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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7월 21일 화요일 아침7시.
전날의 태백산 산행으로 노곤한 몸을 핸드폰 알람으로 억지로 일으켰습니다.
제일 먼저 날씨가 궁금해서 창 밖을 내다봅니다.
태백산민박촌에서 바라보는 태백산에 구름이 잔뜩 껴 있습니다.
오늘은 태백 일대를 관광하는 날.
햇볕이 쨍쨍한 것보다 흐린 날씨가 오히려 걸어다니기 편할지 모릅니다.
라면과 햇반으로 아침을 때운 뒤 길을 나섰습니다.
첫 목적지인 태백시내에 있는 낙동강 발원지 황지연못의 상지와 중지 모습.
물빛이 진초록을 띠고 있었습니다.
동국여지승람, 척주지, 대동지지 등에서 낙동강의 근원지라고 밝혀 놓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하늘못'이라는 의미로 천황(天潢)이라 했고, 황지(潢池)라고도 했다고.
다음 백과사전을 찾아본 바 아래와 같은 설명이 있었습니다.
태백시내 중심지에 있는 황지공원의 커다란 비석 아래 깊이를 알 수 없는
상지·중지·하지로 이루어진 둘레 100m의 소(沼)에서 하루 5,000t의 물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 물은 태백시를 둘러싼 태백산· 함백산· 백병산· 매봉산 등의 줄기를 타고
땅 속으로 스며들었던 물이 모여 연못을 이룬 것으로,
시내를 흘러 구문소를 지난 뒤 경상남도· 경상북도를 거쳐 부산광역시의 을숙도에서 남해로 유입된다.
장자못 전설의 근원지가 되는 연못으로, 예부터 황부자 전설이 전한다.
옛날 한 노승이 연못의 자리였던 이곳 황부자의 집으로 시주를 받으러 오자,
황부자는 시주 대신 쇠똥을 퍼주었다.
이것을 본 며느리가 놀라서 노승에게 시아버지의 잘못을 빌며
쇠똥을 털어주고 쌀 한 바가지를 시주하자,
노승은 "이 집의 운이 다하여 곧 큰 변고가 있을 터이니 살려거든 날 따라오시오.
절대로 뒤를 돌아보아서는 안 되오"라고 말했다.
며느리가 노승의 말을 듣고 뒤를 따라가게 되었는데,
삼척시 도계읍 구사리 산등에 이르자 갑자기 자기 집 쪽에서
뇌성벽력이 치며 천지가 무너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그때 며느리는 노승의 당부를 잊고 그만 뒤를 돌아보다가 그 자리에서 돌이 되었고,
황부잣집은 땅 속으로 꺼져 큰 연못이 되었는데,
상지가 집터, 중지가 방앗간터, 하지가 화장실터라고 한다.
그리고 황부자는 큰 이무기가 되어 연못 속에 살게 되었다고 한다.
연못은 1년에 한두 번 흙탕물로 변하기도 하는데,
이는 이무기가 된 연못 속의 황부자가 심술을 부려서 그렇다고 한다.
실제로 30여 년 전만 해도 연못에 큰 나무 기둥이 여러 개 잠겨 있었는데,
사람들은 그것이 황부잣집 대들보와 서까래라고 하였다.
그러나 연못 부근의 지반이 물러 오래된 나무가 연못에 쓰러져
썩지 않은 것으로 추정되며 그나마 지금은 말끔히 치워져 흔적조차 없다.
중지에다가 동전을 던지며 소원을 비는 장소를 만들어 놓았는데
혹시 중금속에 물이 오염되지는 않는지 궁금합니다.
이 물은 지금도 식수로 사용이 가능할 정도로 맑고 깨끗하다고 합니다.
하지의 모습.
이 물이 흘러흘러 부산을 거쳐 남해바다로 흘러간다니
기나긴 여정을 품고 있는 연못입니다.
상지를 한가로이 노니는 물고기.
태백이며 함백이며 명산의 온갖 정기를
머금은 물이니 만큼 오래오래 수명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황지연못 옆 김밥나라에서 간식으로 김밥을 사가지고
다음 목적지인 구문소를 찾아갑니다.
이곳 구문소의 물에는 황지연못에서 흘러내려온 물도 있을 것입니다.
발원지 황지에서의 매우 잔잔했던 흐름과 달리
이곳 구문소에 이르러서 낙동강의 최상류는
맹렬한 기세로 석굴 구문소를 향해 돌진합니다.
석회암이 지하수에 녹아 지하 석회동굴을 만들었듯,
석회암질의 바위산이 수억 년 전에 물에 뚫려 커다란 물구멍이 생겼고
그리로 낙동강 상류가 통과하는 이 특이한 지형은
"물이 산을 넘어버린"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지형이라고 합니다.
그 희소성은 당연히 신비감에 쌓인 여러 전설을 만들었다고.
놀라운 사실은 수천년 전의 전설이 현대에 와서
문중 간 다툼이 되어 전설을 근거로 법정 다툼까지 벌였다고 하니
그 송사는 현대에 지어진 또 하나의 전설이 될 것입니다.
옛날에 구문소 근처에 살던 효심 깊은 엄종한이란 사람이
우연히 구문소 물 밑에 있다는 용궁을 다녀오면서 가지고 온
"용궁석"의 조화 덕분에 가난했던 엄씨네가 큰 부자가 되었는데,
사위인 조씨가 용궁석을 가져가자 엄씨 집안은 몰락하고
조씨 집안은 크게 흥했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 왔다고 합니다.
엄씨 집안이 아직도 가세가 곤궁한 것은 용궁석을 잃은 때문이라고 믿은
엄씨 후손들이, 전설의 효험대로 용궁석을 가져가
아직도 안동에서 부자로 사는 조씨의 후손들을 상대로
용궁석을 돌려받기 위한 다툼을 벌였다고.
이에 조씨 집안은 엄씨 집안이 억지 횡포를 부린다며
안동 법원에 송사를 걸었다고 하는군요.
그야말로 전설을 사실로 받아들여 법정 다툼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 일은 조씨 집안 어르신의 지혜로운 해석으로 소를 취하하며 일단 송사는 거두었다고.
이렇듯 전설이 현실로 살아 숨쉬고 있는 구문소는
찾는 이들마다 감탄을 연발하는 절경중에 절경이거니와
지질학적으로도 중요한 자료를 많이 담고 있는 명소입니다.
저 또한 성이 엄씨이다보니 구미가 당겨 전설에 대해 알아 보았습니다.
인터넷신문 하이태백에 자세히 나와 있더군요.
강원도 옛 삼척군 장성읍 동점리(洞店里)에 엄종한(嚴宗漢)이란 사람이 살았다.
그는 집이 가난하여 식생활이 곤란하므로 매일 구문소에서
낚시와 그물로 고기를 잡아 십여명의 가족을 부양했다.
어느 날 해질 무렵에 그물을 쳐 놓고 이튿날 아침 일찍
그물을 건지려다가 실족하여 물 속에 빠져 정신을 잃었다.
잠시후 정신을 차렸을 때는 돌용의 배에 자기 몸이 찔리는 것을 깨닫고
순간적으로 자기는 죽었구나 하는 체념과
살아 헤엄쳐 나가야겠다는 결심등 착잡한 심경이 되어 버렸다.
그리하여 있는 힘을 다하여 눈을 감고 물밑을 기어
다시 큰 물 속을 들어가니 물깊이가 몇천 길이 되는 것 같았다.
위를 쳐다보니 중앙에 한 동천굴로 통하는 하늘이 보이는데
대낮의 햇빛이 눈부시게 비치고 평평한 모래밭이 십리나 되는데
돌이 태반이요 큰집이 즐비하게 늘어져 있고 인적은 없어 고요하였다.
그는 이것이 바로 구중궁궐이요 용왕의 궁중이라 생각하고
환하고 평평한 모래 길을 따라 걷다가 제일 큰 대궐 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대궐 안을 살피니 문 위에 두개의 그물이 걸려 있었다.
그중 하나가 잃어버린 자기의 것이기에 이상히 여겨 기웃거리며 만져 보는데
돌연 안에서 백발노인이 나오더니〈이곳은 인간 세상이 아닌데 무엇 때문에 왔으며 그것을 왜 만지는가?>고 물었다.
그는〈그물을 잃어 찾다가 실족하여 이곳까지 왔나이다>하고 사실대로 말했다.
노인은 말하기를〈내 어린 두자식이 놀러 나갔다가 급류에 휩쓸려 죽을 뻔하여
화가 나서 그 그물을 가지고 와서 이곳에 두고 병이 나서 않고 있다가 오늘에야 완쾌되었다.
지금은 사냥을 가고 없는데 곧 돌아 올 것이다.
그러니 빨리 도망가거라>라고 말했다.
엄종한은 당황하여〈길을 몰라 갈 수 없습니다>고 하니 노인은 염려 말라고 하면서
<흰 강아지 한 마리를 줄 터이니 강아지를 따를 것이요 가는 도중에 배가 고프면 먹으라>고
소매 속에서 흰떡 한 개를 주면서 길 떠나기를 재촉하였다.
흰 강아지가 꼬리를 치며 달려가니 어느덧 바다 깊은 곳에 이르렀다.
오는 도중 강의 좌우 풍경이 절경이었다 한다.
큰 파도가 일며 물 중간이 열리며 갈라져 큰 길이 나타났다.
자꾸 걷는 도중 배가 고파 흰떡을 먹으니 마음이 상쾌하고
배가 부르며 길을 걸어도 조금도 고달프지 않았다.
상당한 시간이 흘러 어느 한 곳에서 강아지가 멈추므로 살펴 보니
그곳이 바로 그물을 쳤던 곳이라 강아지와 함께 바위 위에 올라가
자기 집을 바라보니 무당의 굿소리가 나며 조문객이 오락가락 하였다.
엄종한은 이상히 여겨 알아본즉 자기가 익사하여 행방이 묘연한지
벌써 3년이 되어 두 아들이 부친의 탈상을 겸한 3년상에
영혼을 위로하는 무당의 굿소리라 하였다.
길을 인도하던 강아지는 즉시 죽고 흰떡은 흰 돌이 되었다.
강아지의 시체는 천천 뒷산에 매장하고 백병석(흰떡)은 엄씨가 잘 간직하여 가보로 모셨다.
그랬더니 그 뒤부터 점점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
3년만에 엄종한이 죽어 흰 강아지 무덤 근처에 매장하였다.
그 뒤 경북 대현사람 조성이란 자가 엄씨의 사위가 된 뒤
장인이 백병석을 가보로 하여 천금의 부자가 된 것을 탐내어
여러 차례 딸에게 물려 달라고 하였다.
그러나 장인은 듣지 않고 깊이 숨겨 두었는데 장인이 죽은 뒤에 훔쳐 갔다고 한다.
엄종한의 묘는 지금 천천 뒷산에 있고 묘앞 비석에는 그 사적이 적혀 있으며
백병석은 안동 방면 조씨 가문 중에 보관되어 유물로 전하고 있다 한다.
이 이야기는 문집 [유계집]에 실린 것이 세상에 퍼졌다 한다.
구문소(求門沼· 천연기념물 제417호).
황지에서 흘러오는 강물이 동점동에 이르러 큰 산을 뚫고 지나가며
큰 석문(石門)을 만들고 깊은 소(沼)를 이루었는데 구무소라 한답니다.
강물이 산을 뚫고 흐른다 하여 뚜루내(穿川)라고 부르기도 하는 구무소는
한자표기(漢字表記)로 구문소(求門沼)라고 쓴다고.
"구무"란 말은 구멍의 옛말이니 구무소는 구멍소(沼)라는 뜻.
구무소 안쪽에 있는 마을을 구무안이라 하고 한자로「穴內材」이라
쓰는 것을 봐도 구무소는 구멍소인 것을 알 수 있다고.
구문소는 세종실록지리지에 천천(穿川· 구멍 뚫린 하천)이라는 기록으로 남아 있는데,
구문소 바로 옆 도로에 있는 석굴은 일제 강점기 때 뚫은 것이라고 합니다.
구문소 절벽 위에 자개루가 있습니다.
여름에 녹음이 우거져서 인지 탁 트인 풍경은 보여주지 못하고 있더군요.
구문소 부근의 석회암에는 건열· 물결자국· 소금흔적· 새눈구조 등의 퇴적구조와
삼엽충· 완족류· 두족류 등의 다양한 생물화석이 나오고 있어
하부 고생대의 퇴적환경과 생물상을 동시에 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화석수목전시관에서는 인근에서 출토된 화석류 18종 180개와 서식하는 수목류 16종 76개소,
생활용품 등을 전시하여 학습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구문소의 가장 그럴듯한 전설.
신비하고 영험한 곳으로 알려져 있는 구문소에 사람이 투신 자살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는데
그러면 몇 일 안에 꼭 비가 와서 부정한 것을 씻어 간다고 한다.
아주 오랫 옛날에 구문소로 흐르던 강물이 사근다리 쪽으로 돌아서 마리거랑으로 흘렀다.
어느때 큰 홍수가 나서 물이 크게 불어났다.
이때 화전동(禾田洞)의 싸리밭(추전)골에서 엄청나게 큰 싸리나무가 떠내려 오다가
이곳 구무소의 석벽(石壁)부근에서 사근다리쪽으로 급히 방향을 틀지 못하고
그대로 구무소의 석벽을 강타(强打)하여 우레와 같은 소리를 내며 큰 구멍이 뚤리게 되었다.
그래서 사근다리쪽으로 돌아 말거랑(마리거랑)으로 흐르던 강물이
이 구멍으로 곧 바로 흐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가장 그럴듯한 전설이다.
또 다른 전설.
옛날 구문소에 구멍이 뚫리기 전에는 석벽(石壁)을 사이에 두고
동쪽에는 철암천(鐵岩川)이 큰 소(沼)를 이루어 그 소(沼)에 청룡(靑龍)이 살고 있었고,
서쪽에는 황지천(黃池川)이 큰 소(沼)를 이루고 그 소(沼)에 백룡(白龍)이 살았다고 한다.
두 용은 서로 낙동강(洛東江)의 지배권을 놓고 항상 다투었다.
매일 석벽 꼭대기에서 싸움을 하였는데 항상 뇌성이 일고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천지를 분간치 못하였고 좀처럼 승부가 나지 않았다.
어느날 백룡이 꾀를 내어 석벽 위에서 싸우다 내려와 석벽 밑을 뚫으며 공격을 하여
청룡을 물리치고 그 여세로 승천(昇天)하였다고 한다.
백룡이 승천할 때 지나간 산을 용우이 산이라 하는데 구문소 앞에 솟은 산이다.
구문소 주위에는 기암절벽과 폭포가 어우러져 일대장관을 이루고 있으며
이 구문소 안에 마당소, 자개문, 용소, 삼형제폭포, 여울목, 통소, 닭벼슬 바위, 인공석굴 등을 가리켜 구문 팔경이라고 한다고.
혹시 세군데로 나뉘어 떨어지고 있는 이 멋진 폭포가 삼형제폭포?
구문팔경을 설명하는 표지를 설치하여 관광객들의 편의를 도모하였으면 합니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구문소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다시 미인폭포로 이동합니다.
주차장 옆으로 난 가파른 갈짖자(之) 내리막 비탈길을 지나
암자를 관통하여 폭포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꽤 높은 산의 정상에서 하산할 때의 기분이 들 정도입니다.
그렇게 3백미터 정도 내려가면 한걸음 정도의 폭에
아래가 까마득한 골짜기 위로 자그마한 나무다리가 놓여있고
건너편으로 혜성사라는 이름의 작은 암자가
보통의 시골집처럼 소담스럽게 들어 앉아 있습니다.
밑에서 올려다 본다면 마치 한뼘밖에 되지 않는 절벽 한켠에 올라앉은 제비집같지 않을까 싶습니다.
행정구역 상으로는 강원 삼척시 도계읍 심포리에 자리잡고 있는 미인폭포.
천길 협곡에서 떨어지는 오십장 길이의 폭포입니다.
이름에 걸맞게 참 이쁘게도 생겼습니다.
미인폭포에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을 소개합니다.
우보산(牛甫山)의 계곡에서 발원하는 천수가 물방울이 되어
석벽(石壁)으로 굴러내려 절벽에 부딪치는 물방울이 적은 것은 분수와 같고,
큰 것은 설산(雪山)을 연상케 하는 높이 오십척의 폭포이다.
한국판 그랜드캐니언이라 불리는 미인폭포 주변의 협곡은
중생대 백악기(1억 4천만년전-6천5백만년전)에 퇴적된 역암층으로
신생대 초의 심한 단층작용 속에서 강물에 침식돼 270미터 깊이로 패여 내려갔다.
협곡의 전체적인 색조가 붉은색을 띠는데
이것은 퇴적암들이 강물 속에 쌓이는 것이 아니라
건조한 기후조건으로 공기 중에 노출된 채 산화되었기 때문이다.
주로 굵은 자갈로 된 역암(礫岩)과 모래로 이루어진 사암(砂巖),
진흙으로 굳은 이암(泥巖)으로 구성되어 있다.
물줄기가 흘러가는 계곡바닥을 보면 절벽에서 떨어져 나온 크고 작은 바위덩어리들이 깔려있다.
그 바위덩어리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마치 자갈, 모래, 시멘트를 함께 버무린
콘크리트 덩어리와 같은 모양새를 하고 있다.
이를 과학적으로 분석해 보면 이 지역이 과거 바다나 호수 또는 강가 였음을 말해준다.
부안의 채석강처럼 말이다.
해발 700미터 안팎의 고산지대에 위치하고 있어 안개나 구름이 끼는 날이 많으며,
이때 경치가 더욱 아름답고 신비하다.
전설에 의하면 일몰 전과 일출 전에 이 폭포에서 따뜻한 바람이 불면
풍년이요 찬바람이 불면 흉작을 예측했다고 한다.
미인폭포 동북편 고원지대 및 폭포 위의 계곡에는
고금을 통하여 미인이 많이 출생하는 지역으로 전해오고 있다.
이 근처에는 미인묘가 있는데,
이 묘는 옛날 한 미인이 출가하였으나 남편이 일찍 사망하여 재가했는데
또 다시 사망하니 그 미인은 이 폭포에서 투신자살하였다고 한다.
일설에는 미인이 남편이 죽은 후 재혼할 낭군을 찾았지만
사별한 남편 만한 사람을 찾을 수 없게 되자 자신의 신세를 비관하여
이 폭포에서 투신 자살한 일이 있었기에 “미인폭포”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도 한다.
폭포가 떨어지는 거대한 암벽을 험풍암(驗豊岩)이라고 하는데,
미인이 투신자살할 때 이를 지켜보던 동자승이 돌이 되었다는
동자석(童子石)이 그 바위 꼭대기에 우뚝 서 있다.
이와 함께 이 지역에서 미모의 여자아이를 낳았는데,
그 아이가 너무나 빼어나게 잘 생겨서 그 부모가 장래를 생각하여
생후 3일만에 암매장하였더니 폭포 속에서 용마(龍馬)가 나와 하늘로 올라갔다고도 한다.
이 모두가 미인을 소재로 한 전설이다.
미인폭포는 가을에 단풍이 들면 더욱 더 멋지게 보일것 같습니다.
혜성사 연혁.
태백산 연화산 기슭에 연화사라는 토굴이 있었는데
1960년에 김진석 스님이 신도들의 의견에 따라 이곳 미인폭포에 장소를 옮기어
혜성사를 재 창건하고 상주하던 중 더 큰뜻을 세우기 위하여 떠나시고
1977년 고성원 스님이 이곳에 정착하여 사찰을 중수불사하고
토지를 매입하여 오늘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역사가 짧은 사찰로 마치 여염집처럼 보입니다.
아내와 막내아들이 대웅전에 절하러 올라갔다가
큰 뱀이 계단에서 오수를 즐기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비명을 지르며 도망쳐 내려오자 스님이 막대기를 들고 가 쫓아주었습니다.
스님 말로는 이곳에는 뱀이 많고 사찰 주위에서 노니는 경우가 많은데
사람에게 위해를 가하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태백산 유일사에서도 뱀을 만났는데
이번 여행에서는 사찰만 가면 뱀을 만나니 이 무슨 조화인지...
한가로운 혜성사 주차장에서 점심 식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등산장비와 음식, 갈아입을 옷 등으로 짐칸이 가득합니다.
이 정도의 장비면 전국을 마냥 떠돌수 있겠습니다.
다음 목적지는 검룡소입니다.
가다가 삼수령 밑 구와우마을에도 들려볼 예정입니다.
한여름 백두대간과 낙동정맥을 노랗게 물들이는
"태백 해바라기 축제"가 8월 1일부터 31일까지 강원 태백시 황연동 구와우마을에서 열립니다.
비록 우리는 해바라기는 보지 못하지만 그곳을 미리 가 보는것도 색다를것 같습니다.
저 앞에 펼쳐진 초록 초원이 해바라기 입니다.
아직은 꽃이 피어 있지 않습니다.
구와우마을의 그림같은 풍경입니다.
이곳 구와우 해바라기 마을은 소 아홉 마리가 배불리 먹고
누워 있다는 의미를 가진 평화로운 마을입니다.
"당신을 그리며 당신만을 기다린다"는 꽃말을
가진 100만송이 해바라기가 여러분을 기다립니다.
시원하고 서늘한 바람과 이름모를 들꽃과 함께
대자연을 산책하면서 멋진 여름 휴가를 즐기시면 어떨까요?
지금 출발하세요.
꽃은, 사랑하니까 핍니다
양전형
꽃은
서릿발이나 칼바람 속에서도
불길 같은 땡볕 아래서도
사랑하니까 피어납니다
그대를 바라만 봐도
내 안에 웬 꽃송이들 설레며 피어 올라
어쩌면 나도 꽃이려니 생각했습니다
불면의 이슥한 밤
이 하늘 아래 어디선가 잠들어 있을
그대를 생각하다
내 몸에서 언뜻언뜻 향기가 나서
진정 나도 꽃이구나 느꼈습니다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그대 보이지 않고
길모퉁이를 쓸쓸히 돌아가던
그대 뒷모습이 눈에 밟혀올 때
어느 들길 어느 바닷가에 나 홀로 앉았을 때
가슴에서 눈물처럼 떨어지는 낙화를 보며
내가 왜 꽃인지를 알았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꽃입니다
꽃은, 사랑하니까 핍니다
비록 멋진 외제 스포츠카는 아니지만 승합차가 멋진 풍경에 일조를 하고 있습니다.
어찌보면 승합차가 사람 못지않게 호강을 누리고 있는 것도 같구요.
비록 해바라기는 보지 못하였어도 멋진 풍경에 흠뻑 취해 보았습니다.
태백에서 북쪽으로 6km쯤 떨어진 곳에 있는 피재에는
남한강· 낙동강· 오십천 물길이 갈리는 분수령인 삼수령(三水嶺)이 있습니다.
남한강(南漢江)은 한강의 본류입니다.
강원도 삼척시에서 발원하여 평창강(145㎞)을 합친 후,
충주의 탄금대 밑을 지나 달천(119㎞)을 합치고
강원· 충북· 경기의 도계 부근에서 섬강(93㎞)과 합쳐서 경기도로 들어갑니다.
이곳에서 북한강(318㎞)을 합하여 한강 본류가 되며,
이후 서울을 거쳐 북서쪽으로 흐르면서
임진강(254m)을 합친 후 강화도 부근에서 황해로 들어갑니다.
낙동강(洛東江)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긴 강이고,
한반도 전체에서는 압록강 다음으로 깁니다.
강원도 태백시의 함백산 동쪽에 있는 작은 저수지인 황지연못에서 발원하는
이 강은 대구분지를 지나 부산 서쪽에서 분류되어 남해로 들어갑니다.
길이는 525㎞입니다.
주요 지류는 반변천(101㎞)· 내성천(102㎞)· 금호강(116㎞)· 황강(111㎞)·
남강(186㎞)· 밀양강(90㎞)· 위천(111㎞)· 감천(71㎞) 등입니다.
이 강은 경사도가 심히 완만하여 침식은 마비되고 퇴적은 심하며
하구에 광대한 삼각주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오십천(五十川)은 강원도 태백시와 삼척시의 경계인백병산에서 시작되어 동해로 흘러드는 하천입니다.
총길이 52킬로미터로 작은 편입니다.
곡류가 심하여 동해로 흘러가기까지
50번 가량 꺾였다 하여 오십천이라고 이름이 붙었다고.
삼수령 고개에서 동쪽으로 떨어진 빗방울은 오십천으로 흘러 동해로 가고,
북서쪽으로 떨어지면 남한강으로 흘러 서해로 들고,
남쪽으로 떨어지면 낙동강으로 흘러 남해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정상에는 조형물과 정자각이 있습니다.
고갯마루에서 바로 올라갈 수 있는 매봉산 일명"바람의 언덕"
고랭지채소단지의 이색적인 풍경도 볼 만합니다.
저희는 더 어두워지기 전에 검룡소를 먼저 보고
다시 매봉산 풍력발전단지(바람의언덕)를 보기로 했습니다.
피재는 삼척 사람들이 황지 지역을 이상향이라 하여
난리를 피해 이곳으로 넘어왔기에 피해오는 고개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고.
이제 우리는 피재를 넘어 검룡소(儉龍沼)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강원도 태백시 창죽동 금대봉에 있는 소.
한강의 발원지로 널리 알려진 너무도 유명한 곳입니다.
서해 바다에 살던 이무기가 용이 되려고
강줄기를 거슬러 올라와 이곳에 머무르고 있다는 전설이 있는 곳.
그 이무기를 만나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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