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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박종태목사
주의 영광 이곳에 가득해/대하 7:1-10
성경본문 : 역대하 7:1-10
1. 솔로몬이 기도를 마치매 불이 하늘에서부터 내려와서 그 번제물과 제물들을 사르고 여호와의 영광이 그 전에 가득하니
2.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전에 가득하므로 제사장이 그 전에 능히 들어가지 못하였고
3. 이스라엘 모든 자손은 불이 내리는 것과 여호와의 영광이 전에 있는 것을 보고 박석 깐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여호와께 감사하여 가로되 선하시도다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하니라
4. 이에 왕과 모든 백성이 여호와 앞에 제사를 드리니
5. 솔로몬왕의 드린 제물이 소가 이만 이천이요 양이 십 이만이라 이와 같이 왕과 모든 백성이 하나님의 전의 낙성식을 행하니라
6. 때에 제사장들은 직분대로 모셔 서고 레위 사람도 여호와의 악기를 가지고 섰으니 이 악기는 전에 다윗왕이 레위 사람으로 여호와를 찬송하려고 만들어서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을 감사케 하던 것이라 제사장은 무리 앞에서 나팔을 불고 온 이스라엘은 섰더라
7. 솔로몬이 또 여호와의 전 앞뜰 가운데를 거룩히 구별하고 거기서 번제물과 화목제의 기름을 드렸으니 이는 솔로몬의 지은 놋단이 능히 그 번제물과 소제물과 기름을 용납할 수 없음이더라
8. 그 때에 솔로몬이 칠일 동안 절기를 지켰는데 하맛 어귀에서부터 애굽 하수까지의 온 이스라엘의 심히 큰 회중이 모여 저와 함께 하였더니
9. 제 팔일에 무리가 한 성회를 여니라 단의 낙성식을 칠일 동안 행한 후 이 절기를 칠일 동안 지키니라
10. 칠월 이십 삼일에 왕이 백성을 그 장막으로 돌려보내매 백성이 여호와께서 다윗과 솔로몬과 그 백성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은혜를 인하여 기뻐하며 마음에 즐거워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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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처| 양인순목사(성지교회)
오늘은 성지교회 창립35주년이 되는 뜻 깊은 주일아침입니다. 우리가 각자의 생일을 기억하듯 우리가 섬기고 있는 성지교회의 창립 기념일을 아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 이유는 그동안의 발자취를 더듬어보면서 앞으로 달려갈 방향을 생각해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성지교회는 1978년 7월 30일 서대문구 성산동에 있는 이용일 집사 집에서 시작됐습니다. 성지교회 이름의 뜻은 성지 <거룩한 땅 Holy Land>가 아니라 거룩할 성(聖), 뜻 지(志)자를 써서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이루는 교회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저는 2001년 성지교회 2대 담임목사로 부임했습니다. 35여년의 역사를 가진 교회의 담임목사가 한번 밖에 바뀌지 않은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그것은 성지교회가 안정된 교회요, 주님의 기쁨이 되는 건강한 교회임을 보여줍니다.
제가 부임한 이후 <사도행전의 비전을 이루는 교회>라는 목표를 제시했습니다.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교회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교회의 모델입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세우시기를 원하셨던 바로 그 교회입니다. 우리는 이 비전을 이루기 위해 삼삼삼의 비전을 품었습니다. 삼백명의 헌신된 리더를 세우고, 삼백개의 건강한 소그룹을 통하여, 삼십의 사역자를 열방에 파송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본질은 전도와 선교입니다.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는 것이 교회의 사명입니다.
2013년 올 해는 창립 35주년을 맞이하여 매우 의미있는 일을 했습니다. 몽골 울란바타르에 우르나 선교사를 파송하여 몽골 성지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중국 쿤밍에 선교하던 박명학 목사를 선교사로 파송하여 쿤밍 성지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삼자교회로 공인을 받아서 지금 100명이 넘는 성도들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총회 파송 선교사였던 최남영 선교사님을 우리 교회에서 멕시코 티후와나 지역에 재파송을 했습니다. 이곳에서 지금 15년째 사역을 하고 계십니다. 티후와나 지역에 교회를 건축하고, 지역 복음화와 청소년 선교를 위해 수고하고 있습니다.
현재 성지교회는 국내에 3개의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5명의 선교사를 파송하고, 10명의 해외선교사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국내 자립대상 17교회를 후원하고 있으며, 13개의 선교 기관과 미디어 선교기관을 돕고 있습니다.
저희 성지교회는 대형교회는 아니지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전도와 선교사역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 장로님들의 적극적인 협력과 모든 중직과 제직들, 성도님들이 함께 수고하고, 기도한 결과라고 믿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대형교회가 아닙니다.
주님이 은혜를 주시는 데로 있는 건강한 교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교회로 세워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전도와 선교를 통해 생명을 살리는 일을 계속하는 것입니다. 이 교회를 통하여 다음 세대의 지도자를 세우는 일입니다. 성지교회를 섬기는 온 교우들이 주님 때문에 행복해 지는 것입니다. 이 교회를 섬기는 것이 자랑이 되는 것입니다.
시편 37편 4절 말씀처럼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면 앞으로 주님의 몸된 성지교회를 통하여 더 큰 역사를 이루실 것을 믿습니다.
옆에 계신 성도님들과 함께 이렇게 인사를 나누시면 좋겠습니다. “성지교회를 섬기는 것이 우리의 자랑입니다. 성지교회를 섬기는 것이 우리의 행복입니다.” 아멘!!!
오늘 본문 말씀은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한 후에 하나님께 봉헌을 하는 장면입니다. 다윗 왕은 성전건축을 갈망했지만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성전을 지을 모든 재물과 재료를 준비합니다. 그리고 아들 솔로몬이 7년 반의 역사 끝에 성전을 완공합니다. 성전을 완공한 후에 제일 먼저 한 일은 언약궤를 모셔오는 일입니다. 언약궤는 만나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십계명이 새겨진 돌판이 담겨 있습니다. 언약궤는 바로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입니다. 이 언약궤를 모셔오기 위해 대규모 찬양대를 동원합니다. 드디어 하나님의 언약궤가 성전에 안치되는 순간 여호와의 영광이 하나님의 성전에 가득했습니다.
이어서 솔로몬은 하나님께 경배와 찬양을 올려드리며 간절히 기도를 드립니다. 그가 기도를 마치자 하늘에서 불이 내렸습니다. 엘리야의 제단에 불이 내린 것처럼 하나님의 영이 그 곳에 임했습니다. 그 결과 제사를 위해 준비했던 모든 제물들을 태워버립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에 다시 가득했습니다. 제사장들이 감히 성전에 들어가지 못할 정도로 하나님의 임재가 강력하게 나타났습니다. 그것을 목격한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은 땅에 엎드려 경배와 감사를 올려드립니다. 그리고 고백합니다.
“선하시도다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3절)
이후에 솔로몬은 소 이만 이천 마리, 양 십이만 마리를 잡아 성대하게 성전 봉헌식을 합니다. 제사장들과 모든 찬양대를 동원하여 여호와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립니다. 무려 7일동안 성전 봉헌식을 행합니다. 얼마나 규모가 컸던지 이스라엘과 애굽에서까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그리고 8째 날에는 성회를 열어서 다시 7일 동안 부흥회를 합니다. 그 결과 함께했던 모든 백성들이 기뻐하고 즐거워했습니다.
우리들이 새 집을 짓고 이사만 들어가도 얼마나 기쁨이 있습니까? 그런데 무려 7년 반이라는 대공사를 거쳐 성전을 건축하고, 봉헌식을 했으니 얼마나 기쁘고 즐거웠겠습니까?
오늘 본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전에 여호와의 영광이 가득했다는 것입니다. 건물의 규모나 화려함이 아닙니다. 솔로몬이 언약궤를 안치했을 때 여호와의 영광이 임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성전 봉헌을 감사하며 경배와 찬양을 올려드릴 때 성전 안에 여호와의 영광이 충만하게 임했습니다. 그 성전이 바로 오늘 주님께서 피 값을 지불하고 세우신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바로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거룩한 곳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타나실 때 화려한 왕궁이나 멋진 곳에 임하시지 않고 가시떨기나무에 임하셨을까요? 세상은 눈에 보이는 화려함이나 크기를 가지고 자랑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아무런 볼품이 없는 가시떨기 나무일지라도 그곳에 하나님이 임하시면 거룩한 땅이 됩니다. 아무리 마구간이라 할지라도 그곳에 주님이 임하시면 거룩한 장소가 됩니다. 거룩한 곳에 바로 하나님의 영광이 임합니다.
우리 성지교회는 상가에 위치해 있고, 시설이 불편합니다. 화려하지도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소이기에 거룩한 곳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주의 뜻을 이루기 위해 힘쓰는 교회이기에 거룩한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솔로몬이 세운 성전 봉헌식에 여호와의 영광이 충만했던 것처럼 이 성지교회 위에도 주의 영광이 가득하게 임하실 줄 믿습니다.
역대하 7장 16절 말씀을 함께 읽습니다.
“이는 내가 이미 이 성전을 택하고 거룩하게 하여 내 이름을 여기에 영원히 있게 하였음이라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에 있으리라.”(대하7:16)
하나님이 이 성지교회를 택하시고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이 성전에 영원히 있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눈과 마음이 항상 이 성전 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거룩한 곳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전에 들어올 때마다 거룩한 두려움을 가지고 와야 합니다.
거룩하다는 것은 원래 ‘구별되다’라는 뜻입니다. 교회가 구별된 이유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똑같은 벽돌로 지은 건축물이라도 그곳에 하나님이 거하시기에 성전이라고 부릅니다. 똑같은 사람이지만 부름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기에 성도라고 부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에 안에서는 모든 것이 거룩해야 합니다. 우리의 말도 거룩하게 구별되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해야 할 말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는 옷을 입는 것도 구별되어야 합니다. 일하러 갈 때 입는 옷이 있고, 음악회에 갈 때 입는 옷이 있습니다. 세상은 점점 편리성을 추구하다 보니 편한 데로 옷을 입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서구의 정통 레스토랑에서는 정장을 입지 않으면 입장이 되지 않습니다. 품격있는 음악회에는 정장을 해야만 들어갑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에 나올 때는 구별된 복장으로 오시는 것이 좋습니다.
물론 옷을 입는 것이 뭐 그리 중요하냐 반문할 수 있습니다. 옷을 입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의 취향이나 품격을 알 수 있습니다. 옷은 그 사람을 보여주는 품격일 수 있습니다. 똑같은 사람이지만 어떤 옷을 입느냐에 따라서 마음가짐이 달라집니다.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나갈 때와 정장을 하고 나갈 때의 태도가 달라집니다. 남자들은 예비군복만 입으면 몸과 마음이 흐트러집니다. 어떤 옷을 입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는 것이죠.
목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예배 인도시에 성의를 입지 않습니다. 심지어 미국에 가보면 목사가 청바지를 입고 강단에 올라 설교합니다. 그러나 저는 반대합니다. 물론 더운 여름 성의를 입지 않으면 시원하고 좋습니다. 양복을 입고 멋진 넥타이를 매고 나오면 세련되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구약에 보면 제사장들은 반드시 하나님이 정하신 규격대로 만든 성의를 입고 성전에 들어가야 했습니다. 바로 구별됨을 강조한 것이죠. 물론 겉으로 드러나는 것보다 마음의 구별됨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구별됨 역시 중요합니다.
그래서 저는 부교역자들에게 좀 더워도 예배를 인도하거나 말씀을 전할 때는 반드시 정장을 할 것을 요구합니다. 옷을 입으면서도 구별된 마음의 자세를 가다듬기 때문입니다. 전 넥타이를 맬 때 항상 사도바울의 말씀을 생각합니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 넥타이를 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나의 모든 것을 죽이는 것입니다. 나는 죽고 내 안에 주님이 사시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넥타이를 매고 나옵니다. 구별된 마음과 태도로 주님 앞에서 예배를 인도하고,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다고 여깁니다. 여러분이 보시기에는 답답해 보일지라도 예배는 우리 보기에 좋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것이어야 하기에 그렇게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계속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성전으로 만들어갈 수 있을까요? 여기에 창립 35주년을 맞이한 성지교회의 과제가 있습니다. 엘리 제사장에게 ‘이가봇’-하나님의 영광이 떠났을 때 그는 비참한 인생이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인생은 불쌍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지 않는 교회는 더 이상 교회가 아닙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시는 교회로 세워갈 수 있을까요?
첫째, 우리의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6)
우리들은 더 이상 어둠의 자식이 아닙니다.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모시고 사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빛 되신 주님을 앞에 모시고 살아야 합니다. 날마다 빛 가운데로 걸어가야 합니다. 빛의 열매는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입니다.(엡5:9) 어둠의 세상에 우리의 빛을 발할 때 우리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우리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인정하게 됩니다.
‘아 저 사람은 진짜 예수쟁이구나. 나와는 구별된 사람이구나.’ 인정을 받게 될 때 그들도 주님의 복음에 관심을 가집니다. 교회에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결국은 여러분의 변화되고 구별된 삶을 통하여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소중한 인생으로 변화됩니다. 우리 모두 빛의 자녀답게 살아감으로 또 다른 생명을 살리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만드는 축복의 통로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둘째, 우리의 열매로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 합니다.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요15:8)
과일 나무는 열매를 통하여 농부에게 기쁨을 줍니다. 그리스도인은 생명의 열매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우리는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생명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우리가 과실을 맺을 때 주님께 영광이 됩니다. 그러나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는 저주를 받아 말라죽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삶 속에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7:19-20)
우리는 주님은 지금도 우리의 열매를 찾고 계십니다. 열매를 맺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 거하면 됩니다. 우리가 아무리 수고하고 노력해도 주님을 떠나면 물을 떠난 고기와 같습니다.
우리는 포도나무 되시는 예수님 안에 항상 거해야 합니다. 포도나무 가지가 줄기를 떠나는 순간 말라 죽습니다. 날마다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통하여 풍성한 열매를 맺는 믿음의 일군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셋째, 우리의 믿음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 합니다.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롬4:20-21)
아브라함은 백세가 되어 자기의 몸이 죽고, 사라의 태가 끊어진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믿음이 약해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이루실 줄을 확실하게 믿었습니다. 믿음으로 더 견고해져서 하나님께 영광 돌렸습니다. 사람들이 더 이상 안 된다고 말할 때, 오직 믿음으로 그것이 이루어짐을 보여줌으로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환경이나 상황이나 문제를 보지 마십시오. 문제보다 더 크신 하나님, 모든 문제의 해답을 가지고 계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크게 바라보십시오. 하나님이 약속하신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확실한 믿음을 가질 때 하나님의 기적이 임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선포됩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배워서 오직 믿음으로 주님께 영광 돌리는 삶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넷째, 아멘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고후1:20)
아멘의 신앙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냅니다. 아멘은 ‘그렇게 확신합니다. 그렇게 이뤄주실 줄 믿습니다.’ 자기의 신앙고백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 머리로 깨닫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머리로 깨닫고 가슴으로 뜨거워져서 손과 발의 행동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아멘 신앙은 바로 말씀 앞에 순종을 의미합니다. 내 상황이 어렵고 힘들어도 주님이 말씀하시면 그렇게 될 줄로 믿고 아멘으로 순종할 때 홍해가 갈라지는 역사가 임할 줄 믿습니다.
내 앞에 버티고 있는 골리앗이 쓰러지는 역사가 임할 줄 믿습니다.
내 앞에 가로막혀 있는 여리고 성이 무너지는 역사가 임할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신앙의 삶을 살 때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우리의 땅을 고쳐주십니다. 병든 자를 치유하시고 회복시켜 주십니다. 그리고 생명의 면류관, 영광의 면류관을 씌워주십니다.
어느 교회학교에서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영광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하늘의 상급이란 영광의 면류관이란다. 누가 가장 큰 면류관을 받을까요?” 그 때 어떤 어린이가 대답했습니다. 머리 큰 사람이요.” 머리가 큰 사람, 지식이 많은 사람, 돈이 많은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이 땅에 사는 동안 영광을 돌린 자들에게 더 큰 영광의 면류관을 주십니다.
어느 교회 앞의 게시판에 이렇게 적혀 있답니다. “당신은 교회에 들어오지 못할 만큼 악인이 아니죠? 그리고 당신은 밖에 있어도 될 정도로 선한 사람도 아니죠?” 우리 교회 입구에 하나 써놓고 싶은 마음이 들만큼 멋진 말입니다. 이 성전 안에 들어오는 모든 자에게 하나님은 영광의 빛을 비추어 주십니다.
괴테는 “비록 진흙이라도 햇볕을 받으면 빛이 난다”고 했습니다. 우리들이 비록 부족하고 연약한 존재이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통하여 영광 받으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 진흙 같은 우리도 보석처럼 빛이 납니다. 하나님은 세세무궁토록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지교회는 계속해서 영광의 소망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해야 합니다. 우리의 사랑과 섬김을 통해 계속해서 지역사회를 섬겨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복음 전해야 합니다. 더 많은 교회를 개척하고, 선교사를 파송해야 합니다.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의 영광이 가득한 그 날이 이뤄질 때까지 열방을 향해 복음을 선포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 성지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세상에 선포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 힘써 행실로, 열매로, 믿음으로, 아멘으로 주의 영광을 드러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이 주의 영광으로 가득 채워질 때 우리가 모이는 성전은 하나님의 거룩함과 영광으로 충만하게 됩니다.
그 사명을 바르게 감당할 때 우리 성지교회는 좋은 교회를 넘어 건강한 교회, 하나님이 이 시대에 찾으시는 위대한 교회가 될 줄 믿습니다. 우리 모두 다시한번 마음의 각오와 결단을 새롭게 함으로 우리 후손들에 자랑이 되는 아름다운 교회를 물려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성지교회를 섬기는 것이 자랑이요 긍지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다같이 오늘 주신 말씀을 생각하면서 찬양 드리기를 원합니다.
♬내 눈 주의 영광을 보네 우리 가운데 계신 주님
그 빛난 영광 온 하늘 덮고 그 찬송 온 땅 가득해
내 눈 주의 영광을 보네 찬송 가운데 서신 주님
주님의 얼굴은 온 세상 향하네 권능의 팔을 드셨네
주의 영광 이곳에 가득해 우린 서네 주님과 함께
찬양하며 우리는 전진하리 모든 열방 주 볼 때까지♬
<중고등부 싱가폴 비전 트립 파송의 찬양>
너의 가는 길에 주의 평강 있으리
너의 가는길에 주의 평강 있으리
평강의 왕 함께 가시니
너의 걸음걸음 주 인도하시리
주의 강한손 널이끄시리
너의 가는길에 주의 축복 있으리
영광의 주 함께 가시니
네가 밟는 모든 땅 주님 다스리리
너는 주의 길 예비케 되리
주님 나라 위하여 길 떠나는 나의 형제여
주께서 가라시니 너는 가라 주의 이름으로
거친 광야위에 꽃은 피어나고
세상은 네 안에서 주님의 영광보리라
강하고 담대하라 세상 이기신주 늘 함께
너와 동행하시며 네게 새 힘 늘 주시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