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씨부인 제 3-2 화
공이 들어보니 허황된 이야기이긴 하나 며느리는 보통사람과는 다른
줄 알고 곧장 허락하고 나와 성실한 노복을 불러 분부하여 이르되,
“내일 종로에 나가면 말 장수들이 있을 것인즉 말 한 마리를 사올
것이로되, 여러 말 가운데 비루먹고 창백한 망아지 한 마리가 있을
것이니 돈 삼백 냥을 주고 꼭 그 말을 사오도록 하라.“
하시며 돈을 내어주니 노복 등이 받아가지고 나와 말하되,
“대감께오서는 무슨 연유로 비루먹고 창백한 말을 삼백 냥씩이나
주고 사오라고 하시는지 참으로 이상하도다.” 하고
서로 의아해 하며 그 다음 날 삼백 냥을 가지고 종로로 나가보니
과연 말 열 필이 있어서 그 가운데 가장 비루먹고 초췌한 망아지를
보고 임자를 만나 값을 물어보니 그 임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그 말 값은 닷 냥이거니와 그 가운데 더 좋은 말이 많은데 왜
하필이면 저다지 볼품없는 말을 비싸게 사다가 무엇하려 하는가?“
하며
“좋은 말을 사시오.”하니
노복 등이 대답하되,
“우리 대감 분부가 그러하니 어쩔 수 없이 사 가야 합니다.”
하므로
말 장수가 말하기를,
“원래 값이 닷 냥인데 어찌 더 받으라 하는가?”하니
노복 등이 말하되,
“이것은 대감 분부대로 주는 것이니 여러 소리 말고 어서 받으시오.”
하며 주거늘 장수가 어닌 일인지 몰라 의심하고 굳이 사양하며 받으
려 하지 아니하자 노복 등이 할 수 없이 억지로 백 냥을 주고 이백
냥은 꺼리어 감추고 숨겨 가지고 돌아와 여쭈기를,
“말씀하신대로 망아지가 있어서 비싼 삼백 냥을 주고 사 왔나이다.”
공이 곧장 며느리에게 말 사온 것을 알리니 박씨는 노복더러 그 말을
가져오라 하여 자세히 살펴보다가 상공에게 여쭙기를,
“이 말 값이 비싼 값인 삼백 냥을 주어냐 쓸모가 있사온데 무지한
노복이 백 냥만 치르고 이백 냥은 감추어 숨기고 말 장수를 주지
아니하였기로 쓸모가 없으니 다시 갖다 주라고 이르소서.“
공이 이말을 듣고 박씨의 신명(神明)함에 놀라 탄복하고, 곧장 바깥
채로 나와 노복 등을 불러 크게 꾸짖어 가로되,
“”이처럼 꿰뚫어 보시니 어찌 속이오리까? 과연 대감 말씀대로 삼백
냥을 모두 주온 즉 그 말 원래 값이 다섯 냥이라고 하여 받지 아니
하기로 할 수 없이 억지로 백 냥만 주고 이백 냥은 숨겨 가지고
왔었더니, 이렇듯 신명하오면 소인 등의 죄는 만 번 죽어도 싼 줄로
아옵니다.“ 하고,
곧장 종로로 나아가 말 장수를 만나 돈 이백 냥을 주며 이르되,
“이 사람아, 주는 돈을 곱게 받지 않고 고집 피우더니, 우리들이 상전
에게 죄를 지어 당하게 되었으니 이를 어찌 통분치 아니하리오?“
하며 이백 냥을 억지로 쥐어주고 돌아와 여쭙기를,
“말 장수를 찾아 다시 갖다 주었나이다.”
하므로, 공이 바로 안채로 들어가 박씨에게 이르니, 박씨가 여쭙기를,
“그 말을 먹이시되, 한 끼에 보리 서 되와 콩 서 되를 섞어 죽을 쑤어
먹이시되 앞으로 삼년동안만 각별히 일러서 먹이소서.“
공이 허락하고 노복을 불러 분부하였다.
한편, 시백이 부친의 교훈을 거역하지 못하여 부부간에 동침하려고
결심하고 부인을 대하면 차마 쳐다볼 마음이 없어 부부 사이의 정이
점점 멀어져 갔다.
이때 여기에 박씨가 거처하는 초당 이름을 ‘피화당(被禍堂)이라
써서 붙이고 시비 계화를 시켜 뒤뜰 초당 앞뒤 앙 옆에 갖가지 나무
를 심되 오색토(五色土)를 가져다가 동쪽에는 푸른 기운을 불러 청토
를 나무뿌리에 북돋아 주고,, 서쪽에는 하얀 기운을 불러 백토로 북돋
아 주고, 남쪽에는 빨간 기운을 불러 적토로 북돋아 주고, 북쪽에는
까만 기운을 불러 흑토로 북돋아 주고, 가운데에는 노란 기운을 불러
황토로 북돋아 주고, 시간을 맞추어 정성으로 물을 주니, 그 나무들이
날이 갈수록 무럭무럭 자라서 모양이 엄숙하고 신묘한 일이 있어
오색구름이 자욱하고 나뭇가지는 용이 날아 오르는 듯, 잎사귀는 범
이 호령하는 듯, 갖가지 새와 수많은 뱀들이 변화가 끝이 없으니
그 신묘한 재주는 귀신도 비할 바 아닌지라 무지한 사람이야 누가
알아볼 것인가?
이때 공이 계화를 불러 이르되,
“요즘 부인이 무엇으로 소일하더냐?”
공의 물음에 계화가 여쭙기를,
“뒷뜰에 갖가지 나무를 심으시고 시간을 맞추어 소녀로 하여금
물을 주어 기르라고 하셨나이다.“
공이 이말 을 듣고 계화를 따라 뒤뜰 좌우를 살펴본 즉 갖가지
나무가 무성한데 그 모양이 엄숙하여 바로보기 어려웠다.
계화를 붙잡은 채 겨우 정신을 차려서 보니 나무는 용과 범이
변화하여 바람과 비를 부르려 하고 가지는 수많은 새와 뱀들이
수미를 접하는 듯 변화가 무쌍한지라 고이 크게 탄복하여 가로되,
“이 사람은 바로 신인이로구나, 여자의 몸으로 이와 같은
영웅대략(英雄大略)을 지녔으니 그 신령한 재주란 이루 헤아릴
수가 없구나.“
하시며 박씨에게 물어 가로되,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