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광야로 보내신 희생양 때문에
본 문 : 레 16:1-22
요 절 : (레16:22) 염소가 그들의 모든 불의를 지고 무인지경에 이르거든 그는 그 염소를 광야에 놓을지니라
11-15장은 부정에 대한 내용들을 모아놓고 정결의 규례를 정하여 온 백성에게 알린바 있었다. 이제 16장에서는 10장에서 중단된 내용을 계속 다루면서 속죄 제사의 규례를 다시 설명하고 있다.
본문에서는 모세의 율법중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속죄일에 대한 것으로 죄로 인해 단절된 하나님과 그 백성사이의 관계 회복을 위해 아론을 비롯한 제사짜들이 먼저 제물을 드렸다.
그리고 백성을 위해 준비한 두 말 염소 가운데 하나는 속죄제의 제물로, 하나는 광야의 사탄의 상징이었던 아사겔에게 내보내 이스라엘의 죄를 돌려 보내는 상징적인 행위였다. 그리고 피로 성소 및 번제단의 정결 작업을 수행한 바 있다.
이러한 여러 형태의 예전 행위를 통해 인간은 기본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속죄의 은총을 받아야 할 존재임을 확인하고 있다.
이러한 대속죄제의 집례 내용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를 지고 사탄에 이끌려 생명을 버리신 중보 사역을 예시하고 있음을 우리는 쉽게 발견할 수 있다.
1. 광야로 보내진 중보자.
본 장은 모든 인간을 위해 죽으신 그리스도를 충분히 드러낸 준다. 이스라엘의 여러 제사는 다양한 형태로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드려지는데, 이것은 마치 다이아몬드가 여러 면에서 빛을 발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이제 산 채로 광야에 보내지는 염소에 대해 생각해 보자.
아론은 두 손을 염소의 머리에 얹고 모든 범과를 염소에게 전가시킨 다음에 광야로 보냈다. 그 염소를 떠나 보낸 사람은 옷을 빨고 목욕을 해야 한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죄를 담당하셨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가리켜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죄를 그리스도에게 전가시키셨다. 그에게 모두 담당시키시고 사탄의 무리들에게 끌려가시어 십자가 위에 버려진 생명체가 되었다. 광야로 보내진 우리 중보자의 모습을 오늘의 본문에서 충분히 보게 된다.
2. 죄가 멀리 떠났다, 새 옷을 입자!
염소가 백성들의 죄를 짊어지고 멀리 떠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그 세계에서 멀리 추방하는 의미를 보여주고 있다. 속죄일에 죄의 추방이 이룩된 새로운 감회로 새롭게 생활을 시작하고 있었다.
이처럼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십자가 위의 희생에 실려 멀리 떠나보냈다. 주님께서는 더 이상 우리를 죄인으로 취급하시지 않으신다. 아론은 세마포 옷을 입고 지성소에 들어가서 백성들을 위해 속죄를 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세마포 옷을 입지 않고 아름다운 옷을 입게 해주셨다. 예언자 스가랴의 눈에 보여진 여호수아의 새 옷에 대한 기록은 우리가 입어야 할 새 옷에 대해 실감을 더해 주고 있다.
(슥3:3)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섰는지라 (슥3:4)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자들에게 명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과를 제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의 모든 죄를 망각의 땅으로 던져버리고 이제 새롭게 태어난 우리에게 새 옷을 입히시리라. 아멘.
3. 외로운 속죄양 그리스도.
홀로 광야로 떠나는 염소의 발길은 지극히 외로운 길이었다. 그리고 그 몸은 지극히 무거웠다. 아무도 그를 보살펴 주거나 동행하는 발길이 없었다. 오직 광야의 아세살만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의 사역 역시 외로운 사역이었다. 그의 아픔과 고통에 진정으로 동참하는 자가 아무도 없었다. 십자가 옆에 사랑하는 사람들이 서 있었지만 끝내는 인류의 죄를 위한 희생양으로 끌려갈 때 그는 혼자였다. 얼마나 외로우셨겠는가! 그의 아버지마저도 그를 버리는 순간이었다.
적용.
1) 속죄의 양으로서 우리 주님께서는 오늘 본문에서부터 이미 그 예표가 보여졌다.
십자가는 순간에 솟아난 것이 아니라 바로 속죄제의 예전에서부터 예시되었음을 상기하자.
2) 우리 죄를 그의 피로 씻으시고 우리에게 구원의 새 옷을 주셨다.
새로운 옷을 입고도 헌 옷을 입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주의하지 않는다면 그 옷은 다시 헌옷이 될 것이다.
3) 멀리 광야로 추방된 과거의 죄악을 가지고 자시 씨름하지 말자.
오직 자유함을 입은 실존으로 새로운 미래만 바라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