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자 나라 스위스인의 위기의식(危機意識)
"당신은 지금 잠이 오는가?“
스위스는 1인당 국민 소득이 9만달러로 전 세계 4위의 부자 나라다.
그런데, 스위스 국민들은 2016년 6월 5일 전 국민에게 매달 2,500
스위스 프랑(약 300만원) 가량의 생활비를 지급하는 기본 소득안을
국민투표에서 77%의 반대로 부결시켰다.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직업과 수입에 상관없이 무조건 기본소득을 제공해 스위스를 지상
최고의 ‘복지 천국’으로 만들 제도로 기대를 모아왔지만, 증세와 나라
재정 부족 등 기타 부작용에 대해 우려하는 국민들의 걱정과 미래에
대한 위기의식의 벽을 넘지 못하고 좌초됐다.
일부이지만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정서와
거리가 멀어 놀랍다.
스위스를 여행하다 보면 스위스 중부 알프스 기슭에 위치한 '루체른'
이라는 도시가 나온다.
이 도시 시내를 관통하여 로이스강이 흐르고, 도시 가운데에는 빙하
가 녹아 흘러 내려 만들어진 푸르른 호수가 있다.
그 호수를 지그시 아래로 내려다보는 언덕 바위벽에 '빈사(瀕死)의
사자상(獅子像)'이 조각되어 있다.
이 사자의 모습은 1792년 프랑스 대혁명 당시 루이 16세의 왕궁을
끝까지 지키며 혁명군과 싸우다가 모두 전사한 스위스 용병 786명의
용맹스러운 모습을 그린 것이다.
스위스는 역사적으로 용병의 나라다.
용병들은 가난한 조국에 남아있는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머나먼
타국에서 용병으로 목숨을 바쳤다.
이 조각상은 용병으로 활동한 선조들의 뼈아픈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서 만들어졌다.
조각상의 사자는 화살이 심장을 찔렀음에도 용병들의 주인이자 조국
프랑스 부르봉 왕조를 지키기 위해 왕조의 백합 문양이 새겨진 방패를
끝까지 발밑에 지키고 죽어 가고 있는 모습이다.
스위스 사람들과 어린이들이 이 사자상을 많이 찾는다고 한다. 이들은
사자상 조각을 관람하면서 지금 자기들이 누리는 세계 최고 수준의 복
지와 풍요는 이렇게 타국의 왕조와 다른 나라를 지켜주는 대가로 자기
목숨을 기꺼이 바친 선조들의 고결하고도 참혹한 죽음의 희생 결과라는
것을 마음에 새기고 각오를 다짐한다고 한다.
스위스 국민들은 비록 지금은 풍요롭게 살지만 항상 과거 용병시절의
가난을 다시는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고,
항상 이를 염두에 둔다고 한다.
물론 지금도 로마 바티칸의 경비는 스위스 용병들이 지킨다.
그러므로 그들은 월 300만 원의 기본 생활비 지급을 77%의 국민들이
반대했던 것이다.
다시는 가난한 나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유럽 대부분의 나라들은 오전 10시가 넘어야 가게 문을 열고, 오후 5시
정도가 되면 가게 문을 닫는다.
그러나 스위스 관광지에는 새벽부터 가게를 열고 밤 늦게까지 장사를
한다.
그 이유는 다시는 그 가난을 경험하고 싶지 않다는 위기의식을 230년
이 지난 지금도 국민들이 공감하고, 근검절약하며 미래를 대비하고 있
다는 것이다.
따라서 루체른 시내에 있는 로이스 호수 변에 앉아 웃으며 담소하는
사람들은 관광객들이지만, 심각하게 철학적 사유를 하고 있는 진지한
모습의 사람들은 스위스 사람들이라는 말도 있다.
그들은 그 아름다운 호수 가에서도 나라와 자기들의 미래를 생각하며
다시는 가난한 시절의 과거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짐 한다고
한다.
"그런데 대한민국 우리는 어떤가?"
5천 년 역사에서 938번의 외침으로, 평균 5.3년마다 침략을 받았고,
근대에는 36년간 일본의 식민지로 나라를 잃었다가 미국이 주도한
연합군의 덕으로 겨우 독립을 얻어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되었다.
그러나 1950년에는 북한의 남침으로 비참한 6·25전쟁을 치렀다.
다행히 지금은 부강한 나라를 이루어 세계 최빈국에서 세계 10위의
부강한 나라가 되었다.
한때는 IMF도 경험하고, 극복해서 세계를 놀라게 했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이런 조국에 대해 자부심을 갖는가?
일부 정치 선동꾼들은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태어나서는 안될 나라
였다며 매도하고 지금도 대한민국을 망하게 하기 위해 온갖 공작과
음모를 꾸미고 있다.
심지어 일부 국민들은 6.25전쟁을 일으킨 주적 북한을 동경하여 따르
고 있는 한심한 현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그러면서 그들은 대한민국의 온갖 혜택을 다 누리고 있다.
지금도 공짜만을 바라는 대한민국 국민과 루체른의 로이스 호숫가에
앉아 나라의 과거를 돌아보며, 다시는 가난한 역사를 반복하지 않겠다
는 각오를 다짐하는 스위스 국민들과는 너무 대비되는 모습 아닌가?
우리는 나라의 빚 1000조를 누가, 어떻게 갚을 것인가?
북한의 핵무기 위협에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
인구의 급격한 노령화 저출산으로 인구소멸의 조국을 어떻게 할 것
인가?
이런 담론에 대해 사유하는 사람들이 있고 공감이 돼 있는가?
대한민국 국민들도 한강 둔치에 앉아 과거의 아픈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는 철학적 사유를 하는 사람들이 생
길까?
흔히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그 말이 필요한 나라와 국민은 대한민국이 아닐까 싶다.
“과거의 역사로부터 배우지 못하고, 미래를 준비하지 않는 민족은
참혹한 과거의 비극의 역사를 다시 반복해서 당하게 될 것이다”라는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Arnold Toynbee 1889-1975)’의 말을 새삼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 지금이 菽麥(숙맥)의 亂(란) 시대
바보처럼 콩과 보리를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을 숙맥이라 한다.
숙(菽)은 콩이고, 맥(麥)은 보리다.
크기로 보나 모양으로 보나 확연히 다른 곡물인데 눈으로 직접 보고
도 분별해 내지 못하니 답답할 노릇이다.
이처럼 콩과 보리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 쑥맥!' 이라고 욕하
기도 한다.
숙맥들이 구별하지 못하는 것이 어찌 콩과 보리뿐이겠는가?
상식과 비정상을 구별하지 못하고, 욕과 평상어를 구별하지 못하고,
옳은 것과 그릇된 것을 구별하지 못하기에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해를 보고 달이라 하고, 달을 보고 해라고 하면 낮과 밤이 바뀌는 초
유의 사태가 벌어지기 때문이다.
진시황제가 죽고 2세 호해(胡)가 황제의 자리에 올랐을때 그의 곁
에는 환관인 조고가 있었다.
간신 조고는 진시황제의 가장 우둔한 아들인 호해를 황제의 자리에
올려놓고 자신의 권력을 마음대로 행사했다.
조고는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고자 조정 신하들의 마음을 시험 하기
로 한다.
그는 신하들이 모두 모아놓고 사슴(鹿)을 호해에게 바치며 말(馬)이
라고 했다.
호해가 "어찌 사슴을 말이라고 하는가?"라고 하자,
조고는 신하들 에게 물어보자고 했다.
신하들은 세부류로 나뉘었다.
한 부류는 침묵파 였다.
분명 말이 아닌 것을 알고 있었지만 잘못 말하면 자신의 목숨이 위태
롭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침묵을 선택한 기회주의파 부류였다.
또한 부류는 '사슴파' 였다.
분명 말이 아니었기에 목숨을 걸고 사슴이라고 정직하게 대답한 충신
파 신하들이었다.
마지막 한 부류는 숙맥파'였다.
분명 말이 아닌 것을 알고 있었지만 사슴이라고 하는 순간 자신들의
목숨이 위태롭다는것을 알고 있었기에 사슴과 말도 구별하지 못하는
숙맥이 되기를 선택한 간신파 똘마니들 이었다.
그리하여 숙맥들만 살아 남고 모든 신하는 죽임을 당했다.
바야흐로 숙맥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러나 숙맥의 시대는 채 몇 년도 가지 못했다.
썩은 권력은 오래 갈수가 없는 것이다.
더는 숙맥으로 살지 않겠다는 국민들이 봉기해 결국 진나라는 역사
속에서 사라지게 된다.
사마천의 사기' 진시황본기' 에 전하는"지록위마" (指鹿爲馬)의 고사
에 나온 이야기이다.
이성이 침묵하고 거짓이 참이 되고, 변명이 사과로 받아들여지는
시대를 숙맥의 난(亂) 시대라 한다.
숙맥의 난맥상은 그 어떤 혼란의 시대보다 폐해가 크다.
충신이 나서지 않기 때문이다.
상식은 몰락하고, 비정상이 정상 으로 둔갑하는 도술(道術)이 성행
한다.
이런 도술을 부리며 세상 사람들을 홀리는 도사들이 숙맥의 시대
에는 주류가 된다.
혹세무민으로 사람들의 정신을 마비시키고, 그들의 주머니를 터는
일이 능력으로 인정된다.
부패의 시대가 만연하게 되는 것이다.
숙맥파 교주들은 분별력을 잃은 숙맥들을 이끌고 허무맹랑(虛無
孟浪)한 말로 사람들을 부추겨 자신들의 잇속만 챙겨간다.
이미 좀비가 된 숙맥들은 이리저리 몰려 다니며 교주들의 구호에
맞춰 절규하고 거품을 물고 욕을 해 댄다.
이념이 사람을 잡아먹고, 관념이 현실을 가린 숙맥의 난이 펼쳐
지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인류의 역사는 늘 숙맥의 난(亂)으로 들끓었다.
서양에는 르네상스가 동양에는 성리학이 이성(理性)을 기치로
숙맥의 난을 평정하려 했지만 번번이 벽에 부딪혀 좌절됐다.
진실이 호모사피엔스에게는 너무 과분한 이상이었기 때문일 것
이다.
바른 정치가 실종된 대한민국은 바야흐로 숙맥의 난이 절정에
이르고 있다.
숙(寂)과 맥(麥)을 분별해야 할 언론과 권력 기관은 숙맥의 시대
에 기름을 부으며 부추기고 있고, 각종 권력은 그 위에서 마음껏
난세를 즐기고 있는 것이다.
콩과 보리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는 숙맥의 세상을 침묵파로
살기에는 너무나 비겁한 삶이다.
충신들이 본래의 소임을 다하여 옳은것을 간하고 잘못을 지적
하여 정치를 정상적으로 자리잡게 하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
란다.
자신이 비겁한 기회주의자인지 목숨걸고 옳은것을 간하는 충신
인지 비위나 맞추는 겁쟁이로 사는 간신 숙맥인지는 본인은 알
고 있다.
투표는 간신을 가리고 비겁한 기회주의자를 골라내고 충신을
골라내는 위대한 역사의 진행형이다.
그래서 국민들부터 충신이 되어야 이 나라가 바로서는 것이다.
숙맥이 많은 나라는 언제나 망조로 물들었다.
나도 한때는 숙맥이 아니었는지 되돌아 보고 있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