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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도총담-7호>
공세(攻勢)를 연마하라 -上-
* 공세(攻勢=세메)
세메는 일본말로서, ‘공격하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검도에서의 뜻은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즉, ‘나의 공격하고자 하는 기세를 상대방에게 감지시키는 것’을 말하며, ‘상대의 자세를 무너뜨려 틈을 만들어 내는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위한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1. 기력으로 제압
2. 상대의 죽도를 누르거나 감거나 치는 등의 방법
3. 상대와의 거리를 여러 가지로 변화시킴
4. 삼살법(三殺法)
5. 상대를 사계(四戒)에 몰아넣음
6. 호흡을 이용함
7. 리듬을 바꾸어 공격
8. 칼끝을 살려 자세를 무너뜨림 등.
이 세메를 우리말로 바꾸기 어려워 편의상 ‘공세(攻勢)’로 번역하며, 앞으로도 ‘공세’란 용어는 이 세메를 뜻합니다)>―검도일본 1998년 8-9월호 특집
두 사람이 마주서서 중단으로 겨눈다. 이윽고 선혁이 서로 닿으며 그곳에서부터 자신이 칠 수 있는 거리까지 어떻게 들어갈까. 상대에게 맞지 않고.
상대의 겨눔세를 어떻게 무너뜨리고 기술을 결정지을 것인가.
지금까지 검도교본 가운데는 ‘시카케’ 기술이나 대응하는 기술과 같은 해설은 있어도 공세 방법이나 겨눔세에서 어떤 과정으로 치고 나갈 것인가 하는 설명은 거의 없었다. 그것은 공세 행위가 워낙 미묘하고 임기응변적인 기술이며, 또한 정신적인 요소로도 얽혀 있어 ‘매뉴얼’로 만들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공세는 검도 공방(攻防)의 기본이기도 하며, 아무리 숙달된다 하더라도 상대에 따라서 장소에 따라 연구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가장 어려운 테마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번 호와 다음 호, 2회에 걸쳐 높은 기술을 가진 검사(劍士)들에게 경험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공세’에 대한 설명을 요청하여 모든 방향으로부터의 연구와 정리를 시도해 보았다. ―<편집자 주>
*주 : 시카케
시카케라는 말에는 ‘일을 꾸며 상대가 걸려들게 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즉, ‘시카케 기술’이란 상대가 기술을 일으키기 전에 나부터 먼저 일을 시작해, 즉 상대의 죽도를 치거나 누르거나 하여 적극적으로 상대의 자세를 무너뜨리고 틈을 만들어 즉각 타격하는 기술을 말합니다. 예부터 ‘先先의 先’이라고 하여 매우 존중받는 기술입니다. 즉 이쪽의 공세에 대하여 상대가 더 견디지 못하고 무작정 나오는 것을 노려 내가 먼저 치는 것을 ‘시카케’ 기술이라고 합니다. 여기에는,
1. 나오는 기술
2. (칼을)치는 기술
3. 연속기술
4. 퇴격기술 등이 있습니다.
마땅한 말이 없으므로 편의상 일본용어 그대로 ‘시카케 기술’로 번역했으며 이하 그 뜻은 같습니다. ‘나오는 기술’은 상대가 공격하기 위해 검선(劍先=칼끝)을 낮추면 머리, 머리를 치기 위해 검선을 올리면 손목, 하는 식으로 상대의 공격 동작이 일어나는 그 찰나를 포착하여 먼저 치는 기술입니다.
(1) 검선의 공세
1. 검선으로 ‘공세’하기 위한 체크 포인트
검도에서 상대를 치기 위해, 또한 한판을 얻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공세’ 행위가 필요하다. 서로 죽도를 중단으로 겨눈 상태에서 갑자기 뛰어들어간다 하더라도 쉽게 상대를 칠 수가 없다. 어떻게 해서든 상대가 겨눈 죽도나 손목 부위를 상하좌우로 움직여 머리나 손목이나 허리 또는 찌름 부위를 열리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 ‘공세’이다.
검도의 실력에는 치는 동작이 빠르다든가, 힘이 있다든가 하는 것도 포함되지만 대부분은 이 공세의 능력을 가리킨다고 말할 수 있다.
죽도 선혁끼리 서로 닿는 정도의 거리에서 단순히 거리를 좁혀 공격하더라도 미숙한 상대이거나 상대가 무언가의 이유로 물러나거나 가만히 있거나 하면 칠 수 있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는 단지 거리를 좁힌다는 것 자체가 ‘공세’가 된다. 연속 기술로 손목―머리를 칠 경우 손목 공격에 의해 상대의 머리가 무방비 상태가 되면 이 또한 손목 기술 자체가 ‘공세’다. 또 상대가 나를 겁내고 있는 경우에는 겨누는 것만으로도 이미 ‘공세’가 된다.
이와 같이 모든 요소가 ‘공세’가 되는 것이지만, 실력이 어느 정도 비슷한 상대라면 우선은 죽도의 선혁끼리 맞부딪치는 정도의 거리에서 이쪽의 선혁과 상대의 중혁이 스칠 정도의, 소위 일족일도의 거리(거기서 뛰어들어 칠 수 있는 거리라는 의미이므로, 사람에 따라 다르고 좀 더 가까운 경우가 많을 것이다)까지 어떻게든 들어가 칼끝을 상하좌우로 탐색하거나 누르거나 두드리거나 쳐보거나 하여 틈을 만들어 타격으로 연결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바로 검선에 의한 ‘공세’이다.
2. ‘공세’로 연결되는 효과적인 겨눔세
상대에게 칼을 겨눈 상태가 이미 ‘공세’가 될 수 있도록 우선 '겨눔세'를 점검하여 보자.
겨눔세는 사람마다 다르며 여러 가지 특징이 있다. 그러나 ‘공세’를 이해한 후에 만들어지는 겨눔세는 상대에게 있어 무서운 것이며, ‘공세’로 연결되는 겨눔세에도 원칙은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중단 자세에서는 검선을 상대의 목 부위로 겨누고 그 연장선을 상대방의 눈으로 향하게 하는 것이 기본이다. 죽도는 한 개의 봉(棒) 형태지만, 그 끝이 중심을 겨누게 되면 상대에게 있어서는 봉이 점으로 보여 죽도의 길이를 알 수 없어 공포감을 준다.
나의 검선이 낮으면 상대방에게 죽도가 장애물이 되지 않고 위로부터 ‘타고 넘어와’ 맞을 우려가 있다. 또 타격하러 나갈 때는 휘둘러 올리는 거리가 길어지므로 동작이 쉽게 눈에 뜨이게 된다. 겨누었을 때 타격 부위(목표)에 검선이 가까우면 상대도 공격하기 어렵지만, 나 또한 공격하기 어렵다.
공세 중인 검선은 가능한 한 뒤로 돌아오지 않고 바로 칠 수 있는 것이 좋지만, 거꾸로 검선이 너무 높으면 죽도의 밑(칼날 쪽)이 상대방에게 보이게 된다. 따라서 검선이 높은, 즉 검선의 연장선이 미간보다 위를 겨누는 겨눔세는 상대방에게 위압적이 되질 못한다. 아울러 자신의 손목 부위는 비게 되고, 자신의 검선과 손목부위와의 (수평 방향의)거리가 짧고 거리가 가깝게 되므로 공격받는 쪽으로 몰리게 된다. 요컨대 상대방이 중심, 즉 명치를 공격당하고 있는 듯한 심리상태에 빠지고 공포를 느낄 만한 자세가 되고 마는 것이다.
3. 검선으로써의 공세 방법
효과적인 겨눔세를 취한 후에는 칼끝으로 상대에 대해 공세를 취하기 시작한다. 상하, 좌우, 전후(거리의 가깝고 멈)로부터 타격의 기회를 엿보는 셈이다.
교토대회 등에서 8단 정도의 시합을 보면 그 방법은 다양하다. 검선을 겉(表)에서 안(裏), 안에서 겉으로 돌려 눈이 부실 정도로 중심을 취하려고 하는 사람, 겉으로 돌린 채 달칵 달칵하고 일정한 리듬으로 죽도를 접촉시키는 사람, 겉ㆍ안으로부터 치거나 때로는 강하게 위로부터 치기도 하는 사람……. 어떤 움직임이 유효하며, 어떤 움직임이 실제로 공세의 행위가 되고 있는지는 지켜보는 사람들도 알기 힘들다. 공세란 그것에 의해 상대의 자세를 무너뜨리기도 하고 상대를 끌어내기도 하고 물러가게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상대의 타격 부위 중 어디에든 틈이 생기면 되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 먼저 칼끝 싸움을 통해 상대의 중심을 빼앗는 것이다.
네 군데 격자 부위 중 머리와 찌름 두 곳은 몸의 좌우 중심선상에 있고 급소도 그 선상에 많이 있다. 중심을 뺏는 것이 상대에게 공포감을 주고 자세의 붕괴나 틈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선혁이 상대의 중혁에 닿을 때까지 중심선을 빼앗으면서 내 죽도를 상대의 죽도에 붙여 칼끝으로 공세를 취해나간다. 중심을 빼앗는 공세, 상대의 중심에서 벗어나는 공세, 위에서부터 올라타는 듯이 누르는 공세, 어느 것이든 공세해 들어가는 움직임의 크기는 ‘죽도의 폭’으로 행한다. 상대가 있기 때문에 상대의 반응에 따라 공세 방법은 달라질 수 있다. 어떤 경우에는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정석대로 움직여 보기 좋게 들어간다 해도 효과적이지 못할 때가 있다. 이것이 공세의 어려운 점이며, 재미있는 점이기도 하다.
가령 쉽게 손목(타격 부위의 손목이 아닌 손목을 둘러싼 전체부분)을 올리는 상대에게는 목 부위를 찌를 듯이 공세하고, 누르려고 하는 상대에게는 반대로 밑으로부터 상대의 오른 주먹을 노리고 공세해 나간다. 손목 부위가 딱딱하여 중심을 벗어나지 않는 상대에게는 겉에서부터 눌러 되돌아오는 힘을 이용한다. 이와 같이 상대의 검풍(劍風), 기술, 버릇 등을 꿰뚫어보고 공격해 들어가 붕괴시키는 것이다.
죽도를 겉에서 안으로, 안에서 겉으로 사용하여 공세할 때 상대의 오른 주먹 밑에 붙이는 기분으로 죽도를 움직이면 최소한의 움직임이 된다. 돌리는 것이 아니라 밑으로 약간 떨어뜨리고 올려 공격하는 기분으로 행한다. 또 검선으로써의 공세는 단지 검선을 움직이는 것만으로 행하는 것은 아니다. 즉, 죽도만이 아니라 몸으로써 ‘나에게 치고 오는 것은 아닐까’하고 생각하게 하는 상태를 만드는 것이다.
몸으로써의 공세는 오른발을 앞으로 내미는 것만으로가 아니다. 오른발은 어디까지나 거리를 좁히는 것이며, 왼발을 내미는 것이 공세인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기(氣)로써의 공세라는 것도 필요하다. 기로 공세하고, 칼로써 공세하고, 몸으로써 공세한다. 이 세 가지가 갖추어졌을 때 비로소 유효한 공세가 되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상대를 친다. 중혁까지 검선으로 공세를 행함에 의해 상대의 변화, 자세 붕괴를 만들고, 거기서 머리, 손목 등 다음의 기술이 결정되는 것이다. 중혁까지 공세하여 상대에게 죽도가 닿을 때까지 공세는 계속되지 않으면 안 된다. 겨눔세는 좋다, 공세도 좋다. 그러나 타격을 함에 있어 손부터 행하면 죽도가 너무 올라가 검선이 살아있지 않고 상대에게는 압박감을 주지 못하고 최종적으로는 상대를 잡을 수 없다.
따라서 상대의 코등이 부위로부터 찌름으로 나가는 듯한 공세를 그대로 살려 치고 간다. 실제로는 다소나마 죽도를 휘둘러 올리는 것이기는 하지만, 기분 상으로는 검선으로 중혁을 찌를 듯이 하여 코등이 부위를 공격하면서, 또는 똑바로 상대의 목 부위를 찌를 듯이 하여 나가는 것이다. 이때의 공세는 기(氣)로써의 공세가 주(主)가 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몸으로써의 공세, 즉 왼발도 중요하다. 즉 검선이 상대의 중심으로부터 벗어나지 않는 상태에서 허리힘으로 치는 것이다. 조용히 공세하고, 예리하게 친다. 스피드에만 의존하여 어디서부터든 뛰어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검선을 단단히 겨누고 한 걸음 상대의 품안으로 들어가 치는 것이다.
4. 역공세(상대의 공세를 받았을 때 즉시 받기 전의 상태로 되돌아가 다시 중심을 뺏는 것을 의미함)의 방법
다음으로 상대가 검선으로써 공세를 취했을 때에 대한 대처 방법을 생각해보자.
우선 안이하게 중심을 허락해서는 안 될 일이다. 상대가 내 칼을 쳤을 때, 위로부터 눌렀을 때, 밑에서부터 공세 당했을 때 등등 어떠한 공세에 대해서도 항상 중심을 되공격 한다는 기분을 잊지 말고 되받아 올라타듯이 한다. 공세 당해 한 걸음 좁혀졌을 때 즉각 되받아 공세를 취하기 위해서는 좌우로 몸을 움직여 겉으로부터 또는 안으로부터 상대의 죽도 위에 올라타면서 자신의 검선은 상대의 중심으로 하되, 상대의 검선은 자신의 몸으로부터 벗어나게 몸을 움직인다.
상대가 좌우로 공세를 취해 올 때 필요 이상으로 겁내어 손쉽게 응하는 것은 피하되, 항상 왼주먹을 상대의 코등이 부위 높이로 가져가도록 하여 중심을 되찾는다. 상대의 공세를 헤치고 나면 즉각 역공세로 나선다. 그렇지 않으면 다음의 공세를 허용하게 되어 상대의 페이스에 말려들게 된다. 거리를 놓치지 않고 상대의 죽도에 성가시게 달라붙듯이 하여 되받아 공세를 행한다. ‘올 테면 오라, 오지 않으면 간다!’ 라는 기분을 유지하여 ‘역공세를 취할 때는 상대에게서 멀게, 먼저 공세를 걸 때는 상대에 가깝게’가 철칙이다.
역공세를 취할 때는 즉시 타격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순간의 틈을 노리는 것이 좋다. 역공세하여 즉시 타격으로 들어가면 대개의 경우 상대는 그것을 노리고 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상대방의 기술에 걸려들고 마는 것이다. 반대로 엇비슷한 실력의 경우 상대의 죽도에 올라타면 반드시 역공세를 취해오기 때문에 그때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 공세를 취하여 상대가 되받아 역공세를 취할 때가 절호의 타격 기회인 것이다.
상대가 칼을 감으며 공세를 취할 경우 검선을 상대의 왼주먹 밑으로 약간 숙이면 감기 힘들어진다. 다시 감겼다고 생각했다면 상대 배꼽에 대듯이 검선을 가져가면 감은 쪽도 치고 들어올 수 없다.
5. ‘검선(劍先)이 강하다’란 어떠한 것인가?
‘검선이 강하다’란 표현이 있다. 이것은 기술이 높다는 것을 나타내는 평가인 듯하나 구체적으로는 어떠한 것인가?
한마디로 말하면 상대가 파고 들어올 수 없는 검선의 위치를 유지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기본적인 것으로는 검선을 똑바로 하여 좌우로 흔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움직이지 않는 것만이 강하다는 뜻은 아니다. 눌러 중심을 빼앗자, 쳐보자, 고 생각하면 아무래도 눌러버린다든지, 힘이 들어가 강한 동작이 되고 만다. 이래서는 검선이 강하다고는 할 수 없다. 오히려 나의 자세가 무너져 상대에게 칠 기회를 허용할 수도 있다.
검선(劍先)은 ‘손매무세(=데노우치)’를 부드럽게 하되, 아랫배에 기운을 충일하게 하며, 상반신의 힘이 빠져 있으면 죽도는 자연히 적절한 위치에 오게 된다. 자신이 앞으로 나갈 힘만이 아니라 상대의 변화에 응할 유연성을 겸비하여 균형이 잡힌, 왼주먹을 중심으로 하는 ‘왼쪽의 연결’을 확실히 취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2) 상대의 중심 빼앗기
―야노 히로시(矢野博志) 범사 8단(국사관대학교 교수) 지도
* 약력
1941년 시즈오카현 출생.
국사관대학 졸업 후 조교를 거쳐 감독에 취임.
현재는 고(故) 오노(大野操一郞) 범사 9단의 뒤를 이어 국사관대학 검도부 부장을 역임 중.
1997년 메이지무라(明治村) 검도대회에서 3위.
“검선을 살리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중심을 벗어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라고 야노씨는 말한다.
중심이란 상대의 목이라고도 말할 수 있으나, 크게 말하면 ‘사람의 중심선(人中線)’. 검선을 상대의 중심선에서 벗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 검선을 살리기 위한 초보 단계라고 할 수 있겠다.
중심을 공세하면 상대도 겁을 낸다. 겁을 내므로 자세가 무너진다. 그때가 공격의 호기(好機)인 것이다. 이는 어린이로부터 어른까지 일관된 검도 공방의 기본이다. 여기에 덧붙여 야노씨는 “검선의 공세란 검도의 최종 목적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라고 말하고 있다.
검선으로의 공세의 중요성―어떻게 하면 그것을 강화할 수 있느냐를 국사관대학교에서 ‘정검(正劍)’을 가르치는 야노 범사에게 물었다.(이하 야노 범사의 이야기)―<편집부>
1. 검선의 맹렬함과 강함을 전해주는 은사들의 에피소드
◆ 나이든 선생님들이 스피드와 체력이 있는 젊은이에게 지지 않는 것이 검도의 좋은 점입니다. 스피드에 의하지 않고 단계를 밟아 다른 요소를 가미해 그것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여기서 다른 요소란 바로 ‘경험’과 ‘기력(氣力)’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체력은 나이와 함께 저하되지만 기력은 오랜 수련에 의해 반비례로 올라갑니다. 최종적으로는 그 기력이 죽도의 끝에 나타나는, 그런 공격 기세가 스피드의 쇠퇴를 보완해 주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이런 이야기를 하면 어렵게 들리겠지만 평생검도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으며, 오랫동안 검도를 계속하는 사람은 언젠가는 스피드에서 기력으로의 전환기를 맞게 됩니다.
국사관대학의 전임부장이었던 오노(大野操一郞) 선생은 곧잘 학생들에게,
“검선에서 불이 나올 듯한 공세를 취하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네들의 검도에서는 검선에서 불이 나오고 있지 않아!”
라고 화를 내는 것이었습니다. 학생들은 놀라 멍청히 서 있곤 했습니다. 당시 감독이었던 나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학생들은 당시,
‘죽도에서 불이 나올 턱이 없다. 오노 선생님이 농담하고 있는 것일 거야.’
라는 정도밖엔 생각하지 않았겠지요.
그러나 나는 수련을 거듭해 가는 동안에 점차 그것이 이해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오히려 ‘무서운 가르침이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요컨대, 중심을 빼앗기 위한 검선의 맹렬함을 비유적으로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뒷날 “두 사람이 검선에서 불을 토하며 겨누고 그것이 두 사람 각각 50%의 기세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고 오노 선생님께 질문을 하였더니,
“먼저 손을 내는 쪽이 진다.”
라고 대답하셨습니다. 과연……, 하고 생각했습니다.
거기까지 가기에는 나 자신도 아직 부족합니다만, 보고 있는 사람을 조마조마하게 하는 시합은 최종적으로 그러한 공세를 서로 동시에 행하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겠지요. 더 이야기하면 격렬한 중심 뺏기로부터 비로소 생기는 것이 아닐까, 하고 지금은 그런 것이 통절하게 느껴집니다.
오노 선생님의 검도는 어느 쪽인가 하면 기술을 내는 편(먼저 손을 내는 편)입니다만, 모두 중심으로부터 내었습니다. 쓰―윽 하고 (유효타격) 거리까지 들어가 상대가 움직이면 그에 맞추어 치고 들어갑니다. 상대의 기술에 대해서는 그것이 무리한 형태로 나오는 것이라면 ‘아직 안돼요.’ 하는 기분으로 목에다 검선을 맞추었습니다. 그 경우에 강하게 맞아찌르는(=대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오히려 맞아찌르는 것은 할 짓이 아니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검선의 강함에 있어서는 호리구치(堀口淸) 선생님의 이름을 뺄 수 없습니다.
그 강함은 대단한 것이어서 나 자신 훈련을 받고 있을 때는 검선에 눈이 붙어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놀랐습니다. 내가 치고 들어가도 호리구찌 선생의 검선은 항상 나의 목을 제어하였지만 역시 강한 맞아찌르기는 아니었지요. 떡, 하고 검선이 목에 닿을 뿐입니다. 내가 ‘중심을 뺏었다’라고 생각해 머리로 들어가도 반드시 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호리구찌 선생님의 검선은 나의 목에 닿아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불가사의할 정도여서 검선에 눈이 있는가 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바깥(表)에서부터 강하게 뻗어도, 안에서부터 감아치고 나가도, 무엇을 하든 통하지 않았습니다. 가령 나의 죽도가 선생님의 머리에 닿았다 해도 목을 제어 당하면 말없는 가운데 ‘아직, 아직은 칠 기회가 아니에요.’ 하고 가르치고 있는 듯하므로 도저히 쳤다는 기분이 들지 않는 것입니다.
몸놀림이 뛰어나기 때문에 처음부터 맞춰주지도 않고, 가령 맞았다고 해도 “쳤다”라는 기분을 주지 않습니다. 나아가 선생님으로부터 공세를 당하고 또 공세 당하여 내가 도저히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된 것을 알기나 한 듯이 그때 탕 하고 치고 들어오십니다.
선생님의 공세는 중심으로부터 압박해 오는 것이므로 위압감이 무시무시했습니다. 그러므로 물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물러나지 않으려면 선생님의 검선을 치기도 하고 감기도 하나, 물위에 뜬 통나무같이 쓱, 쓱 하고 검선을 중심으로 되돌리십니다. 그리고 중심을 빼앗으면서 거리를 좁혀 오십니다. 거리가 좁아지면 나는 자신의 거리로 돌아가려고 물러납니다.
뒤에 생각해보면 거리를 취하려고 하는 것은 결국 “기술로써 나아가자”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겠지요. 즉, “역공세를 취하자”라기보다는 치고 말겠다는 생각이 앞서 자신의 거리를 취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벽까지 물러나 팍 하고 정신이 들었을 때는 선생님의 타격이 어느새 이루어져 있기도 했습니다. 선생님에게 들어가서 하는 훈련은 2, 3분만 해도 숨이 차오르곤 했습니다.
후쿠오카의 다니구치(谷口安則. 범사 9단) 선생님조차 호리구치 선생님께 압도된 일이 있습니다. 그런 시합을 한 번 본 적이 있습니다. 그 공세의 강함에 눌려 정평(定評) 있는 다니구치 선생님이 물러났을 정도이니, 강한 인상이 남게 되었습니다.
◆ 그리고 오가와(小川忠太郞) 선생님. 오가와 선생님도 중심의 위압감이 대단한 분이었습니다. 한번은 어느 도장에서 훈련을 부탁드렸던 때의 일입니다. 젊은 때였지만 “좋다”라고 다짐하고 천천히 크게 휘둘러 올리면서 기합을 내고 뛰어들려고 한 일이 있었습니다. 의표(意表)를 찌른 커다란 동작이었으므로 대부분의 사람은 거의 반응하여 검선을 움직이곤 합니다.
그러나 오가와 선생님의 검선은 전혀 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중심을 전혀 흐트러뜨리지 않고 호면 속에서 웃으시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문일까요? 휘둘러 올린 칼을 내려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웃음)
뒤에 목욕탕에서 함께 있을 때 선생님께서 “오늘 무얼 했나?”하고 물으셨습니다. 나는 솔직하게,
“아무리 해도 선생님의 손목 부위가 움직이지 않으므로 그것을 움직이게 하기만 하면 (내가) 이기는 것이다, 라는 생각에서 과감히 휘둘러 올려 보았습니다. 그래도 선생님의 검선은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고 말하자 선생님은 웃고 계셨습니다.
2. 강한 것과 딱딱한 것은 별개. 검선의 강함을 해석하는 방법.
‘칼끝의 강함’이라는 것을 잘못 해석하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느 날 학생들이,
“중심이 절대 벗어나지 않는 사람에게는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라는 질문을 하였습니다. 무슨 뜻인가 하고 물었더니,
“머리를 치고 나가면 찔립니다.”
라고 그 학생은 말했습니다. 그것뿐인가, 하고 물었더니 “그렇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을 듣고 나는,
“칼끝이 살아있는 사람과 겨눔이 딱딱한 사람이 있다.”
라는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겨눔이 딱딱하고 상대가 오면 찌른다, 이런 사람은 진짜로 검선이 강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학생은 아직 하는 방법을 모르므로 겨눔세가 딱딱하여 막무가내로 찌르는 사람도 검선이 강하다고 해석하고 맙니다.
참으로 검선이 강한 사람이란 더 유연성이 있는 사람을 일컫는 것입니다. 겉으로부터 누름을 당해도 무리하게 되밀지 않고 쓱―하고 검선을 중심으로 되돌리고 위로부터 올라타여도 곧 대응하여 기술을 낼 수 있는, 아까의 오노 선생님이나 호리구치 선생님과 같이 상대에게 기회가 아니다, 라고 알려줄 때에는 탕―하고 상대의 목 부위에 검선을 갖다대는 그런 임기응변, 자재성(自在性)이 있는 사용법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은 참으로 검선이 강하다고 할 수 있겠지요. 손목부위가 딱딱하여 상대의 기술에 대해 힘만 가득 넣어 찌르기밖엔 할 수 없는 사람은 검선의 운용법을 알지 못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검선의 강함이란 기술이나 겨눔세, 거리 외에도 기력이나 부동심(不動心) 등 종합적인 것이 갖추어져서 생겨나는 것이겠지요. 검선이 살아있는 사람과 훈련이든 시합이든 하면 아무리 애써도 내 쪽에서부터 먼저 손을 내기 마련입니다. 끌려들고 마는 것이지요.
원래는 거기서 대처해야 할 기술을 익히지 않으면 안 되지만, 거리에 밝고 검선을 운용하는데 숙달된 사람에게는 역시 대응할 수 없습니다. 검선의 미묘한 움직임만으로 끌어들이고, 무리하여 들어가면 목을 찔린다든가 스쳐올려진다든가, 등으로 반드시 당하고 맙니다. 얼핏 보아 치고 갈 수 있을 것 같아도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즉, 부드러운 가운데 심(芯)이 박혀 있는 듯한 사람―그런 사람이 칼끝에 강함을 숨긴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커다란 의미에서 검도 수련의 도달점은 최종적으로 여기에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3. 검선을 강하게 하기 위해서는? 검선을 살린 공세의 방법은?
매일 훈련하면서 무엇을 의식하면 검선이 강해질까?
한마디로 말하면, 중심을 빼앗으면서 맞지 않는 것입니다. 아무리 중심을 빼앗고 상대와 마주서도 상대에게 맞아서는 아무 것도 안 됩니다. 그러나 아무 것도 안 된다고 하여 중심 뺏기 싸움을 단념해서는 다음 단계로 나갈 수가 없습니다. 처음부터 멋지게 들어갈 수는 없으므로 맞아도 맞아도 인내를 거듭하는 사이에 서서히 무언가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 인내는 매우 힘듭니다. 누구든 맞고서 기분 좋은 것은 아니므로 맞고 싶지 않다는 기분이 머리를 쳐듭니다. 그래서 그 기분을 앞세우면 중심을 벗어나서 무리한 모양을 하면서까지 수비를 굳게 하고 맙니다. 검도가 무너지는 원인은 여기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내가 실천하고 있는 정안(正眼)의 겨눔세는 검선의 연장선이 상대의 왼눈을 찌르는 듯한 공세 방법입니다. 그리고 상대가 거리를 좁혀 오면 왼눈에 대고 있던 검선의 연장선을 상대의 목에 겨눕니다. 이러한 움직임의 변화로 타격 거리 내에서 중심을 취하는 셈이지요.
원칙으로 하고 있는 것은 두 가지. 하나는 상대가 중심을 취해 똑바로 공격해 오면 검선을 왼눈에서 목으로 옮기는 동작으로 상대의 죽도를 쓱, 하고 눌러 중심을 벗어나게 하는 것이며, 또 하나는 그때 상대가 다시 중심을 뺏으려고 힘으로 되밀고 오면 거스르지 않는다―검선을 밑으로 돌려 다시 목으로 가져가는 것입니다. 누르고 들어오려던 상대의 검선은 버팀목을 잃은 바람에 중심에서 벗어나므로 간단히 중심을 탈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앞에서 호리구치 선생님의 이야기 중에서 ‘선생님의 검선이 물에 뜬 통나무와 같다’고 이야기했는데, 바로 이것입니다. 물에 떠 있는 통나무는 이쪽을 누르면 빙글 돌며, 반대쪽에서 누르면 또 빙글 하고 돕니다. 자연스러움. 거슬리는 일이 없습니다. 검도의 극의(極意) 중 하나인 ‘부목(浮木) 이야기’는 유명합니다. 참으로 검선의 공세도 여기에 있고 (힘으로) 되받아 밀 필요 등은 전혀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상대가 되밀고 오면 그 순간이 중심을 빼앗을 찬스가 됩니다. 학생들에게 이것을 놓치지 말라, 고 항상 말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국사관대학교를 졸업한 안토(安藤戒牛, 현 아이치현 경찰) 군은 검선의 공세를 살리는 방법이 대단히 뛰어났습니다. 학생시절에 좋은 성적을 남긴 요인은 그 때문일 것입니다(1993년, 94년 전일본 학생선수권대회 2연패). 그는 올해 전국 경찰대회, 4단 이하부에서 우승했습니다만, 학생시절부터 상대를 자신의 페이스로 끌어들이는 데 뛰어났습니다. 검선을 살림으로써 주도권을 빼앗는 것이지요.
겉, 혹은 안으로부터 눌러 상대를 압박하여 상대가 견디지 못하고 무리하게 나오면 머리로 들어가고, 상대가 안으로부터 눌려 어지러워져 중심을 벗어난 채 머리를 향해 뜨면 그때 손목을 칩니다. 요는 자신이 중심을 점령하고 결코 상대에게 그 중심을 빼앗기지 않는 상황을 항상 펼쳐나가는 것입니다. 공세를 취함에 무리가 없으므로 자세도 시종 무너지지 않습니다.
공방(攻防)이란 참으로 그런 것입니다. 스피드나 힘이 아니라 중심뺏기입니다. 왼눈에서 목으로 겨눈다는 이야기를 했듯이, 그 중심의 탈환은 참으로 조그마한 폭(죽도 크기의 폭) 사이에서 가능한 것입니다. 흔히 볼 수 있듯이 중심을 무시하고 자세를 무너뜨리고 방어하는 그런 풍조는 검도의 ‘공세’나 ‘역공세’에서 크게 벗어나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안토 군의 공세 방법은 하나의 예에 불과합니다. 이런 방법 외에도 이렇게 공세를 강하면 상대는 이렇게 역공세를 취해올 것이므로 그때 이렇게 치면 된다, 는 식의 공세의 패턴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우리들 지도자가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은 그저 검선의 공세 방법의 기본을 가르칠 뿐입니다. 그 패턴을 늘려 나가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 사람의 몫이요, 스스로의 노력이 없으면 안 됩니다. 사람들마다 제각각의 스타일이 있듯, 이것도 자신이 스스로 학습하지 않으면 참된 자신의 것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검선의 공방의 기본을 완전히 알고, 그런 후에 그 바탕 위에서 거리나 기(氣)를 넣는 방법을 생각하기도 하면서 그것들에 살을 붙여 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 살이 많이 붙어감에 따라 검선의 공세는 그 사람 나름의 강함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안토 군도 수련을 계속해가는 사이 검선의 공세 방법이 점점 더 좋아지겠지요.
4. 타격 거리에서 서로 칼끝을 다투는 의미
서로 교차한 검선을 딱딱 부딪치며 공격과 방어를 하는 모습은 고단자 시합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말해왔듯이 검선의 공방이 그런 조그만 움직임 속에 응축되어 나타나고 있는 지도 모르고, 뻗든가 꺾든가 감든가 하는 동작이 그 조그마한 진동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실은 나는 그렇게 생각할 뿐, 실제로는 보다 다른 의미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뻗기, 꺾기, 감기와 같은 것들이 공세의 행위라면 그런 검선의 미세한 움직임이 어느 순간에는 기술이나 동작으로 즉시 연결되어야만 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 것도 모르면서 검선만 움직이고 있는 것만으로는 결코 다음 동작으로 연결되지 않습니다. 공세로부터 다음 동작으로의 이행 과정을 살펴보면 그 사람이 검선의 공세 방법을 잘 알고 있나 아닌가를 바로 알 수 있습니다.
8단 심사의 합격자는 매년 대체로 같은 수가 나옵니다. 그것은 심사하는 선생님의 착안점에 무언가 기준점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심사 위원은 서로 의논하여 합격 여부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제각각 체크합니다. 그런데도 거의 비슷한 채점, 즉 매년 비슷한 합격자 수가 나오는 것을 보면 심사의 착안점에 공통되는 점이 있음이 분명합니다. 그 중 하나로 숙련자에게는 그 사람의 검선의 공세가 참된 것인지 아닌지를 꿰뚫어보는 눈도 갖추고 있다고 느껴집니다.
가령 검선을 달칵달칵 떨면서 공세한 뒤 단지 치고 나가는 것만으로는 그때까지의 공세 행위는 무엇이었던가, 하는 것이 됩니다. 두드린다면 두드리고, 두드리기가 끝나자마자 상대가 중심을 되찾으려고 하는 그 찰나를 포착하여 타이밍 좋게 나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것이 공세와 기술의 연결입니다. 무언가 실마리를 찾고 있는 것과 단지 달칵달칵하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르지요. 공세와 기술이 연결되기만 하면 그것이 상대방에게 맞지 않더라도 괜찮습니다. 오히려 기회를 쥐고 있는데도 두려워서 나가지 않는 쪽이 인상이 나쁘고, 그때까지의 공세와 연결 없이 무의미하게 기술을 내는 것도 좋지 않습니다.
나의 경우는 검선의 공방에서 상대의 죽도를 달칵달칵 치는 행위는 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도 중심을 뺏어 두고 상대가 오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역공세하는 것에 전념하는 편이 많습니다. 그리고 물러나는 것은 없습니다. 상대가 공세하여 들어오면 감거나 치거나 하면서 역공세하는 치중할 뿐 물러난다는 생각은 우선 없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물러난다는 것은 상대의 공세를 파괴하지 못하고 자신이 물러감에 의해 거리를 다시 확보하는 셈입니다. 그것은 결국 (상대의) 기술에 걸려든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기분이나 의욕만으로 이기려고 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상대가 들어와도 반대로 상대를 물러나게 할 정도의 역공세에 강함이 있으면 좋겠으나, 그래도 물러나게 할 수 없는 정도로 상대의 공세가 강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때는 치면 됩니다. 오면 나간다, 라는 의사 표시를 하면 상대도 생각을 바꿉니다. 학생들에게 말합니다.
“거리를 두고 치려는 것 자체에 대해 내게 말하라면 나는 진다고 말한다. 그보다는 역공세를 취하라. 상대를 오히려 물러가게 만들 정도의 역공세를 생각하라”
라고.
학생들이,
“상대가 물러가 주지 않습니다.”
라고 말하면,
“바보 같은 소리하지 마. 그렇다면 상대가 졌다고 인정할 만한 타격을 내어라. 그렇게 하면 상대도 ‘도리어 내가 맞았구나. 나의 공세는 공세가 아니었구나.’ 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쉽게 타격 거리 안에 들어가 주었구나.’ 하고 느낄 수 있게 말이다.”
라고.
요즘의 학생들 시합을 보고 있노라면 공세를 당하면 간단히 거리를 떼고 마는 경우가 적잖이 있습니다. 상대가 공세를 취해오면 나도 역공세를 취합니다. 그렇게 하면 서로 반반씩의 위험한 상황을 맞게 됩니다. 그 상황 속에서 어떻게 기술을 낼 것인가의 주고받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검도의 재미로서, 거리가 좁혀진다고 하여 쉽게 물러가서는 이미 검도의 진미를 스스로 잃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5. 기본의 반복으로 칼끝이 강해진다. 중요한 것은 지도자의 지도 방법
국사관 대학에서는 학생들에게 중심에서부터 공세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만, 지도를 하다보면 그것을 위해서는 아이들 때부터 기본이 중요하다고 통감하고 있습니다. 나도 소년 지도에 관여하고 있습니다만 역시 검선을 강하게 하기 위한 원점(原點)은 기본에 있습니다. 똑바로 공세하여 친다. 단지 이것뿐입니다.
지도자는 이 기본을 시간을 들여 착실하게 아이들에게 주입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똑바로 들어가 머리, 똑바로 들어가 손목, 똑바로 들어가 허리. 아이들은 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를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상대가 똑바로 죽도를 겨누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피해 옆으로 치는 것이 두렵지 않고 편히 칠 수 있는데……하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상대의 죽도를 비껴 옆으로 공격하여 치는 따위로 하면 다음 단계에 들어갔을 때 중심을 취한다, 라는 것은 이해할 수 없게 됩니다. 어떤 형태로 공격해도 타격 부위에 맞기만 하면 된다, 상대가 오면 어떤 자세라도 좋으니 피하고 수비하면 된다, 이런 것들밖엔 알지 못한다면 다음 단계에 들어가 돌연 중심을 공격하라는 말을 들어도 그 의미조차 이해할 수 없습니다.
물론 젊음이 넘치는 기동력 있는 검도도 있고 젊은 사람에게는 그것도 필요합니다. 다만, 기동력이 있기 때문에 중심 뺏기보다 기술에 의존하고, 그것만으로 일관하면 다음으로 뻗어가지 못합니다.
우리에게도 그런 타입의 학생들이 많습니다. 그런 학생들을 보면 발전이 더디고 제자리걸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고교때 옥룡기(玉龍旗)대회나 국체(國體)에서 좋은 성적을 올린 선수가 대학에 와서 레귤러 선수가 되지 못하는 경우를 적지 않게 봅니다. 검도에는 말할 필요도 없이 나이에 걸맞는 단계라는 것이 있습니다만, 그 각각의 단계를 이어주는 것이 없어서는 안 된다, 라는 것을 지도하고 있는 최근에는 매우 절실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중심을 파고드는 공세로서, 그것이 현재 상황에서는 대단히 소홀히 여겨지고 있지 않나 느끼는 것입니다.
국사관 학생의 대다수는 장차 검도의 지도자 위치에 서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우리들은 미래에 연결되는 지도를 하도록 요구받고 있습니다. 따라서 적어도 ‘중심의 공세’라는 것은 가르쳐 둘 필요가 있습니다. 또 대학 재학중에는 시합에서 이길 수 있다 해도 졸업 후 갑자기 그렇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은 그 점을 배우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학생들도 입학 당초에는 중심을 무시한 검풍(劍風)이라도 1, 2학년을 거치면서 ‘이래서는 안돼’ 하고 노력하여 딴 방향으로 변화해 가는 학생은 3, 4학년이 되면 발전도 하고 졸업 후에도 활약을 합니다. 그것을 바꾸는 과정에서는 일시적으로 기술이 들어가지 않게 되는 일이 있다고 해도 기죽지 않고 노력합니다. 그렇게 하면 원래 승부감은 있기 때문에 중심의 공세를 깨닫게 되고, 그때부터의 발전 양상은 현격하게 달라집니다.
이전에 어떤 사람에게서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국사관 대학의 학생들은 야노(矢野) 선생님을 비롯해 지도 선생님들과 모두 같은 검풍이더군요. 형(틀)에 맞추어 ‘검도는 이런 것이다’라고 하고 있기 때문이죠?”
라고.
그런 것은 없습니다. 물론 중심이 무너지면 안돼, 하는 것은 있다 해도,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따위의 것은 없습니다. 다만 그래도 검풍이 비슷한 것은 훈련의 내용에서 ‘기본’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일 거라고 봅니다.
국사관 대학의 훈련량은 결코 많은 편이 아닙니다. 훈련은 매일 있습니다만, 1시간의 아침 훈련과 저녁 훈련 1시간 반을 보태어 하루 2시간 반. 그 가운데 아침 훈련은 연격과 기본기 훈련에 30분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똑바로 공세를 취하여 기술을 낸다, 그것을 매일 반복하기 때문에 자연 비슷한 타격 방법이 되어 가는 것이겠지요. 거기서 국사관다운 검도가 생겨나는 것이며, 실제로 시합에서도 하나의 중심을 형성하는 국사관다움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전통’이라는 것은 깨뜨릴 수 없습니다. 중심으로부터의 공세도 없고 단지 맞히기만 하면 된다, 라고 스피드에 의존하는 것은 고교생 때처럼 하면 되므로 선수들에게 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국사관 대학으로서는 그러한 것을 인정할 수 없습니다. 반대로 중심으로부터 당당하게 공격하여 졌다면 화를 낼 일도 없습니다. 작년에도 간토(關東) 학생 대회에서 카나가와(神奈川) 대학에 초반에 져 대회장이 일순 술렁거렸습니다만, 그때도 선수들을 꾸짖은 일은 없었습니다. 그보다도 “이상한 검도로 바꾸면 안 된다. 지금대로 계속해 가면 반드시 괜찮다.”라고 격려할 정도였습니다.
저번의 간토 학생 선수권대회에서는 현재 우리 팀의 주장인 코메야(米屋)선수가 우승했습니다. 서운하게도 나는 시합장에 없었는데 결승전은 좋은 시합이었던 듯합니다. 준우승한 쓰쿠바(筑波) 대학의 쓰쓰이(筒井暢一) 군도 훌륭했습니다. 그의 검도는 지금 학생들 가운데서는 첫 번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우승한 코메야 선수도 공세를 취하는 요점을 체득하고 있습니다만, 쓰쓰이 군은 큰 키를 살린 위로부터의 누름이 대단히 좋습니다. 두 사람 모두 이상한 방어 따위는 하지 않습니다. 중심을 취하기 위해 서로 공세하되, 쓰쓰이 군은 위로부터 타고 가고, 코메야 군은 그 중심의 공세를 무리 없는 역공세로 반격하여 간다. 나는 시합을 보고 있지 않아도 두 사람이 결승을 다툰다는 보고를 받은 것만으로 좋은 시합일 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학생 검도에 바라온 검풍(劍風)이 이기게 되었다, 라는 생각이 나서 학생 검도계에 커다란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웃음) 역시 그런 검도가 승부에서도 지지 않는다, 라는 것을 인정받고 싶습니다. 아까의 전국 경찰 선수권대회에서는 안토(安藤) 군과 함께 여자부에서 금년에 막 졸업한 아사히나(朝比奈靜香) 씨가 우승을 했습니다. 그때 경시청 감독이던 치바(千葉仁) 선생님은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그녀는 키가 큰 데다가 중심에서 똑바로 공세하여 치기 때문에 상대는 결국 피하지 못합니다. 이상한 방어 자세 따위는 하지 않고 상대의 죽도를 누르며, 물러가면 뛰어들고 나오면 맞추어 뛰어듭니다. 중심을 뺏는 방법이 뛰어나지요. 상대가 이길 수 없음은 당연합니다.”
그것을 듣고 역시 그렇구나, 하고 새삼 느꼈습니다. 치기 전 단계의 ‘중심 빼앗기’가 검도의 공세의 재미인 것입니다. 그것은 가령 학생 시대에는 알 수 없다고 해도 졸업하고 나서 눈을 뜨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중심을 공세할 줄 아는 것은 장기적 결국 레벨 업(level up)을 위한 최단거리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6. 칼끝을 살린 공세가 갖추어지면 검도 최고 경지의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지금까지 여러 가지로 말해왔습니다만, 나 자신 학생과의 훈련중에서 검선을 살려 중심을 취하는 것의 어려움을 매일 느끼고 있습니다. 이쪽에서 공세를 취하고 상대가 올 때 다시 역공세하여 중심을 뺏고 치면 가장 이상적입니다. 그러나 가령 맞지 않아도 이쪽의 손목부위가 움직여 상대의 검선에 의해 제어 당해, ‘당했다’라고 느낄 때도 있습니다. 또 중심을 점하는 것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면 오히려 검선이 살아나지 않는다는 것도 체험적으로 느낍니다. 검선이 살지 않는다는 것은 기력(氣力)이 검선에 집중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 나날 가운데 때때로라고나 할 정도로 1년에 한두 번 죽도에 나의 피와 신경, 기분 모두가 집중되어 죽도가 몸의 일부가 된 듯한 이상한 감각을 맛볼 때가 있습니다.
가령 먼지가 날아오면 눈 깜박임을 하지요? 그 깜박임은 ‘눈을 감지 않으면 눈에 먼지가 들어온다’라고 생각하지 않아도 반사적으로 눈이 감기는 것입니다. 죽도가 몸의 일부가 된다는 감각은 그런 반사적인 움직임이 가능한 상태일 때에 맛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무적이지요.(웃음) 상대가 와도 팡, 팡 하고 반격할 수 있고 기술에서는 자유자재. 어떤 식으로 공격당해도 전혀 움직이지 않고 대응할 수 있습니다. 상대의 공격을 어떤 것이든 알 수 있고, 무슨 행동을 하려는지도 알 수 있습니다. 내 쪽의 검선이 통하고 상대가 전혀 나올 수 없게 되고…… 이런 일이 있나, 할 정도입니다. 훈련이 대단히 재미나게 느껴지지요. ‘옳거니, 내일도’라고 생각해 그 상황을 세세하게 메모해 두기도 하지만, 슬프게도 다음날은 또 사정이 달라져 생각대로 되지 않습니다. ‘이것이 역시 사람이로구나’하고 매일 자기자신에게 타이르고 있습니다.(웃음)
아마도 이런 상태가 최고의 기술을 끌어낼 수 있는 상태이겠지요. 1년에 1회, 2회 찾아오는 그런 상태는 대체로 학생 시절에 ‘좋다, 오늘은 해 보자’할 때가 아니라,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고 훈련에 임할 때 나타나곤 합니다. 그 상태를 매번 유지할 수 없는 것은 ‘마음’의 문제이겠지요.
매번 가능하다면 참으로 검도가 즐겁고 멋질 것입니다. 그 상태를 자유자재로 컨트롤할 수 있다면 그 자체가 ‘깨달음’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선인(先人)들도 그런 상태를 만들어 내려고 ‘마음’의 연구를 거듭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생각이 있어 머리수건에 ‘평상심(平常心)’이라든가 ‘부동심(不動心)’과 같은 말을 적어온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처음 시작할 때 검선의 공세란 ‘기력’과 ‘부동심’ 등을 포함시킨 종합적인 것이라고 말씀드렸는데, 상대를 끌어낼 수 있을 정도의 ‘살아있는 검선’이란 역시 그 사람의 치열한 수련의 성과가 그렇게 나타난 것이다, 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3) 검선에 올바른 마음을 싣는다
―가쿠도시히코(賀來俊彦. 범사 8단) 지도
* 약력
1926년 10월 大分縣 출생. 오사카 경찰 검도 주석 사범. 현재 전일본 검도연맹 평의원. 나라현 검도연맹 심의원 상임이사. 오사카 치과대학 사범 등을 역임.
가쿠도시히코 범사의 사람됨을 경모하는 검사는 전국 곳곳에 많이 있다. 자애로운 눈빛이 가득하면서도 자신을 엄하게 지켜온 모습을 대하면 몸이 오그라든다. 그러나 역시 범사를 사모하는 검사의 대다수는 언제나 방긋이 미소 짓는 그 얼굴을 떠올릴 것이다. 그 온화한 사람됨은 검풍(劍風)에, 그리고 검선(劍先)에도 나타난다. 공세에 관한 범사의 이야기에는 마음의 공세와 검선의 공세를 잇는 커다란 힌트가 숨어 있다. <편집부>
1. 검도의 종합력이 검선에 표현된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허리의 안정과 힘을 넣을 때를 아는 것.
“공세 다툼에서 이긴 자에게 칠 권리가 있다”고까지 말하듯 검도에서는 공세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마음ㆍ기술ㆍ겨눔세 등 모든 것이 공세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공세’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고 나 자신 오랜 시간 명확히 알지 못했습니다.
옛날부터 공격하는 방법의 극의는 여러 가지를 들 수 있겠습니다만, 그것들을 자신의 것으로 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습니다. 모치다(持田盛二) 선생은 만년에 ‘정상까지 가면 또 문이 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검도는 극한에 도달해도, 또 도달해도 끝에 이를 수 없는 유현(幽玄)하고 미묘한 진리가 있어요, 하는 점을 남기신 것은 아닐까요.
몸으로부터 발산되는 ‘공세(=氣)’가 칼끝에 전해져 상대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감각은 웬만해서는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나는 오사카부 경찰 시절 사이토(齋藤正利) 선생으로부터,
“호리구치(堀口淸) 선생은 (준거에서) 일어섰을 때부터 이미 검선이 살아있어요”
라는 말을 자주 들었습니다. 그렇게 되라! 고 하는 가르침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과 관련하여 여러 가지 지도 받은 것들이 되살아납니다.
‘공세 다툼(=일본어로는 세메아이. 두 사람이 서로 공세하여 중심을 뺏으려고 하는 과정. 즉 ‘세메’는 한 사람이 하는 공세이라 할 수 있겠고 ‘세메아이’는 두 사람이 동시에 서로 그렇게 하는 것을 의미함)’이라고 하면 때때로 검선(의 공방)만을 드러내어 중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공세는 검도의 전체적인 문제로 연결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는 참된 것을 알 수 없습니다.
공세란 「기검체(氣劍體) 일치」 가운데서 또는 「심기력(心氣力) 일치」 가운데서 나오는 것입니다. 겨눔세와 죽도 쥐는 방법과 같은 기초적인 것 속에 그 기술이 은밀히 감추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겠지요.
그것들 모두가 충실할 때 비로소 칼끝에도 공세의 위력이 배어나는 것입니다. 고단자 선생님과 훈련을 할 때, 거리의 공방 속에서 이쪽의 마음의 작용 정도를 검선을 통해 상대에게 느끼게 했다, 고 하는 것이 되겠습니다.
일반적으로 검선의 공세가 형태로 나타난다면 상대의 검선을 누르거나 치거나 하는 동작이 되겠습니다만, 그보다는 먼저 겨눔세가 견실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겨눔세에는 몸의 겨눔세와 마음의 겨눔세가 있고, 이것이 충실하면 검선에 공세가 생기며, 상대에게 영향을 주게 됩니다. 겨눔세의 중요한 점은 신체의 ‘중심(中心)’과 ‘중심(重心)’을 일치시키는 것입니다. 침착하고 묵직한, 안정된 자세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깨에 힘을 빼고 허리와 단전에 힘을 충실히 하는 것입니다.
허리와 단전에 힘을 넣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실제로는 힘을 넣기 어렵지만, 힘을 넣고 있다고 의식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힘이란 허리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무거운 물건을 들어올리려 할 때 팔을 사용하면 허리가 뻐근하여 통증이 생깁니다. 우선 허리부터 들어올리도록 합니다. 그것은 자신이 의식하고 있지 않아도 ‘허리에서 나오는 힘이 팔힘보다 몇 배나 강하다’, ‘억지로 힘을 쓰지 않아도 힘은 작용한다, 라는 것을 몸이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또 훈련 중에 팔힘에만 의존하여 상대에게 몸받음 하면 거꾸로 퉁겨버리고 부상까지 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허리가 충실하게 되어 있으면, 가령 상대의 힘이 뛰어나도 퉁겨나는 일은 없고 자연히 비낄 수가 있습니다. 이와 같이 허리에 힘을 넣는 것은 안정된 자세를 가질 뿐만 아니라 전신에 힘을 뻗게 하는 원천이 되며, 허리가 안정됨에 의해 활력이 검선에 전해져 보다 강력한 공세로 표현되는 것입니다.
검선을 살리는 데는 물론 손매무새(=데노우치)와 죽도의 조작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에만 사로잡히면 전체의 겨눔세가 무너지는 일이 생겨나고, 자신의 공세가 상대에게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 즉 살아있는 공세가 될 수 없는 일이 생겨날 수 있습니다.
또한 타격의 강도에 대하여도 항상 이야기합니다만, 스피드가 올라가면 타격도 강해지고 상대보다 먼저 타격할 수 있습니다. 이것도 하나의 공세의 위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강하고 빠르게 칠 수 있을까요?
한마디로 말하면 ‘힘을 쓰지 말라’ 입니다. ‘힘을 쓰지 말라’고 하면 뭔가 흐늘흐늘한 것을 연상합니다만, 타격도, 겨눔세도, 검선도, 신체 전체로 힘을 넣으면 딱딱해지고 몸의 움직임을 취할 수 없습니다. 훈련할 때, 치고 들어간 상대가 갑자기 (몸을 틀어) 비끼면 자신의 죽도가 밑으로 떨어져 원래자리로 되돌아오는데 시간이 걸린 경험을 한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것은 팔에 필요 이상의 힘을 넣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어깨나 팔의 힘을 빼고 허리에 힘을 넣어 치고 나가면 비껴진 경우에도 몸이 무너지지 않고 다음 동작으로 재빠르게 넘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빠르고 강하게 치기 위해서는 어깨와 팔의 힘을 빼고 허리와 단전에 힘을 넣어야 하는 것입니다. 요는 힘을 넣어야 할 곳을 확실히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2. 마음의 공세로도 검선은 강해진다.
일반적으로 왼허리, 왼발, 왼손의 사용법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만, 그 사용법은 검선의 공세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올바르게 사용하면 검선이 살아남은 물론, 거기에 마음의 공세까지 보태지면 더 큰 위력이 발생합니다.
고교생과 대학생 등 젊은 사람에게는 마음으로 공세한다고 하면 매우 어려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런 나이라 해도 상대를 잘 칠 수 있다면 자신감이 붙고 마음이 안정되며, 그것이 공세로 살아납니다. 즉, 기술의 숙달, 발전에 의해 마음도 안정되어 가는 것이지요. 그러나 거기에만 무게를 두면 겉으로 보이는 기술에 치중하고 말 위험도 있습니다.
검선의 공세를 알지 못하고 검선을 안중(眼中)에 두지 않는 시기에도, 곧잘 상대를 치기도 하고 시합에도 이깁니다. 그러나 연습을 거듭해 가면 어느 땐가 검선에 신경 쓰기 시작할 때가 찾아옵니다. 확실히 검선의 공세는 겨눔세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만, 찔러 조여가면 마음의 작용에 의한 것의 중요함에 눈을 뜨게 됩니다.
‘검선’이라는 것을 알기 시작하면 상대의 검선에 두려움을 느끼거나 헷갈리는 경우가 생겨납니다. 하지만 그런 것은 다음 단계에 이르는 하나의 과정입니다. 그것을 뛰어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답은 이러합니다.
“버리고 베어라!”
여기서 ‘버리고 베어라’란 대단한 가르침입니다. 경구의혹(驚懼疑惑)의 사계(四戒)를 없애고 상대와 대치하는 것은 마음의 측면에서 빠뜨릴 수 없는 중요한 것이지만, ‘윗 선생님께 훈련하러 들어갈 때는 버리고 달려들어라. 응하거나 막지 마라. 치고 나서 몸싸움을 하지 마라’ 등으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쓸데없는 힘을 넣거나 여러 가지 생각(驚懼疑惑)을 하고 있어서는 공세를 연마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버리는’ 것의 훈련이 곧 ‘기(氣)를 단련하는’ 것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연격이나 전공(專攻) 연습(=공격연습) 등은 충분한 기합과 함께 잡념 없이 전심(專心)한 마음으로 치고 들어가는 것이므로 기를 단련시키는 데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것이든 도중에 가능한 한 숨을 쉬지 말아야 함이 중요합니다. 버리는 것과 마구잡이로 치고 나오는 것은 당연히 다릅니다. 특히 초보자는 그런 부분을 구별하지 못하거나 상대의 틈을 알지 못하는 점이 있겠으나, 자기 나름대로 단단히 기합을 넣고 ‘여기다!’ 라고 생각한 순간에 과감히 친다―이런 훈련의 반복이 효과적입니다. 매일 거듭하여 버리고 치는 훈련을 하면 그런 가운데 타격하는 순간 무의식적으로 응하거나 빼거나 누르거나 하는 것이 자연스레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3. 쳐서 이기려고 하지 말고 상대와의 조화를 도모할 것. 검선도 자연스럽게 사용할 것.
나는 1966년 경찰대학에 입학했습니다. 그때 지도하셨던 황궁(皇宮) 경찰의 사토 선생님께 훈련하러 들어가면, 선생님의 검선은 늘 중심에서 벗어나 있고 손목이 비어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칠 수 있다고 생각해 치고 나갔습니다만, 항상 선생님에게 먼저 맞았습니다.
같은 일이 반복될 뿐이어서 생각에 잠겼으며, 생각 끝에 모치다(持田盛二) 선생님께 여쭈어 보려고 고단샤(講談社) 노마도장에 나간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확실히 기억하고 있는데, 사범실에는 다다미가 깔려 있었고 거기에 앉아 계신 선생님에게 조심조심 다가갔습니다. 선생님께 여쭈어 보았더니 ‘자연스레, 자연스레’ 하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당시의 나에게는 ‘무슨 말인가?’ 하고 명쾌하게 와 닿질 않았습니다. 내심으로는 여쭈어 보러오지 않았어야 했나, 하고까지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상한 일이지요. 모치다 선생님께 그렇게 듣고 난 뒤에는 날이 감과 더불어 불안한 기분이 사라져 갔습니다.
최근에야 겨우 선생님의 말씀을 이해할 듯합니다만, 선생님은 자연과 하나(一體)가 되는 마음가짐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자연이란 것은 ‘완전 조화’이므로 죽도를 교차한 상대와 일체가 되라는 것은 아닐까요? 단순히 상대를 무너뜨린다든가 때려주려는 기분으로 훈련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조화하여 상대와 일체가 되면 기의 부딪침을 느낄 수 있게 됩니다만, 그런 경지를 위해서는 자신의 마음속에서부터 투쟁심을 사라지게 하는 것이 중요한 수련의 하나라고도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다투지 말라, 라고 말하면 승부의 세계에서는 모순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역시 상대와 일체가 될 수 있는 기분을 갖고 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모치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자연’도 그러한 곳에 있는 것이 아닐까요? 사토 선생님과 상대했을 때 형태상(표면상 보이는 것)으로는 손목이 비어 있는 것으로 보이므로 치고 나가 매번 똑같이 맞았습니다만, 그때도 선생님은 나의 기(氣) 부딪침을 느끼고 훈련을 받아주신 것으로 지금은 이해하고 있습니다.
결국은 검선의 작용도 마음의 표현입니다. 치고 말리라, 쳐서 이기리라 하는 기분으로는 아무리 훈련을 해도 숙달 또는 발전으로는 이어지지 않는다, 라는 것이겠지요.
앞에서 이야기한 사이토 선생님은 하루에 한 번은 반드시 거울 앞에 서서 자세를 점검하셨는데,
“뒤에서 보면 그 사람을 잘 알 수 있지. 자신을 바르게 하는 것이 검도다. 자신을 바르게 하고 있으면 상대의 올바르지 않은 것을 알 수 있다.’
라고 곧잘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생각해보아도 말씀 속에 무언가 중요한 의미가 숨어있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상대의 눈매나 표정, 안색을 보면 대략 짐작이 가는 것이겠지요. 눈을 부라리고 상대를 쳐부수려 하는 일그러진 얼굴은 마음이 흔들리고 있음에 다름 아니고, 틈을 만들어주어 공격당할 원인을 제공해주는 것입니다. 자신의 힘을 충분히 발휘하고도 맞았다면 상대가 한 수 위라는 점에서 납득하고, 또 마음에 여유를 갖지 못할 경우에는 ‘자신의 부끄러움’이라고 생각해 다시 심신의 수련에 몰입하면 되는 것입니다. 누구라도 상대로부터 맞는 것은 싫어하지만, 맞으면서도 의지를 강하게 만들어가면 검도는 확실히 향상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마음가짐인데 그에 대하여 특히 인상에 남는 것은 1957년 齋村五郞선생님에게서 “이기려고 하면 딱딱해진다.” 라는 말씀을 들었을 때였습니다. 내가 가장 마음에 찔렸던 것은 ‘나는 오로지 치려고 하고 있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검도에서든 인생에서든 마음이라는 것은 언제나 중요한 문제입니다. 최근은 모든 분야에서 두루 이야기되고 있는데, 실제로는 꽤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나도 여러 가지 생각을 굴리면서 연구하고 있습니다만, 요는 마음가짐이겠지요.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 즉 솔직함과 겸허함은 사람들이 진리―검도에서는 극의(極意)이겠지요―를 받아들일 수 있는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 자신에 대한 경계(警戒)를 포함하여 ‘주변의 어떤 것에도 감사하게 생각할 수 없는 사람은 완전한 이법(理法)을 실천하고 있다고 할 수 없다.’ 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스스로 살아가기보다 주위에 의해) 살아지고 있다, 라는 점에 눈을 뜨면 자연히 감사의 마음도 솟아 조그만 일에 안색을 변하지 않고 항상 웃는 얼굴로 지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곰곰이 생각하는 것은 검도하기를 잘했다는 것입니다. 나는 젊은 시절부터 기술도 안 된다, 마음도 약하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2배, 3배의 연습을 쌓지 않으면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없다, 라고 생각함과 동시에 진리라고 하는 것을 찾아 오늘까지 살아왔습니다.
3, 40대에는 좌선도 해보았습니다. 당시는 아무 것도 얻을 수 없어 낙담하기도 했고, 검도를 그만둘까 생각한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지금의 ‘나’가 있는 것입니다. 검도에서 인간 형성의 방법을 실천하는 장(場)을 얻었고, 생명의 근원을 안다는 멋진 일과 만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검도는 즐겁지 않으면 공세가 나오지 않습니다. 겨누고 있을 때도, 손매무새(=데노우치)를 생각하고 있을 때에도 마음은 작용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의 형태로 표현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모든 것이 검선에 전해진다, 라고 하면 적절한 표현일지 모르겠습니다. 참으로 ‘검(劍)’은 ‘마음’입니다.
“치지 마라. 맞아라. 상대와는 사이좋고 온화하게, 자세는 아름답게, 존심은 향기와 같이…….”
라고 모치다 선생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정말 그대로라고 생각합니다.
(4) 검선의 다툼 방법
―나가노 유타카(長野裕․동경검도연맹 전무이사) 지도
* 약력
1925년 출생. 초등학교 1학년부터 검도시작. 중학교 때 사이토(齋藤盛四郞. 범사. 神道無念流)의 가르침을 받음. 타쿠쇼쿠(拓植) 대학 입학 후 이토(伊藤淸治. 당시 육군 도야마(戶山) 학교 사령관. 육군 소장)에게 약 2년간 사사. 종전 후 고향인 사이타마현에서 다시 사이토의 가르침을 받음. 1953년 동경으로 옮겨 다카노(高野孫二郞. 범사 9단. 오노파 이토류)에게 입문하여 타카노가 타계할 때까지 약 20년간 수련. 그 뒤 좋은 스승을 찾아 호리구치(범사 9단)에게 사사. 약 11년간 가르침을 받음.
검선의 공세는 매뉴얼에 의해 단계적으로 배우는 것이 아니다. 고단자들도 매일매일의 훈련을 통해 고뇌하면서, 스승의 기술을 눈으로 훔치고, 때로는 레벨에 맞는 적절한 가르침을 배워왔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결코 몸에 붙지 않을 것이다. 그것을 자신의 속에서 소화하고, 생각하고, 나아가 훈련을 쌓아야만 비로소 체현(體現)할 수 있는 것이다.
다카노(高野孫二郞), 호리구치 등 일류 검사들에게 사사한 나가노 선생께 그 스승의 가르침을 어떻게 소화하여 검선의 공세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는지를 들어보았다. <편집부>
1. 오른손으로 중앙선을 취한 호리구치, 왼손으로 중앙선을 취한 다카노.
내가 여기서 말씀드리려는 것은 호리구찌 선생님, 다카노 선생님, 또는 소년시대 지도를 받았던 사이토 선생님 등으로부터 교육받았던 것입니다. 어디까지나 나 개인이 그 가르침을 소화하고 생각한 것이므로 독자들로서는 의문을 느낄 부분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우선 검선을 상대의 중앙선에 겨누라고 하는 것은 확실합니다만, 죽도 끝을 상대의 중심선에 겨누는 것에만 구애받으면 중요한 점을 소홀히 할 수도 있습니다. 즉, 검선의 위치에만 집착하면 모처럼 중심을 공세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효과도 볼 수 없는 공세가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호리구치 선생님은 언제나 단편적(斷片的)인 이야기만 해 주셨습니다. 예를 들면,
“시현류(示現流)에서는 검선의 다툼은 칼끝이 둥글게 될 만큼만 중앙선 싸움을 합니다.”
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또 이런 말씀도 해 주셨습니다.
“齋村五郞 선생님은 비꼈습니다. 나가노 씨, 비낀다는 것을 깨달으면 검도가 즐겁게 됩니다. 아래 사람을 상대로 할 때 검선을 너무 지나치게 살리면 상대의 기술이 나올 수 없게 되지요.”
아래 사람과의 훈련에서는 검선을 비껴 상대의 기술을 낼 수 있게 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말씀이지요. 확실히 우리가 호리구찌 선생님께 연습을 부탁드리면 갑자기 검선이 누그러져 초점이 없어지고 마는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 빡빡하게 검선으로 다투고 있다가 앞이 텅 비어버리고 맙니다. 앗, 하는 순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그냥 무작정 치고 나가곤 했던 일이 가끔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의 입장으로서는 (선생님이) 검선을 늦추어주지 않으면 그나마 치고 나갈 기회도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는 공격이므로 반드시 찌름을 당하고 맙니다.
호리구찌 선생님 입장에서 보면 나에게 기술을 내게 만들어 그곳을 치게 한 셈입니다만, 그것이 어째서 ‘즐거운 검도’가 되는 것일까요?
답은 이러합니다. 검선이 중앙선에서 벗어나 있는데도 정확히 찌름을 구사할 수 있는 까닭은, 호리구찌 선생님은 중앙선을 비낀다고 말은 하면서도 실제로는 비끼고 있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선생님은 어디서 중앙선을 취하고 있을까요. 바로 오른 주먹인 것입니다. 검선이 중심선에서 벗어나 있어도 오른 주먹으로 살짝 누르고 있습니다. 실제 중심은 결코 움직이지 않습니다. 호리구찌 선생님은 오른 주먹으로 상대의 중앙선을 점유하고 있었던 셈이지요.
“나가노 씨, 심술궂은 짓은 아닙니다. 당신이 멋대로 나의 검선에 달라붙어 오기 때문에 그랬습니다.”
라고 말씀하시고 있었던 것입니다.
2. 발에 의한 공세
한편, 다카노(高野孫二郞) 선생님은 왼주먹으로 중앙선을 취했습니다. 선생님의 검선은 높습니다. 이쪽에서 움직이면 쑥 하고 위로부터 코등이를 누르는 듯이 공세합니다. 그것은 오른 주먹에 힘이 들어가 있으면 절대로 할 수 없는 것으로서, 왼주먹으로 중앙선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몸이 쑥 올라타는 위압을 느끼게 되지요. 기(氣)로써 코등이 부위를 누르는 것이라고나 할까요.
검선의 높이에 대하여 호리구찌 선생은,
“검선을 코등이 부위보다 높게 하면 검선이 먹히지 않습니다. 검선을 높게 취하면 약해집니다. 검선은 언제나 코등이를 공격하세요. 나가노 씨는 검선이 높습니다.”
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그러나 다카노 선생님은 언제나 검선이 높았습니다. 코등이를 누르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검선을 높게 하여 위로부터 날쌔게 누르곤 했지요.
이로 볼 때 높이와 관련한 검선의 공세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위로부터 들어가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밑으로부터 들어가는 방식입니다. 밑으로부터 들어가는 경우도 마음만은 위를 타는 기분이라야 하겠지요.
다카노 선생님의 도장에 가면, 선생님이 돌아가시기 5년 정도 전에는 훈련을 마친 뒤 반드시 모두가 보고 있는 가운데 3판 승부를 가리는 시합을 하였습니다. 아무리 해도 대적할 수 없지요. 그래서 무심코 거리를 좁히고 맙니다. 심지어는 타격을 내지 않으면 안 되는 거리까지 들어가고 마는데, 그렇게 되면 ‘거기까지 와서 무얼 하고 있습니까?’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가르침대로 선혁에서 중혁 사이에서 공세를 시도하지만, 선생님은 세 판 중 한 판은 반드시 ‘베어떨어뜨리기(切落=키리오토시)’ 기술을 구사했습니다. 왼주먹으로 중앙선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상대가 두렵지 않지요. 왼손으로 중심을 잡고 있기 때문에 거리를 무시한다 싶을 정도로 상대 가까이로 몸을 쓱 하고 들이밉니다. 상대는 위압될 수밖에 없으며, 어쩔 수 없이 치고 나가면 절묘한 몸 동작으로 상대의 공격을 흘려버리고 마는 것이었습니다.
호리구찌 선생님도 몸 운용에서는 매우 능숙하셨습니다. 발에 의한 공세가 훌륭했지요. 선생님의 공세를 흉내내려고 검선의 움직임만 보고 있어서는 많은 것을 얻지 못합니다. 연습을 부탁드리면 선생님은 코등이 부위를 죽이듯이, 명치 정중앙(正中央)을 찌르듯이 하며 칼의 호(鎬:시노기-칼의 좌우옆면)를 타고 들어옵니다. 조금씩 앞으로 나오다가 이쪽에서 물러나지 않으면 공격해오고, 견디지 못해 물러나면 다시 거침없이 다가옵니다. 오른발을 내고 왼발을 붙이고, 또는 왼발을 약간 앞으로 내고 오른발을 붙이는 방식의 발 운용(발놀림)으로 어느새 거리 안으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발로써의 공세가 아닐까요?
반대로 내가 오른발을 내어 공세하고 왼발을 끌어 붙이려 하면 선생님은 어느 틈에 올라타듯 다가옵니다. 그러면 나는 왼발을 붙이지 못합니다. 무의식적으로 두려워 나갈 수 없는 것이지요. 그런 상태에서 그냥 치기 때문에 왼쪽이 처지고 오른쪽으로 치우치는 공격이 되고 맙니다. 결국 “똑바로 치고 오시오.” 라는 주의를 받게 됩니다.
선생님이 우리들에 대해 검선을 비꼈을 때, 우리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바르게 공격해 들어가면 그것으로 좋습니다. 좀처럼 성공하지는 못합니다만, “지금은 좋은 머리였어요. 그것을 잊어버리면 안됩니다.”라고 말씀하실 때는 저도 어떻게 쳤기에 이런 좋은 머리치기를 할 수 있었나 고개를 갸웃합니다.
비껴졌을 때 멈추지 말고 다시 한 걸음 더 나아가 들어가면서 공격하는 것, 그것이 참된 공세를 익히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3. 중앙선 쟁취는 패턴이 아니라 기(氣)의 문제
내가 생각하기에 호리구찌 선생님이 말하는,
―중앙선을 쟁취하고 호(鎬)를 깎는다.
라는 것은 기를 단련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세 판 승부란 것은 한판 승부가 세 판인 것입니다
라고도 말씀하셨습니다.
한판, 한판에 기를 충실히 하여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기의 충실이라는 것은 둥근 물체가 연속하여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흐르고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검선을 중앙선에 겨누고 거기에 충실한 기가 흐르고 있으면 비껴져도 주먹으로 취하고 있는 형태가 되는 것입니다. 끊임없는 의식 속에서 놓치지 말 것. 검선의 다툼이란 기를 충실하게 만드는 수단이지, 치고 맞는 기술 문제는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호리구찌 선생님은 나까야마(中山博道) 선생님에게서
―왼주먹으로 상대의 눈을 찔러라.
라는 가르침을 들었다고 말씀하셨는데, 나도 그 호리구찌 선생님에게서,
―기가 왕성하면 왼쪽 엄지로 상대의 눈을 찌르게 됩니다. 엄지가 일어서게 되지요.
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선생님은 기에 의한 공세를 강조하면서 “올라타 무너뜨려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죽도로 단지 누르는 것은 올라타는 것이 아닙니다. 두드려도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충실한 기(氣)로 뒤덮어야 하는 것입니다.
“齋村五郞 선생님은 중심이 없다. 검선이 어디를 공세하는지 알 수 없다. 안개가 다가오듯이 뒤덮어오기 때문에 도리가 없다”
라고도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기에 의한 공세라고 생각합니다. 충실한 기력으로 타고 와 무너뜨립니다. 안개가 다가오듯 거침없이 오는 것입니다. 검도는 적법한 자세에서 나오는 정확한 타격을 중요시 여기고 있습니다만, 시합에 있어서 항상 적법한 자세를 유지할 수 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무너진 자세 그대로 치는 것은 좋지 않지만 다까노(高野孫二郞) 선생님은
―숙달되면 어떠한 자세에서도 타격할 때만큼은 깔끔하고 정확한 모양이 되는 것이 옳다. 쳤을 때 (한판)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라고 말씀하시며, 어떠한 형으로 쳤으며, 검선의 위치 등은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다까노 선생님의 도장에서 훈련한 사람들이 다른 도장으로 훈련하러 가면 난폭하다고 이야기 들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므로 공세란 형태로서 정해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타쿠쇼쿠(拓植)대학에서는 이토(伊藤淸治) 선생님께 2년 반 정도 배웠습니다. 도야마(戶山) 학교 식의 실전검도였기 때문에 3자 6치에 손잡이도 짧은 죽도를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때때로 1대 다수의 시합을 시켰습니다. 많을 때는 1대 7인 적도 있었습니다. 그와 같은 시합에서는 검선 따위 맞추지 않습니다. 도움이 되는 것은 다듬어진 기(氣)일 뿐, 검선의 다툼기술은 아니었습니다.
이런 것을 생각해 보아도 검선을 중앙선에 겨눈다는 것은 기술을 습득하기 위한, 그리고 기(氣)를 다듬기(배양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합니다.
나까노(中野八十二) 범사 9단 선생님은,
―겨눔세는 기본적으로 고정된 것이 아니라 타격의 전제.
라고 말했습니다.
또 미야모토 무사시는,
―치기 좋은 곳에 두는 것.
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자신의 기술과 겨눔이란 동일하다, 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검선의 공세란 패턴이 아니라 타격의 기술과 평행한 것이며, 기(氣)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런 경지를 목표로 하여 매일 연습에 몰두하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