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래정씨 시조 선산인 화지공원~ 배롱나무~하마정
이 고을에 하마비가 세워진것은 조선초 태종때 부터라고 하나. 직접 하마의 예를 실천하게 된 동기는 따로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다.
구전 설화-1
고려 때 정문도 공 묘소가 화지산에 있었기 때문에 분묘(墳墓) 입구인 이 곳에서 경의를 표하고 가라는 하마비를 세우게 되었고 하마정(下馬停)이라고 하는 지명이 생기게 되었다고 한다.
구전 설화-2
조선 중종때 영의정 정광필[동래정씨]이 이곳 정문도 선조 묘소가 있는 화지산을 찾게 되었다.
이때 동래 부사가 마중을 가게 되었는데 .....이때 위세가 당당한 영의정 정광필이 근방에 자기 선조의 묘소[정문도]가 있는지라...이처럼 신성한곳에 말굽소리가 요란해서 되겠는가 ? 모두 말에서 내려 조용히 예의를 가춰야 되지 않겠는가 ?라고 지시를 함으로서 실천이 되었다고 한다.
하마정에 얽힌 전설
임진왜란 당시 왜장이 하마정 앞을 말을 타고 지나려 하자 말이 갑자기 요동쳐 왜장이 말에서 떨어졌다. 다시 말을 타려하자 또 말이 요동쳤다. 통여관에게 왜 그러느냐고 물어보니 이 곳은 정문도 공 묘소가 있는 곳으로 누구든지 말에서 내려가야 한다고 설명했더니 왜장도 예의를 갖추고 말에서 내려 걸어갔다고 한다.
해마다 이맘때 여름이면 화지공원의 배롱나무는 붉은꽃을 피워 장관을 이루고
나는 그렇게 만발한 백일홍꽃을 보기위해 오매가매 찿아들어
명당의 기운도 받으며 쉬어가는 곳이다
현경문을 들어서자 금방 도심의 소음을 벗어난 딴세상이 펼쳐진다
이름모를 새소리와 졸졸거리며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잘 가꾸어진 향나무 숲길을 따라 걸어오르면
동래정씨의 재실인 추원사가 한눈에 들어온다
추원사 옆으로 동래정씨 시조인 정문도공의 봉분앞에 수령 팔백년의 나이를 자랑하는 배롱나무가
붉게 꽃을 피우고 있다 현재 배롱나무로는 유일하게 천년기념물 (168호)로 지정되어 있는
노거수로 꽃의 색갈은 두그루 모두 붉은색 꽃을 피우고 있다
우리 선조들은 배롱나무를 부귀영화를 주는 나무라고 믿기도 했다는데 꽃은 7~8월에 붉은색 또는 흰색으로 피며
열매는 10월에 익는다 화지공원의 배롱나무는 동래정씨 시조묘 옆에 심어 조상을 기리고 자손들의
부귀영화를 기원하는 뜻을 가진 나무로서 그 문화적 가치가 클 뿐 아니라 배롱나무로서는
매우 오래된 나무로 그 생물학적 가치도 매우 큰 나무라 하겠다
풍수지리학 적으로 보면 이자리가 우리나라 최고의 명당자리 라고도 한다
백두산에서 시작된 맥이 이곳 화지산에서 끝이나며 그 끝자리에 정문도공의 묘가 자리하고
동래정씨의 선산으로 가꾸어 오던중 문중에서 시민들에게 이를 개방 함으로써
화지공원으로 명칭하였다
도심속 금싸라기땅이라 할 수 있는 화지공원을 시민들에게 무료 개방해준 동래정씨 문중에
고마움을 느끼면서 추원사를 지나 산책로를 따라 오르면 ...
울창한 숲속의 " 화지사"가 반겨준다 예전에 이절을 정묘절 또는 정묘사라 했고 지금도 화지공원 정문앞의
버스정류장 이름을 정묘사 앞이라 부르는데 언제 부터 화지사로 했는지는 모르겠다
이렇게 화지공원 입구를 하마정이라 하고 그 하마정 사거리 동해남부선 철길옆에 하마비라는 비석이 남아있다
구전에 따르면 동래정씨의 선산이자 시조 정문도의 묘앞을 지날때는 계급의 상하를 막론하고 말에서 내려라
하는 하마비를 세웠다고 하는데 당시 동래정씨의 위세가 어느정도였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