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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화 지식의 원전 3. 갈릴레오와 망원경 갈릴레오 갈릴레이
(참고 사항) 파란 글씨는 편저자가 쓴 글이고, 아래 검정 글씨는 원저자의 글이다.
2세기경 알렉산드리아의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에 의해 제안된 우주관은 16세기까지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이 우주관의 핵심은 태양과 행성들이 지구 주위를 돈다는 것인데, 수 세기에 걸쳐 실질적인 천문관측과의 차이를 보정해 주기 위한 복잡한 형태의 변형이 추가되고 있었다.
프라우엔베르크의 성당 참사회 의원이며 폴란드의 아마추어 천문학자였던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 Nicolaus Copernicus(1473~1543)는 『행성의 운행에 관하여』에서 지구가 정지해 있는 태양의 주위를 돈다는 새로운 가설을 제안하였다.
이 가설은 성서의 문구와 여러 면에서 배치되는 것이었는데, 예를 들어 여호수와 10장 12-13절에 기록되어 있는 ‘여호수와가 태양이 멈추도록 명령하였다’는 문구는 태양이 움직이고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교회가 이 가설에 반대하지는 않았다. 코페르니쿠스는 그의 성과를 교황 요한 바오로 3세에게 헌정하였고, 추기경과 주교들은 그에게 그 결과를 출판하도록 격려하는 등 오히려 호의적이었다. 대부분의 사람은 그의 이론을 단순한 수학적 고찰로 간주했을 뿐 전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는 한 대중 연설에서 “이 멍청한 사람은 천문학 전체를 뒤집으려 하고 있다. 하지만 성서에 여호수와가 멈추도록 명령한 것은 태양이지 지구가 아니었다”라고 역설하였다.
그러나 망원경이 발명됨에 따라 관찰이 이론을 대체하였고, 하늘에 대한 과거의 지도는 잘못되었다는 것이 밝혀진다. 망원경의 발명자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아마도 미델부르크에 살고 있던 무명의 네델란드인 안경기술자였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1600년경 이 안경기술자의 가게에서 렌즈를 가지고 놀던 어린아이 두 명이 렌즈를 나란히 하면 교회의 풍향계가 확대되어 보인다는 것을 발견하였고, 이 안경기술자는 그것을 보고 간단한 명원경을 만들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 망원경은 1609년까지 ‘네델란드 통’이라는 베니스와 파두아, 그리고 런던 등 유럽의 여러 도시에서 생산되어 팔려나갔다.
파두아 대학의 수학 교수였던 갈릴레오 갈릴레이(1564~1642)는 장비 제작에도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이었다. 당시 형편없던 교수 월급을 보충하기 위해, 파두아에 과학기자재를 파는 작은 가게를 운영하고 있던 갈릴레이는 1609년 5월경 망원경에 대한 얘기를 듣고 그것을 만들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망원경이 육상이나 해상에서 관측을 위해 유용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는 망원경을 이용하여 하늘을 관찰하고자 했다. 1610년 3월, 그는 ‘별들의 사자 Siderius Nuncius’라는 제목의 24쪽짜리 팜플렛을 통해 놀라운 결과들을 발표하였다. 지식인 사회에 폭탄과 같은 충격을 던져준 이 팜플렛은 당시 어느 학자에게서도 발견할 수 없는 간결하고 사실적인 기술방법으로 쓰여져 있다.
열 달 전쯤, 한 네델란드인이 망원경을 만들었으며 이를 통해 관측자의 눈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물체도 마치 가까이 있는 것처럼 명확히 볼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망원경의 놀라운 성능을 믿을 수 있게 하는 몇 가지의 확인 결과가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이에 반대되는 결과도 있었다. 며칠 후, 나는 프랑스 귀족 자크 바도베르Jaques Bardovere로부터 망원경의 성능을 확인하는 내용의 편지를 받았다. 그 후 나는 망원경의 원리를 연구해서 비슷한 장치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기로 하였다. 반사의 이론을 깊이 연구한 끝에 나는 망원경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납으로 된 원통을 준비해서 그 양단에 두 개의 유리 렌즈를 부착시켰다. 이들 렌즈의 한쪽 면은 모두 평평하지만 반대 면은 하나는 볼록하고 다른 하나는 오목한 것이었다. 오목한 렌즈에 눈을 대고 보니 물체들이 가깝고 크게 보였는데, 망원경 없이 보는 것보다 거리는 3분의 1로 줄어들어 보였고, 크기는 9배나 크게 보였다. 곧이어 60배 이상 확대해서 볼 수 있는 성능이 향상된 망원경을 만들 수 있었고, 마침내 많은 비용과 노력을 들여서 눈으로 보는 것 보다 30배 이상 가깝게 보이고, 거의 천 배로 확대해 볼 수 있는 뛰어난 성능의 망원경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육상이나 해상에서 망원경을 사용할 때 기대할 수 있는 혜택의 중요성이나 그 숫자를 열거하는 것은 시간 낭비에 불과할 것이다. 나는 망원경을 이용해서 지상의 물체를 관찰하기보다는 천체를 관찰하였다. 먼저 달을 보았는데, 겨우 지구의 지름만큼만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이후 나는 자주 행성이나 항성 등 천체 관측을 하면서 대단한 희열을 느꼈다. 수 많은 천체를 관측한 후, 나는 천체 간의 거리를 측정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여 마침내 한 방법을 발견했다. (중략)
지금부터 최근 두 달 동안 내가 관찰한 내용들을 설명할 텐데, 이 관찰들은 가장 중요한 현상의 발견을 추구하는 학자들 모두의 관심을 끌만한 것들이다.
먼저 우리 쪽으로 향해 있는 달 표면에 대해서 설명하겠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나는 달 표면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 각각을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이라고 부르겠다. 밝은 부분은 완전한 반구의 특징을 보이고 있지만, 어두운 부분은 일종의 구름같이 달 표면의 색깔을 변화시켜 마치 달이 어두운 점들로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이러한 점들은 꽤 어둡고 크기 때문에 어느 시대건 모든 사람이 명확히 볼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런 점들을 ‘거대한 고대의 점’이라고 명명하기로 했다.
이와는 달리, 크기는 작지만 달 표면 전체에 특히 밝은 부분에 집중적으로 흩어져 있는 점들을 최초로 관찰할 수 있었다. 전에는 어느 누구도 이러한 점들을 관찰한 적이 없었다. 이러한 관찰로부터 나는 달의 표면이 어떠한 결함도 없이 완전한 구의 형태를 가진 것이 아니라는 새로운 사실을 확신하기에 이르렀다. 많은 학자들이 달이나 천상계의 물질에 대해 생각해왔던 것과는 달리, 달의 표면은 어디에나 높은 산과 깊은 계곡이 있고 지구와 마찬가지로 전혀 매끄럽지도 않으며, 계곡과 분지로 가득한 불균일성을 가지고 있었다.
다음에 설명할 현상들의 특징을 살펴보면, 독자들도 나와 마찬가지의 결론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초승달이 나타난 뒤 네 번째 혹은 다섯 번째 날에는 달이 밝은 뿔처럼 보인다. 이때 달이 완벽한 구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면 그 경계선은 매끄러운 타원의 형태를 가져야 하지만, 달의 어두운 부분과 밝은 부분의 경계선은 그렇지가 않았다. 그 경계선은 불규칙하고 매끄럽지 않은 매우 꾸불꾸불한 선이었고, (중략) 말하자면 밝은 생성물이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의 경계를 넘어 어두운 부분까지 확장되어 있었고, 반면에 그늘은 밝은 부분에 파고 들어간 것처럼 보였다. 이뿐만 아니라, 고대의 거대한 점을 제외한 매우 많은 검은 점들이 어두운 부분과 동떨어진 채 태양 빛을 받는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이는 관찰되는 시간이나 위치에 관계없이 공통된 특징을 가지고 있었는데, 마치 밝게 빛나는 산꼭대기로 둘러싸인 것처럼 태양 쪽으로는 매우 어둡고, 그 반대쪽에는 아주 밝은 경계를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것은 지구상에서 일출 시 관찰되는 현상, 즉 계곡에는 태양 빛이 도달하지 못하여 어둡더라도 태양과 반대쪽에 있는 산은 이미 태양 빛을 가득히 받아서 환하게 밝아오는 현상과 아주 동일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또한 태양이 점차 높이 뜸에 따라 계곡의 어두운 그림자가 사라지는 것처럼, 달에서 관찰되는 이러한 점들도 태양이 비추는 부분이 증가함에 따라 밝은 부분이 넓어지고 있었다. 달의 빛과 그림자의 경계가 매끄럽지 않고 꾸불꾸불할 뿐만 아니라, 더욱 이상한 것은 달의 어두운 부분에도 아주 많은 밝은 부분이 있다는 점이다. 이 역시 밝은 지역과는 연결되어 있지 않고 상당한 거리의 간격을 가지고 떨어져 있었는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크기와 밝기가 점점 증가하면서 한두 시간 뒤에는 밝은 부분에 연결되었다.
그런 중에도 어두운 부분 여기저기에서 새로운 밝은 점들이 생겨나서 크기가 증가하고 마침내는 밝은 부분에 연결되어 점점 확대된다. (중략)
자, 이러한 것이 일출 전의 지구에서 평지가 어두운 상태에서도 태양 빛이 높은 산의 정상을 환하게 비추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잠시 후에 햇빛을 받는 부분은 계속 증가해서 산의 더 넓은 부분이 밝아지고 마침내 완전히 해가 뜨면 평지와 계곡도 다 밝아지지 않는가? 달 표면의 이러한 장관은 이제부터 내가 기술할 상현달로 변할 때의 멋진 광경에서 보는 바와 같이, 그 규모나 정도 면에서 지구 표면의 울퉁불퉁한 정도를 훨씬 능가하는 것 같다. (중략)
나는 오랫동안 밝은 부분의 아래쪽에 찍혀 있는 커다란 그림자의 돌기를 관찰하였다. 꽤 오랫동안 그것은 어두운 채로 남아 있었지만, 약 두 시간쯤 뒤에는 그 움푹한 곳의 중앙보다 약간 아랫부분에서 밝게 빛나는 산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점차 커져서 삼각형의 모양으로 변하였다. 그렇지만 여전히 달의 밝은 부분과는 연결되지 않은 채로 떨어져 있었다.
잠시 후 그 근처에서는 또 다른 3개의 밝은 점들이 나타나 빛나기 시작했다. 달이 거의 저물 때가 돼서야 그 삼각형 모양의 밝은 점이 달의 밝은 부분과 열결될 정도로 크기가 커졌는데, 이때에도 여전히 앞서 말한 3개의 밝은 산들을 거느리고 있었고, 거대한 빛의 융기처럼 갑작스레 그림자 속으로 확대되었다.
계속해서 그는 망원경을 통해 관찰할 수 있는 별의 숫자가 엄청나게 증가한다는 점을 기술하고 있다. 눈으로 볼 수 있는 별의 숫자는 셀 수 있을 정도이지만, 그의 망원경을 통해서는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알려진 숫자의 10배 이상에 이르는 무수한 숫자의 별들’을 관찰할 수 있었다. 망원경을 통해 수세기 동안 그 본질에 관해 논란이 계속되어온 은하수를 관찰함으로써, 그는 은하수가 무수히 많은 별들이 무리 지어 있는 것임을 밝혀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가장 놀라운 발견을 하게 된다.
지금까지 나는 달과 항성, 그리고 은하수에 대해 내가 관찰한 사실들을 간략히 설명하였다. 이제는 내가 한 일들 중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하나를 세상에 널리 알려야겠다. 나는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4개의 행성을 발견하였고, 지난 두 달 동안 그들의 위치와 움직임, 그리고 변화의 정도를 관찰하였다. 천문학자들이 이들 행성의 주기를 조사해서 밝혀주기를 바란다. 나는 제한된 시간으로 오늘까지 이 일을 마칠 수가 없었다. 하지만 헛수고를 하는 일이 없도록 알려주자면, 천문학자들은 내가 이 글의 첫 부분에서 기술한 것과 같은 정교한 망원경을 가지고 관찰해야 할 것이다.
올해, 즉 1610년 1월의 일곱 번째 날, 그날 밤 처음 한 시간 동안 망원경을 통해 하늘의 별자리를 관찰했을 때 목성이 내 눈에 들어왔다. 이번에 사용했던 망원경의 성능이 매우 뛰어났기 때문에 전에는 관찰되지 않았던 새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목성 근처에서 3개의 작지만 매우 밝은 별들이 관찰되었다. 나는 이 별들을 항성의 일부라고 생각하였지만, 그들이 황도와 평행한 일직선상에 배열되어 있다는 점, 그리고 다른 별들과 크기는 같지만 더 밝게 빛난다는 것이 다소 의아스러웠다. 목성과 그들 서로 간의 위치는 다음과 같다.
목성의 동쪽에 두 개의 별이 있고, 하나는 서쪽에 있었다. 동쪽 멀리에 있는 것과 서쪽에 있는 별은 다른 것보다 큰 것처럼 보였다.
이 별들과 목성과의 거리에 관해서는 내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이들이 항성이라고 생각하여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러나 1월 8일 무언가 운명에 이끌리어 다시 목성을 관찰하였을 때, 나는 전혀 다른 상황을 관찰할 수 있었다. 3개의 별이 모두 목성의 서쪽에 있었고 서로 간의 거리는 지난 번 관찰 때보다 더 가깝고 그 간격이 동일하였다.
그때 비록 나는 그 별들이 항성일 것이라는 생각을 완전히 버리지는 못했지만 매우 놀라 흥분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그 전날 세 항성 중 두 개의 서쪽에 있던 목성이 오늘은 세 항성의 동쪽에서 발견될 수 있는 것일까? 나는 즉시 목성이 천문학자들의 계산과는 달리 움직이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이 별들을 지나가 버린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다음날 밤이 오기를 학수고대하며 기다렸지만, 실망스럽게도 하늘은 구름으로 뒤덮여 더 이상 관찰할 수 없었다.
그러나 1월 10일의 관찰에서 이 별들은 목성에 대해 다음과 같은 위치관계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날은 두 개의 별만을 관찰할 수 있었는데, 이들은 모두 목성의 동쪽에 있었다. 나머지 하나는 생각건대 목성의 뒤편에 있는 것 같다. 이들은 예나 마찬가지로 목성과의 직선상에 정확히 위치하고 있었고, 이 선은 황도와 일치하였다.
이러한 현상을 관찰하면서, 나는 이 별들의 위치 변화가 결코 목성의 움직임에 기인할 수 없다는 점과 황도 상에는 이러한 거리 내에 앞이든 뒤든 다른 별들이 있을 수 없으므로 내가 같은 별들을 내내 관찰해왔다는 점으로부터 마침내 다음과 같은 놀라운 결론에 도달하였다. 이 별들간의 위치 바꿈은 목성의 움직임 때문이 아니라, 내가 관심있게 관찰해 온 별들 자체의 움직임 때문이었다. 따라서 나는 좀더 주의를 기울여서 이들의 움직임을 정밀하게 관찰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1월 11일 관찰된 별들 사이의 배열은 다음과 같았다. 두 개의 별만이 목성의 동쪽에서 관찰되었는데, 목성에 가까운 위치의 별과 목성 간의 거리는 더 동쪽에 있는 별과 목성 간 거리의 3배였다. 그리고 동쪽 끝에 있는 별이 다른 것에 비해 거의 두 배 정도 크게 보였는데, 그 전날 밤에 주저할 것도 없이 태양 주위를 도는 수성과 금성처럼 목성도 3개의 위성을 가지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계속되는 관찰을 통해 이 점은 더욱 명약관화해졌고, 나는 3개가 아니라 4개의 불규칙한 거동을 하는 항성체가 목성의 주위를 돌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계속해서 이들 위성의 좀더 정확한 위치 변화를 관찰하고……. (후략)
갈릴레오의 발견은 기존의 믿음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다. 달 표면의 산과 계곡은 당시의 믿음과는 달리, 천상의 물질들이 완벽한 구의 모양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새로이 관찰된 수천 개의 별들은 우리의 세상이 얼마나 왜소한지를 각인시켜 주었다. 파두아의 한 철학 교수는 망원경을 통해 보게 될 것이 두려운 나머지 망원경을 들여다보는 것조차 거부하였다. 더욱이 목성이 위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이들 위성을 고려하지 않은 당시의 천문학에 오류가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당시 베니스의 영국 외교관이었던 헨리 워튼Henry Wotton경은 1610년 3월 13일 갈릴레오의 책과 함께 셀리스베리 백작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러한 점을 지적하고 있다.
지금의 상황을 언급하면서, 저는 각하께 소인이 지금까지는 어디서도 전혀 들어보지 못한 이상한 소식 하나를 전하옵니다. 파두아의 수학자가 쓴 최근에 발간된 책(이 책은 곧 보내드리겠습니다)에 의하면, 플랜더스에서 처음으로 발명된, 물체를 가까이 확대해서 볼 수 있는 광학기구를 개량해서 관찰한 결과, 목성 주위를 돌고 있는 4개의 새로운 위성을 발견하였다고 하옵니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이상한 것은 달이 완전한 구가 아니라 지구의 표면처럼 울퉁불퉁한 돌출물로 뒤덮여 있으며, 이것이 태양 빛을 받고 있다는 식의 얘기를 한다는 점이옵니다. 그의 전반적인 주장은 기존의 천문학 지식, 나아가 점성학을 뒤엎는 것이옵니다. 이 새로운 발견들로 인해 기존의 정의가 바뀌어야 할 것이옵니다만, 왜 아직도 그대로인지 모르겠사옵니다.
갈릴레오는 곧 대단한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는 목성의 위성들을 그의 후원자인 메디치 대공 코시모 2세의 이름을 따라 ‘메디치 행성’이라고 명명했다. 영광스럽게도 그가 로마로 초대되었을 때, 교황 요한 바오로 5세는 갈릴레오가 그 앞에서 무릎을 꿇지 않도록 했으며, 그를 칭송하기 위한 만찬에서는 몬티첼리의 후작부인이 그의 광학기기에 그리스 이름인 ‘텔레스코프Telescope’라는 칭호를 내렸다.
젊었을 때부터 갈릴레오는 코페르니쿠스 우주관의 신봉자였지만, 그의 초기 저서 『별의 메신저 The Starry Menssenger』에서는 재치 있게도 코페르니쿠스의 우주관에 관해서 거의 언급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교회에서는 그가 가진 새로운 개념의 위험성을 인지하기 시작하였다. 마침내 코페르니쿠스의 우주관을 드러낸 『두 개의 우주관에 대한 대화 Dialogue on the Two Chief World Systems』가 출판된 1632년 그는 교회법정에 서게 되었으며, 유죄가 인정되어 종신형에 처해졌다. 심한 고문의 위협 속에서 그는 다음의 사상포기선언을 공포하게 된다.
고 빈센쪼 갈릴레이의 아들이며, 70살의 프로렌스 출신인 본인 갈릴레오는 이 법정 앞에서 심문을 받으며, 숭고하고 거룩하신 대재판관님 앞에 무릎을 꿇고 이교도적 사악함에 반대하고 기독교적 가치를 숭상하면서 제 앞에 놓인 성서 위에 손을 얹고 맹세하나니, 저는 언제나 하나님을 믿었으며 지금도 믿고 있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앞으로도 성스러운 교회와 교황의 가르침과 전도하심을 믿을 것이옵니다. 그러나 이 성스러운 법정이 내가 가지고 있었던 잘못된 생각, 즉 태양은 움직이지 않은 우주의 중심이며,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는 잘못된 생각을 완전히 버릴 것과, 말이든 글이든 어떠한 방법으로도 이런 잘못된 사상을 옹호하거나 설파하지 말 것을 내게 선고한 뒤에도, 그리고 이런 잘못된 사상이 성서에 위배된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음에도, 나는 이미 유죄판결이 내려진 이런 새로운 사상을 다루는 책을 써서 발간하여 아무런 대책도 없이 이런 사상의 타당성을 설득하는 논지를 제시하였기 때문에,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 돌고 있으며, 움직이지 않는 태양이 우주의 중심이라는 사상을 믿고 있는 이단자의 의혹이 있다고 선고를 받았사옵니다.
따라서 숭고하신 대재판관님과 모든 진실한 기독교인의 마음속에서 저에 관한 이러한 강한 의혹이 불식되기를 앙망하오며, 진실한 충성심과 진정한 마음으로 앞서 고백한 잘못과 이단의 견해, 그리고 모든 다른 잘못과 이단과 성스러운 교회에 반하는 어떠한 종파도 버리고 저주하며 혐오하옵니다. 앞으로 다시는 저에 관한 이러한 의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어떠한 것도 말로든 글로든 절대 언급하거나 주장하지 않을 것이옵니다. 또한 어떤 이단자나 이단의 의심이 있는 자를 알게 되면, 즉시 그를 이 법정에 고발하겠사옵니다.
플로렌스 근교 아르체드리의 격리된 집에 감금된 갈릴레오는 늙은 장님이 되어 있었다. 그가 죽기 2년 전, 영국의 젊은 시인 존 밀턴John Milton이 그를 방문하였는데, 밀턴은 출판의 자유를 옹호하는 자신의 저서 『아레오파기티카 Areopagitica』(1644)에서 갈릴레오와의 만남을 이렇게 회고하고 있다. “그 유명한 갈릴레오를 방문하여 내가 발견한 것은 프란시스코와 도미니크 추종자의 견해에 반대되는 우주관을 생각했다는 이유만으로 죄수가 된 늙은이였다.”
『실낙원Paradise Lost』에서 밀턴은 갈릴레오(‘터스칸의 예술가’)가 피에솔레의 언덕(‘페솔’)이나 플로렌스가 위치한 아르노의 계곡(‘발다르노’)에서 망원경을 통해 최초로 바라본 그 이상한 달을 지옥의 암흑 속에서 희미하게 보이는 사탄의 방패에 비유하고 있다.
저 커다란 방패
그의 어깨에 달처럼 걸렸 있구나,
저녁 무렵이면 터스칸의 예술가가 망원경을 들고
피아솔레 언덕 꼭대기에서 또는
아르노의 계곡에서 신대륙과
강 아니면 산을 찾아
곰보쟁이 원구의 궤도를 샅샅이 관찰하는 동안.
그러나 밀턴의 서사시 속 우주관은 지구 중심의 낡은 것이었다. 아담이 천사에게 우주에 관해 가르쳐달라고 했을 때 천사는 이렇게 말한다. 신께서 지구가 태양을 돈다느니 하는 따위의 하찮은 문제는 일부러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수준에 배치하였노라고 …….
신께서 자신이 짠 천상의 직조에 관해서는
뭇사람들이 이러쿵저러쿵 하도록 내버려두셨지. 아마
그들의 당찮은 이론에 박장대소하고나 싶으셨던 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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