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가진 것의 전부
-초등 동창회가 칠순 합동 축하로-
박경선
코로나19 전염병이 확산하면서, 내 주변 사람들이 죽어가자 나의 이야기로 다가왔다. 알베르 카뮈가 14세기 사회를 반영해서 쓴 소설 <페스트>가 현 상황으로 들어와 앉았다. 내가 살아 있을 날도 얼마나 될지, 불안의 시간에 끌려가면서평범한 일상이 그리운 나날이었다. <페스트> 작품 끝은 역병이 사라져 봉쇄 조치가 풀리자 사람들이 소통하며 희망을 품게 되었다. 현 정부에서도 그런 희망을 공유하고 싶었을 게다. 2년간의 규제를 풀고 사적 모임을 허용하였다. 그렇다고 개인이 목숨을 잃을 불안까지 없애줄 수는 없다. 전 세계적으로 5억만 명 이상의 확진자가 나왔다. 이런 바이러스의 위험 속에서 내 행동의 범위는 내 목숨을 걸고, 내가 정해야 한다.
그전에는 시골 베나(베풀고 나눔)의 집 거실에 ‘손님은 신이 보내주신 선물입니다.’ 는 현수막을 걸어두고 사람들을 초대하여 소통하기를 즐기며 살아왔다. 하지만 지금은 성큼 나서지 못하겠다. 사태가 사태인 만큼 나에게 물었다.
‘오늘이 나의 마지막 날이라면, 이 시간을 어떻게 살고 싶은가?’
역병의 시대를 다룬 소설들이 새삼 떠올랐다. 조반니 보카치오의 『데키메론』에서는 페스트로 사람들이 죽어가자 죽음의 공포를 잊고 싶어 별장으로 가서 ‘오늘을 즐겨라(carpe diem).’고 외쳤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의 주인공 골드문트 역시, 전염병 지역을 돌아다니다가 광폭한 파티로 죽음을 잊고 싶어 했다. 키에르케골은 소설 『죽음에 이르는 병』에서, 자기 소외가 불안해지면 고독과 우울과 절망이 함께 와 죽음에 이른다고 했다. 그렇다. 나도 고독사로 잠들어 떠나고 싶지는 않다. 내게 남은 시간을 즐기고 싶었다. ‘오늘을 즐겨라-카르페 디엠!’을 외치고 나섰다.
규제가 풀려 2년 만의 첫 손님으로 남편의 초등학교 동창회를 우리 시골집에서 하기로 했다. 60년 만에 만나는 친구가 대부분인데다, 코로나 시대인 만큼 소소한 것에도 신경이 쓰였다. 동창들이 모두 코로나 백신 4차 접종을 완료했다니, 집주인인 우리 부부도 4차 접종을 서둘러 하였다. 1박 2일로 자고 갈 잠자리를 준비하면서, 베갯잇도 새로 사고 이불도 빨아 햇빛에 뽀송뽀송 말렸다. 황토방에 솔잎도 새로 깔았다. 지네가 나오지 않도록 집 둘레에 지네 약도 뿌렸다. 나무가 많은 집이라 모기가 많다 보니 보건소에서 연막소화기도 빌려와 연기를 피웠다. 여름이고 코로나 시대이니 넓게 떨어져 자야지 싶어, 경로당 방 두 개도 빌려두었다. 접시, 찻잔들도 모두 꺼내어 씻어 건조기에 넣어 말렸다. 물컵에는 일련번호를 붙여두고 서로 섞이지 않도록 신경을 썼다. 돌아갈 때 들려 보낼 선물도 인터넷으로 주문해두고 남편 따라 덩달아 설레며 챙겼다. 1학년 때부터 6학년 때까지 한 반뿐인 시골 학교에서 초등 6년을 같이 다녔는데 이제 60년이 지나 72세에 다시 만나본다니 그 감회가 얼마나 새롭겠는가? 나야 도시에서 자라 초등학교 동창에 대한 기억이 하나도 없으니 남편이 부럽고, 남편보다 내가 더 떨리고 기대되는 만남이었다.
5월 28일, 남편은 정자에 <축, 초등학교 동창회>라는 현수막을 써서 걸어두고, 대문 앞에 <베나의 집에 오심을 환영합니다>는 세로 현수막도 세워두었다. 대문간에는 장미꽃 바구니를 놓아두었다. 친구가 들어서면 한 송이씩 가슴에 달아주라고 남편에게 일렀다. 먼 길 달려온 친구들이 장미꽃을 가슴에 달고 잔디밭에 둘러앉자, 남편은 숯불에 돼지고기 삼겹살을 굽고, 나는 음식들을 나르며 바쁘게 점심상을 차렸다. 둘러앉아 얼굴 반찬으로 식사하는 입가에는 웃음이 가득한데, 얼굴에는 70년을 살아온 세월이 주름살로 담겨 있다. 동기 모두 72세인데 코로나 때문에 칠순 잔치도 못 했다는 이야기들이 나오자 남편과 내가 급히 일어섰다. 거실로 들어와 <축·초등 동기 합동 칠순 잔치>라는 현수막을 일필휘지로 써서 들고 나갔더니 모두 환호하였다. <축·초등학교 동창회> 현수막과 같이 아래위로 들게 해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초등 동창회에서 칠순 잔치를 합동으로 한 저녁, 삼계탕으로 몸보신하고 잔디밭에서 파크 골프도 치고 윷놀이도 하였다. 밤엔 할머니 여학생들만 집에서 재우고, 할아버지 남학생들은 이불 한
채씩 들려 동네 경로당에 자러 보냈다.
다음 날, 새벽에 마을 길을 산책하고 온 친구들에게 추어탕으로 아침을 대접하였다. 해인사 절에 들러 팔만대장경과 부처님을 알현하였다.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주문해둔 수삼을 한 채씩 들려 떠나보냈다. 서울, 부산, 영주에서 먼 길 달려와 준 데 대한 감사의 선물이기도 하지만, 언제 또다시 보게 될지 모르니 마지막 선물이 될 수도 있다. 30일 월요일엔 마을 경로당 방을 빌린 인사차 마을 어르신들을 모시고 점심 대접을 했다.
6월 1일, 선거일 쉴 틈에 한의사 친구·김 박사가 의료 봉사하러 우리 집에 다시 왔다. 혈압계랑 매트 등을 챙겨 와서 마을 어르신들이 주로 호소하는 허리 협착증과 관절 통증에 침과 부항을 떠서 치료해준 뒤 의료상비약 세트와 소화약들도 선물해주었다. 서울에서 장거리를 달려와 아픈 어르신들을 보살펴준 장로(長老) 친구의 우정에 콧날이 시큰해졌다. 친구가 경영하는 여섯 개의 병원에 사람을 사랑하는 ‘인애가’라는 이름을 붙인 의미가 곱게 곱씹어졌다. 한의학계 일인자라 자랑스러움보다, 봉사하며 사는 친구의 삶의 깊이가 존경스러웠다. 동창 단톡방에 김 박사의 의료 봉사활동 사진을 올리며 한 줄 썼다.
‘김 박사의 이런 봉사야말로 나이 듦의 아름다움이 아닌가?‘
했더니 댓글들이 줄줄이 달렸다.
“벗들이 와서 편히 쉬어갈 수 있는 베나의 집, 삶의 여유도 아름답소. 먼저 베푸시니 더욱 베푸는 친구들로 가득한 것!”
서로 다독이는 마음들을 사진에 담아 앨범으로 제작해 선물했다. 살아 있는 날 동안 추억이 아름답게 여물어가기를 빌면서.
사실 앞을 바라보면, 코로나가 아니어도 나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오직, 현재 순간이 내가 가진 것의 전부다. 그러니 오늘 순간순간을 소중히 여겨 극진히 환영하며 살고 싶다.
‘오늘을 즐겨야지. 카르페 디엠!’
2022년 9월 1일 16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