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다 좀더 미묘한 것은 중도를 취하는 입장이다.
과학혁명이 일어나기 전에는 권력과 행복 간에 분명한 상관관계가 없었다.
중세 농부는 실제로 그들의 수렵채집인 조상보다 더욱 비참하게 살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난 몇 세기 동안 인류는 스스로의 능력을 더욱 현명하게 사용하는 법을 배웠다.
현대 의학의 승리는 한 예에 불과하고, 이외에도 전대미문의 성취가 많다
푝력은 급격히 줄었고, 국제전은 사실상 사라졌으며, 대규모 기근은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하지만 이 또한 과도한 단순화다.
첫째, 낙관적 평가의 표본으로 삼은 기간이 너무 짧다.
인류 대다수가 현대 의학의 결실을 누리기 시작한 것은 1850년 이후의 일이고,
어린이 사망률이 급격하게 떨어진 것은 20세기에 일어난 현상이다.
대규모 기근은 20세기 중반까지도 상당 지역에 큰 피해을 입혔다.
1958 ~ 1961년 중국 공산당의 대약진운동 당시 1천만 ~5천만 명이 굶어 죽었다.
국제전이 드물어진 것은 1945년 이후에 와서였는데
대체로 핵무기로 인해 인류가 절멸할 위협이 새로 등장한 덕분이었다.
따라서 판단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최근 몇 십 년이 인류에게 전대미문의 황금시대였지만,
이것이 역사의 흐름이 근본적으로 바뀐 것을 대변하는 현상인지 아니면
단명할 행운의 회오리바람에 불과한지 말하기는 이르다.
우리는 현대성을 판단할 때 21세기 서구 중산층의 시각을 취하려는 유혹은 크게 느끼지만,
우리는 19세기 웨일스의 공산 노동자, 중국의 아편 중독자, 태즈메이니아 원주민의 시각을 잊어버서는 안 된다.
원주민 트루가니니는 호머 심슨(미국 TV 애니메이선 시리즈 <신슨가족>의 등장인물)보다 그 중요성이 덜하지 않다.
둘째 지난 반세기 는 짤막한 황금시대였는데
이것조차 미래에 파국을 일으킬 씨를 뿌린 시기였다는 사실이 나중에 확인될지도 모른다.
지난 몇 십 년간 우리는 지구의 생태적 균형을 수없이 많은 새로운 방법으로 교란해왔으며
이것이 끔찍한 결과를 빚고 있는 중인듯하다.
우리가 무모한 소비의 잔치를 벌이면서
인류 번영의 기초를 파괴하는 중이라는 사실을 가리키는 증거는 많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다른 모든 동물의 운명을 깡그리 무시할 때만
현대 사피엔스가 이룩한 전례 없는 성취를 자축할 수 있다.
우리는 스스로를 질병과 기근으로부터 보호해주는 물질적 부를 자랑하지만,
그중 많은 부분은 실험실의 원숭이, 젖소, 컨베이어 벨트의 병아리의 희생 덕분에 축적된 것이다.
지난 2세기에 걸쳐 수백억 마리의 동물들이 산업적 착취체제에 희생되었으며,
그 잔인성은 지구라는 행성의 연대기에서 전대미문이었다.
만일 우리가 동물권리 운동가들의 주장을 10분의 1만이라도 받아들인다면,
현대의 기업농은 역사상 가장 큰 범죄를 저지르는 중이라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
지구 전체의 행복을 평가할 때
오로지 상류층이나 유럽인이나 남자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은 잘못이다.
인류만의 행복을 고려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잘못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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