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격과 감동이 주는 삶
때에 맞는 말 한마디가 긴장을 풀어 주고
사랑 담긴 말 한마디가 감동과 축복을
준다고 합니다
수영할 줄 모르는 사람은
수영장 바꾼다고 해결 안 되고
일하기 싫은 사람은
직장을 바꾼다고 해결이 안 되며
건강 모르는 사람은
비싼 약 먹는다고 병이 낫는 게 아니고
사랑을 모르는 사람은
상대를 바꾼다고 행복해지는 게 아닙니다
모든 문제의 근원은 나 자신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도 나 자신이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도 나 자신이며
내가 싫어하는 사람도 나 자신입니다
내가 빛이 나면
내 인생은 화려하고
내가 사랑하면
내 인생은 행복이 넘치며
내가 유쾌하면
내 인생엔 웃음꽃이 필 것입니다
결국, 내가 변하지 않고는
아무 것도 변하는 게 없습니다
내 인생은 내가 만듭니다.
매일 똑같이 원망과 시기로 미워하면
내 인생은 지옥 생활이 될 것입니다
내 마음이 있는 곳에 내 인생이 있고,
내 행복이 있고, 내 미래가 있으니
어차피 주어진 시간
화내도 하루, 웃어도 하루
똑같은 하루라네요
어차피 기왕이라면
불평 대신 감사를, 부정 대신 긍정을
절망 대신 희망을 바라 보며
감격과 감동을 주는 삶을 만들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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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의 중요성
[타게 엘란데르]
스웨덴은 1인당 국민 소득이 무려
5만 달러가 넘을 뿐더러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 입니다.
또한 스웨덴은 전 세계에서 국민 행복지수와
반 부패지수(국가 청렴도 지수)가
최상의 순위를 유지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약 80여년 전만 해도
스웨덴은 가난, 실업, 빈부 격차, 좌우 갈등
극심한 노사 분쟁 등으로
그야말로 절망의 나라 였습니다.
특히 노동손실 일수가 세계에서 가장 높을 정도로
노사 분규가 가장 극심한 나라 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가 꿈꾸는 최상의 복지 국가로
변모 되었습니다.
이처럼 많은 국가와 국민들이 부러워하는 스웨덴을
일구어 낸데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타게 엘란데르' 라는 정치가 입니다.
스웨덴에서 가장 존경하는 정치인이 누군지 물어보면
대답은 한결 같습니다.
1946년 45세부터 23년간 총리를 지낸
'타게 엘란데르(1901~ 1985)'는
재임 중, 11번의 선거를 모두 승리로 이끌 었습니다.
마지막 선거 에서는 스웨덴 선거 사상 처음으로
과반을 넘는 득표율로 재집권한 후
후계자에게 자리를 넘겨주고 떠납니다.
정말 드라마에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 입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20여 년의 장기 집권이 가능 하도록
스웨덴 국민들이 신뢰를 보낸 이유가 무엇 일까요?
1. 대화와 타협
타게 엘란데르는 청년시절 급진주의 활동을 한
좌파 정치인 이었습니다.
그래서 총리로 선출 되었을 때 왕과 국민들은 많은 걱정을 했고
특히 노사분규로 힘들어 하던 경영자들의
거부감은 대단 했습니다.
그런데 취임 후 그의 행보는 전혀 달랐습니다.
야당 인사를 내각에 참여 시키고
경영자에게 손을 내밀어 대화를 한 후
노조 대표와 함께 3자 회의로 노사 문제를 해결 했습니다.
그의 대화 정치를 상징하는 것이 바로
'목요회의' 입니다.
매주 목요일 스톡홀름에서 차로 2시간 거리에 있는
총리 별장에 정·재계, 노조 인사를 초대해 저녁 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누곤 했습니다.
국회의원, 지방의원, 경총, 노총 대표 등
안 가본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 합니다.
'목요회의' 가 성공한 것은 보여 주기식의 대화가 아닌
상대의 의견을 경청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진정성 때문에 가능했던 것 입니다.
국민을 행복하게 만든 복지 제도도 이런
대화정치 덕분에 가능했던 것 입니다.
2. 검소한 삶
스톡홀름 남쪽 린셰핑이라는 작은 도시가 있습니다.
그곳에 '타게 엘란데르' 의 아들 부부가 살고 있습니다.
그의 아들은 대학총장을 역임한 후 아버지가 살아온 길을 책으로 발간 했습니다.
아들 부부가 들려주는 부모님의 이야기는 동화속의 이야기처럼 감동의 연속 입니다.
'엘란데르'는 최고 권력자 이었지만 검소하게 살았습니다.
총리 시절에도 이십 년이 넘은 외투를 입고 구두도
밑창을 갈아가며 오래도록 신었습니다.
검소함은 부인도 똑같 았습니다.
집권 23년 동안 국회 개원식에 참석하기 위해
입던 옷은 단 한벌 이었다고 합니다.
아들 부부는 부모님이
"국민을 생각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씀 하셨다며 검소함은 두 분의
삶의 전부라고 자랑 스러워 했습니다.
3. 특권 없는 삶
“부모님은 총리 시절에도 관저 대신 임대 주택에서
월세를 내고 살았습니다.
출퇴근도 관용차 대신 어머니가 직접 운전 하는 차를
이용 했습니다.”
임대 주택은 자신의 재임시절 서민을 위해 지은 아파트입니다.
그는 특권을 버리고 국민의 삶 속 으로 들어와 친구처럼
다정한 이웃처럼 지냈습니다.
1968년 국민들은 다시 한 번 깜짝 놀랍니다.
'타게 엘란데르'가 총리를 그만둔 후
거처할 집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 입니다.
당원들이 급히 돈을 모아 집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스톡홀름에서 차로 2시간 거리에 있는 '봄메쉬빅' 이라는 한적 한 시골 마을 입니다.
총리 부부는 마을 호수옆에 있는 이 작은 주택에서
16년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총리 시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 왔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지지자보다 반대편에 섰던 사람이 더 많이
찾았다고 합니다.
4. 정직한 삶
아들 부부가 또 다른 일화를 소개 했습니다.
어머니 '아이나 안데르손' 이야기 입니다.
그녀는 고등학교 화학교사로 남편이 총리를 하고 있던 시절에도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평범한 삶을 살았습니다.
'엘란데르'가 퇴임한 후 어느 날
부인은 정부부처 장관을 찾아 갑니다.
그녀의 손에는 한 뭉치의 볼펜 자루가 들려 있었습니다.
장관이 반갑게 인사하며 방문 이유를 묻자
볼펜 자루를 건넷습니다.
볼펜에는 ‘정부부처’ 이름이 쓰여 있었습니다.
“남편이 총리시절 쓰던 볼펜인데
총리를 그만 두었으니 이제는 정부에 돌려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 합니다.”
부모님 이야기를 들려주던 아들 부부는
그리움을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립니다.
'타게 엘란데르' 는 떠났지만 23년동안 국민을 위한 그의 헌신은 스웨덴 정치의 교과서로 자리 잡았고
스웨덴을 세계 최고의 행복한 나라로 만든
원동력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