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란지교(芝蘭之交)를 누리며
박경서
최상의 축복은 만남의 축복이라 했던가
단발머리 초등학교 가시네 적 어느 날
너는 내 곁에 다가와
나와 두 눈을 맞추었지.
우린 자주 빙긋거리며 팔짱을 끼었었지.
그리고 긴 세월의 강
훌쩍 건너뛰어
너는 예쁜 딸 셋의 그림쟁이 엄마요
나는 딸 둘을 등에 한 글쟁이 엄마로 다시 만났지.
너와 재회의 순간,
우린 단발머리 가시네 적 우정으로 되돌아갔지.
가파른 팔순 고개를 뛰어넘어,
지금도 해맑은 웃음 주고받으며
지란지교를 누리는 우리들의 지고지순한 우정.
문득 널 생각하면
깊은 산속 맑은 옹달샘이요
칠흑의 밤하늘에 쏟아지는 별똥별이요
어딘가에서 은은히 풍겨오는 수선화향이어라.
잠 못 이루는 이 봄밤,
내 생일마다에 파릇한 풀잎 물고
날아왔던 네 정성을 꺼내보며
몰디브 해변을 채색한
네 화폭 속의 청록색 바다를 꿈꾸다가,
화원 속에 푹 파묻힌
문호 셰익스피어의 옛집을 감상하며
오케스트라가 울려 퍼지는 이태리 오페라좌에
앉아있는 네 모습 그려보노라.
때로, 가슴 울려주는 시를 써달라는
우정 어린 격려에 힘입는 나.
귀한 시간 쪼개,
격조 높은 세계 문화유산을 두루 섭렵한 네게서,
깊은 사랑과 우정과 드넓은 세상을 배운단다.
어떤 언어로도 너를,
다 들어낼 수 없구나!!
내 사랑하는 친구여!!
갈채의 덫
박경서
꽃바람
갈채 바람
자기도취 바람까지 슬쩍 다가와
귓부리 간지럽히며
내 영혼의 내밀한 깊이 속으로
스멀스멀 기어 들어와
자리 잡고 살쪄가는
교만이라는 이름의 바이러스 충들
시도 때도 없이
나 아닌, 또 다른 나에게서
활화산으로 분출되는
야욕의 몸짓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롬 7:24)
“내 백성을 위로하라”
박경서
“많이 힘들었구나”
“정말 미안하다”
“많이 사랑한다”
우리 모두 넘 잘 알고 있는
이 한 마디,
머리에서 가슴까지 내려오기
어찌 이토록 어려운가?
알고 실천하지 않음은
모름이요,
죽은 믿음이라 말씀하시는데···
날이면 날마다
신문과 TV에선
소통 아닌 불통 소식 넘쳐나
절레절레, 고개 돌려
덮어버리고픈 세상사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이사야 40:1-17)
제 2의 고향
박경서
스산한 바람이 옷깃을 스치는 오후
모처럼의 한가를 따라나선 골목길
모과향 가득 흐르는 앞 골목,
국화향 은은한 옆 골목 지나
분주한 일상에 무심히 지나쳤던
뒷골목에 멈춘 내 시선,
황금열매 주렁주렁 매단
그 감나무 숲 아닌가!
아득한 옛날,
내 친구 옥순이, 복순이, 영림이 불러내어
우리들 얼굴 닮은 탐스런 꾸리 감 하나
뚝 따서, 손망치로 네 조각 나누며
네 가시네들 하얀 꿈 조각 훨훨 날리던
유년의 뜨락,
이제,
사랑스런 친구들 둥지 튼 곳 내몰라
휘파람새 되어 찾아 나설까
서리서리 몰고 온 서리바람에 전할까
제2의 고향 찾은
이 기쁨을.
사랑하는 정섭 조카의 영전에
박경서
어인 일인가!
어질고 착한 우리 조카여!!
오직 가족과 가업만을 위해
부부 공(共)히, 성실, 정직, 근면으로 일관된 삶!!
가계의 조상들 추도예배를 정성껏 드리는 날,
함께 한 우리 내외 곁에 앉았던 셋째 조카가 입을 열었네.
“숙부님 내외분께 드릴 말씀이 있어요.”
“그래, 무슨 얘긴지 들어보자꾸나.” 흔쾌히 대답했네.
“저희 내외가 결혼 후 건축 사업을 해오며 세상을 배웠고
경제력이 크게 향상된 것은 숙부님 내외분께서
함께 사업을 일구신 모습 보고 배운 덕택이지요.
두 분은 저희들의 롤 모델이에요. 항상 감사하고 있어요.”였네.
우린 좀 놀라면서도 기특한 조카 내외의 마음가짐에 혀를 찼었네.
그리고 몇 년 후,
우리에게 원룸 건축의 기회가 주어졌을 때,
셋째 조카는 머나먼 남쪽 항구 군산에서
매주 토요일마다 상경하여 원룸 완공 시까지
몸에 익힌 원룸 건축의 노하우를 십분 발휘하여
아름다운 원룸을 탄생시켜 주었네.
때로는 군산항의 신선한 먹거리인
박대와 조기, 홍어 등을 보내와
입맛을 돋우며 분에 넘치는
조카의 지극한 사랑과 정성에 감복하였네.
우리 내외가 모임에서 친구들에게 조카 자랑하면
“세상에나, 복도 많네 그려. 그런 조카가 어디 있노? 기특한지고”
친구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네.
사랑하는 정섭 조카여!!
아직 할 일이 남아있고,
열심히 일한 만큼 누릴 수 있는 나이임에도···
우리와 함께하지 못한 이 아쉬움과 아픔!!
우리 옆집 원룸을 바라볼 때마다
정섭 조카가 더욱더 사무치게 그리워지겠지.
이제, 조카 떠난 자리에 남은 가족들,
조카의 사랑하는 처와 자녀들의 삶 위에
우리 하나님의 가호가 차고 넘치시길
우리 모두 기도하겠네!!
부디 천국에서 길이 안식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