픈 일이다. 그들이 땅바닥에 기어다니다니 가혹한 일이다. 어느날, 그들은 다시금 자유롭게 하늘 높이 날아올라 파랑을 좇아 떠나게 될 것이다. 그들은 다시 우리에게 자신감을 안겨줄 테고, 다시 환상을 심어줄 것이다. 어쩌면 연들은 뽐내는 것 외에 달리 진짜 존재 이유를 갖고 있지 않은지도 모른다.
----------------------------------------------------------------------------------------------------------------------
한마디 더, 이 식탁에는 한 사람이 빠졌습니다. 넓은 마음을 가진 친구, 좌절할 줄 몰랐던 사람입니다. 알아맞히셨습니다. 바로 앙브루아즈 플뢰리를 말한 겁니다. 그가 그립습니다. 뤼도, 네 고통이 어떠할지 난 알아. 하지만 용기를 잃지 말자고. 아마도 그는 우리 곁으로 돌아올 거야. 우리 가운데 다시 나타나는 걸 보게 될 거야. 그토록 한결같이 연이라는 사랑스런 예술로 이 땅에서 영원히 순수하고 변질될 수 없는 모든 것을 표현할 줄 알았던 사람. 자네, 앙브루아즈 플뢰리를 위해 잔을 드세. 자네가 어디에 있건 자네의 영적 아들이 자네 작업을 이어갈 것이며, 그 작업 덕에 프랑스의 하늘은 영원히 비어 있지 않을 것입을 알게나! ”
이 소설의 마지막 문장은 다음과 같다.
“나는 앙드레 트로크메 목사와 르 샹봉 쉬르 리뇽의 이름을 다시 한 번 쓰면서 이 이야기를 마침내 끝내려 한다. 더 잘 말할 수는 없겠기에.”
르 샹봉 쉬르 리뇽은 앙드레 트로크메 목사와 그의 아내 마그다의 비호 아래, 그리고 모든 마을 사람들의 도움으로 수백 명의 유대 아이들을 강제수용에서 구해낸 마을이었다. 샹봉의 모든 삶은 2차대전 내내 4년 동안 이 일에 바쳐졌다. 소설에서 삼촌은 이 아이들을 돕기 위해 이 마을로 떠났고 거기서 아이들에 연 만들기를 가르치며 연을 날렸다.
이 문장을 끝으로 로맹 가리의 글쓰기도 끝났다. 그는 이 작품을 끝내고 1980년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작가는 죽기 직전에 남긴 몇 줄의 글에서 자신이 죽는 이유를 마지막 소설의 마지막 구절에서 찾으라고 했다. “더 잘 말할 수는 없겠기에”. 그리고 그가 덧붙인 말은 이러했다. “나는 마침내 나를 완전히 표현했다.”
나는 그의 이름으로 출간된 첫 소설인 <유럽의 교육>을 감동적으로 읽었다. <유럽의 교육>과 마지막 작품인 <노르망디의 연>은 닮은 꼴이다. 왜 로맹 가리는 첫 작품부터 시작해서 긴 세월을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살아내고 많은 다양한 결의 작품을 집필하고 다시 <노르망디의 연>으로 돌아갔을까? 다시 레지스탕스의 이야기로...유대인 아이들을 구하고 그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온 마을이 4년의 시간을 바친 그 이야기를 전하는 그 이상 더 잘 말할 수 없다는 것은... 1914년에 태어나 2차대전 당시 공군으로 참전하고 전후 외교관으로 작가로 영화감독으로... 많은 변화 끝에 그렇게 1980년이 되었다. 저항하는 동안 그가 꿈꾸었을지 모르는, 해방이 된다면 그 후에 도래할 세계는 어찌 되었던 것일까?
연을 만드는 삼촌은 작가의 자화상일지도 모른다. 이 땅에서 순수하고 변질될 수 없는 모든 것을 표현할 줄 아는 예술가. 그가 이 땅에서 순수하고 변질될 수 없는 것으로, 더 이상 말로 전할 수 없이 그러한 것은 유대 아이들을 지켜낸 4년간의 한 마을의 단결된 정조였다. 이 지구가 핍박받는 존재들을 그런 연대의 마음으로 보호할 수 있기를 바랬던... 평생 레지스탕스의 영혼을 간직한 작가의 유언이었을까? 그가 이 세계에 와서 보았던 가장 아름다운 건 그 마음, 그 영웅적인 인간애였을까?
아이러니 하게도 자살 직전의 마지막 작품이지만 첫 작품 <유럽의 교육>보다 더 밝고 희망찬 정조를 띤 작품이다.
연과 스페이스X 는 상상력과 광기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그러나 기억의 문제는 어떨까? 인간의 세계는 기억 없이는 유지되지 않는다. 새로운 세대가 와도 기억은 이어져야 한다. 인간 세계에서 교육의 책임 중 중요한 한 축은 기억의 계승이다. 역사는 돌고 돌아 다시 온다. 독일 다음엔 이스라엘인가? 그리고 또... 학살은 끝나지 않는다. 역사의 기억을 통해서 인간을 이해해야 한다. 완전한 가해자도 완전한 피해자도 없다. 가해자 만들기, 피해자 되기의 비겁함을 통찰할 때 온전히 인간을 이해할 수 있다. 이해와 관용, 연대 그리고 사랑의 이유는 기억을 해석할 때 비로소 도래한다. 스페이스X 시대에 로맹 가리를 읽어야 하는 이유다. 스페이스X의 궤도가 부디 샹봉 마을에 떠오른 연과 동심원이기를 기원해 본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더욱 더 기억해야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