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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떼 뮤지엄(Arte Museum)에서 아르떼(Arte)의 어원은 라틴어 ‘아르스(Ars)’에서 나왔다. 아르스의 의미는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능력’ 혹은 ‘어떤 상상력을 현실에 재현시키는 활동’을 가리키는 말로서 사전적 표현으로는 ‘기술’이나 ‘기예’라고 쓴다. 영어에서의 ‘아트(Art)’도 같은 어원에서 출발한 단어로 좁은 의미에서는 어떤 미적 표현을 주로 가리키지만, 포괄적 의미에서 보자면 인간이 행하는 창조적인 모든 활동을 총 망라한다고 해도 되겠다.
새로운 현대 미술의 한 장르라고도 할 수 있는 몰입형 미디어아트 전시관인 아르떼뮤지엄(Arte Museum)을 운영하는 디지털 디자인 컴퍼니 회사의 이름이 바로 디스트릭트(d'strict)로 그 시작은 아마도 2020년 9월에 시작된 제주 애월읍의 전시관 개관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그 후로도 꾸준히 영원한 자연(Eternal Nature) 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새로운 전시 작품들을 창작하여 여수. 부산에 이어 강릉에 전시관을 개설하였으며, 이후로 해외진출을 꾸준히 확대해 나가고 있다.
그리고 이쯤 되면 우리는 ‘미디어 아트(Midia Art)’ 라는 조금은 생소하고 낯선 미술용어를 맞닥뜨리게 된다.
(미디어 아트)란 게 무슨 새로운 방송용어야? 초현실적인 영상 상업광고를 가리키는 거야? 미술 장르야? 아니면 새로운 예술 사조를 가리키는 말이야?
거기다가 ‘그냥 미디어 아트면 아트지 또 몰입형 미디어 아트라는 것은 도대체 어떤 것이야?’하는 의구심이 더해지는 것도 결코 무리가 아니게 보여 진다.
사실, (미디어 아트)의 등장과 함께 학계에서는 그것이 과연 (예술에 속하는 것일까?) 아니면 (기술에 속하는 것일까?)하고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던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그리고 그 논쟁의 소요가 대체적으로 한쪽으로 대부분 자연스레 수렴되어진 것도 사실이지만, 그랬음에도 모두를 순순히 (미디어 아트는 어디까지나 예술에 속한다)는 결론에 대해서 여전히 의구심을 가지고 있고, 여러 가지 문제점과 해결되어야 하는 사안들이 존재한다는 사실 또한 엄연한 현실적인 과제이다.
내가 미디어 아트의 등장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도 바로 이 (과연 미디어 아트가 예술이냐? 기술이냐?)하는 강한 의혹과 의심 때문이었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겠다.
나는 예전에 조각미술에 대해서 ‘모조품’과 ‘리메이크 작품’과 ‘원본이 없는 사본’이란 주제로 살짝 소견을 피력해 본 적이 있었다. 그것에 대한 의문과 탐구는 여전히 지금도 진행 중으로 꾸준히 공부를 계속 하고 있다. 그런 것들에 대한 명확한 규정과 어떤 원칙을 정해놓지 않게 되면 장차 예술의 진정한 가치와 존엄성은 심각하게 위협을 받게 될 것이다. 일부 음악이나 영화를 포함한 예술 분야에 엄연히 라이센스(저작권)에 대한 법령이 제정되어 있고 빠르게 확대 내지는 재해석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지만, 어디까지나 현실은 예술에 대한 고유의 가치와 존엄성을 지켜주는 차원이 아니라, 주로 창작자의 경제적 이익 보호를 위한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런 차원에서 극단적인 표현을 빌어보자면 현재 진행되고 벌어지고 전시되고 있는 미디어 아트 분야가 과연 새로운 신기원의 예술 활동의 결과로 상업적 이익은 물론 새로운 예술적 차원을 재창조한다고 보아야 할 터인데......... 앞으로 누군가가 다비드 조각상의 머리에 아테네 여신의 몸을 가져다 붙이고 자유의 여신상에서 손에 든 책을 가져다 절묘하게 붙여서 새로운 작품이라고 내놓는다면......... 미래의 조각 작품이 모두 그런 추세로 나아가게 된다면....... 뭔가 썩 개운치 않은 그런 예술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떨칠 수 없을 것만 같다.
나는 지금 미디어 아트의 무한한 창작열과 가능성에 대해서 어느 정도 긍정적 생각으로 기대감과 함께 변화의 추이를 지켜보고 있지만........ 마음 한 구석에선 그렇게 떼어낼래야 떼어낼 수 없는 어떤 찜찜함이 늘 남아있는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미술(예술)은 과학의 발전이라는 시대의 흐름에 늘 편승해 함께 발전해 왔다.
가장 쉽게 단편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영화이다. 예술로 승화된 영화는 카메라의 발명을 시작으로 새롭게 창조된 예술의 영역인 것이다.
미술 또한 그 시작은 애초 동굴벽화였다고 하는데...... 그것이 교육을 위해 그렸던 벽화였던, 사냥에 성공한 숫자를 기억하기 위해 시작을 했던, 다양한 동물을 사냥한 씩씩한 사냥꾼이 업적을 남기기 위해 그렸던....... 어쨌거나 그 벽화는 오늘날 미술이라는 한 예술의 분야 자리를 떡하니 차지하고 있다. 동굴의 벽화에서 시대가 변하면 성벽이나 담벼락이나 교회의 천장과 벽에 성화로 그려져 사고팔 수 있는 가치를 지니지 못했다가, 물감의 발전하고 캔버스가 발명되면서부터 어디서든 그림을 그릴 수 있고 가지고 다닐 수가 있게 되면서 개인적으로 소장하고픈 욕심이 생겨났고 그림을 사고파는 오늘날의 미술시장이라는 새로운 미술산업 시장을 탄생시키게 된 것이다.
복사품을 인정하지 않는 선에서 미술작품은 희소성을 가지게 되었고 가격이 천정부지로 솟았지만, 사진처럼 영화처럼 그리고 지금의 미디어 아트 등은 언제 어디서든지 얼마든지 똑같은 작품의 재생산이 얼마든지 가능해 졌다. 그래서 생겨난 저작권은 작품의 존귀성 보존보다는 작품의 상업적 가치 보존에만 너무 집착하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젠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와 같은 희대의 천재성을 가진 진정한 예술가 보다는 남다른 아이디어에 독창적인 감각과 상업적인 끼를 가진 재주꾼이 더 걸출한 예술가 반열에도 오를 수 있고, 웬만한 기업의 생산 활동을 훨씬 능가하는 초일류 부자가 될 수 있는 참 아이러니하고도 놀라운 세상이 도래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 지는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땐 (예술일까 기술일까?)가 아니라 (예술품일까 상품일까?) 하는 시대가 되지 말란 법도 없게 되는 것이 아닐까 말이다.
‘IT 회사에서 예술이라니? 반도체를 생산해 내야 하는 것 아니야?’
‘이제 예술가가 되려면 회화과나 조소과가 있는 미대를 가야하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 프로그래밍 학과나 반도체 공학을 전공해야 한다는 말이야?’
이렇게 아르떼뮤지엄(Arte Museum)을 만들어 개관하고 관리하는 회사인 디스트릭트(d'strict)의 등장은 그야말로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실로 어마어마한 충격과 파장을 몰고 왔다.
그들이 추구하고 있는 ‘영원한 자연(Eteral Nature)’이라는 플랫폼 안에는 미술에서 시작해 클래식 음악과 공연과 문학과 문화계의 동향까지를 포함하는 100명 이상의 전문 디렉터들이 모여서 자연이란 소재와 디지털 기술을 결합해서 또 하나의 새로운 세상(작품)을 창조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생겨난 ‘미디어 아트(Midia Art)’란, 캔버스가 아닌 디지털 장치를 통해 새로운 형식의 디지털 디자인 방식의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을 가리킨다. 극장에서 영화를 감상하는 것과 같은 스크린과 빔 프로젝터(영사기) 같은 여러 디바이스에 그래픽 기술과 인공지능을 통해 이제와 전혀 다른 차원의 공간현실을 창조해 내는 새로운 시대적 예술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것이 아주 짧은 시간을 통해 놀라운 속도로 발전했고, 이제는 엄연히 현대미술 속에서 예술의 한 장으로 미디어 아트가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이렇게 낯설 것만 같은 ‘미디어 아트(Midia Art)’ 우리에게 왠지 마냥 낯설게 느껴지지만 않게 된 이유에는 이 새로운 장르가 탄생하는 과정에서 세계적인 개척자 한 사람이 바로 한국인이었고 그의 역할이 사뭇 절대적이었기 때문이다.
‘비디오 아트(Vidio Art)’ 분야를 개척해 새로운 시대적 예술로 승화시킨 백남준(白南準) 선생님이 바로 그 분이다. 미디어 아트 분야의 역사에서 직전의 단계였던 비디오 아트 분야인 백남준 선생의 역할과 영향력은 거의 절대적이라 하겠다. 물론 미디어 아트의 역사는 그 보다 한참 전부터 시작되었고, 큰 족적과 업적을 남기신 분들도 무수히 많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돋보이는 개척자가 바로 한국인이었다는 자부심이 우리에게는 자신도 모르는 사리에 내재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차차 다시조명을 해 보아야 하겠지만)
IT 회사인 디스트릭트(d'strict)가 야심차게 개발을 해서 세상을 향해 엄청난 충격과 파장을 불러일으키며 처음 등장했던 사건은 아마도 2018년 3월에 지하철 삼성역 6번 출구를 나와서 코엑스(COEX) 건물의 신한카드 아티움 외벽에 설치한 초대형 전광판의 등장이었지 싶다. 건물의 2개 면을 하나의 캔버스로 연결해서 농구장의 4배 크기인 가로 80.9m에 세로 20.1m의 어마어마한 크기의 화면을 만들어냈고, 그 화면 가득 성난 파도가 쏟아져 나오는 영상을 담아 올렸다. 거대한 파도의 심연으로 들어가면 헤엄을 치는 거대한 고래가 헤엄을 치며 다가온다. 언제였던가. 티비 미니시리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등장하는 그 거대한 고래의 영상을 떠올리면 딱 그것이었다고 해야 하겠다.
‘코엑스의 파도(Wave)’는 그야말로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며 전 세계에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미디어 아트가 도대체 뭐야?’
‘디스트릭트가 도대체 뭐하는 회사야?’
‘저걸 도대체 왜 만드는 거야?’
‘예술작품이야? 상업적 상품이야?’
‘디스트릭트가 전 세계를 경악에 빠트렸다!’
뉴욕의 타임 스퀘어는 세상에서 가장 비싼 광고료에 최신 광고판들이 그야말로 매 순간마다 온갖 신기록들을 갈아치우며 불야성을 이루고 있는 자본주의 사장경제의 랜드 마크와 같은 명소다. 흔한 말로 타임스퀘어 광고판에 명함 좀 내걸었다하면 자본주의 세상에서 제대로 성공했다는 부자 자격증을 취득한 것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바로 그 타임 스퀘어 광장(One Times Square)에 2021년 7월 27일 디스트릭트(d'strict)가 명함 정도가 아니라 상상을 초월하는 정도로 큰 움직이는 간판을 내걸었다. 강남 코엑스 벽면에 ‘파도(Wave)’라는 미디어 아트 작품을 광고처럼 내걸었던 디스트릭트가 이번에 뉴욕의 한복판에 내건 작품의 제목은 ‘폭포(Waterfall-NYC)’였다. 뉴욕의 타임스퀘어를 상징하는 대표적 건물의 옥상에서부터 땅바닥까지 4개의 스크린을 만들어 내걸었는데 그 높이가 자그마치 102.5m나 되었다. 그 건물의 지붕 옥상에서 물줄기가 뿜어져 나오면서 4단계의 점점 거대해지는 폭포로 변신해 쏟아져 내린다.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공포감을 불러일으켰을 정도로 강렬하면서도 강한 압박감으로 다가오는, 그야말로 숨이 멋을 듯 상상을 초월하는 경외감마저 자아내는 놀라운 작품이라 하겠다.
그야말로 영화 속에 등장하는 초현실적 재난 장면을 현실 속에서 실제로 경험하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같은 해 7월 27일에서부터 8월 2일까지 매 시간 정각마다 1분씩 상영되었다. 그리고 그 상영 횟수가 늘어가는 그만큼 전 세계의 뉴스와 온갖 매스컴의 대서특필과 함께 등장하게 되었다.
더하여 타임 스퀘어 광장의 다른 모퉁이 광고판에 축구장 2배 크기의 초대형 스크린을 설치하고, 코엑스 벽면의 파도(Wave)를 연상시키거나 업그레이드 한 듯한 새로운 작품 ‘고래(Whale)’를 통해 대도시의 도심 한복판에서 춤을 추는 초대형 수염고래를 사람들에게 선물했다.
현대 미술의 새로운 장르인 미디어 아트(Midia Art)를 세상 사람들에게 가장 확실하고 분명하게 ‘미디어 아트란 바로 이런 것이다’라고 알린 미술사를 통 털어서도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가장 자극적이며 확실한 전시회가 아니었을까 하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미디어 아트라는 것이 저런 것이구나?’
‘디스트릭트가 도대체 뭐하는 회사야? 예술 창작소야?’
‘삼성전자의 디지털 기술이 역시 세계 최고이군. 미디어 아트 작품을 만들었다고 해도 캔버스가 없으면 영상으로 보여 질 수가 없는 것이잖아. 저 거대한 캔버스가 모두 삼성의 디지털 기술로 만들어졌다고 하네. 핸드폰도 아니고 저렇게 거대한 벽면이 통째로 90도로 꺾일 수 있다는 상상을 누가 할 수 있었겠어? 역시 디지털 세상은 삼성이 이끌어 가고 있는 거야.’
‘디스트릭트(d‘strict)는 도대체 저런 일을 왜 하는 거야?’
‘저 사람들은 도대체 뭐로 먹고 살아?’
‘저것들이 예술작품이라면 저런 디지털 작품도 사고 팔 수가 있나? 소유 할 수가 있어?’
그랬다.
미켈란젤로도 빵을 위해서 망치를 두드렸고, 피카소도 와인을 위해서 붓을 들었다.
먹고 사는 것이 원만하지 못했던 이중섭은 결국 담배종이에 그림을 그려야만 했다.
코엑스의 파도(Wave)와 뉴욕 타임 스퀘어의 폭포(Waterfall)을 통해 디스트릭트(d‘strict) 라는 이름을 전 세계 사람들에게 확실하게 각인시키는 데에는 크게 성공했지만, 사람들은 그게 과연 돈 벌이가 되느냐에 관심을 크게 보였다. 타임 스퀘어의 광고 전광판 임대료가 천문학적이며, 전광판의 설치비용과 기간 또한 결코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거기에다가 수많은 디지털 전문가들이 모여서 아주 특별한 영상물도 만들어야만 하지 않겠는가? 추측조차 가능하지 못할 정도의 비용일 들어갈 터인데 길거리에서 무료 상영이 전부인 상황에 도대체 그 많은 비용을 무엇으로 충당하며, 그들은 도대체 뭘 먹고 산다는 말이다. 빵 문제를 먼저 해결하고 나서야 예술이고 나발이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말이다.
‘각박하고 삭막하기만 한 오늘의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상상조차 힘들었던 장면들을 도심 속에서 감상하게 만들어 드림으로써 잠시라도 어는 정도의 안식이나 위안이 될 수 있다면 하는 바람으로 만들었다.’라는 것이 사람들의 의문에 내놓은 답변의 전부였다.
‘정말로 땅 파먹고 빗물 받아먹으면서 사는 사람이 있다는 거야?’
그런데 아니었다.
그들은 그보다 더 큰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이었다.
21세기형 새로운 그림을 그리고, 21세기형 새로운 비즈니스 분야에 대한 연구과 확신을 이미 수립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과거의 시장경제 핵심은 일단 생산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다음은 유통의 시대가 도래 했다. 지금은 광고의 시대인 것이다. 디스트릭트는 그런 시점에서 바로 예술의 창작과 광고를 혼합하는 새로운 비즈니스 분야를 개척하고 선도하는 사람들의 집단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겠다.
그들은 디지털 박물관, 디지털 미술관을 새로운 시대의 최첨단 사업으로 발전시켜나가는 방법으로 국내의 여러 도시는 물론 세계 도처에 전시관 설치 확대를 꾸준히 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영화관을 가듯이, 박물관을 가듯이, 미술관을 가는 것과 똑같은 이유로 현대 미술의 새로운 장르인 미디어 아트를 관람하기 위하여 디스트릭트가 만든 아르떼 뮤지엄을 찾아가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미래의 황금알을 낳은 거위가 바로 디스트릭트인 것이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말이다.
이 대목에서 내가(필자) 가장 관심이 가는 부분은 바로 저작권 문제이다. ‘파도’ ‘폭포’ ‘고래’처럼 자신들의 창작품도 있지만, 디지털 미술의 경우 상당부분의 작품 소재를 주로 다른 화가들의 작품을 가져다가 디지털 기술로 합성 분해 등의 과정을 통해 새로운 영상물을 주로 만들어 내고 있다. 미디어 아트라는 것이 본래 빛의 미술이라 할 수 있다 보니 유독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이 주로 우선적으로 소재로 활용되어 우리들에게 선보이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그중에서도 고흐와 클림트 작품이 가장 사랑과 관심을 끌고 있는 것으로 보여 진다. 거기에다가 영화처럼 인간의 상상력이 더해지고 역사 유적이나 로드 다큐 등이 소재로 보태지기도 한다. 과거의 역사에서 무래에 대한 상상력까지가 모두 미디어 아트의 무궁무진한 소재로 속속 등장하고 있다. 무엇인가 내가 꾸준히 새로운 창작을 해나가는 것 보다는, 이미 익히 알려진 유명한 유형 무형의 예술품(그림, 조각, 음악. 연극. 서책. 역사유적. 유물. 무기. 자동차. 음식. 등등 세상의 모든 것들)들의 저작권과 상표권을 해결한 후에 디지털 기술을 이용한 리메이크 내지는 재창조 과장을 통해 나가게 되면 훨씬 순조롭고 다양한 변형이 가능하다고 생각된다. 도대체 저작권을 어쩐다?'
이제까지의 미술작품 대부분이 화가들이 물감을 배합하여 캔버스에 그리는 창작물이었다면, 새로운 시대의 미디어 아트는 공학자들이 빛(디지털 기술)을 캔버스(전광판)에 쏘여서 영상으로 그려나가는 창작물인 것이다. 형식은 예술이고 미술이지만 그 내용은 사뭇 다르다고 해야겠다.
그것은 마치, 모든 물감을 하나로 섞으면 검정색이 나오지만, 모든 빛을 하나로 섞으면 흰색의 빛이 만들어지는 것만큼이나 완전히 다르다.
거기에 더하여....... 등장 한지 수년 만에 마침내 미디어 아트 작품이 미술시장에 상장되어 사고파는 거래가 성사되기에 이르렀다. 바야흐로 퍼블릭 미디어 아트 미술 시장까지 현실에 등장한 것이다.
소더비 미술 경매 시장에 디지털 아트 작품이 초청을 받은 것이다. 피카소와 장 미셀 바스키아 작품과 나란히 경매에 올라왔고 상당한 가격에 실제로 낙찰되었다.
‘저 사람들 예술가가 맞아? 아니면 철저한 사업가야?’
‘도대체 어디까지가 예술 작품이고, 도대체 어떤 사람들까지가 예술가야?’
정말로........ 나도 잘 모르겠다. 도대체 어디까지가 셈이 빠르고 잔머리가 잘 돌아가는 사람이고, 어디부터가 사기꾼이 되는 것인지 그 경계를 도저히 알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하긴, 빵 값을 벌려고 화가가 된 사람들이 무척이나 많지만, 화가이기 때문에 재벌 이상이 된 부유한화가들도 많이 있지 않았던가?
새로운 예술 비즈니스 모델을 개척해 나가고 있는 디스트릭트(d‘strict)가 예술(미디어 아트)를 통해 떼돈을 벌고, 작품 활동을 통해 계속 명성을 날리게 된다면........ 디스트릭트(d‘strict)는 인명사전에 어떻게 올라가게 될까? 위키(Wikipedia)에서는 또 어떻게 정의 내릴까? 난데없이 갑자기 그것이 궁금해진다.
현대 미술이 어떠니, 미디어 아트란 새로운 미술 장르가 등장했느니. 예술작품과 상업 작품의 경계가 모호하니, 예술가와 사업가의 차이가 어떠니......... 라고 떠들어 댄 나(필자)의 이야기를 모두 무시해 버려도 좋겠다.
나름은 미술에 관심이 어려서부터 많았고 어느 정도 열심히 공부했고 많이 좋아한다고 생각을 넘어 자부하는 정도였지만, 이상하리만치 나는 현대 미술 앞에서는 거대한 장벽에 가로막힌 것처럼 주눅이 늘 들고는 했다. 모든 그림을 내 방식으로 재해석하고 판단을 해왔으면서도, 추상화 앞에서는 도무지 재해석이고 뭐고 무슨 그림인지를 알아 챌 수조차 없었다. 그게 내 수준이고 내 한계라고 생각했다. 행위 예술을 이해해보려고 부단하게 애를 써 보았지만........ 나는 그쪽 분야하고는 멀어도 너무나 멀게만 느껴졌다.
그때 내 앞에 불쑥 나타나신 분이 바로 백남준 선생님이었다. 획기적이고 정말로 쎈세이셔널 했다. 그런데 맥이 쭉 빠져나가듯이....... 그게 내게는 전부였다. 획기적인 해석인 것은 분명 알겠는데...... 내가 알고 인식하고 추구하는 미술에 대한 생각과는 너무나 동떨어져 있었다. 백남준 선생님으로 인해서 나는 현대미술과 더 멀어지게 되었다는 것이 솔직한 고백일 것이다. 지난 파리 여행에서 퐁피듀 센터를 굳이 찾아가고자 했던 이유에는 현대 미술에 대한 나의 오해나 편견에 대해 한번쯤 다시 고심해 보고........ 백남준 선생님의 예술 세계에 대한 재도전의 생각에서 우러나온 도전이었는데......... 아에게 있어서의 미술(예술)이란 아무래도 현대미술 쪽은 아닌 것 같다는 결론을 재확인 한 것 같았다.
하지만, 현대 미술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아무리 나를 지배하고 있다고 쳐도........ 그것을 당시까지 굳이 미디어 아트라는 장르까지는 아니었더라도........... 남프랑스 레 보 드 프로방스 (Les Baux-de-Provence)에 있는 ‘빛의 채석장(Carrières de Lumières)’이란 전시회에 대한 소식을 접한 이후로 엄청난 호기심이 생겨났다. 자료도 엄청나게 찾아보았고, 호평에 대한 기사도 접했고, 혹평과 제기된 문제점들에 대해서도 심각하게 고심해 보기도 하였다.
하여, 프랑스 여행 중에 남프랑스를 찾아간 이유 중에는 그 ‘빛의 채석장’ 방문을 최우선 순위에 두고 스케줄을 잡았을 정도였다. 마르세유에 거점을 잡았고 고흐의 도시 아를을 방문했다. 아를에서 고흐를 만나보겠다는 생각보다는, 레 보드 프로방스를 가자면 반듯이 거쳐 가야 하는 경유지로서 방문이었다. 그런데 아를에서 그만 발이 묶여 버리고 말았다. 아주 작은 마을에 불과한 레 보 드 프로방스가 한겨울에는 마을 전체가 아예 폐쇄되어 버린다고했다. 마을의 폐쇄는 곧 ‘빛의 채석장’ 전시관도 폐쇄라는 사실이 우리는 그만 절망에 빠트리고 말았다.
‘봄에 다시 오셔야 볼 수 있어요. 겨울 시즌은 마을 전체가 폐쇄된답니다.’
‘이역만리 한국에서 빛의 채석장 전시를 보려고 죽을 똥 살 똥 겨우 찾아왔단 말입니다.’
그래서 무거운 발걸음을 돌려 어쩔 수 없이 아를 시내를 향했으니...... 고흐가 어디 제대로 눈에 들어왔겠느냐 고요? 내가 그냥 정신 병원에 입원하고 싶더라니까?
아쉬움이 억수로 남았던 여행에서 돌아와 제법 시간이 흐른 즈음에 강릉 솔향기 캠핑장을 몇 번 드나들다가 우연히 아르때 뮤지엄(Arte Museum GANGNEUNG)의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냥 ‘빛의 채석장’을 본 딴 짝퉁 전시회려니 했다. 서계 여행에서 카라바조의 짝퉁 전시회를 이미 여러 번 경험한 터였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손녀들과의 여행을 하게 되면서 끊임없이 ‘내가 사는 동안에 직접 소중한 손녀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와 함께 가고픈 여행지와 보여주고 싶은 것들’을 부단히 업그레이드 시키며 살고 있는 마당에 레 보 드 프로방스의 ‘빛의 채석장’을 직접 데려갈 수 없는 상황이 된다면....... 아르떼 뮤지엄이라도 보여주고 현대 미술 맛보기라도 해주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어왔고, 이번 여행에서 그런 스케줄을 잡았던 것이다.
거듭해서 밝혀두지만........ 적어도 아르떼 뮤지엄에서만은 머리 아프게 고민할 필요가 없다. 예술과 기술의 차이를 고민할 필요가 전혀 없다. 예술이면 어떻고 아니면 또 어떤가?
아르떼 뮤지엄은 현대 미술의 새로운 장르인 미디어 아트인 것은 분명하지만........ 우리가 핸드폰을 너나 나나 모두 쓰고 있으면서 디지털 시스템이나 문예 사조에 무덤덤하게 신경쓰지 않아도 살아가는데 전혀 지장을 못 느끼듯이, 아르떼 뮤지엄 또한 아이들 키즈 카페나 놀이공원에서 처럼 그냥 덤덤한 마음으로 편하게 즐기고 경험하고 나오면 그만이지 싶다. 그냥 되는대로 가장 편하게 놀아보자 라고 생각해 보자.
굳이 특별한 해석이나 사전 지식이 전혀 필요 없다. 그냥 두 발로 걸어 들어가서 유리벽에 부딪치지 않게 조심하고, 두 눈 똑바로 뜨고 실컷 보고 듣고 느껴보고 나름 즐거운 체험에 도전하는 것 정도면 충분하고 또 그것이 전부다.
그러면 당신은 어느새 천재이거나 예술가적 재질이 충분한 사람이라고 하겠다.
이미 현대 미술을 그렇게 쉽고 간단하고 즐겁게 충분히 즐기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바로 우리들 처럼 말이다.
아르떼뮤지엄 강릉(Arte Museum GANGNEUNG)은 2021년 12월 강릉 경포대 인근에 디스트릭트가 세 번째로 선보인, 나름 그 지방의 향토색이 녹아있는 자연을 소재로 하고 특별한 전시 공간에 미디어아트를 통해 재해석한 작품들을 전시한 상설 전시관인데 여기에 왜 항상 몰입형이라는 용어가 따라붙는지는 관람을 하고 나면 그 몰입형이란 의미를 저절로 이해하게 될 것 같다.
가장 강렬하게 다가오는 밸리(Valley)라는 주제에는 강원도만의 특성인 백두대간을 주제로 하는 미디어 작품이 다채롭게 등장한다. 특별하게 꾸며진 전시 공간에 자연적 소재와 공간을 미디어아트로 재해석하여 시각적 강렬함에다 감각적 음향효과까지 절묘하게 어우러져 한층 완벽한 몰입형 공간이 이래서 필요했구나 하는 감탄사를 연발하게끔 만들어 준다. 가상의 현실을 마치 현실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디지털 기술에 감탄이 절로 우러나올 뿐이다.
가도 가도 끝이 없을 것 같은 해변은 이어지고, 쏟아져 들어와 부서지는 파도는 음양 효과로 인해 보는 이의 가슴과 감정에 거세게 압박을 가해오고, 어두운 밤바다는 금방이라도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함몰해 들어갈 것 같고, 푸른 파도는 보는 이의 숨이 멈출 때까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이 파도의 주제인 (Starry Beach)는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고흐가 그렸던 어두운 밤하늘을 밤바다로 옮겨 풀어놓은 듯 보인다. 밤바다를 바라보면서 마음과 생각은 고흐의 그림 속으로 풍덩 뛰어든 형국이라고나 할까?
성난 파도가 사정없이 몰아쳐 오는 작품이 유독 강렬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디스트릭트가 처음 시작하면서 선보였던 (Wave)의 영향력이 유독 강했던 때문일까? 아니면 디스트릭트 개발자들이 이제는 (Wave) 창작에 충분히 노하우를 갖추었거나 어떤 뜻모를 어떤 자신감이 생겨서가 아닐까?
확실한 것은 이렇게 글로써 설명을 전하는 것과 실제로 전시관을 방문해 현장에서 느끼는 감동은 전혀 차원이 다르다는 사실이다. 두 번까지는 아니라 해도 꼭 한 번쯤을 직접 방문해 새로운 예술현장의 벅찬 감동을 느껴보시라고 강력하게 권해드리고 싶다. 왜 미술 전시관의 이름 앞에 몰입형을 전제해야 했는지는 다녀온 사람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차원이 다른 영역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러다보면 과학이나 기술의 발전이 예술의 발전에 나름으로 어떻게 기여하고 있는지를 어렴풋이나마 간접체험 내지는 온 몸으로 충분히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예술과 기술의 경계를 구분하는 일이랑 지금 예서는 생각하지 말기로 하자.
기술 과학적 매카니즘까지 알려고 노력하거나 원리를 이론적으로 캐보겠다고 나설 이유도 전혀 없다. 그것은 그 분야에서 그 작품들을 연구하고 만들어 내는 사람들의 몫으로 남겨두기로 하자. 다만 그들의 노력 덕분에 온갖 자연을 아주 생생한 영상으로 우리 눈앞에 펼쳐지도록 만들어 주고, 새소리나 파도소리를 더욱 생생하게 들려주고, 꽃과 들판에서 거기에 알맞은 자연의 향기가 풍겨 나오고, 그것들이 우리의 눈과 귀와 코와 가슴에 고이고이 잘 스며들도록 만들어내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그것에 감사하고 감동하면서 우리는 그저 자연 속으로 소풍을 떠나듯이 편하고 넉넉한 마음으로 마음껏 즐기면 되는 것이다. 적어도 그 순간만은 동심으로 돌아가 ‘예술로 가득한 놀이터’에서 나뒹굴고 뛰어놀아 보기로 하자.
아르떼뮤지엄(Arte Museum)에서 만나 볼 수 있는 미디어아트(Midia Art)에 대해서는 이 정도로 소개를 마치려고 한다.
예술이니 기술이니 따지지도 어렵다고 망설이지도 말고 그냥 최적의 쾌활한 공간(공기 온도. 습도. 밀도까지 세밀하게 조정해 만들어 놓은 전시관)에서 눈도 귀도 즐거운 나들이를 한 번 한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아마도 전시 관람을 모두 마치게 되면 ‘아!!! 이런 게 현대 미술이야? 몰입형 미디어아트라는 것도 보아줄만 하네.’라는 생각이 들게 될 것이다.
우리 병아리들도 충분하게 이날을 즐겼다. 예상했던 시간을 훨씬 넘겨가면서 말이다.
이미 점심시간은 한참이나 지나고 있었다. 어떻게 하지? 우리 병아리들 많이 배고플 텐데. 긴급 가족회의를 해야겠다. 그런데 하면 뭐해?
‘할머니. 우리 그냥 자장면 먹을래요. 탕수육도 있으면 좋겠어요.’
헐!!!! 그 놈의 자장면은 시도 때도 없이........ 강릉은 어디 중국집이 유명하지? 부랴부랴 핸디폰으로 강릉 맛 집을 검색해보는 할머니......... 빛의 속도로 검색을 해낸다.
첫 번째 강릉 중화요리 맛 집을 찾아갔는데........ 내부수리 중으로 휴업중이란다. 아니, 그렇게 유명하다면서 왜 휴업 소식은 블로그에 안 알려주는 거지? 서두느라 불법 U턴까지 해가면서 찾아왔더니만........ 그래서 두 번째 맛 집을 찾아갔는데 정기휴일이란다. 염병할...... 제기랄......... 다시 힘을 내서 기어코 무지무지 유명한 짬뽕 집을 찾아갔는데........ 이집 짬뽕과 탕수육은 되는데 자장면이 안 된다고 한다. 헐!!!! 내가 살다 살다 자장면이 안 되는 중화요리 집을 처음 경험해 본다.
그렇다면 어차피 들리려고 했던...... 중앙 시장으로 가자. 거기도 중화요리 집이 있을뿐더러, 오가면서 먼저 먹고 싶다고 눈에 띄는 것이 있으면 그것으로 점심을 대신할 수도 있고......... 닭강정을 비롯해 오징어 튀김이나 순대가 되었던 호떡이 되었던 주전부리 실컷 하고 저녁에 먹을 것 까지 사는 것으로........ 늦은 점심은 중앙시장에서 해결하자.
그래서 부랴부랴 차를 몰고 다시 달렸다. 하천 주차장에 차를 주차시키고 시장 아케이드로 진입을 하기는 했는데......... 시장의 중간쯤에 들어서자마자...... 아니 처음 주차장에 섰을 때부터......... 강릉에 내려진 강풍 경보가 허위예보가 아니라는 것을 뼈 속까지 절실하게 깨닫게 되었다. 시장의 통로에 쏟아져 들어오는 바람만으로도 거의 시베리아 벌판에 부는 태풍급 한파와 진배가 없어 보일 정도였다. 칼국수 집과 횟집과 순대 국밥집 정도를 제외하면 그냥 노점이나 마찬가지인 길거리 점포들이 대부분이 중앙시장이 한산하다 못해 썰렁하다. 파커나 목도리로 완전무장을 한 몇 몇 여행객들만 한산한 점포들을 기웃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한산한 것이 오히려 다행이어야 했는데...... 그 전에 우리 병아리들이 바람에 날아가 버릴 것 같다. 거기다 처음으로 추위를 하소연하기 시작했다. 배가 고팠으니 그 추위가 한층 더 극심했으리라.
‘이러다 우리 애들 잡겠어. 자장면이고 군것질이고 뭐고 일단 차로 돌아가요. 차라리 캠핑장에 가서 컵라면 먹는 게 낮겠어. 저녁에 맛있는 것은 이따가 하나로 마트에 다시 가서 생각해 보든가 하고........ 여기서 더 이상은 무리인 것 같아.’
말을 마친 할머니가 세리를 둘러업더니 벌써 저만치 뛰다시피 앞질러 주차장을 향해 내달린다. 어쩔 수 없이 태리 손을 잡고 그 뒤를 따라 뛰어간다.
‘오징어 튀김에 족발이라도 샀어야 저녁에 안주를 하는데..........’
결국....... 캠핑장으로 돌아와 짜파게티 컵라면으로 늦은 점심인지 이른 저녁인지를 해결하는 병아리들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 할아버지의 속이 까맣게 타들어간다.
‘이렇게 되면 어떻게 해? 오늘은 시장 맛 집을 몽땅 털어오려고 애초부터 작정했던 날이란 말이야......... 높은 하늘에 앉아계신 분 말이유. 자꾸 이러실거유?’
짜파게티를 먹고 있는 병아리들을 보면서 할아버지는 어제 사다 놓은 옥수수 식빵쪼가리를 뜯고 있고, 할머니는 아침에 꺼내 놓고 먹다 남은 바나나를 까고 있다.
‘병아리들과의 여행은 언제나 할머니 할아버지에겐 단식 수행의 기간인가 보다. 수행이라니? 고행이여. 죽을 정도의 고행.'
아르떼 뮤지엄에서 미디어아트라는 것을 모처럼 경험하였고, 지나버린 <르네상스 산책> 남프랑스 여행에서 아쉽게 레 보 드 프로방스 여행을 성공하지 못한 아쉬움이 아직 가득 남아있었던 참에, 여기에서 잠시 지면을 빌어 그때 그 여행에서 아쉽게 다 마무리하지 못했던 ‘빛의 채석장’에 대한 이야기를 <르네상스 마실 나들이>로 엮어서 잠시 다시 한 번 거론하고 지나갈까 하고 생각했다.
레 보 드 프로방스의 ‘빛의 채석장’ 이야기를 통해 오늘 아르떼 뮤지엄 관람에서 다하지 못한, 뭔가 아쉬운 ‘미디어 아트 ’이야기를...... 르네상스 산책 여행의 스토리로 재미있게 역어서 1회나 2회로 풀어나가 볼 생각이다. 성경 이야기도 살짝 포함하고 말이다.
--- 곧 <르네상스 마실 나들이>로 돌아오겠습니다. 강릉 <솔향기 캠핑장 여행> 이야기는 그 뒤로 다시 이어나가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감사합니다. 피안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