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영화지도'를 그리다] <15> 기장군
향수와 추억과 '때 묻지 않은 자연을 품은' 소박한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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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 지정 어항이자 아름다운 어촌 100곳 중 하나인 대변항에
소형 어선들이 정박해 있다. |
맛과 멋이 공존하는 부산 기장군은 기장읍, 장안읍, 일광면, 정관면, 철마면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약 12만 명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다.
1995년 부산광역시에 편입된 기장에는 아직까지 아는 사람들만 찾는 숨은 보물 같은 곳이 많이 있다.
특히 산과 계곡, 바다, 사찰이 한데 어우러져 있고 더불어 MTB와 같은 레포츠까지 즐길 수 있는 기장군은
농림·해양수산을 축으로 문화와 관광 그리고 지역개발까지 다양한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현재까지는 기장군에서 운영하는 차성아트홀 이외 상업적인 영화관이 한 곳도 없을 만큼
다양한 문화혜택을 지역주민이 누리지 못하고 있지만 순수한 자연경관과 푸근한 인정이
그 빈자리를 더욱 풍성하게 채워 주고 있다.
이러한 끌림은 영화인과 더불어 영화 속의 추억을 공유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기장에 멈추게 한다.
■ 아날로그 감성의 영화 촬영지, 기장
어촌마을을 가로지르는 기찻길, 햇볕에 내말려지고 있는 오징어와 멸치 냄새
그리고 동해바다의 힘찬 파도소리가 들리는 기장군은 고층빌딩이 빼곡히 솟은 부산이라는 도시에서
한 걸음 물러나 있다.
물론 정관신도시와 부산프리미엄아울렛, 동부산관광단지 같은 새로운 소비 형태의 유입으로
문화적 지류가 변하고는 있지만 아직까지 기장은 아날로그적 감성을 더 많이 느낄 수 있는 장소이다.
이에 기장은 부산 출신 감독뿐 아니라 다른 여러 감독들이 찾는 영화 촬영지가 되었다.
또한 관광객들은 영화와 함께 호흡하고 추억을 더듬기 위해서 영화 속에 등장하는
기장의 풍경을 찾아 짧지만 황홀한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국도변 따라 드넓은 바다와 아담한 마을
용궁사·대변항·임랑해수욕장…
가공되지 않은 바다 냄새 맡을 수 있어
많은 CF·영화 감독들 사로잡아
'마린보이' '가문의 위기' '친구' 등
이국적이며 역동적인 풍경 화면에 기록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감동 되새기는
부산의 문화관광 명소화 모색해야
특히 31번 국도를 따라 이동하다 보면 한쪽으로는 드넓은 바다가 펼쳐지고
마을 쪽으로는 아담한 밭들이 곳곳에 보인다.
용궁사, 대변항, 일광면, 이천리, 임랑해수욕장과 같은 가공되지 않은 바다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기장의 이러한 장소들은 빠듯한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정겨운 고향마을과 같은 삶의 충전소가 된다.
그리고 바다를 따라 고즈넉한 자연을 즐길 무렵 영화와 CF촬영지로 많이 알려진
마레 레스토랑이 사람들을 반긴다.
윤종석 감독의 '마린 보이'(2009년), 정용기 감독의 '가문의 위기'(2005년),
그리고 유상곤 감독의 '페이스'(2003년)가 촬영된 가게이다.
레스토랑의 파랗고 흰 외벽과 투명한 물보라를 일으키는 파도는
마치 그리스 산토리니와 흡사한 것이 영화 속의 이국적이면서도 역동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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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하늘로 올라가는 계단처럼 보이는 일광면의 마레 레스토랑
외부 계단. |
이처럼 여유로운 기장은 동해남부선에서는 또 다른 면을 연출한다.
이른 아침 기차를 타면 갯가에서 갓 잡은 작은 생선과 집 앞 텃밭에서 채취한 푸성귀를 가지고
시장으로 가는 할머니들의 모습에서 삶에 대한 강한 애착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동해바다로 여행을 떠나는 젊은이들에게서는 미래에 대한 열정과 희망을 볼 수 있다.
유상곤 감독은 인터뷰에서
"감독은 촬영을 진행하면서 이동거리를 최소화하고 시간과 비용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인근 지역으로까지 촬영지를 확장하고자 노력한다"고 했다.
이러한 조건에 부합하는 기장은 도심과의 지리적 접근성이 우수하면서도 순수한 자연경관과
소박한 마을들이 보존되어 있는 공간으로 부산의 또 다른 매력을 충분히 보여 줄 수 있다.
부산이면서도 우리에게 향수와 어릴 적 추억과 때 묻지 않은 자연을 담아낼 수 있는 가까운 공간이 기장이다.
■용궁사와 대변항, '친구'에서 '깡철이'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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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법당 사찰인 해동용궁사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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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 최남단에 위치한 해동 용궁사는 강원도 양양 낙산사, 경남 남해 보리암과 더불어
바다를 바로 보고 느낄 수 있는 수상법당(水上法堂) 사찰로
부산시민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발걸음을 한다.
특히 보름달이 밝은 밤에 108계단을 내려오면서 바다와 사찰을 바라보는 운치인
추야명월과 4월 초파일 밤에 바다에 비친 화려한 등불을 보는 봉축야경은 가히 절경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용궁사는 최근 안권태 감독의 '깡철이'(2013년)에 등장하여
내가 아는 장소를 영화 속에서 보는 재미를 더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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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변항은 영화 '애자'에서 고향의 푸근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공간으로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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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훈 감독은 조감독시절 부산지역 로케 이션 장소를 물색하던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인 기장을 자신의 작품 속 장소로 사용하겠다는 다짐을
영화 '애자'(2009년)로 실현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산을 떠올리면 해운대, 서면, 남포동과 같이 어느 대도시와 다름없는 도시적인 이미지를 연상하는데 내가 생각하는 부산의 기장 대변항은 우리네 고향집과 같은 푸근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고 회상한다.
또한 대변항 일대는 820만 명의 관객을 스크린으로 끌어들인 곽경택 감독의 '친구'(2001년)에서
주인공들이 어린 시절에 "바다 거북이하고 조오련하고 수영하면 누가 이기겠노?" 라고
이야기 나누던 장소이기도 하다.
이러한 대변항은 조선시대 대동고(大同庫) 주변의 포구에서 유래되어 1914년 대변마을로 정착된 것으로
옛 어항의 풍경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해양수산부가 선정한 아름다운 어촌 100곳 중 한 곳이기도 하다.
또한 전국 멸치 유자망 어선의 약 70%를 차지할 만큼 멸치가 풍성한 곳으로
매년 4월 말에서 5월 초 봄멸치 잡이 절정기에는 멸치회 무료 시식과 멸치 털기 체험 등의
기장대변멸치축제가 개최되어 국내외 많은 관광객들로 기장 일대에 활기가 넘친다.
■영화 속 자연 풍경이 돋보인 일광
부산의 해운대나 광안리와는 또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일광해수욕장에서
금빛 모래 위를 오르내리는 갈매기들의 군무는 기장 8경 중 제3경이다.
이러한 일광해수욕장 근처 별님공원에는 '난계 오영수 갯마을 문학비'가 세워져 있다.
'아낙네들은 해순이를 앞세우고 후리막으로 달려갔다.
해순이는 맨발에 식은 모래가 오장육부에 간지럽도록 시원했다.
달음산 마루에 초아흐레 달이 걸렸다. 달그림자를 따라 멸치떼가 들었다.'
오영수 소설 '갯마을'을 원작으로 한 김수용 감독의 영화 '갯마을'(1965년)은
당시 일광의 모습을 단순한 영화 속 풍경으로 보여 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의 터전으로 그리고 있다.
김수용 감독은 '나의 사랑 씨네마'에서 "요즘 영화에서는 사건이나 등장인물의 성격만을 추구하기 때문에
영화의 배경이 되는 자연 풍경을 거의 도외시하지만, '갯마을'에서의 바다와 어촌과 하늘과 모래밭은
배우나 드라마 못지않게 큰 비중을 차지했다" 고 회고했다.
영화배우 신영균(현 명동아트홀 회장), 고은아(현 서울극장 사장)가 출연한 영화 '갯마을'은
남편을 바다에 빼앗기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갯마을 아낙들의 운명을 그린 흑백영화로
일광은 그들의 이야기가 스며 있는 인생이 되었기 때문이다.
천혜의 자연과 초현대적 도시가 공존하는 부산은
부산국제영화제로 한시적인 영화축제의 현장이 되었던 과거와는 달리
명실상부한 영상산업도시로 성장하고 있다.
부산영상위원회의 로케이션 지원시스템은 부산을 촬영하기 좋은 도시로 만들었고,
영상물등급위원회 영화진흥위원회 게임물등급위원회와 같은 영화·영상 관련 공공기관이 센텀시티로 옮겨 와
영화도시로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위와 같이 센텀시티가 부산의 새로운 랜드마크를 양산해 가는 이즈음 부산시민의 자산인
기장의 아름다운 자연 환경을 보존하면서 감동과 추억을 함께 되새길 수 있는
문화관광 명소로서의 역할을 모색하는 것이 우리가 당면한 과제가 아닐까.
글=김민희 부산대 영화연구소 연구원 j9791@hanmail.net
사진=이경희 사진가 mizise@naver.com
후원 : 부산영상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