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군대의 대적들 (계 19:19-21)
19. 또 내가 보매 그 짐승과 땅의 임금들과 그들의 군대들이 모여 그 말 탄 자와 그의 군대와 더불어 전쟁을 일으키다가 20.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표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표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 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져지고 21. 그 나머지는 말 탄 자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검에 죽으매 모든 새가 그들의 살로 배불리더라
본문에 백마 탄 하늘군대와 싸우려는 땅의 군대가 나타납니다. 여기에 대해 제3차 세계대전, 공산주의와 같은 무신론의 군대와의 전쟁, 적그리스도 휘하의 열 왕과의 전쟁. 불신의 세상과 교회와의 영적 전쟁, 진리와 비진리의 싸움, 혹은 동서양의 군대가 아마겟돈에서 싸우다가 갑자기 하늘 군대의 침략을 받고 동맹하여 하늘군대를 대적한다는 등의 주장이 있지만 대부분 추측을 근거로 한 학설들입니다.
해석의 키는 "그 말 탄 자와 그의 군대"입니다. 이 군대가 어떤 군대인지 안다면 그 대상 역시 뚜렷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이 군대는 계19:14에 나오듯 예수를 대장으로 한 세마포를 입고 백마 탄 성도의 군대입니다. 거룩한 세마포를 입고 싸우는 선한 군대요, 우리의 씨름의 대상은 혈과 육이 아닙니다(엡6:12-13). 그러므로 이 전쟁은 영적전쟁입니다. 다윗이 왕이 되자 두려움을 느낀 주변의 이방나라들이 침략해와서 자멸한 것과 같습니다.
하늘 군대를 대적하는 자들을 보니 전에 우리를 괴롭히던 세상적인 것이고 육신적인 것들이고 하나님의 은혜로 능히 이겼던 것들인데 왜 이 시점에서 다시 나타날까요? 거대한 승리 후에 우리를 추앙하며 부추기는 사탄의 시험과 거기에 현혹되기 쉬운 우리 육신이 아직 이 땅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이 주님의 원수들에 대해 경계의 수준을 넘어 마음 속 깊이까지 그리고 세세토록 미워하는 마음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육체를 벗고 주님 앞에 갈 때까지 안심할 수 없는 대적들입니다.
끝까지 하늘군대를 대적하는 자들은 누구입니까?
1. 육신적인 탐욕들입니다.
“그 짐승”은 계 13:1-10에 나오는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을 가리킵니다. 넓은 의미에서 교회를 박해하는 세상의 권세 등을 가리킬 수 있지만, 하늘군대의 영적전쟁과 관련하여 생각하면 우리 안에 있는 짐승 같은 속성 즉 육신적인 마음입니다. 앞에서도 자주 묘사되었듯 계시록에서 우리 육체의 탐욕을 괴물로 표시합니다. 이런 육신적인 탐욕이 하늘군대를 대적합니다. 대승을 거두었어도 어께 으쓱하거나 영광을 반분하지 말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시기 바랍니다. 대승을 거둘수록 조심해야 합니다. 많은 하나님의 종들과 성도들이 육신을 따라가다가 혜성처럼 떨어지며 임재의 기쁨과 능력을 잃거나 사역에서 버림을 받은 것을 보았습니다. 바울이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며 근신한 이유도 그것입니다(고전9:27). 우리가 끝까지 조심해야 할 우리의 대적입니다.
2. 완악한 자아의 세력입니다.
“땅의 임금들과” '땅'은 하늘의 반대 개념으로 세상이나 육신을 의미하고, '임금들'은 권세와 의지의 상징으로 좁은 의미에서 자기 뜻대로 하려는 고집스런 우리의 자아를 상징합니다. 당시 땅의 임금들은 대개 폭군이었습니다. 죄인된 인간에게 절대권력이 주어질 때 폭정과 부패는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이처럼 평안과 형통과 능력과 업적과 거대한 승리가 있을 때 자신이 특별한 존재라도 된 듯이 행동하기 쉽습니다. 말씀이 없으면 스스로 교주가 되기도 합니다. 자아의 문제점은 기록된 말씀을 벗어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려는 비단결 같은 마음도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뜻 내 방법으로 완강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고후12:7).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러므로 제자의 도를 따라 어디에 이르렀든지 자기를 부인하고 철저히 예수님의 말씀과 모본을 따라 살되 자기 생각과 이론을 섞지 마시기 바랍니다.
3. 세상적인 이론 이단 이설들입니다.
“땅의 임금들과 그들의 군대들이 모여” 땅의 임금들에게 군대가 없으면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할 텐데 강력한 군대가 있으니 문제입니다(잠14:28). 압살롬이 반역할 때 다윗이 위기였던 것은 대부분의 백성들이 압살롬의 편에 섰기 때문입니다. 좁은 의미에서 백성은 우리 안의 마음과 이론과 생각들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땅의 군대들이니 좋은 마음과 생각이 아닙니다. 이런 잘못된 생각과 이론들이 자아와 결탁하여 강력한 군대와 같이 우리 신앙에 대적하는 반란세력이 되기도 합니다. 따르는 자들이 많다고 스스로 고무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잘못을 주장해도 이 땅에는 그를 따를 어리석은 자들이 많습니다.
심지어 신령한 주의 종이라고 지식까지 완전하다고 할 순 없습니다. 기독교 역사에 위대한 주의 종들이 신학적 이론을 달리하여 대립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나님과 대화한다고 완전한 것이 아니고, 말씀의 은사가 있다고 성경을 통달하는 것도 아니요 다 옳다는 것도 아닙니다. 하늘에 속한 군대라 할지라도 말씀이 부족하지 않도록 다윗처럼 날마다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사탄이 그 취약함을 알기에 그 부분을 노립니다. 그 성령충만하고 충성된 세례요한이었지만 그의 잘못된 유대교의 정치적 메시야관이 그를 마지막까지 괴롭혔습니다.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때 주님은 세례요한에게 메시야적인 표적을 알려 주시며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마11:6) 하셨습니다.
사이비이단일수록 배움이 없고 혼자만 아는 '내가복음'이지 진리에 무식합니다. 성경을 예수로 해석하지 않고 모두 자기로 해석하니 종교사기꾼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믿는 것이 진리인지 삶에서 테스트해 봐야 합니다. 마7:16에 "그들의 열매로서 그들을 알지니" 하신대로 주장한 말이 시간이 지나면서 바뀌하거나 물질욕심 이성문제나 악성품 실수 등 예수님과 다른 악한 열매를 맺는다면 돌아서야 합니다. 마11:19에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즉 참 지혜요 참 진리라면 삶을 통하여 좋은 결과를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반면 진리가 아니라면 사8:20-22의 말씀처럼 “그들이 말하는 바가 이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 그들이 정녕 아침 빛을 보지 못하고 이 땅으로 헤매며 곤고하며 굶주릴 것이라 그가 굶주릴 때에 격분하여 자기의 왕과 자기의 하나님을 저주할 것이며 위를 쳐다보거나 땅을 굽어보아도 환난과 흑암과 고통의 흑암뿐이리니 그들이 심한 흑암 가운데로 쫓겨 들어가리라” 한 것과 같이 됩니다. 그러므로 항상 성경을 묵상함으로 더 밝아질 뿐 아니라 온전히 마음을 진리에 고정시키시기 바랍니다.
4. 세상의 미혹을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앞에서 표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표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거짓선지자가 누군지 전후문맥에서 친절하게 답을 해놓았습니다.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표적으로 미혹하던 자" 계 13장의 땅에서 올라온 짐승을 가리킵니다(계13:11-15). 이는 육신적인 마음을 부추기는 세상이나 세상정욕을 가리킵니다. 광야에서 예수님을 시험하던 사탄은 우리에게 온갖 잘못된 환상을 심어주며 달콤하거나 그럴듯한 소리로 마음에 속삭입니다. 그래서 본질이 아닌 비본질을 위해서 일생을 투신하게 만듭니다. 심판 날에 주님은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마7:23) 하실 것입니다.
세상의 미혹력은 에덴동산에서부터 정평이 나 있을 만큼 뛰어나서 거짓선지자라 부른 것입니다. 이 친절한 답변은 앞의 "그 짐승"(19절)까지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힌트를 줍니다. 즉 땅에서 올라온 짐승이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의 우상을 섬기라고 홍보합니다. 이처럼 세상은 우리에게 육체를 위해 살라고 미혹하고 부추깁니다. 이것이 육에속한 사람이나 육신에 속한 사람입니다. 이것에 대해서 짐승의 표인 666에 대해서 이미 설명한 바 있습니다. 비록 하늘에 속한 군대일지라도 육이라는 약점 있기에 사는 날 동안은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떨어진 별이 될 수도 있습니다(계12:3-4).
온전한 승리를 위해 하늘군대가 할 일은 무엇입니까?
1. 악을 미워하시기 바랍니다.
20절 “이 둘이 산 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져지고” 둘이란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과 거짓선지자로 불려지는 땅에서 올라온 짐승, 즉 육신적인 마음과 세상을 가리킵니다. 그동안도 말씀과 성령으로 이것들을 다스려 왔지만 더 온전히 다스려야 합니다. 아주 지옥 불에 쳐넣어야 합니다. 그러나 악의 세력을 지옥에 넣으시는 분은 우리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십니다(마10:28). 대신 하늘군대가 할 일은 악을 미워하는 지옥 같은 마음입니다(아8:6). 이 악을 향한 지옥 같은 마음은 먼저 악이 하나님의 원수이고(롬8:7), 다음은 우리 영혼의 원수이기 때문입니다.
아가서 8장에서 왕후 술람미가 “너는 나를 도장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질투는 스올 같이 잔인하며 불길 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많은 물도 이 사랑을 끄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삼키지 못하나니 사람이 그의 온 가산을 다 주고 사랑과 바꾸려 할지라” 한 것은 왕자 출산 후에 생겨난 무서워진 마음입니다. 만약 버림 받는다면 자신은 물론 사랑하는 왕자까지 버림을 받기 때문입니다. 여자의 마음과 어머니의 마음의 차이입니다. 이처럼 어머니와 같은 심정으로 하나님의 원수를 향한 강렬한 증오의 불꽃이 가슴에 타올라야 합니다. 꿀벌이 침입한 말벌을 열로 죽이는 것처럼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거룩이 이 정도 수준에 이르러야 합니다. 그래서 “여호와를 사랑하는 너희여 악을 미워하라 그가 그의 성도의 영혼을 보전하사 악인의 손에서 건지시느니라”(시97:10) 했습니다.
2. 말씀으로 물리치시기 바랍니다.
21절 “그 나머지는 말 탄 자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검에 죽으매” 그 나머지가 무얼까요? 입으로 나온 검에 죽었듯 검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물리칠 수 있는 것이라면 거짓 자아 세상이론 이설 이단 악심 등입니다. "말 탄 자"란 백마 타신 예수님 혹은 백마를 타고 따르는 성도들인데 말을 탔으니 '능력 받은 자'를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능력으로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말 탄 자의 입의 검이니 음성을 내어 예수 이름으로 물리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도 사탄의 시험을 기록된 말씀으로 소리 내어 물리치셨습니다.
어떤 생각이 나를 지배하려 할 때 사탄이 준 생각이 아닌지 분별하시기 바랍니다. 상처 받은 서운한 생각이 다가오거나, 부지중에 클릭했던 도색 사진이나 영상들이 마음을 사로잡으려고 한다면 물리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 엎드림이 부족할 때 이런 일이 발생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마음을 아프게 치시는 것이라면 그 손길을 수용하면서 회개하면 아픔이 사라집니다. 하늘의 사람으로 부족함이 없도록 저 천국의 백성들의 삶과 똑 같이 하나님을 경외함에 부족함이 없기를 바랍니다.
3. 부족함이 없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21절 “모든 새가 그들의 살로 배불리더라.” 눅17:37에 “주검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이느니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독수리만이 아니라 모든 새라고 했습니다. 삼손이 나귀의 턱뼈로 블레셋 사람 1,000명을 쓰러뜨리고 시체를 두 더미나 이룬 것처럼(삿15:16) 영적전쟁에서 대승을 말한 것입니다. 마5:39-44에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하신 것처럼 율법준수를 넘어 은혜로 부족함이 없으시기 바랍니다. 이웃을 위해 기도하며 베풀고 예배 기도 등 하나님을 경외함에 부족함이 없어야 합니다. 하늘을 날던 독수리라도 날개의 힘이 부족한 순간 땅에 추락하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함께 하시는 하늘군대라도 자만하거나 방심하거나 곁길로 가면 실패합니다. 그래서 엡6:12에 영적 싸움을 씨름이라 한 것은 엎치락뒤치락 실패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위험은 우리가 육체를 벗기까지 계속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죄악의 잔재조차 남지 않도록 거룩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교만하거나 자만하지 말고 예수님의 신부와 하늘군대로서 부족함이 없도록 더욱 깨어 말씀과 기도로 승리하는 온전하고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