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위한 교육정책 방향
- 이 성 구 -
교육부의 자율형 사립고(자사고) 재지정 문제를 놓고 사회에서 여론이 분분하다. 해당 학교와 학부모들은 ‘자사고 죽이기’라고 주장하고, 교육청과 교육부는 입시교육기관으로 변질되어 공교육을 황폐화시키는 자사고는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오늘날 우리 교육이 가야할 바람직한 방향은 과연 어디일까? 평생 교직에 몸 담았던 필자로서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교육의 문제점과 해결책을 찾아보도록 하겠다.
자사고 폐지는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이고 다수의 교육감들도 지난해 선거에서 공약으로 내세운 정책이었다. 교육감 직선제로 고등학교까지는 교육청 관할이다. 교육자치가 활성화되면서 교육감의 성향에 따라 학교 평가기준이 차이가 난다. 교육정책에 과도하게 이념이 개입되면서 평가기준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담보할 수 없게 되면서 학생과 학부모들은 교육 선택권이 훼손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자사고의 등장 배경은 무엇일까?
1969년부터 50년간 시행된 평준화교육에도 불구하고 학부모들이 원하는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학부모들은 면학분위기가 좋은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시켜 명문 대학에 입학시키기 위해서 강남 8학군과 조기 유학 열풍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런 현상은 강남지역의 집값을 천정부지로 올려 놓았고 빈부격차를 극대화시켜 사회적 갈등을 야기시켰다. 그리고 해외 유학의 열풍은 막대한 외화 유출과 함께 가정에서는 기러기 아빠로 장기간 별거하면서 다양한 사회적 부작용도 나타나게 되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김대중 정부에서 2001년에 처음으로 자립형 사립고를 지정하여 수월성교육을 허용하게 되었다. 이를 시작으로 이명박 정부에서는 자립형 사립고를 자율형 사립고로 전환하였고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project)’란 이름으로 확대 추진하게 되었다. 그 후 박근혜 정부는 자사고의 유지와 일반고 육성정책을 동시에 실시했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에 들어와서 국정과제로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중이다.
이처럼 교육정책이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오락가락하게 되니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과 학부모에게 전가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자사고를 폐지하고 일반고로 전환한다고 해서 학부모들이 원하는 만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대책이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자사고가 없어지면 또다시 여유 있는 학부모들은 자식을 강남 8학군으로 이사시키거나 외국으로 유학 보내려 할 것이다. 입시교육과 고교 서열화는 자사고 때문이 아니라 대학 입시제도와 명문대학에 들어가려는 치열한 경쟁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대입에서 수시가 확대되고 내신 비중이 커지면서 자사고의 경쟁력도 떨어지고 있다. 그래서 일부 자사고는 입학 정원 미달사태가 발생하고 있다. 2년 이상 학생 충원이 어려워진 자사고들이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견디지 못하고 자원해서 일반고로 전환하였다.
일반고의 본질적인 문제점은 무엇일까?
같은 반에서 전국 최고 수준의 학생과 수업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학생이 함께 수업을 받는데 있는 것이다.
현재 일반교 교실에서 벌어지는 수업실태를 살펴보자. 수업 준비를 하는 교사는 반에서 어떤 학생에 초점을 맞춰 수업해야 할지를 고민하게 된다. 대부분의 교사는 중위권 학생수준에 맞춰서 가르친다. 그러면 상위권 학생은 너무 쉬운 것을 자세히 설명하므로 지루함을 참지 못하고 산만한 수업태도를 보인다. 하위권 학생은 학습 진도가 너무 빨라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아예 학업을 포기한다. 그리고 하루 종일 책상에 기대어 잠만 자다가 집에 가는 봉숭아학당을 방불케 하는 것이 오늘의 교실 모습이다. 기회를 똑같이 주겠다는 평등교육은 이론상으로는 그럴듯하다. 그러나 중학교까지는 가능할지 모르겠으나 고등학교부터는 개인 차이가 분명한데 같은 교실에서 가르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교사가 불량한 수업태도를 지적하면 학생들은 “저는 대학 입시를 포기했어요.”라든지 대학입시에 필요 없는 과목이라며 짜증스런 모습으로 다시 책상에 엎드려 자려는 것이 현실이다. 혹시 교사가 생활지도하는 과정 속에 격분을 참지 못하고 순간적으로 잘못된 언행을 하면 바로 경찰서에 폭언과 폭행 교사로 낙인찍어 신고한다. 이런 연유로 교육과 생활지도를 포기하고 나 홀로 수업을 하게 되니 많은 교사가 교직에 보람을 느끼지 못하고 자괴감에 빠지게 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편법으로 일반고에서는 다양한 명칭으로 우열반과 특별반을 편성한다. 그리고 방과(放課) 후 수업에서는 수월성교육(秀越性敎育)을 통해 문제점을 해결해 보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교육당국은 평등교육에 위배된다며 수준별 수업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일반고에서는 수월성교육을 원천 봉쇄당함으로 학부모들이 원하는 수업과 대학 진학 성과를 낼 수 없어 일반고 진학을 더욱 기피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설치된 자사고가 다시 폐지된다면 강남 8학군의 명문고가 자사고 역할을 대신하면서 다시 각광을 받을 것이다.
입시 위주의 교육을 비판하는 사람에게 묻고 싶다. 학생들이 고교에 입학할 때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입시와 관련 없는 교육을 해야 하겠는가? 그렇게 했을 때 과연 학부모들은 그런 학교에 자식을 보내겠는가? 교육당국은 사교육을 받지 않고 명문 대학에 진학할 수 있게 한다며 수학능력시험을 교과서 위주로 쉽게 출제토록 했다. 그에 따른 결과로 교육수준의 하향평준화가 계속되고 있다. 또한 수능을 통한 우열 구분이 어렵게 되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면접과 내신 성적 반영으로 현직 교사도 대입 전형방법을 잘 모를 정도로 복잡하게 운영되고 있다. 그래서 이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입시 전문학원에 가서 많은 돈을 지불하고 학과 선택을 해야 명문대학에 갈 수 있단다. 이런 웃지 못할 풍경이 오늘날 입시 현장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학생들의 실력 차이만큼이나 학교간의 경쟁력 차이가 염연히 존재한다. 그래서 대학들도 숨바꼭질하듯 변형된 다양한 전형방법을 개발하여 우수학교의 우수학생을 선발하기 위해 노력한다.
요사이 국회에서 인사청문회가 있을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위장 전입과 해외 유학 문제는 좋은 학교가 있다면 어떻게 해서라도 자식을 명문고와 명문대에 입학시키려는 학부모가 그만큼 많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것도 사회적으로 부(富)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전유물이지 서민층은 돈이 없어 유학은 고사하고 월세로도 8학군에 갈 수 없는 것이 현실이 아니던가? 정말 서민층을 위한 교육정책이라면 국가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도록 고교에서 다양한 교육과정을 운영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수월성교육을 통해 능력을 최대로 펼칠 수 있도록 하고, 자율성을 대폭 확대하여 국경 없는 무한경쟁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는 교육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런 노력을 무시하고 붕어빵 찍어내듯 똑같은 학생을 만드는 것이 최선의 방법인지 묻고 싶다. 4차 산업혁명은 똑같은 교육을 받은 평범한 사람보다 맞춤형 교육과 창조적 인재의 양성을 요구한다.
교육부는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이라는 정부의 국정과제에 맹목적으로 추종해선 안 된다. 언제까지 평등교육을 외치고 경쟁을 부정하면서 그런저런 평범한 학생들만 키우려 하는가? 학생과 학부모들의 수월성교육에 대한 수요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자사고 폐지에 집착하기보다 일반고의 역량강화 방안과 창의적인 미래 인재 육성에 대해 고민해야 할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