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평사와 중도(中道)
글 德田 이응철(수필가)
“청평사에서 저희를 초대해 주셔 감사드립니다.
요즘 국제정세가 시시각각으로 변해 경제가 발목을 잡아 국내외 전반이 녹록지 않습니다. 또 정치하는 사람들 역시 아전인수 격으로 예전 당쟁을 방불케 해 지켜보는 국민 또한 혼돈을 느낍니다. 좋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벌써 지난해였다. 녹음방초가 진하게 발산하던 6월, 청평사로 달려온 35명의 중생은 점심 공양의 귀한 대접을 받고 준비된 장소로 옮겼다. 신흥사 말사인 조계종 청평사 피안처엔 연꽃차와 다과로 엄숙했다. 저마다 감사의 마음을 새기며 좌정하고 있을 때 좌중에서 예를 갖춘 질문이었다.
“네, 저도 수도하면서 정치에 본의 아니게 몸담은 적이 있지요. 백담사에서 전 대통령이 은거해 계실 때도 2년간 수행하였지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찾아온 논객들과의 대화도 많았구요. 실은 진보적인 성향이 강했지만, 요즘 중도를 택하게 되더군요”
숨소리 크게 들리지 않는 대화의 장은 진지하다 못해 엄숙했다. 흰색과 검은색을 놓고 볼 때 극단적인 선택이라 회색도 존재하며, 그 역시 중도적인 성향이 아닐까요? 스님은 분명했다. 기타 줄을 풀어주어야 기타 원형이 보존된다고 하시며 너무 긴장해서 살면 마음이 상하고 정신세계가 경직된다고 일러주셨다.
극단적으로 치닫는 세상에서 중도의 역할의 주요함을 강조하시는 도후 스님! 동양철학에서 말하는 중용도 맥을 같이 하리라.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다는 중(中)과 용(庸)이란 평상을 뜻하니 본성을 쫓는 행동으로 극단적이지 않다.
오봉산을 바라보며 낭만이야 뱃길이지만, 굽은 육로도 많이 펴져, 최근 오음리에서 우회전하는 차들이 줄을 잇고 있다고 한다. 이곳 청평사를 신흥사에서 관리해 주지 스님께서 간간이 이곳에 머무르신다고 한다.
고려 예종, 인종 때 외척 권세가 하늘을 찌를 무렵, 이자겸의 동생 이자현이 이곳에서 자연 정원을 가꾸며, 아홉 그루의 소나무를 심어 구성폭포를 만들고 폭포 위에 네모꼴로 고려정원인 영지(影池)를 최초로 만들어 전해오는 유서 깊은 사찰이다.
대제학을 7명이나 배출한 광산김씨 사계(沙溪) 김장생의 자손으로 새싹 포교에 남다른 관심을 지닌 도후 주지 스님은 당시 고전 사부님과 종친이시란다. 백거이의 명시 대주(對酒) 휘호가 인연으로 서예와 고전서생(古典書生)들까지 초대한 뜻깊은 날이었다.
출발 전 날, 수암 시조인께서 단단히 일러주신다. 청평사 왼편에 주목(朱木)은 8백 살이고, 뜰에 황매는 중국에서 국내에 처음 이식되었으며, 우리 정원사에 효시인 고려정원과 회전문, 공주 탕. 공주 탑 또한 눈여겨 보라고-.
맑고 깨끗하다.
울창한 숲과 맑은 계곡에서 세속의 때를 훌훌 씻는다. 하늘을 덮은 숲속은 그야말로 영혼까지 힐링이다. 오봉산 기슭에 깊숙이 안긴 무릉도원이 한낮 무더기로 기를 전해준 날-, 청평사는 다른 사찰보다 특이하게 지어져 단순하면서도 유일무이하다. 빙글빙글 도는 회전문 같은 선입견이지만, 실제 들어가니 보통 사찰의 사천왕문을 대신한 것으로 조선 전기의 건축물(보물 164호)로 보호받고 있다.
회전이란 중생들에게 윤회전생(輪廻轉生)을 깨우치게 하는 마음의 문이다. 당나라 공주는 작은 동굴에 노숙하다가 새벽 상사뱀과 회전문을 돌아서려는 찰나 하늘에 비와 함께 벼락이 내리쳐 즉사해 공주는 자유의 몸이 되어 공주 탑을 세웠다고 한다.
수천 년 흐른 물이 빚어낸 암벽 물길은 인내하며 천년을 흐른 곡선이다. 그 아래 공주 탕을 보며 감회에 젖는다. 귀로에 당부하던 주지 스님 말씀을 새긴다.
“좋은 일일 때는 이웃과 나누어 복을 찾는 자비로, 나보다 어려운 사람들을 생각하고, 어려운 일을 당할 때는 전화위복으로 내일의 꿈을 가지고 하루하루 사는 게 천당의 지혜라고ㅡ”
야트막한 산길을 돌아 나온다. 녹록치 않은 삶을 헤쳐온 모두에게 귀한 생명수를 마시고 온 날이다. 예사롭지 않은 대웅전 돌계단이 끊임없이 구르는 것과 같은 중생의 번뇌와 업의 발걸음 소리를 무언으로 일러주는 일념정심(一念淨心)이다.
사찰 식을 정성껏 준비한 공양 스님의 미소가 푸르다. 일 년 전, 서생들을 사랑으로 귀한 만남 주선하신 사부님은, 거짓말처럼 떠나 모두를 애통하게 했지만, 도후 주지스님과의 귀한 만남은 영원히 역사에 남는다.(끝)
* 시와 소금 2024. 50 여름호 154p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