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십종판(華嚴十宗判)
화엄원교(華嚴圓敎), 즉 화엄일승(華嚴一乘)은 그 교리 내용이 현수스님이나 청량스님의 설을 보더라도
쌍차쌍조라는 중도(中道)에 입각해 있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는 화엄종에서는
다른 종(宗)의 교리를 어떻게 비판하고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화엄종에서 다른 종의 교리를 비판하는 데 있어 그 비판의 근본기준을 어디에 두었느냐 하면 바로 중도입니다. 말하자면 중도에 가깝고 멀고에 근거하여 다른 종의 교리의 심천(深淺)을 비판했습니다. 그리하여 현수스님은
이것을 열 가지로 나누어 십종판(十宗判)을 수립하였습니다. 이 십종판은 그 뒤로도 계승되었는데,
청량스님의 설은 현수스님의 설과 일부 명칭 등이 다소 상이하지만 내용은 거의 같습니다.
그리고 화엄종이 이제(二諦) 등을 근거로 한 원융중도종임을 해명하는데 청량스님의 설이
더 적합하므로 여기서는 청량스님의 십종판을 채용하였습니다.
십종교판(十宗敎判) ①
이제 일대시교를 모두 거두어 열 가지 종으로 한다.
今總收一代時敎하여 以爲十宗하노라 (經疏;大正藏 35 p. 521 上)
금총수일대시교 이위십종
부처님이 49년간 설법한 팔만대장경의 설법을 다 모아서 그 내용을 열 가지 종으로 나눈다는 말입니다.
첫째는 자아(我)와 법(法)이 다 있다는 종이요.
第一은 我法俱有宗이요.
제일 아법구유종
첫째는 자아(我)와 법(法)이 다 있다는 것으로
이것은 순수한 유견(有見)입니다. 이런 종취를 주장한 사람은 소승의 독자부(犢子部)입니다.
둘째는 법은 있고 자아는 없다는 종이요,
二는 法有我無宗이요
이 법유무아종
앞에서는 자아와 법이 전부 있다는 유론(有論)인데, 여기에 와서는 그와는 조금 달리
자아는 실재하지 않으나 법은 실재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살바다부(薩婆多部)에서 주장하는 견해입니다.
셋째는 법은 과거와 미래에는 없다는 종이요.
三은 法無去來宗이요
삼 법무거래종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현재 제법은 실유하지만 과거와 미래의 법은 실체가 없다는 것으로,
아법구유종(我法俱有宗)과는 얼마간 반대의 입장에 서 있는 사람들의 견해입니다.
이 주장은 대중부(大衆部)에 속하는 것입니다.
넷째는 (모든 법은)현재에만 존재하고, (현재에서도)실유와 가유가 있다는 종이다.
四는 現通假實宗이요,
사 현통가실종
모든 법은 현재에만 존재한다고 보는데,
그 중에서도 5온(五蘊)에 소속되는 법은 실(實)로 삼고
12처(十二處)와 18계(十八界)에 소속되는 법은 가(假)고 삼아,
한 쪽은 실이지만 한 쪽은 가(假)라는 주장입니다.
앞의 아법구유종과 비슷한 견해로 과거와 미래의 법은 실유하지 않지만
현재의 제법은 가. 실의 구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설가부(說假部)의 주장이라고 합니다.
다섯째는 세속법은 허망한 것이고, 출세간법은 진실하다는 종이다.
五는 俗妄眞實宗이요.
오 속망진실종
세속은 전부 다 허망한 것이며 출세간(出世間)만이 참으로 진실하다는 견해이니,
이것은 설출세부(說出世部)에서 주장하는 것입니다.
여섯째는 모든 법은 단지 이름뿐이라는 종이다.
六은 諸法但名宗이니라.
육 제법단명종
일체만법을 볼 때, 실체가 없고 다만 이름뿐이라고 주장하는 종이니,
일설부(一說部)의 주장입니다.
지금까지의 주장에서 넷째까지는 순수한 소승이고,
다섯째. 여섯째는 대승과 조금 통하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아직 변견(偏見)으로서 대승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일곱째는 삼성이 공하거나 유(有)라는 종이니, 말하자면 변계소집성은 공하고,
의타기성과 원성실성은 유이기 때문이다.
七은 三性空有宗이니 謂遍計는 是空이요 依圓은 有故라.
칠 삼성공유종 위편계 시공 의원 유고
삼성(三性)은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ㆍ
의타기성(依他起性)ㆍ
원성실성(圓成實性)인데,
이 종에서는 변계소집성은 공이고,
의타기성과 원성실성은 유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호법(護法)논사의 사상을 계승하는 중국 법상종(法相宗)의 주장에 따르면,
변계소집성은 제6. 7식에 의한 허망한 분별에 지나지 않으므로 이것은 다만 공한 것이지만,
의타기성은 여환가(如幻假)로서 환(幻)이면서 아주 없는 것이 아닙니다.
일체 현상 모든 것이 인연으로 일어나지만
환(幻)그것은 그대로 있으므로 아주 없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가(假)라 합니다.
원성실성은 이공(二空),
즉 아(我)와 법(法)이 완전히 공한 데서 현현하는 진여실성(眞如實性)을 말하는 것이므로
원성실성이라는 것을 진여와 같이 취급합니다.
이와같이 변계소집성은 망계로서 실성(實性)이 없으므로 공(空)하며,
의타기성은 여환이지만, 실제로 아주 없는 것이 아니므로 가유(假有)이고
원성실성은 아와 법이 완전히 공하여 진여실성이 현현한 순전한 진여로서
없는 것이 아니므로 의타기성과 원성실성 두 가지는 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유식학(唯識學)에서는 중도라고 설명하지만,
실제로는 원융무애한 중도가 못되어 화엄종의 현수스님 같은 이가 대단히 비판했습니다.
유식종은 그 후, 현수스님의 비판을 받아 그 이론이 조금 위축되고 조절되기는 했지만 ,
완전한 중도 즉 부처님의 근본사상을 전하는 종파로는 취급받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