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예일대학을 졸업하고 숭산스님을 은사로 출가, 로스엔젤레스에서 태고사를 건립하며 8년째 불사를 벌이고 있는 무량스님이 은사인 화계사 조실 숭산스님의 병문안차 지난 11월27일부터 12월6일까지 8박9일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무량스님은 방한 기간동안 대구 석림사 등 사찰들을 두루 방문하고 전통사찰양식을 답사했다. 지난 6일 출국 전 만나 현재 국민적 이슈가 되고 있는 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사망사건에 대해 미국인이자 수행자인 무량스님의 솔직담백한 얘기를 들었다.
-현재 한국사회는 여중생 사망사건으로 반미감정이 들끓고 있습니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지.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이 소식을 접하고 나니 효순이와 미선이 두 여중생의 죽음에 대해 정말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이 앞섭니다.
-이 사건에 대한 스님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미국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문제의 시작을 보면 한국전쟁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습니다. 특히 내 아버지가 한국전쟁에 참전했기 때문에 평소에도 관심이 많았습니다. 한국전쟁은 미국과 소련의 책임이 큽니다. 한국 속담에 ‘병주고 약주고’라는 말이 있듯이 전쟁 후 미국은 이 땅에 전쟁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군인들을 두고 떠났습니다.
이같은 행동은 전쟁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는 의지였기 때문에 당연한 처사였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10년 전인 1991년 소련이 붕괴한 후 ‘초강대국’으로 자리매김한 미국은 점차 제국으로 변모해 갔습니다. 한국전쟁 후 한국에 남은 미군의 존재는 인정할 수 있지만 이제는 세월이 지나고 시대가 변했습니다. 미국은 그에 걸맞은 모습으로 변화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미국은 한국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미국은 한국을 떠나야 합니다. 만약 북한의 위협이 계속 존재한다면 UN에 소속된 다른 국가들, 예를 들면 스웨덴, 덴마크 등에서 사람을 파견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한국민들이 원한다는 조건이 반드시 전제돼야 하겠지요. 이들 국가는 한국에서 긴장조성이 아닌 남북의 화해를 위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스님의 말씀은 한국내 일부세력이 주장하고 있는 미군철수와 일맥상통하는 것 같은데요.
“미군이 있으면 남북통일은 이뤄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미국이 제국으로 변모한 후 온 세계가 시끄럽습니다. 석유문제로 미국이 중동지역을 장악하려 했기 때문에 9·11사태가 일어난 것입니다. 실례로 미군이 사우디아라비아에 주둔하면서 그 나라 국민들에게 인심을 잃었습니다. 미국의 힘이 월등히 우세한 상황에서 다른 약소국가들은 미국과 싸울 수 없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유일하게 미국에 항의할 수 있는 수단이 테러밖에 없게 된거죠. 미국이 각성해야 세계평화가 이뤄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미국정치 상황을 보면 해결하기는 힘들어 보입니다.”
-한국 국민들은 여중생 사망사건의 해결책으로 부시 대통령의 공개 사과와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의 개정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스님이 생각하는 해결책은 무엇입니까.
“사건이 일어나면 가해자는 분명히 하심(下心)하고 사과하는 것이 인간다운 행동입니다. 목숨을 잃은 사람에게는 큰 도움이 되지 않겠지만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리고 당연히 SOFA는 개정돼야 하겠죠.”
-지금까지 미국인의 입장에서 여중생 사망사건에 대한 입장을 밝혔는데, 불자로서 수행자로서 생각하는 해결방법은 무엇입니까.
“불교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면 반드시 결과를 부른 원인이 있다고 했습니다. 원인없는 결과는 없다는 말씀입니다. 이 사건도 어떤 원인인지는 알 수 없지만 반드시 원인이 있을 것입니다. 스님으로서 수행자로서 본분은 원인을 없애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원인들을 없애기 위해, 재발하지 않게 하기 위해 열심히 수행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나 하나만의 일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원인을 없애고 서로 화합하도록 노력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또 온 세상이 시끄러워지는 것은 자기 주장만이 난무하기 때문입니다. 미국 사람은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고, 한국 사람도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고, 북한 사람도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니 시끄러워지고 전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각을 없애면 세상의 평화는 다가온다고 생각합니다.”
무량스님은 LA에 태고사 창립불사를 하고 있다. ‘태고사 불사’를 진행하며 여러 난관에 부닥치고 있지만, 수행자의모습을 흐트리지 않고 극복하고 있다. 태고사 불사가 늦어진 이유에 대해 스님은 “한국인 목수가 미국 비자를 발급 받는 과정에서 시일이 많이 소요됐고 미국내 자재 수급의 어려움이나 건축제약이 많았다”면서 “게다가 목수와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해 전통사찰양식인 다포식이 아닌 익공식으로 되었던 것도 늦어진 이유”라고 말했다.
불사에 매달리다보니 수행을 게을리 할 법 하지만 한달에 한번 10시간 참선하는 시간을 가졌고 매주 일요일에는 법회를 열어 왔다. 스님은 포교를 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다. “태고사에는 신도가 없습니다. 신도는 믿고 따르는 무리라는 뜻인데 태고사에는 신도가 있을 수 없지요. 왜냐하면 불교는 믿고 따르는 것이 아니라 같이 실천하는 것이기에 신도라는 말보다는 수행자, 같이 공부하는 사람이란 말이 더 어울립니다.”
한국전통사찰 양식에 따라 1994년부터 불사를 추진중인 태고사는 멀리 이국 땅에 한국사찰을 복원해야 한다는 어려움과 공사업체와의 마찰로 더딘 진행을 보였지만 현재는 기와공사와 벽채가 마무리되고 마루를 단장 중에 있다. 곧 닫집과 불단 조성을 위해 한국의 공예 전문가들이 파견될 예정이다.
요사채 공사부터 대웅전 공사기간 내내 작업복을 입고 포크레인을 직접 운전하며 불사를 진행했던 스님은 내년 3월을 낙성일로 잡고 있다.
스님의 손은 매우 거칠었다. 곳곳에 생채기들과 피멍이 들어 있었지만 곧 만들어지는 태고사가 스님에게 더 없는 희망이 되어줄 것이라며 밝게 웃는다.
“태고사를 수행도량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하지만 절을 찾는 사람들은 모두 각자가 원하는 것이 다르지요. 복을 짓기 위해 찾는 사람, 괴로움을 해소해 마음의 평안을 찾기 위해 찾는 사람, 본성을 찾기 위해 오는 사람 등 생각들이 천차만별입니다. 나 한사람의 생각만을 충족시킬 수 있는 도량이 아닌 모든 사람을 포용할 수 있고 다용도로 쓸 수 있는 도량으로 만들어 나갈 생각입니다.”
무량스님은...
숭산스님 제자
미 예일대 졸업
1959년 미국에서 출생해 예일대학을 졸업하고 숭산스님을 은사로 1983년 출가했다. 대학재학시절 “내가 무엇을 위해 이 세상에 왔고 왜 사는지”를 의심하게 되면서 친구를 따라 요가 명상을 했지만 인생의 목적과 진리에 대해서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단다. 그런 차에 숭산스님 법회에 참여하게 되었고 그 당시 숭산스님의 법문 중 “인간이란 의미 없고 이유나 선택이 없다. 나를 보려는 노력을 통해 참으로 된 의미·이유·선택이 생긴다”는 내용을 듣고 그 날로 선방에 들어가게 됐다. 스님은 평소 참선을 통해 부처님 말씀을 실천하겠다는 생각을 피력하고 있다.
첫댓글 오랫만에 미국인의 입장에서 시원한 소리 한번 들어보는군요. 스님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