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64학번 철학과 동문 김형민입니다. 서강옛집 396호에서 총장님께서 모교 발전을 위하여 애쓰신다는 사실을 재삼 확인하니, 저 나름 평소에 심사숙고하던 모교 발전의 한 가지 대안을 총장님께 진언하고 싶어졌습니다. 저의 의견은, 한마디로 요약컨대, 인문대학을 폐지하고 다른 계열을 집중 육성하자는 것입니다. 모교의 교명도 아예 ‘서강 공과 대학교’ 또는 ‘Sogang Institute of Technology’로 바꾸면 좋을 것입니다.
저는 저의 자랑인 모교가 언론의 대학 평가에서 등외로 한참 밀려난 것이 안타까워 어떻게 하면 모교가 창설 초기의 명성을 회복할 수 있는지 항상 고심해 왔습니다. 더 이상 찌그러질 수 없는 모교가 명문의 대열로 어서 다시 복귀했으면 하는 소망이 간절합니다. 저는 십수년 동안 전문대에 철학을 가르쳤습니다. 또한, 고등학교 또는 대학 강단에서 2십수년 동안 영어를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80년대 초반 국방부에서 주관하는 문예작품 공모에서 중편소설로 300만원의 부상이 달린 최고상을 받을 만큼 문학에도 일가견이 없지 않습니다.
이렇듯, 저는 인문학을 공부하고 가르치는 데에 평생을 바쳤으므로 이 분야 대하여 제법 객관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는 입장이라고 자부합니다.
이제 은퇴하고 회고해 보니 인문학은 학생 본인의 청춘과 학부모의 피땀을 쏟아 부으며 대학에서 전공 ‘씩’이나 할 가치가 거의 없는 것이었습니다. 우선 인문학은 독학으로 충분히 가능합니다. 예컨대, 철학, 문학, 역사 등은 지극히 상식적이며 흥미진진한 ‘이야기’일 따름이므로 ‘요란찬란’하게 강의까지 받을 필요 없이 동화책이나 소설책처럼 그냥 혼자서 읽으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예컨대, 외국어는 지능이 낮은 사람들이 오히려 더 유리할 수도 있습니다. 뚝심으로 버티고 앉아 그저 달달 외우면 되는 것이므로, 오히려 머리가 좋은 사람은 지루함을 견뎌내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외국어의 대표격인 영어, 역시, 영문과 ‘씩’이나 다닐 필요 없이 자습으로 충분합니다.
영어를 ‘진짜로’ 잘하는 사람들은 역설적이게도 대부분 ‘비영문과’ 출신들입니다. 참고가 될까하여 밝히는데, 저는 영어를 자습했지만 영어교사자격검정고시에 합격하고 뉴질랜드 정부가 초청하는 영어교사 연수 프로그램의 선발시험에서 전국 1등을 먹었습니다.
더구나, 인문학적인 지혜는 선택 받은 사람들이 타고나는 것이지, 배워서 습득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컨대 박정희는 배운 것이라고는 총질 밖에 없었지만 ‘한강의 기적’을 연출했으며, 김대중은 상고 중퇴가 학력의 전부였지만 IMF의 벼랑 끝에서 나라를 구했습니다. 반면 미국 박사로서 최고의 학식을 자랑하던 장면은 한방의 총성에 혼절하여 국정을 내팽개치고 수녀원의 수챗구멍으로 내빼지 않았습니까! 인문학은 오로지 취미 생활로 족합니다. 야망으로 불타오르는 청년들이라면 실험실 또는 제도실에서 졸음을 쫓으며 과제에 몰두하다가 잠시 머리를 식힐 겸 인문학의 정원을 산책하면 좋을 것입니다.
물론, 고전의 번역 등 인문학의 전문가가 필요 없지는 않습니다. 전문가로서의 인문학자는, 그러나, 오로지 극소수이면 충분하므로 ‘돈 걱정 없는’ 국립대학에서나 양성할 일입니다. 인문대학은 전국적으로 한 군데의 국립대학에서만 유지하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기부금이 홍수처럼 쏟아져 들어가는 다른 대학들을 보면서 우리 모교는 최빈곤층에 속한다는 사실에 ‘자괴심’을 떨쳐버리기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모교는 실질적인 생산성을 보임으로써 기부자들에게서 믿음을 얻었어야 합니다. 돈이 없으면 낭비를 줄이고 알뜰하게라도 써야 하지 않겠습니까! 알뜰 살림의 한 가지 방법은 바로 인문학의 ‘허세’를 털고 이공학의 ‘실속’을 챙기는 것입니다.
10년후면 유럽과 일본이 그러했듯이 조선업을 후발국에 내줘야 하는데 대체산업의 인재를 서둘러 키워야 밥이라도 먹을 게 아닙니까! 원자력 발전소를 수출하게 되었다고 우쭐대고 난리들인데 추가로 수주한들 과연 감당할 인력은 있을까요? 한국의 Postech 또는 Kaist, 미국의 Caltech 또는 MIT처럼 이공계를 집중 육성하는 것이야말로, 학생 본인, 모교, 그리고 나라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길입니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합니다. ‘철학과는 서강대학이 전국 일등’이라는 중앙일보의 보도를 보고 말입니다. 이는 마이너 리그로 밀려난 야구선수를 보고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는 있다고, 걔는 노래방에서 한 곡조 뽑는 재주는 제법이야!’ 하고 비아냥거리는 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