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구유에 태어나신 예수님
누가복음 2: 1-7
예수님의 탄생은 인류의 역사를 바꾸는 위대한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중심으로 주전(B.C)과 주후(D.C)로 나눕니다.
예수님의 탄생이 주전과 주후로 나누어진다는 것은 예수님이 역사의 중심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나타난 예수님의 탄생 기록을 보면 놀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역사의 모든 중심이 되시는 예수님의 출생이라 하면 뭔가 놀랍고 화려해야 하는데 그와는
반대로 이런 초라하고 비천한 출생이 없을 정도로 너무나 초라했고 비천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마구간에서 탄생하셨습니다.
베들레헴의 탄생은 예언의 성취
예수님 탄생 당시 로마의 황제는 가이사 아구스도였습니다.
그는 모든 로마령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고향에 가서 호적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호적을 하라고 하는 것은 오늘날 인구조사를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인구조사를 한 이유는 로마제국의 군대를 쉽게 동원하기 위해서였고 또 한 가지는 인두세
라는 세금을 거두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요셉도 약혼녀인 마리아와 함께 갈릴리 나사렛을 떠나 고향인 베들레헴에 가게 되
었습니다.
요셉은 다윗의 후손이었기 때문에 나사렛을 떠나 다윗의 고향인 베들레헴으로 가야만 했습
니다.
본문 4-6절의 내용입니다.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그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하였더라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나사렛에서 베들레헴까지 거리가 160Km 정도 됩니다.
지금은 160Km 정도는 자동차로 2시간이면 충분히 갈 수 있는 거리이지만 당시에는 걸어서
가야했기 때문에 특히 마리아가 잉태하고 출산을 앞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최소한 일주일
에서 최대로 몇 주는 족히 걸렸을 것입니다. 요셉은 무거운 몸을 하고 있는 마리아와 함께
오랜 여행 끝에 다윗의 고향인 유대 베들레헴에서 아기를 출산하게 됩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로마 황제의 명에 따라 호적을 하기 위해 조상들의 고향인 베들레헴까지
와서 출산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겉으로 드러난 이유일 뿐 진정한 이유는 다른데 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베들레헴까지 와서 원정출산을 한 것은 하나님의 섭리였고 예언의 성취였습니다.
미가 선지자는 미가서 5장 2절에서 베들레헴에서 메시야가 탄생하실 것을 이미 예언하였습
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여기 ‘에브라다’는 ‘떡집’을 뜻하는 ‘베들레헴’의 옛 이름입니다.
‘상고’라는 말은 ‘아주 오랜 옛날’이라는 말입니다.
그의 기원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즉 영원 전부터 존재하셨다는 말입니다.
베들레헴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나오는데 그 기원은 영원 전부터 계셨던 분입니다.
이 예언을 할 때는 예수님이 탄생하시기 약 700년 전입니다.
놀랍게도 이 예언대로 예수님은 정확히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베들레헴의 탄생은 로마 황제의 명령에 의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하
나님 예언의 성취였습니다.
또한 우리가 여기에서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오랜 동안 하나님이 예비하시고 계획하신대로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연하게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이미 오랜 전부터 하나님께서 세워놓으신 계획대로, 사람들에게 약속하신대로 오셨습니다.

영적으로 무지했기에
요셉과 마리아가 베들레헴에 도착했을 때 다른 사람들도 로마 황제의 명령에 따라 호적을
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베들레헴에 왔습니다.
베들레헴에 갑자기 몰려든 사람들 때문에 여관에는 방마다 초만원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마리아에게 출산의 징조가 있었고 아이를 낳아야 되는 긴박한 순간이 되었
습니다.
요셉은 빈방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했을 것입니다.
“빈 방 있습니까? 빈 방 있습니까?” 하고 이곳저곳을 애타게 찾아다녔을 것입니다.
그러나 누구 하나 빈방을 내어주지 않았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그래도 찬 이슬을 맞지 않기 위해서 찾아 간 곳이 말마구간이었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마리아는 마구간에서 아이를 낳습니다.
그리고 짐승의 먹이를 담아주던 구유를 깨끗이 한 다음, 거기에다가 몸에 걸치고 온 천을
깔고 그 다음에 그 구유에다가 아기를 뉘웁니다. 구유는 짐승 먹이통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구원자이신 만왕의 왕께서 이 세상에 태어나는 모습이었고 장소였습니다.
시골에서 자란 분들은 마구간과 구유가 어떤 곳인지 잘 아실 것입니다.
마구간은 정말 지저분하고 냄새가 고약합니다. 짐승들이 배설한 오물 때문에 악취가 진동
합니다.
천장에 거미줄이 더덕더덕 붙어 있습니다. 쥐들이 수시로 들락거립니다.
각종 벌레들이 우글거리는 곳입니다. 사람들이 도무지 살 수 없는 곳입니다.
더군다나 그곳은 출산을 할 수 있는 곳이 결코 아닙니다.
어린 아이가 태어나는 곳은 얼마나 위생을 신경 씁니까?
면역력이 약하기 때문에 외부인은 접근 금지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그곳에서 출생하
셨습니다.
왜 우리 주님은 마구간에 태어나 구유에 뉘우셔야 했을까요?
그것은 누구하나 빈방을 내어 주지 않았기 때문에 주님은 마구간에 태어나 구유에 뉘우셨
다고 오늘 성경은 말씀합니다.
7절입니다.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찾아오신 하나님의 아들을 위해
누구 하나 빈 방을 내어 주지 않았기 때문에 마구간에 태어나신 것입니다. 참으로 안타까
운 일입니다.
새해를 맞이할 때가 되면 동해안에는 여름 휴가철 이상으로 숙박시설마다 초만원을 이루곤
합니다.
유명한 숙박 시설은 오래 전에 예약이 다 끝나버립니다. 그리고 작은 여관 같은 곳에는 아
예 예약을 할 수 없습니다. 당일에 오는 사람들에게 비싼 값을 받고 방을 빌려주기 위해서
여관 주인들이 아예 예약을 받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일 대통령이 새해맞이를
하기 위해서 그곳에 찾아간다면, 그래도 대통령을 위해서 내어드릴 방 하나가 없을까요?
대통령이 오신다면 아마도 다른 사람이 예약한 것을 취소하고서라도 대통령을 위해 방을
마련하지 않겠습니까? 아마도 호텔 주인들마다 서로 자기 호텔에 모시려고 난리가 날 것입
니다.
그런데 2,000년 전 베들레헴에는 만왕의 왕이신 아기 예수님을 위해 누구 하나 방을 내어
주지 않았습니다. 만왕의 왕이 오셨는데, 그분을 위해 누구 하나 방을 내어 주지 않았다는
것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여러분! 왜 이런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을까요? 무엇보다 영적으로 무지했기 때문입니다.
아기로 오신 분이 누구인지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았더라면 서로 자기 집을 내어주고 자기 방을 내어주려고 했을 것입
니다.
그들이 방을 내 주지 않은 것은 아기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몰랐기 때문입니다.
마구간에서 태어난 아기가 자기들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서 오신 구세주이신 것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와 반면에 이 땅에 찾아오신 아기 예수가 누구인지 알았던 동방박사들은 먼 동방에서부
터 예수님께 경배하기 위해서 찾아옵니다. 그냥 찾아온 것이 아닙니다.
황금과 유황과 몰약을 준비해서 예수님께 경배를 합니다.
왜입니까? 그 아기 예수가 누구인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동방박사는 구유에 누워계신 아기 예수를 만왕의 왕으로 알아보고 경배하였습니다.
이 땅의 사람이 영적으로 무지했기에 우리 주님은 짐승의 마구간에 탄생하셨습니다.
우주의 주인 되신 그 분이 구유에 누워 계시면 안 되는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무지해서 그곳에 누워 계셨습니다.
여러분! 구유에 누워계신 주님은 이제 어디 계셔야 합니까? 여러분의 마음에 왕으로 계셔
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이 여러분의 마음 어디에 계십니까? 여러분의 마음에 왕으로 계십니까?
아니면 여러분이 여러분의 마음에 왕으로 있고, 우리 주님은 한쪽 구석에 간신히 자리 잡
고나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영적으로 무지함으로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해 방 하나 내어
주지 못한 사람들과 별반 다를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찾아오신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
을 여러분의 마음에 진정으로 왕으로 모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성탄을 진정으로 맞이하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비천한 죄인도 가까이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얼마다 위대하신 분인 줄, 얼마나 영광스러운 분인지 알지 못했기 때
문에 예수님에게 빈방하나 내어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마구간에 태어나고 짐승의 먹이통에 누인 것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장소였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그런 곳을 선택하셨을까요? 구유는 비천한 장소요 초라한 장소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태어나실 때 가장 비천한 장소를 선택하여 오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비천한 죄인도 가까이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왕궁에 탄생하셔서 상아 침대에 누워 계셨다면 양치는 목자와 같은 천민
이 어떻게 접근 할 수 있었겠습니까? 동방에서 온 이방인이 어떻게 주님을 만나 뵙고 황금
과 유향과 몰약의 예물을 드릴 수 있었겠습니까?
예수님은 자기 영광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오시되, 죄 많은 사람이나, 가난한 사람이
나, 무식한 사람이나, 누구든지 가까이 나아와 구원받을 수 있도록 하시고자 마구간에 탄
생하셨습니다.
기독교는 귀족의 종교가 아닙니다. 가난한 자, 천한 자, 죄 많은 자의 종교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마 9:13)고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시기 전에 어떤 분이셨습니까?
빌 2 :6-8절입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
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하나님의 본체였습니다. 성부의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그런 분이 낮고 천한 육신을 입고 찾아오시되 가장 비천한 마구간에 태어났습니다.
그것은 어떤 비천한 사람도 가까이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왕의 모습이나 귀족의 모습으로 오셨다면 웬만한 사람은 감히 접근하지 못
했을 것입니다. 왕궁에서 나셨다면 왕족이나 측근들 일부만 접근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가장 천한 목수의 집안, 작은 마을, 마구간, 말구유에서 나셨으므로 누구
나 접근이 가능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주님은 어떤 비천한 사람도 자신을 가까이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가
장 비천한 마구간에 태어나시고 구유에 누어계셨던 것입니다.
아기 예수께 첫 번째로 찾아와서 경배한 사람들이 목자들이었다는 사실이 이를 증거합니다
당시 목자는 가장 낮은 계층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또한 바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고린도전서 1:26 이하의 말씀입니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
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
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
려 하심이라”
여러분, 우리가 낮고 천하다고 생각합니까? 괜찮습니다.
감사함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남녀노소 빈부귀천 구별하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용납하시고 영접해 주십니다.
다만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사절입니다.
교만한 사람들! 스스로 의인으로 자처하는 자들입니다.
예수님 말씀하십니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마 9:13)
의사는 오직 병자들에게만 필요합니다. 건강한 사람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마찬가지 죄인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은 의인으로 자처하는 사람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
니다.
예수님 앞에 나아가는데 가장 큰 장애물은 바로 교만입니다.
비천한자라도, 가난한 자라도 교만한 사람은 결코 주님 앞에 나아갈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탄생 하셨던 베들레헴에 가보면 예수님 탄생교회가 있습니다.
쾌 큰 성전입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건물은 큰데 들어가는 문은 혼자 겨우 들어갈 수
있고 문 높이고 낮아 허리를 숙이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이 말은 무슨 말입니까? 겸손한 사람만이 예수님을 만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비천한 죄인도 가까이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가장 비천한 장소를 선택하여
이 땅에 태어 나셨습니다.
그러나 비천한 사람일지라도 겸손한 사람만이 예수님을 만날 수 있고 영접할 수 있습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합니다.
이 땅의 사람이 영적으로 무지했기에 우리 주님은 짐승의 마구간에 탄생하셨습니다.
우주의 주인 되신 그 분이 구유에 누워 계시면 안 되는 분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 주님이 여러분의 마음 어디에 계십니까? 여러분의 마음에 왕으로 계십니까?
여러분이 여러분의 마음에 왕으로 있고, 우리 주님은 한쪽 구석에 간신히 자리 잡고나 있
다면 영적으로 무지함으로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해 방 하나 내어 주지 못한 사람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찾아오신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
을 여러분의 마음에 진정으로 왕으로 모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비천한 죄인도 가까이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가장 비천한 장소를 선택하여
이 땅에 태어 나셨습니다.
그러기에 나 같은 비천한 죄인도 감히 주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감사함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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