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시 다가온 여름
32도? 이마엔 땀방울이 맺히고, 서츠가 젖어간다. 소득없는 더위에 대체 웬 담금질이냐고?
그래도 지구 자전의 영향으로 불어온다는 편서풍이 한번씩 얼굴을 어루만진다.
아침에 티비에서 본 티벳인들의 오체투지(五體投地)가 생각났다. 두손과 두발, 그리고 이마까지 땅에다 대는...남자가 그렇게 하면 육체투지가 될런가? ㅎㅎ
그들이 숭배하는 싯다르타는 어머니 옆구리에서 테어났다고 하였다. 동정녀의 몸에서 태어났다는 예수와 같이 적어도 어쩌면 세속의 방식이 아닌 거룩한 다가옴이다.
태어나서 일곱 걸음을 걸으시고, 한손은 하늘로, 다른 한손은 땅으로 향하시며,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 하셨다는...
유아독존, 각자의 고유성과 존엄성을 가진다는 말인데, 어떻게 보면 자만감, 자신감으로 비쳐질까? 조심스럽다. 그러나 그것은 세상 빚짐없는 깨끗함과 완벽함의 표현이라고도 했다.
어느 구간에서 제초작업을 하는 사람들과 마주쳤다. 뜨거운 햇살아래 번뜩이는 칼날들, 그 앞에서 파란 생명들은 가차없이 쓰러진다.
나는 그것들을 보면 마음이 불편했다. 그래서 농사일을 배울 때도 그것은 자신이 없었다.
그들 중에는 예전에 관리관층에서 일부러 씨뿌린 관상용 풀도 있고, 자그맣게 꽃을 피운 것들도 포함되어 있다.
이때쯤 더위를 피하여 찾아드는 공원엔 여지없이 그 요란한 예초기의 소리가 들려나와 발길을 돌리게 만들었다. 그럴때마다 투덜댔다.
"그럴바엔 나무를 더 심거나 차라리 포장을 해버리지..."
문득 영화로도 나왔던 캄보디아 폴포트 정권의 '킬링필드' 역사가 떠올랐다. 프랑스 유학과정에서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이론에 심취한 폴포드는 전국민의 농민화를 위하여 도시거주 국민들을 전쟁이 난다며 하룻만에 전부 시골로 몰아내었고, 자신의 눈높이에서 벗어나는 무리들은 모조리 사살했다.
수백, 수천만의 희생, 규모면에선 스탈린 혁명, 모택동의 공산화 과정에 버금가고, 북한의 김씨의 만행도 규모의 차이이지 그것들의 방법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그리고 그런것에 열광하는 민중들은 또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집멸등인줄로 모르고 불을 향해 달려드는 불나방들...
비유가 너무 심했나?
하여간 식물들도 인부들의 가까운 곳 시야에 들면 무참하게 생명을 잃어버리니 말이다.
그런 일들은 해마다 반복해서 일어난다. 왜냐하면 한편으론 그것이 그 사람들의 직무이고, 가족을 먹여살리는 생계수단이기 때문이다.
어느지역을 갔더니 비슷한 조건에서도 산책길 주변은 잔디를 심거나 키작은 꽃나무를 심어 그러한 수고를 덜게 만들었다.
오늘도 그랬다. 왜 골프를 칠것도 아니면서 자라나기가 무섭게 잘라대는 것일까? 방법을 전환하거나 적당한건 좋은게 아닌가? 덥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