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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가 뇌로의 전이가 의심된다며 뇌MRI를 찍어보라 하더군요,,, 결과가 지난 금요일 날 났는데 뇌로 전이가 두군데 됐다고 하더군요. 목도 부풀어 오르구요. 귀 비스듬히 뒤쪽부분이요
엄마가 평소에도 참 강하고 건강하시던 분이라.. 화학 요법 할 때도.. 다른 분에 비해 잘 견뎌내고 방사선도 제가 보기엔 다른 분에 비해 잘 견뎌 내셨어요,, ..그런데 뇌로 전이라니.. 정말 어쩌면 이렇게 하늘이 무심 할 수있나 싶더라고요..정말 많이 고생하셨는데... 절대 포기 못하겠어요..정말요...
처음 담당 의사는 수술을 하고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를 받으면 치료가 가능하다고 하더니 이제 와서는 최선을 다했지만 현대의학으로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말을 바꾸대요. 그러면서 길어야 6개월 정도 살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퇴원하라고 하대요
더 이상 의사도 병원도 믿을수가 없고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 엄마를 잃을 것 같아서 정말 미칠 것 같았습니다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암 승리자모임이라는 곳을 알게 되어 상담을 하고 나서 대체요법으로 암을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너무 늦게 알은 것이 후회스럽기도 했지만 이제라도 이런곳을 알게된 것이 엄마를 살리기 위한것이라는 생각도 들어서 매우 기뻤습니다 다태이탕과 고농도 산소를 복용하고 커피 장세척을 하루에 2번씩 시행하고 족욕 30분씩 하루 2번 현미 잡곡밥, 비타민 C를 하루에 10알씩 복용하였습니다
오빠가 구해온 자연산 상황버섯도 달여 먹고 홍삼도 복용하였습니다
처음에는 거동도 잘 못하고 식사도 거의 하지 못했는데 한달, 두달이 지나면서 조금씩 호전되더니 2년이 지난 지금은 전혀 병색이 없어졌습니다
성당 활동도 어느때보다 왕성히 하고 계십니다
검사를 한번 받아보자고 해도 엄마는 다 나았다면서 이제 다시는 병원에는 가지 않겠다고 합니다
시한부 선고 받았을때만 해도 이제 죽는구나 했는데 이렇게 대체요법으로 암을 치료하고 보니 암도 얼마든지 치료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 위암 치료(서울 56세 남자)
나는 달리 크게 아픈곳은 없었지만 얼마전 친구가 뇌졸증으로 입원하는 것을 보고 아내의 권유로 건강검진을 받기로 하였다 검사결과는 별다른 이상은 없으나 위궤양 증세가 있다면서 약을 처방 해 주어 얼마간 약을 복용하고 있었는데 속쓰린 증상이 사그러들지를 않았다
그러고 1년쯤 지나자 속쓰림이 더욱 심해졌다
평상시엔 괜찮다가 식사시간이 되면 속이 매우 쓰려왔다 소화가 잘 되지 않아 식욕도 없어지자 체중은 점차 줄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날 코피가 나더니 멈추지 않아서 결국 가까운 대학병원 이비인후과를 찾아갔다 치료를 받고 나오는데 내과 간판이 보여 온김에 내과 검진을 한번 받아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속쓰림이 공복에 심하다는 내 얘기를 들은 의사는 내시경을 한번 해 보자고 하였다 과거 내시경 검사시에 엄청난 고통을 겪은 기억이 있어 몹씨 꺼렸으나 수면 내시경은 전혀 고통이 없다는 말에 검사를 받았는데 검사 후 의사는 청천벽력같은 말을 하는 것이었다
종양이 위 입구를 막고 있어 통증이 심했을텐데 지금까지 어떻게 참았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잘못 들었나하여 반문하자 내시경 사진을 보여주며 하얗게 보이는 부분이 암덩어리라고 하며 자세히 설명하는 것이었다
하루빨리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암이라는 그 소리에 머리가 멍해지고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아무생각도 나지 않았다 의사는 무슨 말을 계속 하고 있었지만 한마디도 들리지 않았다 마치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천길만길 낭떠리지로 떨어지는것 같았다
이제 죽었구나 내 인생이 여기서 끝나는구나 순간 아내와 아이들 친척들 모습이 순간적으로 지나갔다 영구차에 실려가는 내 모습과 울고있는 아이들과 아내의 모습도 보였다
의사는 수술날짜를 잡자고 말하는듯 하였으나 나는 멍하니 그냥 병실을 나오고 말았다
병원앞 벤취에 앉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담배 한갑을 모두 피우고도 부족하여 다시 한갑을 사와서 피웠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암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설마 오진이겠지 오진율이 30%도 넘는다는데.... 머리속에서는 그 단어만 떠올랐다
아니 내 눈으로 확인하지 않았던가 그럼 그것은 무엇인가
집으로 돌아와서도 가족들에게 차마 말하지 못하고 밤새 이리저리 뒤척이며 한숨도 자지 못했다 죽음이 두렵지는 않았지만 이제 조금 살만하니까 이런 병이 오나싶어 내 인생이 참으로 불쌍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결국 나는 돈에 대한 집착,욕심,양보할줄 모르는 자존심과 밤낮을 가리지 않고 돈버는데만 열심히 살아온 내가 잘못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수 십년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가게문을 열어왔던 신발가게를 몇일간 닫아두고 한강변에 소주와 오징어를 가지고 가서 술을 먹으며 보냈으며 사발면과 짜장면을 배달시켜 먹으며 10여일을 그렇게 고통스럽게 보냈다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자 암이라고 모두 죽는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방법이든 살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어디 사람이 죽으라는 법이 있단 말인가 그래 나는 죽을 수 없다 어떻게든 살아야지 아직 나를 필요로하는 아내가 있고 노모가 있으며 자식들이 있다
나는 폐암에 걸려 6개월을 넘길 수 없다는 말을 듣고도 지리산에 들어가서 암을 말끔히 고쳐서 나온 선배를 찾아 남원으로 갔다
선배는 나의 사정을 듣고 참 잘 왔다며 위로와 자신감을 심어 주었다
절대 병원에 가지 말라는 것과 암은 자연요법으로 고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라는 것을 믿게 되었다 그 선배는 아직도 지리산에 움막을 짓고 살고 있었다 나도 그 옆에 움막을 하나 짓고 선배를 따라 산을 타며 각종 약용식물과 약초를 뜯어와 먹기 시작했다 모든 음식을 생식으로 하며 약초도 모두 생으로 먹었다
처음에는 몇일간 설사를 했고 배가 몹씨 아팠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속이 편해지기 시작했다
또한 단식요법을 시행하기로 하고 15일 동안 단식하면서 아내가 암 특효약이라고 가져온 고농도 산소와 게르마늄을 먹었다 물을 먹을 때, 국을 먹을 때도 무조건 산소를 60방울씩 섞어서 먹었다 항암작용을 한다는 다태이탕을 만들어 먹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하루에 두번씩 커피로 관장을 하였다 아무것도 먹지 않았았는데도 관장시에는 까만 변이 엄청나게 나왔다
산에서는 땅을 파고 변을 보기 때문에 자세히 볼수가 있었다
이렇게 엄청난 변을 보면서 15일이 지나고 죽을 먹기 시작하여 몇일후부터는 다시 생식을 먹기 시작하였는데 그 뒤부터는 몸이 날아갈듯이 가벼워지는것을 느꼈다
그동안 80kg가까웠던 체중이 55까지 줄었었는데 체중도 점차적으로 늘고 식욕도 좋아져 무엇이든 먹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와같은 생활을 6개월 이상을 하고나자 겨울이 오기 시작했고 나는 그동안 산야초와 약초에 대하여 전문가가 되어 있었다
산에는 생각보다 좋은 것들이 무수히 많았다 더덕은 물론 산삼도 몇뿌리 캤고 드룹 겨우살이 각종 희귀버섯, 자연산 상황버섯 등 모두가 하늘이 준 약이었다
그동안 약초를 캐서 말렸던 것을 한 트렁크에 실고 집에와 겨울동안에는 생식과 고농도 산소와 게르마늄, 산야초나물,커피관장을 꾸준히 계속하였다
봄이 오자 다시 지리산에 들어갔다 지금은 가을이 오고 있다 지리산에서 보낸지 2년이 다 되어 간다
아내는 내시경을 다시 받아보자고 하지만 나는 내 병을 내가 안다 나는 암세포가 모두 없어졌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내년 봄에나 병원에 가 볼 생각이다. 그리고 내년 봄에는 가게도 다시 열 생각이다 .남원의 선배에게 다시한번 감사드린다
■ 자궁암 치료 ( 부산 여자 55세)
엄마 나이는 만 55세구요 작년에 자궁 내막암으로 수술하고,방사선 바로 했습니다 얼마 안있어 이상한 증상으로 모든 검사결과, 폐,뼈,임파절 전이로 항암과,척추 방사선치료했습니다 항암 5차 후 검사결과 간으로 전이됐습니다
주치의는 더 이상 항암치료가 의미가 없다면서 퇴원하라는 것입니다 집에가서 자연요법을 하면 좋아지는 경우도 있다면서 강제로 퇴원을 시킬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대로 퇴원하면 엄마가 돌아가실것 같아 애원하다싶이 하여 항암제 바꿔서 한번 맞았으나 더 이상은 어렵다고 하길래 할 수 없이 퇴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생각해보니, 항암제 그만두는게 나을것같단 생각을 했습니다 병원에서도 마지못해 해주는것 같구요
부작용으로 발이 절여서 걷는게 좀 그렇지만...별 이상증세는 없었습니다 당시 엄마는 별 고통도 없고 식사도 잘하고 거동도 잘 하시는데 몇달밖에 못산다니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의사의 말로는 조금있으면 어느날 갑짜기 부터 통증이 오기 시작한다고 하더군요
엄마는 암이 모두 치료되어 퇴원한 것으로 알고 언니가 하는 식당에도 매일 나갔습니다 일주일쯤 지났을까 허리에 통증이 오기 시작하더군요
처음에는 게보린을 몇개씩 먹으면 괜찮았는데 보름쯤 지나고 부터는 진통제를 한줌씩 먹어도 통증이 줄지 않았습니다
담당의사를 찾아갔더니 올것이 왔다는 것입니다. 이런정도라면 한달을 넘기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패치형 진통제와 잘듣는다는 전문진통제를 처방받아 겨우 통증이 줄어들었으나 완전히는 아니었습니다
병원이 뭣하는곳인지 의문이 갔습니다.
아픈사람이 가면 살려주어야 하는곳 아닙니까
어차피 이렇게 죽을거라면 왜 처음부터 항암치료를 했으며 수백만원의 병원비가 왜 들어가야 하는지 모르겠더라구요 그냥 처음부터 고칠 수 없으니 다른 방법을 찾아보던가 진통제나 처방해서 보내야 하는것 아닌가요
얼마전에 방송에서 암말기 환자가 무엇무엇을 먹고 완치되었다는 내용을 들은것이 생각났습니다 그래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다고 했는데 뭔가 방법이 있을 것이다
나는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암을 고친다는 요법도 너무도 많고 좋다는 약도 무지 많았습니다 어디에서는 이것이 좋다하고 다른곳에서는 그것은 효과가 없다라고도 하고 정말 알수가 없고 헷갈리는 정보가 너무도 많았습니다
대부분 장사꾼의 말뿐이고 도무지 믿기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친구의 소개로 [암승리자 모임]을 알게 되었고 상담을 통하여 체계적인 대체요법을 소개받아서 그대로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다태이탕과 고농도 산소를 먹고 있고 밭마늘을 구워서 한끼에 5개씩 죽염에 찍어 먹고 풍욕도 매일 하고 있습니다. 창문을 열어두고 살으라고 해서 추운데도 조금씩 열어두고 지내고 있습니다
커피 장 청소도 해야 하는데 엄마가 안한다고 하여 내가 시범을 보이다가 침대를 모두 버린적도 있으나 지금은 하루에 2번씩 꼭 하고 있습니다 속이 시원하다며 먼저 챙기고 있네요
다태이탕을 먹고부터 기분이 좋아진 엄마가 다태이탕을 좋아하여 계속 구입하여 먹고 있습니다.
오빠가 고농도 산소도 구입 해 주어서 지금은 생수에 산소를 섞어서 하루에 3번이상 먹고 있네요
일단 오늘로 2달이 되었네요 병원에서는 한달을 넘기기 어렵다고 했는대요
엄마가 통증도 줄었다고 하고 식욕도 돌아와 식사도 잘 하고 있으며 두달간 언니 식당에 가지 못했는데 몇일전부터는 식당에서 카운터를 지키고 있네요
이제 의사말은 믿지 않기로 했어요 우리 엄마 이대로만 하시면 언젠가는 인간시대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이 생깁니다
■ 유방암(여자 36세 울산)
아이들이 모두 학교에 가고 남편도 출근하고 설겆이와 청소를 대충 끝내고 나서 커피한잔을 따끈하게 끓여서 창가에 앉았다 모처럼 한가히 유일하게 쉴 수 있는 잠간의 짬이다 탁자위에 남편이 보고난 펼쳐진 신문이 있었다 거기 우연히 유방암에 대한 기사가 실려 있었다
나는 신문에 실린데로 팔을 올리고 왼쪽 유방을 손가락으로 문질러 보았다 그랬더니 콩알만한 망울이 손에 잡히는 것이 아닌가. 작년에 유방암 검사시에도 아무런 이상이 없었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기사에는 피곤하거나 월경시에도 망울이 생길 수 있다고 쓰여 있었다
나도 그렇겠거니 생각하고 자꾸 문질어 보고 찜질도 해 보고 파스도 붙여보았지만 며칠이 지나도 없어지지 않았다 계속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몇일이 지나 가까운 병원에가서 검사를 받아보았다 초음파 혈액검사 등 하루종일 검사만 받았다
몇일후 결과를 보기 위해 의사를 만났는데 의사가 머믓대더니 조심스럽게 유방암이라는 것이었다 하루라도 빨리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둔기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처럼 멍해졌다
의사는 실리콘을 넣은 인조유방을 보여주며 요즘은 의학이 발달하여 인조유방도 조금도 표시가 나지 않으므로 걱정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3일후에 입원수속을 밟으라는 의사의 말을 뒤로하고 어떻게 왔는지도 모르게 집으로 달려왔다
집에오자마자 나는대성통곡을 하였다
내가 아직 죽기는 아깝지 않은가 아직 아이들도 다 키우지 못했고 아직 남편에게도 내가 필요한데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나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유방암이라고 울먹이며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몇분이 지나지 않아 남편은 땀에 흠뻑 젖은체 허겁지겁 문을 열고 들어섰다
우리는 둘이 껴안고 한참을 울고 또 울었다
그날밤 우리는 교회에 가서 철야 기도를 하였다 내용을 알게된 사모도 같이 동참하여 기도를 해 주었다
기도를 통하여 나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고통은 의미가 있다는것 고통은 또 하나의 삶의 의미를 느끼게 해 준다는것 고통은 의지를 갖게 해 준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틀을 울며 서로 다독이며 용기를 얻어 입원하여 수술을 하기로 하였다 4시간의 수술이 끝났고 의사는 매우 성공적으로 수술이 끝났다고 했다는 것이다
다음날 나는 눈을 뜨자 머리맡에 달려있는 여러개의 주사액 병이 눈에 들어왔다
가슴을 만져보니 허전했다 왼쪽 유방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래 암을 이기는데 이정도의 고통은 감내해야 하겠지 오히려 나이먹어 느러졌던 유방을 싱싱하게 만들어 달래야지하고 생각했다
수술한지 20여일이 지나자 퇴원하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 힘겨운 항암치료가 남아있었다 한달에 두번 15일 간격으로 항암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림파선을 절제한터라 왼쪽 가슴이 아프고 무거웠다 어쩌다 무거운 것이라도 조금 들라치면 무척 뻐근해 왔다
통증이 심해 잠을 잘 자지 못해 진통제와 수면제의 신세를 져야 했다
그러나 육체의 통증이 문제가 아니라 내 정신적 충격이 더 큰 문제였다 암이라는 단어는 사람을 정말 무기력하게도 하고 절망감에 빠지게도 하는 단어였다
아무리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또 해도 죽음의 그림자가 자꾸 나를 따라다니는것 같았다
6개월동안 계속된 항암치료는 너무도 힘들었다 머리뿐이 아니고 눈섭 그리고 몸에 있는 모든 털은 모두 없어졌다 체중은 60키로에서 40키로로 줄었다
글자그대로 피골이 상접한 상태였다 아프리카의 빈민을 보는 것 같았다
또한 항암치료가 끝나도 1년동안 타목시펜이란 호르몬제를 복용해야한다고 했다 처음에는 의사가 하라는데로 모두 하였지만 몇달이 지나 별 차이를 보이지 않자 나는 모든 약을 중단하였다
약의 부작용도 힘들었지만 가격 또한 고가여서 매우 부담이 컸기 때문이다
항암이 모두 끝나고 머리도 조금씩 나기 시작했고 음식도 조금씩 먹게 되었을 즈음 다시 검사를 받게 되었다 항암제의 효과를 보고 그간의 경과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라 했다
MRI사진을 보고 있던 의사가 고개를 갸웃뚱하며 의아해 하면서 오른쪽 유방에도 암세포가 보인다는 것이었다 다시 조직검사를 해 보자는 것이었다 분명히 몇달전 검사에서는 오른쪽은 깨끗하고 왼쪽에만 암세포가 있다고 하였는데 이제와서 오른쪽에도 암이 퍼졌다니 정말 하늘이 미웠고 의사가 죽이도록 미워졌다
그러면 그동안 힘겹게 받아온 항암치료는 무엇이란 말인가 수술하고 항암치료 받으면 완치가 가능하다는 의사의 말은 거짖말이었단 말인가 나는 화가 나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나는 남편과 상의하여 다시 오겠다고 말하고 병원을 뛰쳐 나왔다
이제는 도저히 병원도 의사도 믿을 수 없었다 남편에게 나는 이제 죽어도 병원에는 가지 않겠다고 말하고 다른 방법을 찾아보라고 말했다 그 뒤로 남편은 암관련 책자와 각종 정보를 엄청나게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중에 다태이탕요법과 커피관장요법 풍욕법 니시요법 등 수많은 암환자를 치료하였다는 각종 대체요법들의 자료를나에게 주며 잘 읽어보라고 하였다
나는 몇일을 자료를 검토하다가 다태이탕요법,고농도 산소요법과 커피 장 청소 요법을 해 보겠다고 하였고 남편은 다음날 주문하기로 하였다 나는 유방암에 대하여 공부를 하면서 유방암은 항암제가 별 효과가 없으며 항암치료를 받아도 재발이 아주 많고 재발이 되면 치료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일본의 유방암 전문의 곤도교수가 몇년전 양심선언을 통하여 유방암에는 항암제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발표한것도 알게 되었다
내가 지금까지 힘겹게 받아온 항암치료는 사실 병원의 수입을 올려주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1년동안 다태이탕과 커피관장, 풍욕법, 식이요법, 고 농축 산소를 먹어왔고 오른쪽에 잡혀지던 멍울이 없어졌으며 몸이 가벼워지고 기분이 좋아졌으며 몸 상태가 매우 좋아짐을 느끼고 있다
얼마전에는 왼쪽 가슴도 인공유방을 만들어 대중 목욕탕에도 자신있게 가게 되었다 남편은 오히려 예전보다 탄력이 좋아져 처녀 유방 같다면서 농담을 하기도 한다
몇일전 혈액검사(암표지자검사)를 신청 해 놓았는데 아직 결과를 보지 않고 있다 암세포가 없어졌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만약 아니라고 할까봐 자신이 없어 가지 않고 있다
■ 자궁암 치료(청주시 여자 57세)
저희 어머님은 나이도 57세 밖에 안 되셨고 항상 밝고 건강하셨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자궁암 선고는 저희 가족에게 감당하기 힘든 괴로운 시간이었습니다.
또한 역시 건강하시던 아버님도 9월에 건강 검진을 받던 중 위암이 발견되어 10월에 위 전체를 절제하는 수술을 받으셨습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아버님 위암은 진행성이 아니라 조기여서 수술로 끝났지만, 드라마에서도 나오기 힘든 어머님 아버님이 같은 시기에 암선고를 받은 사실은 저희 가족은 받아들이기 힘든 일입니다.
아버님은 아직도 식사에 어려움을 겪고 계신 터라 더더욱 마음이 아픕니다. 저희 어머님은 수술을 받고 이어서 항암을 받는 동안은 머리도 다 빠지셨고 식사도 못하셨지만, 방사선 치료가 진행되고 나서는 빠르게 회복하시어 지금은 겉으로 보기에는 너무도 건강하시고 통증이나 이상 징후도 없습니다.
그러나 항암치료와 방사선이 모두 끝난후 검사에서 자궁에 있었던 혹은 첨엔 4.7cm였으나 약간 커진상태이며 폐와 간에도 전이가 되어 6개월을 넘기기 힘들다며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이럴수가 있습니까
주치의는 수술과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를 받으면 몇년은 살 수 있을 것이며 완치되는 경우도 있다고 하더니 이제와서 6개월이라니 정말이지 화가나서 미칠지경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신약이라며 250만원짜리 항암치료를 받으면 생명이 연장되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장담은 하지 못한다네요
일단 보름후로 예약을 잡아놓고 어머님은 퇴원하셨습니다
어머님은 암이 모두 치료되어 퇴원하는것으로 아시고 기분이 매우 좋은 상태입니다 저는 엄마를 절대 잃을 수 없습니다. 누구에게나 마찬가지겠지만, 저희 모두 에게는 전부인 엄마거든요..아빠는 수술로 끝나긴 했지만, 엄마에 밀려 제대로 돌봐 드리지 못해 맘에 너무 걸립니다.
그러던중 인터넷을 찾아보다가 [암승리자모임]이라는 곳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곳 상담을 통하여 대체의학이라는것을 알게 되었고 우리 어머님과 같은 경우 처음부터 항암치료나 방사선치료는 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제서야 이런 내용을 알게되었다는 자신이 너무도 한스러웠습니다
의사말만 철저히 믿었던 내가 정말 바보였습니다
우리 가족은 [암승리자모임]에서 가르켜준데로 대체요법을 시행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아버지 어머님뿐 아니고 우리 가족 모두가 똑 같이 시행해야 어머님이 의심을 하지 않을 것이기에 같이 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동안 쌓여있는 라면,커피.밀가루,설탕 등은 모두 동생네로 보냈습니다. 그날부터 현미잡곡밥에 야채 나물 위주로 식사를 했고 다태이탕과 고농도 산소를 아버지 어머님께 드렸습니다. 매일 밭마늘을 구워서 먹었고 청국장 가루, 죽염을 먹었습니다. 모든 음식도 죽염으로 간을 해서 먹었습니다
커피 대장 청소요법은 설득하는데 한달정도가 걸렸으나 지금은 우리 가족 모두가 매일 하고 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는 매일 한시간씩 동네 뒷산으로 산책을 하셨으며 집에서는 항상 창문을 열어두고 살았습니다 반찬은 모두 유기농으로 만들었고 들에 나가 민들레 쑴바귀 미나리 등을 캐서 매일 녹즙을 만들어 먹었습니다 일체의 밀가루 음식은 먹지 않으며 육류도 거의 먹지 않고 있으며 가끔 생선을 먹는 정도입니다
저희 집이 높은산 근처라 공기도 좋고 어머님 또한 꼭 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시고 운동도 열심히 하시고 정말 눈물이 나올 만큼 꿋꿋하세요.
대체요법을 시작한지 3개월이 지난후 아버지 어머님 모두 사진을 찍어 보았는데 아버지는 암이 전혀 보이지 않고 어머니는 자궁안의 종양이 1cm로 적어졌으며 폐와 간으로 전이는 보이지 않는다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날아갈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아 세상에는 절망만이 있는 것이 아니고나 이제 암을 치료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수천만원의 병원비만 날리고 고생은 고생데로 하신것이 너무도 억울하지만 부모님이 좋아지고 있다니 그것으로 위안을 삼아야 하겠습니다.
같이 입원하였던 분들이 우리 소식을 듣고 모두 대체요법을 하기 시작하였는데 모두 조금씩 좋아진다는 소식을 들으니 더욱 희망이 생깁니다
몇달후에 완쾌판정을 받았다는소식을 전해드리기를 간절히 열망합니다.
■ 위암 치료(전주시 남자 48세)
내가 처음 이상을 느낀것은 2005년 가을 추석이 막 지난 때 였다 갑자기 몸을 가누기 힘들만큼 위가 심하게 아파왔다. 급히 전주에 있는 가장 큰 병원에 찾아갔다
진찰을 마친 의사는 그동안 너무 과로했기 때문인것 같다면 며칠 경과를 보자고 했다
업무차 서울에 있는 동안 바쁜스케줄에 무리하기도 했고 술을 마셔야 했던 모임도 많았기에 나 역시 일시적인 위장 장애쯤으로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통증은 다음날도 가시지 않았다 다시 병원을 찾아 내 시경을 해보자고 자원했다 내시경을 하면서 담당의사는 위궤양인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혹시 모르니까 조직검사를 한번 받아보자고 했다
조직검사 결과가 나올때까지 기다리면서도 위궤양 이상은 생각하지 못했다
담배는 피우지 않았지만 사람 좋아하고 술을 좋아하는 탓에 술자리가 잦았고 때론 밥 때를 놓치고 과로하는 경우가 많아 그럴수도 있겠다고 여겼다
그런데 조직검사 결과가 뜻밖에 위암이었다 그것도 상당히 진행된 3기라고 했다
이런걸 두고 인생의 아이러니라고 할까 약사인 내가 그동안 건강에 대하여 그렇게 염려하고 많은 공부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암에 걸렸으니 순간 하늘이 노래지는것을 느꼈다
각종 암의 증상에 대해 웬만큼은 알고 있던 나였다
대개 위암은 식욕이 현저히 떨어지거나 체증이 감소하는 증상과 함께 온다 그러나 내겐 아무런 자각증세가 없었다
느닷없이 위암 선고를 내리면서 의사는 당장 수술을 해야 할 큼 심각한 상태라고 했다 서둘러 서울삼성병원에 입원 예약을 하고 수술날짜를 잡았다
암환자가 그렇게 많은지 수술날짜는 보름정도 후에나 가능하다고 했다
나에게 보름이라는 기간은 너무도 괴로운 하루하루 였다
약국을 열었으나 정신이 없어 조제를 잘못하거나 다른약을 주는 경우도 있어 환자의 항의도 여러차례 받았다 결국 일주일만에 약국 문을 닫고야 말았다
나는 일주일 동안 암에 대한 각종 서적을 섭렵하기 시작했다 대체요법, 자연요법,민간요법, 각종 비방 등 동서고금을 통하여 암을 고칠 수 있는 각종 요법에 대하여 책을 수십권을 구입하여 공부하기 시작했다
몇일후 삼성병원에서 위암 절제수술을 받았다 5시간이나 걸려 위의 60%를 잘라내는 대 수술이었다
모든것이 한달도 못되는 기간동안 마치 남의 일처럼 벌어졌다
처음엔 그저 모든일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나 수술에 대한 불안 같은, 암선고를 받은사람들이 겪게되는 인간적인 고뇌에 사로잡힐 겨를이 없었다
5시간이 넘게 진행된 수술은 다행히 성공적이었다는 의사의 말을 나중에 가족을 통하여 들었으며 몇 주 경과를 보고 난후 항암치료를 시작하자고 하였다
사실 수술로 암세포를 모두 제거했다고 하더라도 안심할 수 없는게 암이다 눈에 보이는 위암 세포들은 다 도려냈다고 하더라도 장기 어느구석에 다른 암세포가 자라고 있을지,언제 다른곳으로 전이될지 알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암환자들은 보통 수술 후 8주 이내부터 항암제 투여 등의 화학요법을 시작한다
병상에 누워서 나는 대체요법에 대한 각종 서적을 읽기 시작했다 모든 책에서 한결같이 말하고 있는것은 위암의 경우 항암치료가 별 효과를 보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갈등이 생길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항암치료가 효과가 없다면 왜 모든 암환자들이 항암치료를 받는것일까 의구심이 생겼다
내 옆에 나와 비슷한 환자가 있어 대화를 나누다 보니 항암치료는 암을 치료하는것이 아니고 사람을 잡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던중 나를 문병온 어떤 지인이 게르마늄에 대한 자료를 주고 갔는데 자세히 읽어보기 시작했다
게르마늄으로 위암말기에서 치료되었다는 실제 사례와 각종 암을 이긴 사례가 실려 있어서 여러번 읽어보았다 결국 나는 항암치료를 받지 않기로 하고 게르마늄과 고 농도 산소복용, 커피 장 청소요법 등 대체요법을 시행 해 보기로 하고 퇴원했다
아내와 가족들은 모두 말렸으나 나는 확신이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게르마늄과 산소복용,커피 대장 청소를 중점적으로 시행하였고 녹즙,현미 잡곡밥 위주로 식사를 했으며 아침마다 산에 올라가 한시간씩 운동을 했다
한,두달이 지나면서 나는 몸이 회복됨을 스스로 느끼게 되었다 입맛도 돌아왔고 주변에서도 얼굴색이 많이 좋아졌다는 말을 자주 듣게 되었다
6개월이 지난지금 나는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얼마전부터는 약국문도 다시 열었다 몇일전 혈액검사(종양표지자검사)를 통하여 지극히 정상이라는 통보를 받았다
■ 간암 말기치료(서울 남자 58세)
남편은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데 무슨일인지 술먹고 늦게 오는 날이 많아졌다 거의 일년이 넘게 이러한 생활을 계속하고 있어서 인지 언제부턴가는 소화도 잘 안되고 술을 먹은 다음날은 피로가 풀리지 않아 지각하는 횟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더구나 요즘에는 얼굴색이 새까맣게 변하고 있었다 나는 어느날 남편을 반 강제로 집근처 내과에 가서 각종 검사를 받았다 혈액을 통한 간기능검사와 초음파검사 그리고 간암인지 확인할 수 있는 검사인 AFT검사도 했다
초음파 검사결과 간에 무언가 하얗게 생긴것이 보였다
의사는 AFT검사가 음성으로 나왔다며 지방간이란 진단을 내렸다
남편과 나도 무리한 과음과 스트레스 탓이려니 하며 지방간이란 진단을 믿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이미 남편의 간엔 악성종양이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초음파검사에 하얗게 보이던 부분이 암세포였는데 의사가 AFT결과를 착각하고 오진을 내렸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남편은 병원에서 주는 약을 먹으며 3개월 동안 진료를 받았다
직장생활로 피곤한 것이야 늘상 있는 일이었고 몸무게가 조금씩 빠지긴 했지만 식사도 잘하고 잠도 잘 자니 별일이야 있겠나 싶었다
1년 정도 지나 직장에서 정기건강검진을 받았다 그런데 예기치 못했던 결과가 나왔다 간기능에 문제가 있어 보이니 정밀검사를 받으란 통보였다
지방간인 줄만 알고 치료를 받아왔던게 잘못된 건 아닌가 싶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대학병원을 찾았다 대학병원 진단은 결국 간암말기라는 것이었다
이미 남편의 몸에 퍼진 암세포는 이미 자랄때까지 자라 현대의학으로도 치료가 불가능한 상태까지 와 있었다 의사는 이미 너무 늦었다는것 수술을 해도 가능성이 거의 없지만 그냥 있는것보다는 수술이라도 한번 해보지 않겠느냐고 했다
남편을 진료한 내과의사는 마지막 방법으로 수술을 권하며 외과수술을 의뢰해 놓았다
나는 그저 병원에서 하자는데로 따르고 기다리는 수 밖에는 달리 어찌할 방법을 몰랐다
게다가 나에게 고민이 또 하나 있었다 의사가 암 진단을 내릴때 남편은 그 자리에 없었다 의사가 나만 불러 얘기 했기 때문이다
이 얘길 어떻게 해야 하나, 알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머리속은 온통 얽힌 실타래처럼 복잡했다 결국 수술날까지 받아놓은 이상 본인도 알아야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깊은 숨을 크게 내쉬고 남편에게 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남편은 아무 말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그 얼굴 아래로는 눈물 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나역시 눈물이 한없이 흘렀다 우리는 한동안 손을 꼭 잡고 눈물만 흘렸다
그렇게 한 시간쯤이 후딱 지나갔다 남편은 이내 고개를 들더니 "나 죽지않아"라고 말했다
남편 친구중에도 간암에 걸린 사람이 있었는데 수술만 받고 산에 들어가 1년뒤에 완쾌되어 나온 친구얘기를 하며 나도 그 친구처럼 완쾌할꺼야하고 말하는 남편이 풀이 죽어있는 것보다는 든든해 보였다
남편은 겉으로 보기에는 그이 몸 어디에서도 간암 말기기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몸집이 크진 않지만 단단하고 예민해 보이는 그 모습 그대로 였다 남편의 꿋꿋한 모습을 보자 여기서 희망도 없는 수술날짜만 기다리고 있을수 없단 생각이 들었다
남편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결국 우리는 "후회한다"는 의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병원을 뛰쳐 나왔다
마지막으로 다른 병원에가서 검사를 한번 더 받아보기로 하고 국립 암센타에 가서 검사를 다시 받아보았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간에 종양이 여러개가 있는데 큰것은 12cm.8cm 등이었고 이미 여러곳에 전이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새로울것도 없다는 듯 담담하게 병원문을 나섰다
다음날 직장에 사표를 제출하고 원주 산골에서 농사를 짓다가 비워둔 동생네 집에서 우선 생활하기로 하였다
암치료에 성공한 친구가 가져온 한보따리 암서적을 읽기 시작했다 아울러 인터넷을 통하여 대체요법으로 암을 고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여러가지 요법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친구가 알려준 요법과 책에서 좋다는 요법을 모두 시행하려니 처음엔 먹는양이 너무 많아 다른 식사는 하지 못할 지경이었다
또한 형제 친구 지인들이 암에 좋다고 가져온 것들도 헤아릴수 없이 많았다
이렇게 무분별하게 너무도 많은것을 먹다보니 뭐가 좋은지 해로운지 알수도 없고 몸 상태만 더욱 나빠지는 것 같았다결국 친구와 아내 그리고 책 등을 모두 참고하여 몇가지 핵심요법을 골라 중점적으로 시행하기로 하고 식단을 짰다
잡곡밥,다태이탕,고농도 산소요법.커피관장, 청국장 분말을 먹고 거기에 마늘과 죽염 등을 중점적으로 시행했다. 특히 녹즙재료로 신선하고 질 좋은 야채를 구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 텃밭에 온같 채소를 모두 재배했다 동네 사람들도 많이 도와주었다
또 봄날에는 산과 들로 나가 돌미나리 민들레 질경이등 자연산 재료를 구하여 닥치는데로 먹었다
마침 동네에 폐암으로 고생하시는 할머니가 있어 그 자식들과 같이 모든 행동을 같이 하였다
나로써는 실로 오랫만에 남편과 단 둘이서만 생활하게 되어 오히려 신혼재미도 붙었다 날이 갈수록 남편은 딴 사람이 되어 있었다
평소에 말도 없고 무뚝뚝한 사람이었는데 아주 살가운 사람으로 변했다
의사는 6개월을 넘기기 어렵다고 하였으나 2년여가 지난지금 남편은 산에서 나무를 몇짐을 해 올 정도로 건강해졌다아직 검사는 받아보지 않았지만 암은 모두 치료되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는 도시 생활을 모두 청산하고 본격적으로 시골생활을 시작하기로 하였다 동네분들과도 많이 친해져 허물없이 지내다 보니 이제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는 기분이다
■ 담낭암말기 치료(부산 60세 여자)
엄마가 저녁 식사를 마치고 TV를 보시다가 갑자기 배가 너무 아프시다며 데굴데굴 구르는 것이었다 우리는 어쩔줄 몰라 허둥데다가 엄마가 조금 나아지는것 같아 아내와 같이 엄마를 부축하여 동네 의원을 찾았다
의사는 상황을 듣고 여기저기 만져보더니 단순한 소화불량이 아닌것 같으니 당장 큰 병원으로 가라는 것이었다 결국 부산대학병원 응급실에 들어갔다
피를 뽑고 갖가지 검사를 하더니 담당의사가 아들인 나만 따로 보자고 했다
의사는 암수치가 1000이나 되고 혈압도200까지 오른상태로 보아 암으로 의심되니 빨리 수술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어서 여러가지 검사를 모두 받은후에 결국 담낭과 간에 암덩어리가 있으며 담낭 전체와 담도까지 암이 퍼졌고 간에도 8cm크기의 암세포 덩어리가 있었다
의사는 아주 심각한 상태이며 3개월을 넘기기 어려울 것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의사에게 간곡히 부탁을 하였다
엄마에게는 단순한 염증으로 수술을 하고 얼마 치료를 받으면 낫을 수 있다고 말씀드리도록 신신당부를 하였다
그러나 수술 하루전
의사가 엄마에게 수술이 10시간 이상 걸린다는것과 혹시라도 마취에서 못 깨어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으므로 가족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있으면 다 하라고 하는 바람에 결국 엄마가 알게 되었다
엄마는 수술을 하지 않겠다고 울부짖었다
온가족이 모두 울음바다가 되었다
결국 의사가 수술을 하지 않으면 염증이 너무 심해 통증을 견딜 수 없으며 수술이 잘되고 다른 치료를 잘 받으면 치료가 된다고 의사와 가족들이 모두 사정하여 결국 수술실로 들어가게 되었다
수술은 아침 7시부터 시작하여 저녁5시까 되어 끝났다
담낭과 담도 그리고 간의 1/3을 절제했다고 했다 수술이 끝나고 몇일이 지났으나 엄마는 아무것도 먹지 못했고 몹씨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몸에는 몇개의 주사바늘을 꼽고 포도당이며 각종 액체로 된 주사기구를 달고 있었다
결국 가스가 나오고 조금씩 미음을 먹기 시작했고 이윽고 어느정도 아물자 몇일후에 항암치료를 받으러 오라는 말을 듣고 퇴원했다
의사는 더 이상 다른 치료법이 없었기 때문에 항암치료를 권했다
우리 가족은 엄마가 항암치료를 받아야 할지 아닐지 결정할 수 가 없었다 간암이나 담낭암 으로 고생하신 분이나 그 가족들은 항암치료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한사코 말렸으나 의사가항암치료를 받으면 좋아지는 경우도 있다는말에 모두 흔들리고 있었다
내가 여러경로로 알아본 바로는 담낭암의 경우 항암치료에 의하여 호전되는 경우가 거의 없고 항암제는 암세포뿐 아니라 정상세포도 파괴하여 많은 부작용으로 엄마가 엄청난 고통을 겪게 된다는 것이었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같은 회사 동료의 모친도 담낭암이었는데 수술도 하지 않고 민간요법으로 많이 좋아졌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었다
그 친구가 많은 자료를 전해 주었다
그중에서 많은 대체요법과 식이요법 건강식품중에서 몇가지를 권해 주었고 우리도 그 친구의 모친이 시행한 것을 똑같이 하기로 하였다
잡곡밥과 녹즙, 죽염,유근피하고 티베트 버섯이라는 것을 매일 먹었고 동네 한바퀴씩 매일 운동을 하였다
그리고 우연히 다태이탕이라는 것을 알게되어 하루 세끼 식사전에 먹었고 하루에 3번씩 커피로 장 청소를 하였다 한달 두달이 지나자 엄마가 조금씩 차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피골이 상접했던 모습에서 살도 조금씩 불었고 화색도 돌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입맛이 돌아와 무엇이든 먹고 싶다는 것이었다
너무 과식하지 않나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동안 못먹어 너무도 안쓰럽던 생각을 하면 그때보다 보기가 좋아 그저 무엇이든 드시고 싶다는 것은 무조건 드시게 하고 있다
그동안 한약도 수없이 먹어봤고 침, 뜸,부황도 많이 했지만 특히 부항이 효과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2년이 지난 지금은 교회도 열심히 나가시고 봉사활동도 많이 하시며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지금도 매일 다태이탕과 커피 장 청소, 죽염은 꾸준히 복용하고 있다 좋은 음식을 먹어서 암이 치료 된 것도 있겠지만 가장 큰것은 엄마의 신앙심이 깊어 하나님이 많이 도와주신것 같다
■ 대장암 (62세 남자 춘천)
저희 아버님은 거의 보름이 넘게 변을 보지 못하여 통증이 심해지자 서울에 있는 큰 아들인 우리집에 오셔서 병원에 데려다 달라고 하여 동네 내과에 가 보았으나 초음파검사를 하던 의사는 큰 병원으로 가라는 것이었다
나는 아버님을 모시고 중앙병원에 입원하게 되었고 각종 검사를 통하여 대장암이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수술날짜를 잡고 다시 입원하여 개복하였으나 암이 너무 많이 퍼져 수술을 할 수 없어 다시 덮을수 밖에 없었다
결국 아버님은 바이패스 수술로 임시로 변을 통하는 수술을 하고 퇴원하게 되었다 의사를 붙들고 어떻게든 방법이 없겠냐고 통사정을 해 보았지만 현대의학으로는 어쩔 수 없다는 말만 하였다 우리 5남매는 며칠간 고민을 하였다
아버님을 이렇게 보낼수는 없었다 아직은 한창이실 아버님이고 우리 5남매를 키우기 위해 평생을 헌신하신 분이었다 거의 평생을 옷 몇벌로 살아오신 분이며 아직도 고무신을 기워서 신으시는 그런 아버님이시다
우리 형제는 일주일동안 백방으로 정보를 수집하여 일요일에 만나서 결정하기로 하였다
일이 바쁜 셋째와 둘째를 제외하고 3형제가 맡아서 하기로 하였다
각종 암관련 서적은 물론 인터넷의 각종 대체의학 자료와 대체요법 그리고 암을 잘 치료한다는 몇군대의 한의원 등을돌아다니며 자료조사를 하게 되었다
또한 각종 침요법, 뜸,부항 등 한의학적인 치료방법도 한의사를 통하여 자문을 구하기도 하였다
전국의 암을 잘 고친다는 한의원중에서 한군데를 택하여 아버님을 입원하기로 하였다 입원비가 한달에 3백여 만원이라고 하였지만 아버님만 살릴 수 있다면 우리 형제가 합심한다면 큰 문제는 아닐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한달간 입원한 한의원에서는 너무도 무성의하였고 아버님도 견디기 힘들고 전혀 효과도 없어서 한달만에 퇴원하게 되었다
급기야 공기좋은 청원에 살고 있는 네째가 아버님을 모시고 대체요법을 시행하기로 하였다 이때 알게 된 것이 다태이탕과 게르마늄과 커피관장요법이었다
다태이탕은 물이고 게르마늄은 알약이므로 아버님이 잘 드셨으나 커피관장은 죽어도 하지 않는다고 하여 결국 하지 못하다가 자식들이 눈물로 호소하면서 넷째와 재수씨도 같이 하는 조건으로 결국 시행하게 되었는데 몇일이 지나면서 변을 잘 보게 되자 지금은 자청하여 하루에 두번이상을 하고 계신다
거기에 하루에 9번구운 죽염과 마늘을 드시고 계시고 녹즙은 드시기 싫어하시어 과일즙으로 대신하고 있으며 자연산 상황버섯을 어렵게 구하여 알약으로 된 것을 복용하고 계신다
한 3개월 까지는 크게 좋아지는것을 느끼지 못했는데 4개월째가 되면서 부터 확실하게 좋아지기 시작하였다 그 동안 음식도 잘 못드시고 거동도 잘 못하셨는데 이제는 동생네 낚시터에도 같이 가시고 식사도 하루 세끼 잘 드시며 특히 변을 거의 매일 시원하게 보신다고 하니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다 나았다고 춘천으로 가서 농사를 짓겠다고 하시는 것을 겨우 말리고 있다 일년정도가 지나면 종합검진을 받아볼 생각이지만 지금의 상태로 본다면 암은 거의 치료된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아버님이 좋아지기 까지는 여러 약이 작용을 했겠지만 우리 형제들이 거의 매일이다시피 내려가 아버님을 위로하고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드 린것이 큰 힘이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옆에서 24시간 아픔을 같이 하신 어머님의 노고가 가장 클 것이다 우리 자식들은 아버님의 칠순 잔치를 보기를 원했지만 이제는 팔순으로 높혀도 될 것 같다
■ 다태이탕은 놀라운 약이다 - 작가 A씨, 55세 -
나는 어렸을 때부터 질병과는 인연이 매우 깊은 사람이었다. 간장, 신장, 전립선 등 내장은 거의 못쓰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특히 간장은 심했다. 요 5~6년 사이에 7~8회나 입원했다.
그러니 대학병원에 입원했었는데 3월에 퇴원한 뒤로 친구의 소개로 이 다태이탕을 알게 되어 그 때부터 계속 애용해하고 있다. 하루에 3회 아침, 낮, 저녁 식전에 먹고 있다..
10일쯤 되는 날부터 왠지 좋아진 것 같았다. 그야말로 개운한 느낌이 들었다. 식욕도 되살아 났으며 그 때까지 여기저기 아픈 데가 많았는데 1개월쯤 부터는 그것도 없어졌다. 그래서 지금은 예전과 같은 건강체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피부에도 탄력이 생겼으며 아침에도 일찍 일어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수면시간도 짧아졌다. 나는 이제까지 날마다 술을 마시고 있는데 예전과는 달리 아무리 마셔도 3~4시간의 수면으로 잠이 깨어나게 된다. 물론 술을 마시고 있으면 다태이탕 먹는 것을 잊어버리기가 쉬운데 1주일쯤 먹지 않게 되면 바로 컨디션이 나빠진다
나 같은 경우는 몸 여기저기에 아픈 데가 많기 때문에 약도 1회 20알 정도를 먹어야 한다. 그런데 다태이탕을 먹기 시작한 뒤로는 이 약들도 끊었다. 그 때까지 먹고 있던 바이타민제도 끊었다
어쩌면 만병통치약은 아닐지 모르지만 나의 경우는 그것으로 굉장한 효과를 보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체질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지 않은가 한다.
대체의학에서 말하고 있는 것은 결국 옛날의 생활로 되돌아 가라는 것이었다. 자기의 몸 속에 힘을 만들라는 것이다.
나는 엉망이 되어 있는 몸이었으므로 건강법이라고 하는 건강법은 모조리 실행해 보았으며 좋다는 생각으로 건강식품은 모두 먹어 보았다. 그래서 돈도 많이 들었다. 건강법이라는 것은 이 쪽의 약점을 노려 엉뚱한 요금을 긁어 가는 것도 많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별 효과가 없었으며 또 오래 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다태이탕만은 돈도 별로 들지 않고 또 효과도 있으므로 오래동안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남에게 이것을 권하고 있진 않지만 주위 사람들에게서 여러가지 실례를 보고 있다.
내가 잘 아는 폐경기의 어떤 여성은 다태이탕을 먹기 시작하자 생리가 다시 시작되었으며, 나의 전처는 말기 자궁암으로 이제 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해 왔는데 기적적으로 이 다태이탕과 고 농도 산소 복용으로 되살아난 것이다.
그리고 나도 지난 번에 대학병원을 퇴원하면서, 6개월 후에 X-레이 검사를 받으러 와야 한다는 말을 들었는데 끝내 가지않고 말았다. 자연요법에 의하면 방사선은 나쁘다는 것이므로 2년쯤 가지 않을 작정이다. 이제는 보통 병원에는 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 뇌졸증(뇌경색)이 놀라운 호전을 보고 있다 - N씨, 주부 33세 - 나는 최근 건망증이 심해져서 나 자신도 뇌에 뭔가 장애가 생겨 있지 않은가 하고 불안해 했다. 그래서 뇌외과 전문의 병원에서 MRI라는 핵자기(核磁氣)의 공명현상을 사용한 검사와 CT 스캔의 X-레이 검사를 받은 바 있다.
그러자 양쪽 화상에 뇌의 뇌간에 가까운 부분의 혈관이 막혀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이른바 뇌경색의 의심이 농후한 것이다.
그 부분은 생명의 유지에 직접 관계되어 있으므로 만일의 경우에는 생명을 잃게 된다고도 한다. 그리고 혈관조영제를 사용한 X-레이 검사를 하도록 의사는 권했다.
마침 그 무렵 다태이탕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동시에 다태이탕은 뇌의 장애에 대해서는 고농도산소 요법을 반드시 같이 하도록 권하고 있기에 산소도 모든 것에 항상 30방울씩 섞어서 먹고 있다
그리고 혈관조영검사는 여러가지로 망설이고 있었는데 현대의 의료수준으로는 절대로 사고는 없다는 말을 듣고 그대로 받아보기로 했다. 마치 그 전의 검사에서 뇌경색의 의심이 있었던 터라 다태이탕과 산소요법을 시작하여 3주일째에 검사를 받았다. 결과는 전혀 이상이 없었으며 뇌의 혈관이 막힌 것은 아무 곳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의사는 검사 때의 그림자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도 해 주지 않았다. 보다 정밀한 검사로 이상이 없다고 나와 있으니 그것으로 되지 않겠느냐고만 말했다.
그러나 나로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다태이탕과 산소요법이 효과를 나타낸 것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몇 년이 지금까지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 높았던 혈압도 안정되었으며 모든 것이 다태이탕의 덕분이라고 생각하고 감사하고 있다.
■ 간암이 된 간경변이 게르마늄을 먹고 완치되었다 - Y씨, 공무원 46세 -
나는 1985년부터 간장병 때문에 세번이나 입퇴원을 거듭하여 최종적으로 간경변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 뒤로 친구의 권유로 2년전부터 게르마늄과 고농도산소를 먹고 있다.
이것을 먹기 시작한지 5개월 후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는데 종양의 흔적이 없어졌으며 나를 비롯하여 의사들도 매우 놀랐다. 가족들도 모두 매우 기뻐하여 참으로 게르마늄 건강법에 대해 감사하고 있다.
나는 게르마늄과 고농도 산소를 먹고 있다는 것을 의사에게는 말하지 않았으며 병원에서 받은 약도 전혀 먹지 않고 있다. 게르마늄은 먹기 시작하고 부터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있다.
불행하게도 작년에 동생도 나와 같은 증세로 밝혀져 병원에서는 치료가 어렵다는 말을 했으나 나의 경험을 살려 게르마늄과 산소를 생수에 섞어서 먹고 죽염과 밭마늘을 먹고 있으며 풍욕과 반신욕 등으로 많이 좋아지고 있어 매우 만족하고 있다
■ 자궁암말기가 몇개월만에 완치되었다
인기 만화가 A씨의 부인 E씨는 이렇게 증언하고 있다 어느날 대하가 심하여 국부가 심하게 헐어서 산부인과에 가서 검사해본 결과 자궁경부암이라고 진단을 받았다
굉장한 충격이었다.8월 17일의 일이었다.병원에서는 당장 수술해야 한다고 했지만 나는 이왕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이라면 살 때까지 편하게 있는 것이 나을 것 같아 수술받기를 망서렸다.
그러니까 이미 죽음을 각오한 셈이었다.어차피 4기 암이니까..
그리고 남편도 어차피 멀지 않은 인생이라면 조금이라도 같이 있겠다며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고 영국 유학을 계획중인 딸아이도 그걸 취소했다
이러던 중 이웃의 권고로 다태이탕과 고농도 산소를 먹고 20일밖에 못산다는 암환자가 완전히 회복되어 요즘 소프트볼 시합에도 나간다는 말을 듣게 된 것이다
나는 이틀 후 부터 다태이 야채탕과 현미차를 마실 때 고농축 산소를 60방울씩 섞어서 먹기 시작하였다.
이때 육류는 일체 금하고 첨가물도 금했다. 식사도 철저하게 자연식으로 바뀜으로 금속류도 몸에 해롭다 하여 모두 떼어냈다 그러자 금방 그렇게도 심하던 대하가 없어지고 식욕도 생겨났다.거므스름하던 피부도 깨끗 해 지고 불면증도 사라졌다
이 모든 것이 믿어지지 않는 매우 빠른 속도로 진해되었다. 그리고 그때까지 죽을 것 같은 고통도 순식간에 사라지고 10kg이상이나 줄었던 체중이 예전 체중으로 되돌아 왔다. 정말로 기적같은 일이었다
10월 22일 병원에 가서 온갖 검사를 다 받았는데 암이 깨끗하게 없어 졌다는 것이었다 배를 가르지 않고 다태이탕과 산소만 먹고 암이 없어지다니 생각해도 기적 같았다. 그때의 감격은 오직 엉엉 울뿐이었다
식생활도 자연식으로 바꾸었고 육류는 철저하게 금하고 있다. 물론 육류에 대한 미련은 있지만 그렇다고 꼭 먹고 싶은 생각은 없다.그리고 나는 평소에 라면을 몹시 즐겠는데 지금은 먹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다
이렇게 해서 나는 죽음의 공포로부터 해방되어 또 다른 인생을 살 게 되었는데 그 동안의 심신 양면의 고통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이것을 직접 목격한 가족들도 지금은 모두 다태이탕을 먹고 있다
■ 말기암 치료 (서울 68세)
어머니는 금년 68세이시고 몇년전 서울 순천향 병원에서 간에 생긴 결석을 초음파로 제거하는 수술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작년 12월초에 소화도 안 되고 오한이 나서 순천향 병원에 다시 입원하여 진단을 받으니 외과적인 수술을 할수 없을 정도로 암이 온몸에 퍼져있다는 내용과 간및 담도 그리고 췌장까지 암이 전이되어 항암치료도 불가하다는 진단이 나왔습니다. 몇달을 넘기기 어렵다는 말도 했습니다
결국 입원 20일만에 검사만 받고 퇴원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님에게는 감기몸살이라고 하고 약을 지어 왔습니다 그러나 계속 오한및 소화 불량으로 음식을 먹지 못해 동네 의원에서 담도에 염증이 있는 것 같다는 진단으로 항생제와 진통제로 세월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식사도 잘 못하시고 겨우 죽정도로 연명을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어 혼자 몸으로 5남매를 키워오신 분입니다
겨우 작년에 막내가 결혼하여 이제 어머님을 장자인 내가 편히 모셔볼까 하던중에 이런일을 겪게되니 하늘이 무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친척들이 암에 좋다는 이런 저런 약들을 많이 가져왔는데 그중에서 게르마늄이라는 약이 있었습니다 약속에 들어있는 설명서를 읽던중 [암승리자모임]이라는 사이트를 알게 되었고 그곳에서 대체의학 전문가와 상담을 하게 되었습니다
상담으로 대체표준요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공기좋은 곳에서 대체요법을 시행하면 호전도 되고 완치도 가능하다기에 일년간 휴직계를 내고
어머님을 모시고 영월 산속의 민박을 장기 임대하기로 하였습니다 민박집의 주인님이 너무도 좋은 분이셔서 가격도 저렴하고 부억도 내것처럼 사용하고 정자 정원도 모두 내집처럼 사용할 수 있게 되어 불편함이 없었습니다
게르마늄과 고농도산소는 구입하여 먹지만 다태이탕은 텃밭에 유기농으로 재료를 재배하여 만들어 먹으면서 반찬은 모두 산과 들에서 캐온것으로 만들어 먹었으며 매일 어머님을 모시고 조금씩 산책을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주로 죽만 드셨었는데 근래에는 잡곡잡을 조금씩 먹기 시작하셨고 얼마전에는 계곡에서 잡은 민물고기로 매운탕을 만들어 드렸는데 밥 한공기를 거의 다 잡수셨습니다
창백했던 혈색이 많이 좋아지셨습니다
이웃분들하고 10원짜리 고스톱도 몇 시간씩 하고 있습니다
이곳에 온지 3개월이 지났습니다. 이제는 살것같다고 하십니다 이제 다 나았으니 집에 가자고 하십니다
처음에는 몇발짝도 걷기 힘들어 하신분이 지금은 한두시간 산행을 하실 정도이니 많이 건강해 지셨습니다 오늘은 높은곳으로 버섯을 따러 가자고 하십니다
옛말에 밥이 보약이다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밥을 잘 먹고 소화를 잘 시키면 그것이 바로 건강이다라는 뜻일 것입니다 병원에가서 정밀검사를 받아보지는 않았지만 어머님은 분명히 좋아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1년정도만 지금처럼 대체요법을 철저히 시행한다면 분명이 완쾌되리라는 확신을 갖고 있습니다
■ 백혈병이 치료
나와 가까운 친구인 프로야구의 유명한 감독이 임기 초기에 교체된 일이 있었다. 이유는 성적 불량 때문이었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의 부인이 백혈병에 걸려 돌봐야 한다는 것이 진짜 이유였다
얼마 안 있어 나를 찾아와서 하는말이 그의 부인은 백혈병으로 병원에서는 반년밖에 살 수 없다고 선고했다는 것이었다 내가 만난 부인의 모습은 항암제치료로 인하여 머리카락은 완전히 빠졌고 야윌데로 야위어 피골이 상접해 있었다
제중은 35kg에 불과했다. 그러나 나는 우선 친구에게 전부터 알고 있던 다태이탕을 가르쳐 주었다 부인은 그날부터 다태이탕을 구입하여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달이 지난뒤 연말에 정기적인 혈액검사를 받았는데 놀랍게도 혈액상태는 거의 정상치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그러니까 불과 1개월 만에 놀라울 정도로 호전된 것이다 병원에서는 도저히 치료할 수 없다던 그 백혈병이 말이다
그야말로 이것은 기적이었다 부인의 죽음을 기정사실로 여기던 의사는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이렇게 해서 그녀는 완쾌된 몸으로 자기 집에서 설을 보내고 지금도 건강하게 살고 있으며 프로야구 감독도 다시 복직되어 훌륭한 성적을 올리고 있다
■ 당뇨병이 정상이 되었다 D씨 35세 여배우
예전부터 몸에 좋은 다태이탕에 대해서는 들어왔으나 가격이 만만치 않아서 먹지 않았었다 나는 위 수술을 했는데 1년에 한번씩 검진때마다 의사로부터 위에 종양이 생길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뭔가 하지 않으면 안되겠다고 행각하고 있을 때 다태이탕에 대한 말을 상기하게 되었다 그래서 다음날 구입하여 먹기 시작했다
남편도 함께 먹었는데 변이 잘 나온다는 말을 듣고 그것이 오직 다태이탕 덕분이 아닌가 하여 77세의 어머니도 드시게 했다
나의 효과로서는 우선 변이 잘 나온다는 점이었다. 어머님은 얼굴에 늘 기미가 끼고 그것이 나이가 듦에 따라 짙어져 갔는데 이것을 드신 뒤 부터는 그것이 어느정도 엷어져 갔다
남편도 손들에 기미나 점 같은 것이 많았는데 그것도 없어졌다 다태이탕은 혈액을 끼끗이 하여 신진대사를 활발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몸이 젊어진다고 한다. 그것을 나는 실감하고 있다 다태이탕을 제대로 반년만 먹으면 종양(암) 같은 것이 생길 걱정은 없어진다고 한다
그래서 반년간 꼬박 다태이탕을 먹었다 또한 친구의 소개로 고농도 산소를 알게되어 지금은 다태이 야채탕과 현미차에 산소를 섞어서 먹고 있다 그 덕분으로 지금은 완전히 건강에 자신을 갖게 되었다
나는 직업이 배우이므로 안쪽으로부터의 활력이나 기운이 매우 중요한데 자연히 몸에 생기가 돋아나는 느낌이다
우리집에서의 효과에 놀라 친척들에게도 권했다 그러자 당뇨병으로 고생하고 있던 조카가 다태이탕을 먹고 혈당치가 2개월쯤부터 내려가지 시작하여 지금은 정상치가 되었다
의사도 이것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이상하다고 말하고 있다
■ C형 간염이 사라졌다 G씨 공무원 35세
나는 C형 간염으로 인터페론을 일주일에 3번씩 30회 정도를 맞고 있었는데 다태이탕요법을 알고부터 당장에 시작하였다 인터페론을 중단하고 다태이탕을 복용하고 나서 한달후에 검사에서 정상치로 돌아가게 되었다
주치의도 이럴 수가 있느냐고 고개를 저었으나 나는 다태이탕밖에 먹은일이 없다고 했다 아내는 어릴적부터 코가 잘 막히고 불면증이 있었으며 어른이 된 뒤부터는 알레르기성 비염이라는 진다을 받고 이것 저것 치료를 받은 바 있었다
그러나 효과는 전혀 없고 요즘은 특히 심한 상태이다. 그리고 무릅의 통증으로 식사때에는 오른쪽 무릅을 뻗고 식사를 하는 상태이다 그러던중 다태이탕을 먹기 시작하고부터 어느새 무릅을 끓고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다태이탕을 먹은 지 약 3개월만에 거의 나았으며 이젠 인생이 달라진 것 같아 매우 기뻐하고 있다 여기에 고농도 산소를 구하여 생수에 30방울씩 섞어서 마시고 있으며 커피 장 세척도 하루에 한번씩 꼭 하고 있다
몇 년동안이나 병원에서 받아온 약으로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는데 다태이탕을 먹기 시작하여 1개월만에 정상치로 되돌아가 그야말로 믿을 수가 없을 정도이다
주위를 돌아보면 건강하게 생활하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우리들의 경험을 여러분에게 전하여 도움을 주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 항암제의 부작용이 줄었다 M씨 가정주부 65세
나는 다태이탕의 효과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그 불가사의함에 감명을 받았다 실은 며느리가 폐암 선고를 받고 깜짝 놀랐는데 탕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그대로 실행했다
암 선고로부터 입원하여 치료가 시작될 때 까지의 1개월 남짓한 검사가 계속 되었으나 그 동안에 다태이탕을 날마다 먹고 있었다 덕분에 항암제를 맞으면서 구역질이 나거나 모발이 빠지는 일이 없게 되었다
그뒤에 고농도 산소를 섞어서 먹으면 더욱 좋다고 하여 지금은 무엇이든 마시는것에는 무조건 산소를 30방울씩 섞어서 먹고 있다
그 뒤로 X레이 사진을 찍은 결과 암세포가 작아졌다는 결과를 듣고 기뻐서 눈물이 날 정도였다 그리고 두 번째의 항암제를 맞았는데 그 전보다 다소 힘이 든 것 같았으나 그대로 별일 없이 지냈으며 얼마후에 퇴원하게 되었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거르지 않고 다태이탕을 먹고 있으며 나도 함께 먹고 있다
■ 폐암이 없어졌다 K씨 가정주부 42세
동생이 폐암에 걸려 4기의 상태에서 수술을 했다. 임파선으로 전이한 것은 떼어내지 못하고 1회 항암제를 맞았는데 효과가 전혀 없는 것 같아 여러 가지로 생각끝에 내가 류머티스 치료를 위해 먹고 있던 게르마늄을 권했다
여기에 자연산 상황버섯 생환을 구하여 먹기 시작하여 퇴원후에도 계속 먹고 있으며 병원에서 준 약은 전혀 먹지 않았다
퇴원전에는 사타구니와 허벅지 ,엉덩이에 걸쳐 심한 통증이 있고 전이된 것 같았는데 집에 돌아와 통증을 없애는 약을 끓고 오직 게르마늄만을 먹은 바 일주일쯤 되어 통증이 없어졌다
본인은 항암제를 맞고 있을 때에는 이대로 병원에서 죽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으며 주위 사람들도 그녀의 몸이 날로 나빠지는 것을 알 정도였다
그것이 지금은 참으로 건강을 되찾아 12월2일의 혈액검사에서는 모두가 정상이었다. 게다가 우리집에서는 굉장한 일이 생겼다 10년동안이나 간이 나빠 병원에만 다니던 어머니가 누이동생의 호전을 보고 게르마늄을 먹기 시작한 것이다
그 전에 어머니에게도 게르마늄을 권했으나 오랫동안 낫지 않던 것이 그 따위것을 먹고 나을 리가 없다고하여 먹지 않았기 때문이다 얼마후 병원의 검사에서 간이 깨끗해 졌다는 결과를 보고 모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한사람이라도 병으로 고생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게르마늄이 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뿐이다
■ 말기암이 거의 완치되었다 (고양시 관산동 여 50세)
나는 2005년 4월에 강북삼성병원에서 암이 온몸에 퍼져 6개월을 넘길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그동안 체중이 많이 줄었지만 과로와 체질문제로만 알고 지내오다가 친구의 반강제성 권유로 동네 병원에가서 초음파 검사를 받게 되었는데 의사는 큰 병원에 가보라고 하는 것이었다
암이 많이 진행되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동안 암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치 못했다 집안식구중 누구도 암환자가 없었기에 더욱 그랬다
강북삼성병원에서 각종 검사를 받은 결과 대장에서 난소 간 등으로 전이되어 손을 쓸 수 없으나 항암치료나 한번 받아보자고 했다
남편은 나를 살리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고 CT 사진과 검사기록표를 가지고 다른 병원의사와 상담하였으나 결론은 마찬가지였다
나는 항암치료를 받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였으나 남편은 항암치료는 도움이 되지 않고 죽어가는 수순이라면서 의사의 권유를 뿌리치고 퇴원했다
나는 집에서 하루에 커피 장 청소 3번이상,다태이탕,게르마늄,고농도 산소, 상황버섯 생환 등을 복용하기 시작했고 저녁에는 한시간씩 걷기 운동을 하며 지내왔다
한달여가 지나면서 복수가 차기 시작했고 숨이 가빠오면서 음식을 거의 먹지 못하게 되었다 나는 너무 힘들어 남편에게 항암치료를 받게 해 달라고 애원했으나 남편은 절대 안된다는 것이었다
하는 수 없이 남편의 권유데로 대장청소와 대체요법을 계속 해 오던중 3개월여가 지나면서 배가 조금씩 들어가지 시작했고 음식도 조금씩 먹을수 있게 되었다
1년이 지나면서 40인치를 넘었던 허리가 복수가 빠지면서 35인치로 줄었고 2년이 지나면서 30인치로 줄어 들었고 3년이 지난 지금은 28인치로 옛날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와서 요즘은 그동안 입지 못했던 청바지도 마음껏 입게 되었다
나는 일상생활에 전혀 지장이 없으며 거의 정상이 되었다 그러나 지금도 하루에 한번이상은 대장 청소를 하고 있으며 다태이탕도 계속 복용하고 있다 나를 살린 것은 남편의 사랑이 가장 컸겠지만 그 다음으로 고농도 산소와 게르마늄요법이라고 확신한다
■ 췌장암이 대부분 사라졌다
환자성명 |
비실명 |
성별 |
여자 |
나이 |
52 세 |
환자와의관계 |
아들 |
생년월일 |
1955-01-15 |
병명 |
췌장암 |
암 진단일 |
2006-11-24 |
병기 |
말기 |
생존예측기간 |
6개월 |
암진단병원 |
인하대학병원 |
전이여부 |
네 |
전이부위 |
임파선 |
재발여부 |
선택 |
재발부위 |
|
재발일 |
|
복용중인 대체식품 |
게르마늄,고농도산소 |
복용신청 대체식품 |
다태이탕 |
주치료 기관 |
삼성의료원 |
주치료 |
양방:0% 한방:0% 대체:100% |
대략적 치료경과 |
1개월 만에 암이 멈춤.그로부터 2달만에 암 70%소멸,,그로부터 4달후 스트레스와 여러가지 잘못으로 황달이 옴..현재 황달관 시술 후 집에서 운동과 식이요법을 다시 철저히 하고 있습니다
암은 4개월 전 그 상태에서 멈춘 상태이고 췌장이 부어서 담도를 막은 것이라고 함[의사]..약간의 통증으로 조금은 힘들어 하고 있습니다..우리는 이겨 낼 것이다. |
총 소요비용 |
주 치료비: 20만원 보조경비: 10만원 |
비고 |
게르마늄과 고농도 산소,다태이탕,구운마늘,과일,식사는 잡곡밥과 채식,생선.. 우리는 운동과 식이요법을 열심히 시행하고 있습니다 | |
첫댓글 어디서 이런 좋은 사례들을 모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