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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ㅡ남해금산을 다녀와서ㅡㅡ
산 행 지 - 남해금산(705m)
산 행 일 -2019,02,16(토)
누 구 랑 - 통영축산농협산악회정기산행
산행코스 - 두모주차장-부소암-상사암-좌선대-제석봉-정상-보리암-쌍홍문-금산주차장
이동거리 6.6km 소요시간 3시간2분 이동시간 3시간2분 평균속력 2.18km/h 휴식시간 0분
오름 786m 내림 788m 출발점해발98m 도착점해발 149m
ㅡㅡ 산 행 지 도 ㅡㅡ
ㅡㅡ 산 행 기 ㅡㅡ
음력정월초에는 어느산악회 할것없이 시산제를 지내는 시기이다 그래서 우리산악회도 가까운곳으로가서 시산제도 지내고 여유로운 산행을 할계획으로 남해금산을 정하여 출발한다
(07:10)고려병원앞에서 출발하여 죽림중앙매장앞에서 일행태우고 일반국도를 따라 삼천포대교을 지나 간다 남해를 삼자의 섬이라고 한다 따뜻한 남쪽나라섬이라서 유자,비자,치자로 이름난곳이란 말이다 유자껍질은 향신료로, 비자열매는 기름을 짜서 식용이나 등유도료로,목재는건축,조선,바둑판등에 쓰인다 치자는 이뇨제 또는 적황색의 염료로 쓰이고 있다 그러나 남해는 충과효의 섬으로 유명하다 남해를 충의섬이라고 하는것은 이순신장군으로 인연된다 남해대교가 있는 노량해협은 이순신장군의 최후의적전지로 왜적400척을 격파하여 대첩을 이룬곳이다 이해전에서 적의유탄에 맞아 순국하신곳이 남해 관음포이다 관음포란 고현면해안가에 있는약800m 길이의반도형 야산으로 그앞바다에서 왜장소서행장을 추격하다가 적의유탄에 순국하신곳이다 그래서 이고장 사람들은 이순신(이),떨어질(락)을 써서 이락포라 이름하며 장군의 죽음을 추모하고 있는곳이다 (출처:남해군홈피) 남해대교를넘어 충렬사는 장군의 영구를 향리 아산으로 모시기위해서 노량해협을 건너기위해 3년간 머물었던 자리에 세운사당으로 이곳에는 장군의 가분묘가 있다 남해를 효의 도시라고도 하는것은 서포 김만중에서 유래된다 유복자로 태어나서 평생 어머니곁을 떠나지 않았던 서포가 옛날 이야기를 좋아하는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서 한글로쓴 고대소설 구운몽은 당시 유배지였던 남해에서 지었다 서포선생은 상주해수욕장서쪽에 있는 작은섬 노도에서 3년동안 귀양살이 하다가 거기에서 병사 하였다 그노도는 서포김만중선생의 유허지라 해서 남해7경으로 꼽고 있다
(08:25)삼천포대교을 넘어 작은섬에 위치한 휴게소에들려 잠시 쉬어 간다 삼천포대교는 2003년4월28일 충무공의 탄신일에 맞추어 1,830여억원의 공사비를 투자하여 개통된다리이다 이다 남해창선도와 삼천포를 연결하는 다리로 남해가 자랑하는 남해12경중12경에 해당하는 다리이다 이다리는 단순하게 육지와 섬을 연결하는 연륙교가 아니다 초량섬,모개섬,늑도등 4개의 섬과섬을 5개의 삼천포대교,초양교,늑도교,창선교,단향교로 연결한 총연장3.4km의 다리가 바로 창선, 삼천포 대교이다 그 다리모양도 PC빔교, 하로식 아치교, PC BOX교, 종로식아치교,등 각기 다른공법을 이용하여 다리의 박물관이라 할정도의 관강명소를 이룩하여 놓았다 TV에서 보던 죽방렴도 있다 물살이 빠르고 수심이 얕은곳에다가 조류가 흘려오는 방향을 향해 V자 모양의 날개나 부채살모양으로 길이 10m 정도의 참나무말목을 갯벌에 박아 놓고 밀물에 들어온 고기가 빠져나가지 못할만큼 촘촘히 주럼처럼역어 놓았다 그러면 앞으로 향하는 고기의 습성을 이용하여 밀물에 걸려든고기를 썰물에 필요한 만큼 건져내는 원시어업이 죽방렴이다 이것이 남해12경중4번째라는 창선교와 원시어업 죽방렴이다
(08:58)서불석상이있는 두모주차장에 도착하여 산행준비하여 단체사진 촬영하고 출발시작한다 서복상이라는 석상은 천하를 통일한 중국진시왕이 방사 서불에게 삼신산불로초를 구해오라 명하여 서불이 산넘고 물건너 남해금산까지 찾아 왔지만 불로초는 구하지 못하고 한동안 사냥만즐기다가 금산을 떠나면서 바위에 글을 새겨 발자취를 남겼다고 전하는 남해양하리석각으로 후대들은 해독하지못한 서불관련 남해암각화를 여러형태로 분석하고 있다 "남해도"의저자 이청기는 거란족문자설, 인도의데세판데박사는 수렵선각설, 최남선은 고대문자설, 정인보는 선사시대각석설,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는 선사석각화설,오세창은 중국의 금석학자 하추도가 해석한 서불기례일출설을 주장하고 있으나 아직까지 어떤내용인지 정확하게 밟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여기서복상은 중국의서복회에서 기증하였으며 서복이 그옛날 서불과차를 새긴곳에 설치되어 그의미가 매우 큽니다 라고 안내하고 있다
(09:05)산길입구를 알리는 아치형출입구가 서있는 문을 통과하여 산길에 들어선다 이정표가 안내하는 (부소암2.5km/금산정상3.2km)곳에서 금산정상을 향한 발걸음을 옮긴다 초입은 부드럽고 완만한 전형적인 등산로이다 등로는 옛날같지 않고 나무계단도 많이 설치해놓아서 편하게 오를수있다
(09:24)경상남도 기념물제6호인 "양하리석각"바위를 만난다 바위에 새겨진 문자와 문양이 중국진시왕의명을 받아 신하500명을 대동하고 불로초를 찾으려온 진시왕의 신하인 "서불이 이곳을 지나다"는 기록이라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한 양하리석각을 지나니 편백숲길이다 겨울이 따뜻한 남쪽나라의숲길은 평화롭고 상쾌하다 이정표(금산정상1.2km/부소암0.5km/두모입구2.0km)를 지나고 본격적인 금산 오름길을 접어든다 급경사로을 올라서니 시원한 조망터가 나타나고 시원한 남해바다와 두모계곡을 내려다보며 심호흡을 한다 조망을 즐기다가 로프가 걸린 통천문을 통과하는 옛길을 접어두고 안전하게 나사형 회전철계단을 밟고 올라서니 부소암입구이다
(10;04)우측으로 부소암에 들려보고갈 생각으로 가보니 입구에는 차를 마시고 갈수있게 준비해두고 입구문은 철창해놓았다 스님이 출타한모양이다 되돌아 나오면서 생각이 난다 1년전에 왔을때는 차도 대접받고 부소암의 전설도 들려주며 친절한스님이였는데 아마이곳에 고려시대 제작되어 2011년12월23일 보물제1736호로 지정된 "대방광불화엄경진본권53"을 지키기위하여 열쇠를 채어 놓았는가 싶다
(10;04)부소암은 중국의진시왕의 아들부소가 이곳에 유배되어 살다가 갔다는 전설이 전해지고있다 부소대는 법왕대라고도 한다 남해에 와서 법왕대을 오르지 않고서야 금산을 다보았다고 말할수 없다 명산의 반열에 우뚝솟응 금산을 더욱명산답게 만드는곳 그곳이 법왕대 이다 암벽한켠에는 산신을 업고표하며 산을 내달리는 호랑이 형상의 조각도 보이며 작은암자인 부소암이 법왕대바로밑에 자리하고 있고 아늑히 눈길머무는곳에 소치도,노도가 보이고 호구산,망운산도 지척처럼 다가오다가 두모마을 다랭이논들도 들어온다 들어갈곳응 들어가고 나올곳은 나온 겸손한 논다랭이는 민초들의 선량한 마음처럼 아름답다 이처럼 한점티없이 빛나는 부소대(법왕대)밑에 위치한 작은암자 부소암은 그렇게 숨어 있어 더욱아름답다 법왕대를 뒤로하고 푹신푹신항 흙길을 걸어 올라서니 능선이며 헬기장이다
(10:14)헬기장에서 좌측으로가면 금산정상으로바로가고 우측의 상사암으로간다 약간 내리막길이400여m 가야한다
(10;22)상사암에 도착한다 이바위는 조선조19대 숙종대왕시절에 전남 돌산지역 사람이 남해네 이거하여 살았는데 이웃에 사는 아름다운 여인에게 반하여 상사병에 걸려 사경을 헤매게 되었다 남자가 죽을지경에 이르자 아름다운여인이 이바위에서 남자의 상사를 풀었다하여 이바위를 상사암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상사암은 금산에서 가장크고 웅장한바위로상사병과 관련된 로맨틱한 전설을 간직하고 있으며바위에서 사랑하는 사람과의 소중한추억의 언약을 하고 가는곳이며 이곳에서 바라보는 금산의 이모저모는 최고의 조망처가 될것이며 구정암의 마르지 않는 아홉개의 샘을 찾아보는곳이다 한참을 즐기다가 되돌아 나옵니다
(10:35)좌선대에 들려본다 옛날 신라의 원효대사,의상대사,윤필거사등 삼사가 수도좌선을 하였던자리라고 전해지고 있다 바위 위에 이들 삼사가 앉았던 자리의 흔적이 뚜렷히 남아 있다고 한다
(10;37)제석봉에 올라서본다 지나온 상사암이 거대한절벽위의 요새처럼보인다 이바위에 제석천이 내려와 놀다 갔다하여 제석봉이라 부른다 불교에서 제석천은 부처를 좌우에 모시는 불법을 지키는 신을 말한다 바로위에 흔들바위가 있다 거북모양을 닮아 본래는 귀암이라고 하였으나 큰바위가 한사람의 힘으로 흔들거린기 때문에 요암이라고도한다 들려볼곳은 들려보고 여유롭게 정상을 향하여 올라간다
(10:51)정상에 올라선다 커다란 남해금산정상석이 반긴다 차례기다려 인정샷 남기고 망대에 올라선다 남해금산은 한려해상국립공원중에 유일한 산악공원이다 기암괴석의 절경과 남해를 한눈에 굽어볼수있어 장쾌한 조망을 자랑하는 산이다 한겨울에도 포근하여 겨울 등산코스로 인기있는산이다 금산은 삼산제일의 명산으로 온갖 전설을 담은 38경의 기암괴석이빼어 닮았다하여 소금강또는 남해금강이라 불린다 금강산을 개골산이라 하는데 비유하여 금산을 개암산으로 부르기도 한다 주봉인 망대를 중심으로 왼편에 문장봉,대장봉,형사암 오른편에 삼불암,천구암등 암봉이 솟아 있다탑대(고제암)을 중심으로 가사굴과 쌍홍문도 명소이다 멋진조망을 즐기다가 내려설시간이다
(11;03)보리암에 내려선다 법당안은 무슨제을 올리는지 발디들 틈도없이 꽉차있어 들어가볼틈도 없어 그만 지나친다 보리암은 우리나라 3대기도처로 알려져 평소에도 많은 불자들이 찾는곳으로 유명하다 신라신문왕3년(683)원효대사가 이곳에 초당을 짓고 수도하면서 관세음보살을 친견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원래 이름은 보광사였고 산이름도 보광산이였다 조선시대 태조이성계가 이곳에서약200m떨어진 큰바위 아래에서 기도를 올리고 세상을 얻었다 산전체를 비단으로 덮어 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러나 그만큼 큰비단을 구할수가 없자 비단이란 이름으로 산을 덮어 주었다 이후 현종은 보광사를 왕실의 원당으로 삼고자 보리암으로 개칭했다 여러차례중수를거쳐 1969년 주지 양소황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절이다
(11:11)쌍홍문을 통과한다 쌍홍문은 여인의 눈동자 같기도하고 커다란해골에 두눈이 뻥뚫린 듯하기도한 쌍굴로서 높이 7~8m 쯤이다 굴이 둥근 모양이여서 "쌍무지개"라는 이름을 얻었다 굴속에서 내려다보는 다도해의 풍광이 한눈에 들어오고 멀리 상주해수욕장의 쪽빛바다물이 반짝이고 크고 작은 섬들이 그림처럼 떠있다 굴속에서 내려다보는 산과 바다의 조화도 절경이다 바로앞에 있는 장군암은 장군이 검을 짚고 봉을 향하여 서있는 형상을 하고있어 장군암이라 하였는데 금산의 첫관문인 쌍홍문을 지키는 장군이라하여 일명 수무장이라고한다 특히 이바위를 휘감고있는 송악으로 인해 장군암이 더욱 늠름해보인다고 하는데 그송악을 어느누군가가 중간몸통을 잘라버려서 죽어 버리고 말아서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바로아래에는 사선대라는 바위가 있다 동서남북에 흩어져있는 네신선이 이암봉에서 모여놀았다하여 사선대라 부른다 내려오는길이 급경사 돌계단길이라 조심스럽게 내려서야한다 우리는 하산하는데 먼거리에서 오신팀들은 이제 올라오고있다
(12:00)금산주차장에 도착하고 산행종료하고 후미가 내려오기를 기다려 시산제 준비를 한다 오래만에 조합장님도 참석하셔서 시산제가 더욱 빛이 난다 여러사람들이 시산제 음식을 부담해주어 감사하며 모두가 올한해동안 무탈한산행과 사업이 번창하시고 건강하시길 빌고간다
ㅡㅡ 산 행 사 진 ㅡㅡ
두모주치징에설치된 서복상석상
양하리석각 경상남도 기념물제6호(1974.2.16지정됨)
쉼터에잇는 작은 장성
통천문의 옛나무사다리
새로설치된 나사형철계단
부소대에서 바라보는 건너편암벽
부소대(법왕대)
길자씨는 좋아서 환한웃음짖고
저런암벽에 호랑이가 산신을 업고 표호하며 상을 내달리는 조각상이 있다는데 찾을길없고
상사암의 모습
상사암에서 바라보는 금산의 풍광 (안내도)
상사암에서 바라보는 금산의풍광(실제도)
좌선대
좌선대에서 바라본 상사암
금산정상아래있는 오래된산장
송악같아보이는데 멋잇어서 한컷
금산정상석은 아니고 표지석에 부과함(정상석은 해발몇m의 표시를 하는것인데 이것은 명승지표지석같아보입니다)
오늘 선두그룹의 일행들 환하게웃는모습에서 산행이 힘들지 않았음을 말해주는듯
증명사진(영정사진ㅎㅎ)은 꼭남겨야 한다는 길자씨
보리암 석굴속의 부처님
쌍홍문에서
쌍홍문천장의 기공을 보며
쌍홍문에서 장군바위을
장군바위의 죽은 송악
동서남북의네신선이 모여 놀았다는 사선대
멀리서본 쌍홍문
시산제를 지내기위하여 준비하고있다 한해동안 안전산행을기원하는 시산제가 엄숙하게 진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