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성경 에서 오역된 단어인 “강도”가 주는 교훈
예수님 당시에는 유대나라가 당시 세계
최 강대국인 로마의 식민지였었다
우리 나라도 과거 일본에 강제 합병이 되어 일본의 식민통치 압제하에서 일본과 친일본 기득권층에 무장 항거를 하였었다
유대나라에서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유대에 주둔하고 있는 로마 관리와 군인들 그리고 친로마 기득권 층들에 항거하는 부류들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우리나라의 윤봉길 이봉창 안중근 같은 류의 사람들도 당시 유대에서도 있었던 것이다
이들 로마 정부의 식민 통치에 무장 항쟁하는 사람들은 숫자가 적고 정식 군대같은 보급도 없이 소수 구룹으로 산이나 들에 있는 굴혈 등에 숨어 있다가 유대에 거주하는 로마인 민간인들이나 군인들 또 친로마
기득권 층들을 민가에서 공격하고 사라지고 광야 산지의 굴혈등지에 숨어 있었다
이들은 당시 로마인들 언어인 라틴어로 sicarii 라고 불리웠다
이들 시카리들은 다 유대인 무력 저항세력인 Zealot(열심당/애국당)에 소속된 자들 중에서 극렬분자들이다
예수님을 팔아 넘긴 제자인 가룟 유다가
Zealot 출신으로 이 시카리에 속한 것으로 여겨 진 것은
그의 이름이 히브리어나 헬라어에는 없는 이름으로 이스카리옷(Iskariotes)이라는 점이다
“이스카리옷”을 라틴어 Sicarii를 헬라식 표기로 보는 학자들은
유다의 이름인 이스카리옷이 “시카리”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꼭 알아야 할 내용이 있다
로마인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언어인 라틴어 sicarii의 실제 의미는 테러리스트인 것이다
로마인 입장에서 본 그들은
광야 산지 등의 굴혈등 숨어 있으면서
로마 민간 군인 및 친로마 유대 기득권자들에 테러를 가하는 테러리스트인 것이다
문제는 신약을 헬라어로 기록한 기자들이나 역사를 헬라어로 기록하는 요세푸스에게는 이 라틴어 sicarii 번역에 해당되는 헬라어 어휘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당시 신약 기자들이나 역사가 요세푸스는 라틴어인 “시카리”를 산적 또는 떼강도 라는 의미인 헬라어 letes로 번역하여 테러리스트 의미로 대신 사용하여 기록 하였던 것이다
In the first-century Roman world, banditry was a common problem, especially in rural and less-policed areas. Bandits(산적,떼강도), or "léstés," often operated in groups, attacking travelers and caravans
유대인으로 로마인인이 된 역사가 요세푸스도 그가 쓴 역사서인 유대의 대 로마 전쟁사(마사다 항쟁)에서 로마군에 항쟁하는 유대인 전사들을 헬라어 letes 즉 강도라고 표현하였다
이들 시카리들의 특징은 늘 마사다와 같은 광야에 있는 산지등의 굴혈에 은거 하였다
이후 번역자들이 헬라어 lestes를 생각없이 직역하다 보니 의미가 없어지고 강도(robber)란 의미로 정착이 되 버린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광야 산지 굴혈에서의 숨어 지내는 것이 불편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도시 성전에 잠입해 들어 와
우상이 그려진 로마 코인을 유대 코인으로 환전 해주고 또 성전 제사에 쓸 비둘기를 팔며 그들이 탈취한 장물들을 매매할 수 있는 성전을 그들이 은거해 왔었던 굴혈을 대신 하여 사용 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태복음(마) 21장
12.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자를 내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고
13. 저희에게 이르시되 기록된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lestes)의 굴혈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
즉 구약적 정치 투쟁하는 은거지로 만들고 있었다는 말이다
상기 절에서 lestes로 표기된 “강도”는
라틴어로 sicarii로 정치적 테러리스트를 가리키는 것이다
사실 이들은 강도가 아니고 유대 독립투사인 애국자들인 셈이다
예수님 처형 당시 예수님 대신 석방된 바라바와 예수님 양 옆에서 같이 처형된 두 강도도
사실은 다 유대 독립투사들인 sicarii인 것이다
이 유대 독립 운동가들이 로마의 식민 통치에 항쟁하는 정치 활동을 성전에서 한 것을 예수께서 뒤집어 둘러 엎으신 사건은
하나님의 영역인 성전에서는 구약적인 정치 활동은 하지 말라는 것이다
예수님이 이렇게 시카리들을 쫓아 내신 사건은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 계실 때(구약에서) 이스라엘 국가 건설을 위해 여호수아를 도와 가나안 7 족속을 물리치실 때와는 다른 모습이다
(이 점 별도 장에서 논할 계획임)
또 예수님은 백부장과 같은 로마인들이나 친로마 기득권층인 세리등과도 적의 없이 가까이 지내는 모양새였었다
그는 그 이유를 빌라도에게 설명하기를 그의 나라가 세상에 속해 있지 않기 때문이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즉 그의 나라가 세상에 속하지 않기 때문에 그는 세상의 삶의 원리를 따르지 않는다는 말씀이다
그래서 세상의 삶의 원리 중 하나인
애국 매국의 논리에도 초월해 계신 분이다
그는 이스라엘 하나님 뿐이 아니라 로마인의 하나님도 되시고 또 세리나 창녀 같이 죄인으로 취급되는 자의 하나님도 되시려 그들의 죄를 사하려 오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렇치만
다윗 왕국을 재건 하러 올 (모세, 여호수아, 다윗과 같은) 정치적 메시아를 기다리는 유대인들로서는 애국운동을 하는 시카리들을 몰아 내신 사건으로 예수님을 어느 모로나 그들의 메시아로 용납하지 못하게 되어 있었다
또 이로 인하여
유대인들의 예수님에 대한 메시아이실 것에 대한 기대가 실망과 미움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율법에 의한 구약적 정의사회를 구현하려고 헤롯왕에게 대 들다가 구속된 세례 요한에게도 예수님은 그에게 대해 단 한번 면회도 가 주시지 않으시고
그의 애국적 행동에 대해 한 마디 지원 하시는 말씀도 하시지 않으신 것이다
이에 실망한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메시아 되심에 심한 의구심을 가지게 되었고 제자를 보내어 직설적으로 물어 보게 된다 당신 진짜 메시야가 맞느냐고
물어 본 것이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의 논조는
성전을 은거지로 삼고 다윗의 신정 왕국을 재건하려는 이스라엘 민족주의자들인
시카리들을 성전에서 쫓아 내신 것과 같은 맥락이었다
즉
세례 요한아 너는 사실 실족하고 있는 것이 라고
요한이가 자신을 잘 못 짚고 있다는 것을 지적 하신 것이다
마태복음(마) 11장
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세례)요한에게 고하되
6.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이 절에서 “나를 인하여”는
예수께서 땅의 다윗 왕국 재건과 애국적인 정치 활동에 관심을 갖지 않으신 점이다
오직 그의 영적 나라가 땅에 임하게 되는 복음을 전하시기만 하신 예수께
실망하게 된 것을 두고
당시 유대인들은 그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아를 바로 앞에다 두고 다들 실족들을 한 것이라고 표현하신 것이다
첫댓글
그러니 말입니다
세상의 대 혼란입니다
주님의 말씀안에 마음을 담아 봅니다
늘 건강 하 십 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