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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 모르는 호랑이가 없다'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로 조선시대에는 호랑이로 매우 유명한 산이었다. 따지고 보면 지리산이나 금강산이 훨씬 더 웅장해서 호랑이도 많았을 텐데 어째서인지 야산 격인 이 인왕산의 호랑이가 더 유명하다.
정조 대왕 때만 해도 호랑이가 서울에 흔했고, 이들 호랑이가 민가는 물론 궁궐까지 난장판으로 만들었기 때문인 듯. 참고로, 1868년, 북악산 등에서 잡은 호랑이 다섯 마리를 마지막으로 도성 내 호랑이는 모두 사라졌다.
인왕산 정상에 자리한 ‘치마바위’의 이름 유래와 관련한 조선 왕조 일화가 유명한데, 중종의 왕비였던 폐비 신씨는 날마다 중종이 있는 경회루 쪽을 향해 매일 시비를 시켜서 놓아 두었다고 한다. 이러한 폐비 신씨의 절개를 기려 치마바위라는 명칭을 유래하였다고 한다.
인왕산 남쪽 기슭에 있는 활터인 '황학정'이 있는데, 1898년 활쏘기를 장려하는 고종황제의 칙령에 따라 세워진 국궁장이다. 고종황제가 직접 활을 쏘기도 하여 황제를 초대 사두로 친다. 본래 경희궁에 있었는데 19922년에 일제가 경희궁을 훼손하며 옮겼다.
절벽 중 한 곳에 정체 불명의 파인 흔적이 잔뜩 있는데, 이는 1939년 9월 16일에 새겨진 일제의 선동 문구 흔적이다.
대일본 청년단 대회 기념으로 대동아 공영권을 선동하는 내용이 새겨져 있었는데 독립 후 누군가에 의해 훼철되어 현재는 글자는 알아볼 수 없고 파낸 흔적만 남아있다.
주말 등산 코스로도 유명한 곳이다. 다만, 범바위까지는 순조로울 순 있어도 치마바위(정상) 쪽부터 기암괴석이나 암벽 지형이 등장하므로 어린이나 노약자가 등산하기에는 어려울 수도 있다.
실제로도 산악 사고도 빈번한 곳이므로 매우 주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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