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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적 원리를 통해 고효율로 성공하라
자연의 지성은 힘들이지 않으며 쉽게 일한다. 근심 없이 조화와 사랑으로 일한다. 조화와 기쁨, 사랑의 힘을 이용할 때, 우리는 힘들이지 않고 쉽게 성공과 행운을 창조한다. 온전한 존재는 가지도 않고 알고, 보지 않고도 보며, 행함이 없이 이룬다. -- 노자(老子) --
오늘 알아볼 내용은 「성공을 부르는 일곱 가지 영적 법칙(디팩 쵸프라 지음)」 중 네 번째 법칙, [최소 노력의 법칙] 입니다. 최소 노력의 법칙은 자연과 관련이 있습니다. 자연이 일하는 것을 관찰해 보면 언제나 최소 노력을 들이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트랜서핑의 시리즈에서도 내부 의도가 아닌 보이지 않는 우주적 힘, 외부 의도를 활용하면 언제나 가장 작은 에너지를 사용해서 목표물에 도달하는 최적의 루트로 작동한다는 점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지금 알아보는 성공을 부르는 7가지 영적 법칙에서 말하는 최소 노력의 법칙도 같은 맥락입니다. 자연을 한 번 떠올려 보십시요. 풀들은 자라기 위해서 애쓰지 않습니다. 물고기도 헤엄치려고 애쓰지 않습니다. 꽃들은 그 아름다운 꽃잎을 굳이 강압적으로 예쁘게 피려고 애쓰지 않습니다. 인도의 고대 철학인 베다 과학에서는 이 원리를 [경제적 노력]의 원리, 혹은 [덜 해서 더 많이 이루는 원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모든 것을 이루는 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이를 무위이화(無爲而化)라고 합니다. 아주 약간의 미묘한 의도만 있어도, 그 의도가 노력 없이 실현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기적이라고 부르는 것도 실제로는 최소 노력의 법칙이 표현된 것입니다. 만일 전지전능한 창조주가 있다고 해봅시다. 그 창조주가 자신의 세상을 창조하는데 막 열심히 하고 노력하고 피 땀 흘리는 그런 모습이었을까요?
아닙니다. 창조주 그 상태, 그 자체에서 약간의 의도와 씨앗을 품음으로써 만물을 창조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자연의 지성과 연결이 되면 자연스럽게 활용할 수 있게 됩니다. 트랜서핑의 시리즈에서는 영혼의 목소리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책의 저자 디팩 초프라는 에고 중심의 삶 대신 참나를 기반으로 하는 삶을 살으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참나의 자리는 어떤 자리일까요? 창조주의 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창조주의 자리를 기반으로 하는 삶을 살라 라고 합니다. 그럼 그 반대인 에고 중심의 삶은 어떤가요? 에고 중심의 삶은 언제나 통제하고 지배하려고 합니다. 그 이전 창조주의 자리, 참나의 자리는 [사랑]의 자리라면 에고 중심의 자리는 [두려움]의 자리입니다. 두렵기 때문에 통제하고 움켜 쥐려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역설적인 구절이 하나 있다면 "분노는 사랑의 요청" 입니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이 에고 중심의 자리는 언제나 외부로부터 인정을 갈구합니다. 통제 과정 자체가 굉장한 에너지를 소모하는 과정입니다. 이처럼 인정을 갈망하는 에고의 길은 얼마나 지치고 힘든 길인지를 알 것입니다. 이 에고의 길로서 남들이 보기에 굉장히 높은 자리, 혹은 많은 것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자리에 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의 내면은 끊임없는 갈등과 고통이 가득합니다. 그런 사람의 자리는 어떤 자리냐면 힘들게 권력을 얻고, 아주 긴 시간 동안 유지하기 위한 고통의 자리입니다. 그 고통을 얻고, 잠시 짧은 쾌락을 얻으며, 나머지 긴 시간 동안 고통스러워 합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말했습니다. 권력이라는 것은, 정치적으로 높은 자리라는 것은, 실제 그런 자리에 있어야 되는 사람으로 권력욕이 전혀 없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한 것입니다.
에고의 자리는 통제와 두려움의 자리이기 때문에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한 가지 예시를 제시했습니다. 영적 수련법 중에서 꿈으로 (수련)하려고 하는 수련법을 알고 싶다면 카를로스 카스테네다의 저서를 읽어 보라고 추천한 것입니다. 카스테네다라는 책의 특징은 돈후앙이라는 멕시코 주술사를 스승으로 만나면서 꿈을 통해서 수련하는 내용이 그것입니다.
돈후앙이 전하는 내용은 이렇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중요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유지하는데 대부분의 에너지를 씁니다. 만일 우리가 그 중요성 가운데 일부라도 포기할 수 있다면 우리에게 두 가지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하나는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라는 환상적인 생각을 유지하느라 애쓰는 에너지를 해방시키게 될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해방된 에너지 때문에 우주의 실제 위대함을 일견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에너지를 얻게 될 것입니다.
멕시코의 주술사도 중요성 버리기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트랜서핑의 시리즈도 중요성 줄이기를 강조하였습니다. 결국 네 번째 법칙인 최소 노력의 법칙은 낭비되는 에너지를 줄이고 최대의 효율로 작동하도록 하는 원리입니다. 이 법칙에는 세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이 세 가지 요소는 최소 노력의 법칙을 활용할 수 있도록 안내합니다. 첫 번째 요소는 [받아들임]입니다.
받아들임이라는 것은 오늘 나에게 주어지는 사람과 상황, 환경, 그 모든 일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다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받아들임을 통해서 지금 이 순간이 있는 그대로 그래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 순간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온 우주는 항상 언제나 지금 그래야 하는 대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우주가 존재하는 데는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의 삶에 나타나는 그 어떤 사람이든, 상황이든, 그것이 고통이든, 문제거리든, 상관없이 있는 그대로를 거부하거나 저항하지 않고 온전히 수용하라는 것입니다. 내 삶에 나타나는 모든 상황을 인위적으로 바꾸려고 하거나 통제하려고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인식하고 수용하며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처럼 그 상황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바꿈으로서 앞으로 펼쳐질 미래 또한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을 달리 말로 하자면 지금을 거부하는 것은 온 우주를 거부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 그 자체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것이든 그것이 지금 어떠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우리가 바라는 대로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그냥 지금 있는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우리는 어떤 것이 미래에는 다르기를 바랄 수 있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나 상황 때문에 좌절하거나 화날 때는 자신이 그 사람이나 상황에 반응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나 그 상황에 대한 자신의 감정에 반응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 사람과 그 상황에 대한 생각과 판단으로 말미암아 발생한 감정에 반응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감정은 나의 순간적으로 이뤄진 관점과 판단에 근거합니다. 그러나 그 판단은 현재 없습니다.
예를 들면 내가 굉장히 어떤 사람 때문에 불쾌하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그 불쾌함은 현재의 상황에 근거한 판단이 아니라, 과거의 경험이나 기억의 상처로부터 투사된 것입니다. 그러한 측면에서 자신의 감정들은 다른 사람의 잘못이 아닙니다. 이 점을 완전히 이해하면 자신의 감정에 스스로 책임을 지고 변화시킬 수 있게 됩니다. 즉, 내 안에서 반응하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그러니까,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일 때, 모든 사건과 상황에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그러면 자연히 최소 노력의 법칙을 따를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요소는 [책임]으로 나아갑니다. 여기서 책임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이를 다른 말로 하면, 자신을 포함하여 어느 누구도, 어떤 무엇도 비난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지금 이 상황이나 이 사건, 이 문제를 받아들이고 스스로 책임질 때, 우리는 지금 있는 그대로의 상황에 대해 창조적으로 반응할 수 있게 됩니다.
모든 문제는 기회의 씨앗을 품고 있으며, 그렇다는 것을 알아차리면 우리는 이 순간을 더 나은 상황이나 더 나은 것으로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우리가 부정적인 정서, 경험과 기억들을 어떻게 다루느냐 하는 것은 어떻게든 거기에 반응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므로서 나와 완전히 하나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뭔가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은 나의 감정에 개입되지 않고 관찰의 대상이 되어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감정에 대하여 관찰자가 아니라 그 감정에 몰입되어 있다면 그것이 고통입니다. 그 감정과 하나가 되어 있을 때, 우리는 그 감정을 통제할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관찰자가 되기 위해서 우리는 그 감정을 가슴에서 떼어내어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내 손에 완전히 쥐고 내 책임으로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내것인 것을 확실히 확인할 때, 그때서야 비로소 우리는 그것을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관찰자가 될 때, 이제까지 우리를 괴롭히던 상황들을 새롭고 아름다운 어떤 것을 창조하기 위한 기회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우리를 괴롭히는 것들이나 사람들은 그때서야 비로소 변환됩니다. 우리의 스승이 됩니다. 우리의 현실은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래서 만일 우리가 이 현실을 완전히 나의 책임으로 보고 완전히 수용하게 된다면 우리는 주변에 많은 스승을 두게 될 것이며 좋은 기회들을 훨씬 많이 가지게 될 것입니다.
이것들은 굉장히 영적인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그런데 심리치료 파트 중에 수용전념 치료(ACT)라는 것이 있습니다. 수용전념 치료도 사실은 불교와 그 뿌리가 많이 닿아 있는 부분으로서 심리치료 기법 중 하나입니다. 영성과 심리상담과 과학과 성공과 자유로움은 결과적으로 모두 다 하나입니다. 그래서 영성이라는 환타지 많이 낀 것을 우리가 현실에 적응할 수 있도록 최선으로 쉽게 접근해야 하겠습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 괴롭히는 사람, 또는 적을 만날 때마다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지금 이 순간은 그래야 하는 대로 그대로다. 이것 또한 내가 어쩔 수 없이 경험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라는 것을 늘 상기하도록 합시다. 지금 이 순간은 자신의 삶에 어떤 관계를 끌어 들였던 간에 그 관계들은 정확히 지금 이 순간에 우리의 삶에 필요한 것들입니다.
모든 사건의 이면에는 숨겨진 의미가 있고, 이 숨겨진 의미는 우리가 더욱 성장하도록 돕고 있습니다. 최소 노력의 법칙 마지막 세 번째 요소는 [방어하지 않음] 입니다. 이것은 [사람들에게 우리의 관점을 설득시키거나 납득시킬 필요를 느끼지 못함]을 의미합니다. 상대를 설득시켜야 한다는 충동은 사람들이 굉장히 많이 빠지고 애쓰는 부분 중 하나입니다.
특히 정치나 가치관에 관하여는 더욱 그렇습니다. 정치적 관점에 다툼이 생기면 더욱 더 자기 주장이 강해지는 이유입니다. 주변 사람들을 잘 관찰해 보면 그들이 자신의 관점을 방어하는데 굉장히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쓰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관점을 방어하려는 욕구를 포기함으로써 이전까지 낭비되었던 엄청난 에너지를 다른 중요한 곳애 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언제나 자신의 관점을 방어하고 남들을 비난하고 지금 이 순간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 우리의 삶은 저항에 부딪히게 됩니다.
저항에 부딪힐 때마다 그 상황을 억지로 통제하려고 한다면 저항은 더 커질 뿐입니다. 이것을 트랜서핑 시리즈에서는 [균형력]이 작용한다고 하였습니다. 현재를 껴안고 현재에 녹아 들어서 현재와 하나 될때 우리는 살아있는 모든 존재 안에서 고동치는 환희의 불과 광채를 경험할 것입니다.
몰입된 명상 상태에서 많이 체험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이 기쁨만에서 우리는 방어와 원망, 아픔이라는 끔찍한 짐들과 장애물들을 내려놓게 됩니다. 이 기쁘고 단순한 자유 안에서 우리는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언제든 원할 때마다 얻을 수 있음을 가슴속에서 분명히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걱정이나 두려움이 아닌 행복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저 자신의 의도를 자신에게 이야기하면 됩니다. 그러면 삶의 모든 순간에 충족감, 즐거움, 기쁨, 자유를 경험허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런 무저항의 길을 따르겠다고 다짐해 보세요. 이 길은 자연의 지성이 마찰이나 노력없이 자연스럽게 펼쳐지는 것과 같은 길입니다. 받아들임과 책임, 방어하지 않음이 잘 결합될 때, 우리는 애쓰지 않고도 편안하게 흐르는 삶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의 관점만 완고하게 고집하지 않고 모든 관점에서 마음이 열려 있을 때, 우리의 꿈들과 소망들은 자연의 소망들과 함께 흐를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의도들을 집착없이 놓아줄 수 있으며, 우리의 소망들이 꽃피어나 실현되는 계절이 오기를 그저 기다릴 수 있습니다. 알맞은 계절이 오면 소망들이 실현될 것임을 확신하게 됩니다. 이것이 최소 노력의 법칙입니다.
그럼 오늘의 내용을 요약해 보겠습니다. 최소 노력의 법칙에서 전하는 세 가지 요소를 충분히 내면화하여 우리의 삶 전체가 가벼워지고 원하는 바를 이루는 탄탄대로로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다음의 문장을 음미해 보십시요.
첫 째로, 나는 받아들임을 실천할 것이다. 오늘 나는 나에게 주어지는 사람들과 상황들, 환경들, 사건들을 받아들일 것이다. 나는 지금 이 순간이 있는 그대로여야 한다는 것을 알 것이다. 온 우주가 있는 그대로여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받아들임으로써 온 우주를 온전히 받아들일 것이다. [나의 받아들임은 온전하고 완전하다.] 나는 모든 것을 내가 바라는 대로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두 번째로 나는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내가 문제로 여기는 모든 사건들과 상황에 책임을 질 것이다. 책임을 진다는 것은 나의 상황에 대해서 어느 누구나 어떤 무엇도 [비난하지 않는다]는 뜻임을 나는 안다. 또한 모든 문제는 위장된 기회이며, 깨어있는 마음으로 기회들을 알아차리면 지금 이 순간을 받아들여 더 큰 혜택으로 변화시킬 수 있음을 안다.
세 번째, 오늘 나의 자각은 방어하지 않음에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나는 내 관점에 방어할 필요를 포기할 것이다. 나는 사람들이 내 관점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거나 납득시킬 필요를 느끼지 않을 것이다. 나는 모든 관점에 마음을 열어둘 것이며, 어느 하나에 관점을 완고하게 고집하지 않을 것이다. 최소 노력의 법칙에서 제시하는 이 세 가지 요소들은 사실 단순해 보이지만 깊은 영적 원리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조금 공부를 해보신 분들이라면 이러한 내용들이 기독교, 불교, 그리고 기적수업, 카발라 같은 다양한 영적 가르침과 맥락을 같이 한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책에서 요약되는 부분들을 만트라처럼 자신에게 되뇌이는 것이 굉장히 효과적일 것입니다. 우리 현재의 모습, 사고 패턴은 오랜 시간에 걸쳐서 형성된 것입니다. 이러한 에고적 사고 패턴을 성령적 혹은 영적인 사고 패턴으로 변형하는 것에는 어느 정도 반복과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 그럼 여기에 오시는 모든 분들이 최소 노력의 법칙인 세 가지 요소(받아들임, 책임, 방어하지 않음)를 반복적으로 음미하고 내면화하여 여러분들의 삶에 사랑과 빛이 가득하시기를 기원드리겠습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