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15(목)_약1.1-11.그리스도의 종 야고보
시작기도.
사랑의 주님, 이 아침 주의 은혜와 사랑이 충만합니다. 세상과 세상에 속한 것들을 얻으려 눈을 돌리지 않게 하옵소서. 오직 주의 사랑 안에 거하게 하옵소서. 이 시간 주께 나아가오니, 나의 죄를 주의 보혈로 씻어 주옵소서. 하늘양식을 주셔서 먹고 살아있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해묵상.
오늘부터 우리는 야고보서를 함께 묵상합니다. 야고보는 시련 속에서의 믿음, 그 믿음을 통해 이루어가는 온전함, 그리고 우리에게 지혜를 넉넉히 주시는 하나님에 대해 말씀합니다. 아울러 '가난과 부'를 하나님의 관점에서 다시 바라보도록 돕습니다.
야고보는 우리에게 고통 자체를 즐기라고 강요하지 않습니다. 또한 믿음만 있으면 모든 물질적 결핍을 무조건 견뎌낼 수 있다거나, 믿음이 생기면 삶의 모든 물질적 어려움이 씻은 듯 사라진다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야고보는 그리스도인이 기뻐하는 이유는 ‘시련이 믿음 안에서 맺게 될 거룩한 열매’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야고보는 먼저 자신의 신분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
‘종’이라는 고백은 자신이 오직 그리스도께 속해 있다는 깊은 믿음의 표현입니다. 당시 그는 교회의 지도자로서 '높은 사회적·영적 지위'를 가졌음에도 자신을 과시하기보다 겸손히 낮추었습니다.
2절에서 야고보는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겨라"고 권면합니다. 일부러 시련을 만들어 내거나 좋지 않은 일을 사서 고생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가 만들어내지 않아도 이 시련은 우리의 삶에서 계속해서 나타나는데요, 우리가 시련을 만날 때 기뻐할 수 있는 이유는 3절과 4절에 기록된 ‘열매’ 때문입니다.
시련의 열매는 무엇일까요? 세상은 보통 역경을 딛고 일어나 무언가를 성취하고 성공하는 것을 열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야고보의 대답은 우리의 예상을 깨뜨립니다. 그는 시련의 열매가 다름 아닌 ‘인내’라고 말합니다.
"시련이 오면 참고 견뎌서 이 땅에서 보란 듯이 성공하고 고생 끝에 낙이 와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했던 사람에겐 맥이 빠지는 이야기입니다. 단지 참는 것이 열매라니, 무언가 하다 만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성경이 말하는 이 '인내'는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대단히 중요하고 값진 가치를 지닙니다. 오늘 ‘시련’으로 번역된 헬라어 ‘도키모스’는 당시 불순물이 전혀 섞이지 않은 100% 순수한 주화만을 취급하던 환전상들을 가리키는 표현이었습니다. 즉, 하나님 앞에 100%의 순수한 믿음과 순종을 드리는 사람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시련을 통해 맺어지는 인내는 세상이 말하는 '성공을 위한 인내'가 아닙니다. 인내는 100%의 믿음과 순종을 통해 마침내 거두어야 할 거룩한 열매입니다. 시련이 많을수록 우리는 더 정금 같은 인내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우리에게 이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고, 시련을 통해 순전한 믿음의 사람이 되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맹목적으로 고난을 버티는 것과 다릅니다. 고난의 결과가 아니라, 그 과정을 통과하며 영적으로 성숙해가는 우리의 성품과 삶 자체가 핵심입니다. 현대어 성경은 야고보서 1장 4절을 이렇게 번역합니다.
"인내력을 기르십시오. 여러 문제가 닥쳐올 때 거기서 빠져 나오려고 몸부림을 치지 마십시오. 인내력이 충분히 길러지면 여러분은 완전히 성장해서 어떤 일에도 굴하지 않는 강한 성격의 소유자가 될 것입니다."
시련이 닥치면 우리는 당장 그 상황을 벗어나고자 얕은 꾀와 내 경험을 의지해 몸부림치곤 합니다. 그러나 말씀은 오히려 그 시련 속에서 충분히 인내함으로 영적인 완전한 성장을 이루라고 가르쳐 줍니다.
그리고 시련 속에서 인내하려고 할 때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지혜’입니다. 이 지혜는 세상의 학문이나 지식으로 얻을 수 없는 ‘하늘의 지혜’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지혜를 하나님께 구하라고 명령합니다.
우리가 시련 가운데 하늘의 지혜를 구할 때, 하나님은 "왜 이런 걸 구하느냐" 면박을 주거나 질책하지 않으십니다. 구하는 자의 자격을 따지지도 않으십니다. 우리 주님은 결코 인색하지 않으시고 아낌없이, '후히' 주시는 분입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이 지혜(소피아)는 위기를 요리조리 피하는 ‘영리한 처세술’이 아닙니다. 하늘의 지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향으로 삶을 올바르게 분별하며 살아가는 영적 통찰력’입니다. 이 지혜야말로 고난 중에도 우리를 온유하게 만들고, 마음의 평안을 주며, 선한 열매를 맺게 하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과연 언제 하나님을 간절히 찾게 될까요? 모든 것이 평안하고 탄탄대로일 때, 과연 우리가 하나님을 깊이 찾을까요? 안타깝게도 삶이 넉넉하면 우리는 하나님을 구할 이유를 쉽게 잊어버립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경험하는 부족함과 결핍은 오히려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거룩한 통로가 됩니다.
지금 내 삶이 궁핍하다 해서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바로 그 결핍을 통해 우리에게 가장 귀한 지혜를 주고자 기다리고 계십니다.
6절은 지혜를 구할 때 '믿음으로' 구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믿음이란 내 원대로 결과를 끌어내기 위한 심리적 기술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신실하신 분임을 온전히 신뢰하고, 마음의 방향을 오직 주님께만 두는 태도입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그분과 올바른 관계 안에 거할 때, 우리 안에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참된 믿음이 생겨납니다. 성경은 이처럼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는 것을 ‘의(義)’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불의한 죄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의롭게 하시고 하나님과의 깨어진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다고 증거합니다(롬 4:25). 결국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서 생긴 믿음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로 하여금 '부활의 삶'을 살아가게 합니다.
반대로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있지 않은 사람을 성경은 ‘두 마음을 품은 사람’,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은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두 마음'이나 '요동함'은 고통 때문에 잠시 휘청이는 연약함 그 자체를 책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 충만한 성도라 할지라도 연약한 육신을 입고 살아가기에, 사탄은 끊임없이 감정을 자극하여 우리를 흔듭니다.
그러나 매 순간 말씀으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깊이 깨닫고 그 관계 안에 굳게 붙들려 있다면,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요동하지 않고 주님 안에 거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9절 이하에서 야고보는 교회 안의 가난한 자와 부한 자를 차별 없이 모두 ‘형제’라고 부릅니다. 하나님 나라의 가치는 세상의 재산이나 지위로 결정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뜨거운 바람에 풀이 마르고 꽃이 떨어지듯, 세상의 부는 순식간에 사라집니다.
만유의 주재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이 땅에 낮아져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하셨고,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가장 높이 올리셨습니다. 가난한 자는 자신의 높여짐을, 부한 자는 자신의 낮아짐을 자랑하라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시련과 지혜, 그리고 물질에 대해 나누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주님께서 우리를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안에 두시기 위해 사용하시는 ‘거룩한 도구’입니다. 시련도, 지혜도, 우리가 가진 부나 결핍도 모두 하나님을 더 깊이 알게 하려는 아버지의 은혜입니다.
오늘 하루도 주신 말씀 안에서 삶에 허락하신 시련가운데 인내하시고, 그 가운데 후히 주시는 하늘의 지혜로 하나님과 더 깊은 친밀함을 누리시기를 소망합니다. 샬롬.
나의묵상.
그리스도인으로써 오늘 온전히 이루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인내(ὑπομονή)다. 그것은 고통과 역경과 유혹과 재난에 견디는 것이다. 그것은 꿋꿋함이고, 그것은 불굴의 정신이다(BDAG, 뉴에이스영한사전). 그것을 통해 우리는 이 땅에서 무언가를 이루어야 하는가? 없다. 이 땅에서 이룰 것은 없다. 만약 이룬다면, 그것은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것을 이룬 것이고, 주님은 그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하셨다. 그러니, 우리가 인내를 통해 뭔가 해내야 할 것은 없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열매는 ‘인내’ 자체다. 인내(steadfastness)는 어려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믿음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다. 그래서 나와 우리 더함교회는 그 시간을 성급히 끝내려 해서는 안되며, 인내가 우리를 빚어 가도록 주님께 맡겨야 한다. 인내는 얼마나 중요한지 예수님은 말씀하시길 인내를 통해 ‘영생’을 얻는다 라고 하셨다(눅21:19,쉬운말). 그래서 바울은 말하기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는 이유를 환난이 인내를 만들어내기(κατεργάζομαι) 때문이라 하였다(롬5:3). 그리스도인의 이 인내는 소망을 담은 인내다(살전1:3). 다시 오실 우리 주님을 소망하는 오직 그 소망을 담은 인내다.
묵상기도.
사랑의 주님, 주님의 사랑이 끝이 없습니다. 새로 시작된 이 아침, 이 땅의 삶을 인내하며, 경주하며, 면류관을 향하여 나아가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우리 그리스도인이 오직 인내의 열매의 맺게 하옵소서. 오직 말씀이신 주님 안에 거하며 인내를 기뻐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