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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팔순에 들어선 '정의한' 그는 좋든 싫든 남을 초대하고 또 초대에 응하며 살아왔다. 마음 내키지 않은 자리라도 서로 대화를 나누다가 보면 오해도 풀리고 앞으로의 여러가지 일도 순조롭게 되는 경우도 꽤 있었다. 아직도 갈 때는 많고 만나고 싶은 사람도 많지만 사람 만나는 것은 예전만 못하다. 간혹 누가 초대해도 빈말로 그런지 신경 쓰이고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친 지인에게 "우리집 한번 놀러 오게.그런 말 하는 것도 상대방에게 부담 주는 것 같아 조심스럽다. 자연히 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고 그것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게 느껴지게 되었다. 마음 편하게 선풍기와 TV 채널을 독차지할 수 있고 싫증나면 서재의 책도 꺼내 읽으면서.
찜통 같은 무더위는 조금 누그러졌다지만 한낮이라 그런지 집안은 여전히 무덥다. 반바지에 넌닝 차림으로 선풍기 옆에 앉아 무료함을 달래보고자 TV 채널만 이리저리 돌려본다. 아침을 차려준 마누라는 점심은 알아서 챙겨 드시라는 말을 남기고 어디론가 나가고 없다.
화면에는 도리구찌 모자를 눌러쓴 일본 형사가 독립군을 잡겠다고 그 가족을 협박하고 고문하고 있다.. 어릴 때 본 진짜 일본 형사를 훨씬 능가하는 악랄하고 비열한 모습이다.
채널을 돌리니 꽃다운 나이를 종군 위안부로 보내고 그 후유증으로 평생을 어둠 속에 살아온 여인에 관한 것이다.
또 다른 채널은 그 악명 높던 731부대 이야기다. 마루타를 1열로 세워놓고 총 한발을 쏘아 몇 명을 죽일 수 있는 지, 페스트균을 주입한 후 얼마나 생존할 수 있는지 실험을 한다. 전쟁이 인간의 이성을 마비시킨다고는 하지만 당시 궁지에 몰린 쥐새끼 신새가 된 일본군의 천인무도한 만행이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광복절이다.
운동장에 모인 아이들에게"우리 대 일본이 항복했다."고 말하며 눈물을 닦아내던 교장 선생.“우리 손자 이제 군대 안가도 되겠네.”라며 좋아하시던 할머니. 며칠 후 소리 없이 떠나버린 일본인 반 친구들의 기억이 스쳐 지나간다.
해방의 기쁨도 잠시, 얼마 후 발발한 6.25전쟁에 학도병으로 참전. 낙동강 야간 전투가 치열 했던 어느 날 100여명이 넘던 중대 병력이 아침 에 생존자가 18명밖에 남아 있지 않았을 때의 비통했던 심정도 새삼 머리에 떠오른다.
'아직도 손자의 손자도 입대하여야 하니 지하에 계신 할머니의 마음은 어떨까.'
'그 때 헤어진 아이들은 지금 어떻게 지낼까.'
'개인사에도 감추고 싶고 애써 지워 버리고 싶은 기억이 존재하거늘 일제 강점기의 암울했던 과거만 자꾸 파헤칠까.'
'이해는 안되도 용서는 해야지 이건 이승에 미련이 남아 구천만 계속 헤매는 귀신과 같은 행태나 다름 없어.'
'해방된 지 70년이 다 되어 가는데 이제는 미래 지향적인 모습을 보여줄 때가 되었는 데.'
방송 행태에 식상해진 ‘의한’은 혹시나 하는 기대로 채널을 돌렸다. 암울했던 과거에 스스로 갇혀버리는 것은 바보 짓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패널들이 나와 바람직한 한일관계에 관하여 토론을 한다. 한 사람이 독일의 예를 들며 일본이 진정으로 반성하고 사과한 후에 가능하다고 말한다. 패널 전부 일본의 사과가 인색하다는 데 의견 일치다. ‘의한’이 궁금해 하는 “왜 독일은 사과를 좋아하고 일본은 싫어할까.”에 관한 말은 아무도 하지 않는다. 의한‘은 패널이 되고 때로는 시청자가 되어 토론에 참여하여 혼자 결론을 도출한다. “항복자체가 인조의 삼전도 굴욕처럼 무조건 잘못했으니 선처해 주세요.” 라는 의미니 항복이란 단어 자체가 이미 진한 사과를 포함하고 있다.
독일과 일본의 상황은 어떤 점이 달랐을까.
독일의 경우는 연합군이 진주하여 분할 통치한 자체가 사과를 받아들였다는 것이 된다.
바꾸어 말하면 일본의 경우는 미국만이 사과를 받아들였다는 뜻이 된다.
만약 일본의 경우도 전후 가장 큰 이해 당사자인 미국. 소련 중국이 분할 통치하고 한국도 일정부분 지분을 가지고 참여하였다면 이미 사과를 받아들인 것이 된다.
그러나 연합국의 전승에 도움을 준 한국은 오히려 분할 통치 받았고 6.25 전쟁도 일어났다. 그 후유증으로 지금도 남과 북은 서로를 가장 신뢰 못하는 집단으로 인식하며 젊은 청춘과 귀중한 재정을 서로를 경계하는데 낭비하고 있지 않은가.
그럼 미국이 우리가 받을 사과를 대신 받은 셈이니 미국보고 사과를 받아달라고 하면 어떨까. “물에 빠진 놈 건져주니 봇짐 내노라고 하네.”귀찮게 왜 날 끌어들여! 니들끼리 알아서 해 .”화낼까. 아니면 “내 사과 받아 줄 테니 대신 무엇을 줄래.”라며 묘한 반응을 보일까.
“정작 사과하고 반성해야 되는 것은 우리 자신이야. 약육강식. 무전유죄의 냉엄한 국제 현실 속에서 임시정부파. 미국파. 공산당 등 수많은 파로 갈라져 서로 싸우기만 했으니...
그런데 저 가방끈 꽤나 있다는 인간들은 비싼 밥 먹고 아직도 남의 나라 탓만 하고 있군.“
생각할수록 마음이 답답해진다.
고요한 정적을 깨고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야! 정의한, 오랜만이네.” 우렁찬 목소리가 서울에 있는 최종구 임을 단번에 알아차리게 한다. 많던 친구들도 이런저런 이유로 세상을 떠났고, 남은 몇 안 되는 죽마고우다. “자네 나이가 팔순을 넘으니 더 팔팔해 지는 것 같아. 목소리 들어보니 아직 청춘이야.” 출가한 아들과 딸 그리고 딸린 손자 녀석들들 몇 명 있지만 전부 자기할 일 바쁘다는 핑계로 만나기 힘들었다. 오늘도 혼자서 그저 그렇게 보내고 있었는데 걸려온 전화에 그저 반가울 따름이다.
“내일 큰집 장손 결혼식이 있어서 지금 막 동해로 출발하려는 참이야. 약 3시간 후면 도착할 예정인대 우리만나서 한잔하는 것이 어때.” 술 한 잔 하자는 소리는 오던 졸음을 가시게 하고 얼굴에 생기를 돌게 만든다.
그런데 이 친구 다음 말이 더 마음을 설레게 만든다. 아니 가슴이 마구 뛴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 “어제 TV에 나오는 이산가족 찾는 프로그램을 보았는가.” 갑작스런 말에 잡시 머뭇거리자
“음 예상대로 모르고 있군. 어제 한 일본 여자가 초등학교 6학년 때 헤어진 친구를 만나고 싶다는 내용이 나오기에 관심 있게 보았지. 아버지가 북삼화학 공장의 부사장이었고 그 공장 관사에 살면서 송정초등학교에 다녔다는군, 패전 후 온 가족과 일본으로 돌아가는 바람에 헤어졌다는군. 모든 내용을 종합해 볼 때 놀랍게도 찾는 사람이 자네가 틀림없어. 나 운전해야하니 자세한 것은 만나서 하세.”
수화기를 놓기가 무섭게 인생 테이프는 저절로 초등 시절로 돌아간다. 파도소리 들리던 교정, 미군기 폭격 시 대피, 뛰놀던 친구들. 하지만 일본 여자아이의 기억은 너무 흐리다. “ 잠시 후 친구 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더 기억나는 것이 많겠지.”
날씨가 더우니 오늘은 그 친구 즐겨하는 도다리 회로 한잔 해야겠구나. 좀 과용이긴 하지만.“ 생각하며 집을 나섰다.
둘은 묵호 바닷가 ‘까막바위’ 앞에서 만났다. 바다냄새와 파도소리가 그리운 ‘종구’가 자주 선택하는 장소다. 도로 사정이 좋아서 일찍 도착하였다는 ‘종구’를 만난 ‘의한’은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운전했더니 목이 몹시 타는군. 오래 만에 고향에서 내 한잔 살 테니 어디 좋은데 있으면 안내하게.” 서두르는 모양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여긴 동해야. 자넨 어디까지나 내 손님이야.”
‘의한’은 ‘종구’의 손을 끌고 전망이 확 트인 횟집 한 구석에 자리 잡았다. 파도 부서지는 모습 사이로 막바지 피서를 즐기는 인파가 보인다.
몇 잔술이 오고가자 종구가 문득 “ 옛날 25도 소주에 비해 요즘 소주는 너무 달고 싱거워. 지금은 회 안주와 잘 어울리는 그 소주를 마실 권리가 사라져 버리고 없어. 우리의 주권을 소주 회사에 빼앗기고 말았단 말이야.”
주권을 회복한 광복절에 또 다른 주권은 빼앗겼다는 ‘종구’의 이야기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옛 소주에 대한 향수에 동감하는 ‘의한’은 “소주회사는 무슨 힘이 있겠어, 장사를 하려니 소비가 많은 젊은 계층의 주권을 존중하겠지. 그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의 주권은 젊은 사람들에게 빼앗긴 셈이지. 지금 돌려달라고 해 보았자 그저 노망 난 늙은이의 말로 무시당할게 뻔하고 적응해 나가는 수박에 없는 것 같아. 오늘 우리 국가와 국민이 처한 권리 행사처럼.” “알고 보니 이 한 잔술이 철학 덩어리군” ‘종구’는 잔을 쭉 비웠다.
“술 이야기 했으니 이제 여자 차래가 됐군. 일본에서 날 찾고 있다던 여자에 관하여 말해보게.” ‘의한’은 진작부터 궁금해 하던 말을 이제야 꺼냈다.
“참 그 얘기 아직 안 했군. 일본에서 ‘미카’란 여자가 송정초등학교 6학년 때 헤어진 ‘하시루’란 남자를 찾는다는 군. 그때 이름이 ‘하시루’인 것은 자네뿐이고 모든 정황으로 미루어 자네를 찾는 것이 틀림없어. 6학년 해방될 당시 일본 여자아이가 3명 있었는데 아버지들은 삼화제철소, 철도 그리고 북삼화학에 간부로 다녔고 각 회사 사택에서 살았지. 방송에서 아버지가 당시 북삼화학 부사장이었다고 하는데 우리가 ‘야마꼬’라고 놀리고 다니던 아이야.”
‘종구’의 이야기는 ‘의한’의 ‘미카’에 대한 기억을 좀 더 뚜렷이 만들어 주었다. 어린 나이에 입학한 일본 학생들은 본시 작은 대다가 두세 살 나이 더 들어 입학하는 한국 학생들에 비하여 더욱 작았다. 단발머리에 초롱초롱한 눈, 빨간 모직실로 짠 셔츠 차림의 귀여운 모습의 미카를 반 아이들은 이름 보다는 꼬마야 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그러다가 한국말로 급우를 놀린다는 것을 알아차린 담임선생은 아이들을 호되게 꾸짖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꼬마야를 야마꼬 라고 거꾸로 부르며 놀렸다.
“3학년 때인가 담임선생이 오늘까지 기한이라면서 창씨개명을 했나 고 묻더라고. 안 했다고 하니 한동안 답답해하던 담임은 무언가 생각하더니 갑자기 무엇을 잘 하나고 묻더라고. 달리기를 잘 한다고 했는데 그 순간부터 ‘하시루’로 개명되었고 학교에서만 그 이름을 사용했지.”
잠자코 듣고 있던 종구는 무릎을 탁치면서 “‘하시루’ 달린다. 그 좋은 이름이군. 그 아이가 나를 기억 못하고 자네를 찾는 이유가 바로 그 이름 때문이군.” 이제야 의문이 풀린다는 듯 껄껄 웃는다.
“일리 있는 말이긴 하네만 당시 나이 어린 급우들이 동생 같이 느껴지더라고. 그래서 한국 일본 아이들 모두 사이좋게 지내야한다고 주장했어. 한 번은 남자 아이들이 여자 아이들 고무 줄 놀이를 방해하는 것을 말리다가 ‘간나 반종’ 이라는 소리를 뒤에서 들었어. 해방 당시에는 풀이 죽어 있는 일본 아이들을 보고 ‘빨리 너희 나라로 꺼져 버려’ 라며 고함치고 발길질까지 하는 한국 아이들을 제지하다가 ‘쪽발이 새끼’라고 놀림 받은 적도 있었지. 그 외에 특별히 잘 대해준 기억은 없어.”
“자네는 복을 많이 타고난 사람이야. 물러 받은 재산이 많아 어려움 없이 살고. 말년에는 여복까지 터졌으니.” ‘종구’가 놀리는 듯 부러운 듯 말한다.
“난 자네가 부러웠네. 난 지금껏 논밭 몇 마지가와 8대째 내려오는 장손이라는 고리에 매어 이 답답한 곳을 떠나지 못하고 살았으니. 일가친척들이 예고 없이 찾아올 때면 저녁은 대접해 보내야하고 지어놓은 밥은 모자라니 마누라는 굶기가 다반사였네. 한 마디로 허울 좋은 종가집이지.”
“난 농사일이 싫어 도망치듯 서울로 올라와서 몇 년간 고생하면서 모은 돈으로 종로 버스 정류장 앞에서 토큰 장사를 했지. 새벽부터 저녁 늦게 까지 반 평 남짓한 부스에 쪼그리고 앉아 있어야 하고 집에 가서는 새벽2시까지 동전을 세는 것이 일과였어. 그 일을 한 7년 동안 반복 했지. 감옥이 따로 없다고 생각한 적도 몇 번 있지만 지나고 나서 보니 그래도 그 때가 가장 신나는 시절이었어.” 어려움 없이 살아온 사람이 어디 있으나마는 ‘의한’과 ‘종구’는 각자 살아오면서 힘들었던 이야기를 한바탕 주고받았다.
“그런데 그 일본 아이는 지금 어떻게 살까. 꼭 만나 봐야 하나……?” 넌지시 ‘종구’의 의향을 물어 봤다.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 있으면 만나주고 만나기 싫은 사람은 안 만나고 그렇게 살 수 있는 게 나이든 사람의 특권이지. 한번 만나 보게. 그동안 고생만 시킨 마누라와 함께 일본 한번 다녀오는 것도 괜찮지 않은가. 한국에서 만나게 되면 나도 끼워주고.”
다음 날 일찍 방송국에 전화를 걸어 ‘미카’의 연락처를 확보한 ‘의한’은 전화로 말할까 망설이다가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좀 더 세련된 표현을 하고자 하는 마음에 낡은 일본어 사전을 뒤적거리는 ‘의한’을 보고 무슨 영문인지 모르는 마누라는 “이 양반 무슨 일이야. 갑자기 안 하던 짓을 다하고.” 라며 의아한 눈초리를 보냈다.
며칠 후 답장을 받은 ‘의한’은 설레는 가슴으로 편지를 뜯어 읽어 내렸다. 정성들여 쓴 편지 에는 반갑다는 인사말과 함께 빠른 시일 내 만났으면 하는 바람이 적혀있었다.
‘기왕 만나보기로 작정한 것, 망설일게 뭐야.’ 하는 생각이 들어 “당신이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 언제라도 만날 수 있다.” 고 즉시 답장을 했다.
며칠 후 “하루라도 빨리 일본에서 만나자. 체류 경비는 본인이 부담하겠다.”는 메시지와 함께 일본행 왕복 비행기 티켓이 딱 한 장 동봉된 편지를 받았다. 비행기 티켓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의한’은 머릿속이 거미줄처럼 복잡해지는 것을 느끼며 한동안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 ‘이 한 장의 티켓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곰곰이 생각해 본 ‘의한’은 당초의 부부동반으로 가려던 계획을 접고 혼자 출발하기로 결심하였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의한’에 대한 소문은 어느새 주위에 널리 퍼졌다.
“돈 많은 일본 여자가 그 아저씨 좋다고 꼬리친다며?”
“그게 아니야. 다 늙어서 일본 꽃뱀한테 홀려서 재산 다 날려버리게 생겼대.”
뜬금없는 소문이라는 측면에서는 같지만 돈 문제에 관한한 그 내용은 극과극이다.
묻 사람들이야 그저 자기들이 믿고 싶은 대로 지껄이게 놔두면 그만이지만 문제는 마누라였다.
“당신 꼬마야 인지 야마꼬 인지하는 일본 여자 만나러 간다며? 가지마! 죽어도 가야겠다면 모든 재산 나한테 넘겨 놓고 가!” 예상은 안 했던 것은 아니지만 반발의 강도가 예상 보다 셌다.
“여보, 소문 같은 것 듣지 말고 그냥 일본에 동창회 때문에 간다고 생각 해.”
“둘이서 무슨 동창회야. 일본은 동창회를 둘씩 만나서 짝짓기 하듯 하나보지?”
“일본에 가면 그 아이뿐만 아니라 그 때 헤어진 다른 동창들과도 같이 모임을 갖게 되겠지 뭐.”적당히 얼버무려 보려고 하였으나 마누라는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백화점에 데려가 옷도 사 주고 친정조카에게 주라고 용돈도 쥐어주었지만 헛수고였다. 이러다가 일본행 티켓은 쓰레기통에서 생을 마감하려나 싶었지만 다행히도 며칠 뒤 서울에서 내려온 입담 좋은 ‘종구’의 설득 덕분에 사건은 마무리 되었다.
일본으로 출발하는 날이다. 마누라는 곱게 다리미질 한 와이셔츠와 넥타이를 챙겨 주고는 그 어떤 표정도, 잘 다녀오라는 말도, 배웅도 없이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에게 빈손으로 가긴 그렇고 해서 옛 추억을 떠올리며 준비한 잘 말린 오징어 한축과 재래식으로 건조한 돌김 몇 톳을 가방에 챙겨 넣었다. ‘처음 인사는 어떻게 할까? 그 다음은? 신주쿠 코리아타운 으로 가는 것이 여러모로 편리할 것 같은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맞선 보러가는 숫총각처럼 한껏 들뜬 마음으로 일본행 비행기에 올랐다.
하네따 공항에 내리자 말쑥한 차림의 젊은이가 ‘하시루’ 라는 이름이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마중 나와 안내를 했다. 번지르르 윤이 나게 닦아놓은 고급 리무진으로 안내되자 어지간한 ‘의한’도 조금 기가 죽는 느낌이 든다. 차는 도쿄 지유가오카의 고급 주택가에 들어서더니 담이 높아 안이 잘 보이지 않는 저택 앞에 멈췄다. 초인종을 누르자 잘 차려 입은 노년의 여자가 뛰어 나왔다 “하시루상 반가워요. 오시느라 고생 많았죠. 저 ‘미카’ 예요. 안으로 들어오세요.” 잡은 손을 끌다시피 하며 안으로 안내했다. 유럽풍의 넓은 창문에 규모나 전망으로 보아 고급 주택암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미카’상, 만나서 반가워요.” ‘의한’이 조금 어색해하며 말하자 눈치 빠른 ‘미카’ “그냥 ‘미카’라고 불러요. 우린 오랜 친구사이잖아요, 비록 자주 만나지는 못했지만......” 얼른 말을 하고는 깔깔 웃는다. 웃는 모습에서 비록 세월은 많이 지났지만 그 옛날 어리고 귀여웠던 ‘미카’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까 공항에 마중 가려고 했는데 갑자기 일이 생겨서 못 갔어요. 오늘 여기서 저녁 식사를 하고 주무시고 내일 나랑 같이 시내 구경 가요.”
‘미카’의 제안에 ‘의한이’ 다소 난처해하는 기색을 보이자 “이 큰 집에 나하고 운전기사, 가정부 이렇게 셋만 살아요. 가끔 아담한 집으로 이사 갈까 생각도 들었지만 선친이 물려준 집이고 부모님과의 추억이 깃든 집이라 그냥 살게 되었죠. 방 몇 개는 손님 전용으로 시설해 놓았어요. 그리고 집안 일 도와주는 사람에게도 일러두었으니 차량이나 음식 등 필요한 것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요. 모두 기꺼이 들어줄 거예요.”
‘우렁각시 한테 홀린 셈 치지며.’ 그렇게 생각이 든 ‘의한’은 말없이 고개를 끄떡였다. ‘미카’가 그의 결정을 좋아한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저녁을 마치고 둘은 소파에 마주앉았다.
“하루시상. 술 좋아하죠? 무슨 술 드릴까?” ‘의한’은 아직까지 가기지 않은 서먹서먹한 기분을 풀 좋은 기회다 싶어“아무 술이나 다 좋아. 차가운 사케 있으면 더 좋고.”
“어머나. 나도 사케 좋아하는데.”라고 말하며 ‘미카’는 직접 술상을 차렸다.
얼굴에 취기가 돌자 ‘의한’은 아까부터 매우 궁금했던 것을 물어보기 위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남편과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는데 혼자 살아?”
잠시 미소 짓던 ‘미카’는 “참 빨리도 물어 보시네. 하늘을 봐야 뽕도 따고 별도 따고 할 것 아니에요. 나 결혼 안 했어요.”그녀는 다음 얘기를 이어 나갔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패전되어 한국에서 쫓겨 오다시피 한 가족은 몇 년간 생활고에 시달렸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 돌아온 아버지는 “드디어 우리에게 다시 일어설 기회가 온 것 같아,” 상기되어 말했다. 한국 전쟁이 난 것이었다. 한국에 있을 때부터 쌓아 온 군수 산업의 노하우와 인맥을 동원한 아버지의 사업은 날로 번창 하였다. 외동딸이었던 ‘미카’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부친의 일을 도왔다.
그러나 부모님이 모두 일찍 사망하시는 바람에 ‘미카’는 회사를 홀로 맡아 오직 일에만 전념할 수밖에 없었다. 나이 40이 다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결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포용력 부족하고 나약한 일본 남성 특유의 심성과 대다수의 남자들이 본인의 재산에만 관심을 보이는 것 같아 몇 번의 청혼을 전부 거절했다는 것이다.
“어머 내가 말을 너무 많이 했네. 그런데 당신은요?” 한잔 한 술 탓인지 볼이 발그레해진 ‘미카’의 모습이 조금 전 보다 더 생기 있고 젊어 보였다.
“해방 얼마 후 사범학교에 다닐 때였는데 전쟁이 났어. 조금 전 당신이 말한 그 한국 전쟁. 곧 참전하여 수많은 전투에서 사선을 들락거렸지만 운 좋게 살아남았어. 휴전 후 결혼을 하고 두 자녀 모두 출가시키고 지금은 평생을 몸담았던 교단에서 물러나 뒷방 신세나 지고 있지.”
“그렇게 끔직한 전쟁을 경험했군요. 그때 우리는 그저 다시일어설 수 있는 기회라고만 생각하고 들떠 있었는데... 미안해요.” 표정에서 진정성이 느껴졌다.
“미안하게 생각할 필요까지는 없어요. 그 때는 각자 다르게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았다고 생각하면 되요.
그나저나 회사는 지금 잘 되요?”
“상장된 화학과 비철금속 부분의 주식이 시가 총액으로 2조 엔이 넘어요. 물론 그 주식 일부분만 나의 소유죠. 그 외의 회사들은 규모가 크지 않아요 ” 전혀 예상치 못한 말에 어지간한 ‘의한’도 입이 딱 벌어졌다. 그저 직원 몇 명 규모의 사업을 하고 있거니 생각했는데... 그 가냘픈 몸매에 그렇게 큰일을 해 내었다니...
“70년도 초 회사도 많이 성장하고 안정이 되고 나니 ‘하시루’상이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생각이 나더라고요. 당신의 활달하고 믿음직한 어릴 때의 모습을 생각하면서요. 그때 한국에다 광고를 내었는데 연락이 없어 포기하고 말았죠. 이번에도 혹시나 했는데 이렇게 만나게 되니 꿈만 같아요.” 듣고 난 ‘의한’은 왠지 기분이 좋아졌다.
“나이도 들어가고 이제는 모든 것을 마무리할 시점인데 앞으로의 계획은?”
잠시 생각하던 ‘미카’는 “요즈음 생각을 많이 해요. 은퇴하고 싶은데 마땅한 후계자는 없고... 기업이라는 것이 생물과 같아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해 나가야 하는 것이고. 현상유지는 곧 퇴보와 자멸을 의미하는 것이니까요. 만약 결혼해서 자녀가 있었으면 다를 텐데 라는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만약이라는 단어는 이미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는 뜻이잖아요. 앞으로 다른 좋은 방법이 있겠죠. 좋은 생각을 알려주시면 따를 테니 말해주세요. 이제 당신의 예기 해 봐요.”
“나도 만약이라는 생각을 가끔 해. 교편 잡고 있을 때 때려치우고 회사 같이 근무하자는 몇 번의 제의가 있었는데 전부 거절하였지. 그 때 진로를 바꾸었다면 한일 국교 정상화도 되고 경제도 급속도로 팽창하는 시기였으니 선산이나 지키는 꼬부라진 소나무 신세는 면하게 되지 않았을까. 교직에서 정년퇴직한 후 그저 등산과 독서를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지.”
“너무 겸손하시네. 훌륭한 삶을 사셨군요. 독서를 좋아하신다니 특별히 권장할만한 책 있으면 소개해 줘요.”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뭐 책이라는 것이 특별한 것이 있나. 다 그럴듯한 것들을 정리하여 종이에 인쇄해 놓은 것에 불과하지. 하지만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유물론과 자본론을 읽고 생각이 좀 바뀌었어. 물질의 변화가 정신의 변화를 선도한다는 등 기존의 책들과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세상을 보고 있는 점이 현 세대의 흐름에 딱 맞는 말인 것 같아. 틈나는 대로 읽기는 하지만 아직도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남아 있어.“
“그 책 지나치게 노동가치 측면을 강조한 것 같은데요.” ‘미카’도 읽어 본 모양이다.
“그런 측면이 있지. 특히 기업하는 측면에서 보면 더 그런 생각이 들게야. 하지만 세상에 완벽한 사상이라는 것은 존재 불가능하니 다른 각도에서 세상의 흐름을 보고 분석 했다는데 가치를 크게 평가하고 싶어.”
밤이 깊었는데 피곤한 기색 없이 둘은 이야기의 꽃을 피웠다. 근 70년의 세월은 아무리 압축한다 해도 그 양이 많았다.
잠자리에 든 ‘의한’은 오늘 나눈 대화들을 정리해 보았다. 그리 특별한 것은 없으나 어떤 대화는 한국 사람이 들었다면 친일이고 종북이니 하면서 트집 잡을 것이다. ‘일본여자와 친하게 지내는 것을 친일이라 한다면 감수하지 뭐. 그리고 국어사전에도 없는 종북 이라는 단어는 특히 선거철에 기승을 부리는 바이러스 같은 것이잖아.’ 그러는 사이 깊은 잠에 빠졌다.
다음 날 신주꾸 거리로 향했다. 살며시 팔 장을 끼고 있는 ‘미카’의 따뜻한 체온이 느껴진다. 한 프렌차이즈 매장 앞에서 미카의 손에 이끌려 안으로 들어갔다.
“이 양복 어때요.”진열된 양복을 이것저것 살피던 ‘미카’가 물었다. 애당초 옷에 관심이 없던 ‘의한’은 “괜찮은데.”하고 무심코 대답했다. 그러나 애당초 의도가 있던 ‘미카’는 자기가 사 주고 싶다면서 막무가내로 입어보기를 재촉했다.
마음의 부담은 되지만 마냥 기분 나쁘지만 않은 쇼핑은 넥타이 와이셔츠 구두까지 산후에야 끝났다.
일주간의 방문이 끝나고 돌아가는 날이다. 공항에 마중 나온 미카는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갔군요. 시간나면 언제든지 또 오세요. 우리 집 방 하나는 당신을 위하여 언제든지 비워져 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고요.”
아쉬워하는 작별 인사를 들으며“1주일이 정말 화살같이 빨리 지나가버렸구려. 그 동안 함께한 시간은 영원히 못 잊을 것 같아요. 각자 삶이 있고 사는 곳이 다르니 다음을 기약하고 그만 헤어져야 되겠군요.”말을 끝내고 탑승구를 향하는 ‘의한’ 마음은 시원섭섭했다. 하지만 섭섭한 마음 보다는 시원함이 대부분 가슴을 지배하고 있었다. 내 고향 내 집이 가장 편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비행기가 한국 상공에 들어섰을 때 ‘의한’은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관심 있는 많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충족시킬 답안을 머릿속에 거의 완성해 놓았기 때문이다. 사실그대로는 흥미가 좀 떨어지고, 그렇다고 너무 허황된 거짓말은 체면 없는 짓이니 사실에 입각하여 잘 정리해야 했다.
집에 도착하자 아들이 “아버지, 얼굴 좋아지신 것 보니 일본에서의 잘 지내신가 봐요. 그 여자는 어떻게 지내고 있어요?” 비행기 안에서 제일 먼저 풀어본 예상 문제다.
“결혼 안하고 자녀 없이 혼자 살고 있어. 상장회사를 몇 개 가지고 있고 모아 논 재산은 2조 엔이 넘는데 가치 있게 쓸 곳이 있으면 알려 달라고 하더군. 결혼 안한 이유는 나정도 되는 인물을 못 만났다는 것이야. 하도 애원해서 그 집에 머물렀는데 내 전용 방을 꾸며 놓고는 앞으로도 시간나면 언재든지 사용하래. 가정부든 운전기사든 필요한 것 다 시켜도 되고.”다 듣고 난 아들은 다 믿어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하는 것 같다.
“그럼 당신 그 꼬마야 하고 살지 뭘 하려고 다시 왔소. 내 짐 꾸려 줄 테니 내일이라도 당장 나가요.” 이 것도 이미 모범 답안을 작성한 것이다.
“물론 그러면 그 여자는 좋아하겠지. 지금도 필요한 것 말하면 다 들어준다고 말하니까. 그러나 사람 마음이 어디 그래. 그 여자가 사준 이 양복 일본에서 제일 비싼 거지만이 당신이 끊여주는 된장찌개 보다 귀하게 느껴지지 않아.” 그래도 마누라는 기어이 한마디 더 하고 물러
난다. “난 당신 같은 사람 아무 미련 없으니 언제든지 가버려요.”
“아빠! 그 여자랑 잘되면 재산을 오빠랑 똑 같이 나누어 줘야 해요.”이번에는 시집간 딸이 나섰다. “요즈음 딸 아들 차별이 어디 있어,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 더 달라면 모를까.” 상식 문제 푸는 기분으로 대답했다..
서예 모임에도‘의한’은 화제의 인물이 되었다. 젊은 여자 회원이 커피를 뽑아들고 와서는“선생님. 그때 그 여자를 좋아했어요.”
“어린 아이일 때인데 뭘. 그런 것을. 그저 그 여자의 일방적인 감정 표현이지.”
“그럼 그 후로도 그 여자를 그리워 해 본 적이 없겠네요.”
“당연하지. 눈앞에 보이는 여자도 다 감당을 못하는데 멀리 있는 여자를 생각할 여유가 어디 있어.”말을 마치고 커피를 마시려는 ‘의한’에게 “그 여자를 생각하지 않았다면 그 돈은 양심상 도의상으로 선생님 맘대로 쓸 권한이 없다고 생각되네요. 그러니 공공부분에 사용 되어야 해요. 난 개발 된 지역의 공장들을 매수하여 그 옛날의 정취가 살아 있는 도시로 바꾸면 그 여자도 옛 동해의 정취를 느끼고 좋아할 것 같아요.”
옆에서 듣고 있던 공군 장교출신의 회원은 “전투기 사면 일본은 물론 중국을 능가하는 제공권을 확보할 수 있을 텐데.”아쉬운 표정을 짓는다.
“20조원이면 먼지만 털어도 몇 백 몇 천억이 될 텐데 신경 많이 쓰세요.”액자의 먼지를 닦던 원장도 한마디 거든다.
‘의한’은 ‘미카’와의 만남의 기회가 다시 있다면 그 분위기는 이 번과 같을까. 아니면 더 좋을까 나쁠까. 다시 만나야하나 말아야하나 생각을 해본다. 어찌 되었던 일본에서의 만남 보다는 현제 일어나는 상황이 더 재미있게 돌아가고 있다.
첫댓글 올리신 글 재미있게 잘 읽었어요. 이지가지님 특유의 기치가 잘 드러나서 좋았고요. 특히,글의 앞부분에 역사적 인식과 통찰이 자연스럽게 베여있어 좋아요. 쉽게 소화될 수 없는 내용이 부드럽게 전달되면서 꼭 하고 싶은 내용이 제대로 어필되고 있거든요. 이 글 제목인 '한장의 초대장'을 건넨 야마꼬의 얘기가 약간이나마 초반부에 암시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긴 하지만... 제 2탄이 나오기를 기대하며...
이지가지 님, 이어질 이야기를 기다려도 됨니까?
일본과 독일, 아이구 골치아퍼라. 너무 오랫동안 비교하고 비교당했던 것이 입에서 신물이 나옵니다.
독일인이라고 무에 그리 다르겠습니까, 그저 유태인이 돈줄을 쥐고 있고 언론망이 촘촘해서 기냥 넘어가는 일이 없으니끼니 그런 게지요. 할리우드를 지배하는 큰손들 즉 유태인들이 쉬지않고 토해내는 얘기들이 2차대전 아닙니까.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니 이 시대의 승자들인 유태인과 일본인들의 논리가 먹이는 것이 현실입니다.
기억조차 아리까리한 동창생의 초청이 일으킨 갖가지 후일담 속에서 의도했든 아니든 일본과 일본인을 향한 우리네 정서의 단면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