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전설 - 바람신이 지배하는 민속의 보고, 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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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jy9713
2023.10.12. 22:16조회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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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전설
바람신이 지배하는 민속의 보고, 진도
제주와 거제에 이어 세번째로 큰 섬인 진도(珍島)에는 예로부터 호랑이가 살았다고 한다. 첨찰산 기슭 바닷가에 위치한 회동(回洞)마을은 본래 호동(虎洞)이라 불린 점으로 미루어 이 마을 주변에 호랑이가 자주 출몰했던 모양이다.
회동 해변에 있는 뽕할머니상
할머니의 기원으로 바닷길이 열려 주민들이 가 있는 모도까지 갈 수 있었다. 이 뽕할머니는 죽은 후 진도 앞바다를 지키는 바람신이 되었다.
어느 해인가 호랑이 등쌀에 견디다 못한 주민들은 눈앞에 보이는 모도(茅島)란 섬으로 도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모두들 황급히 서두르는 통에 마을 어른 중 한 분인 뽕할머니를 미처 모시지 못했다. 홀로 남은 할머니는 해변 바위에 올라 자신도 바다를 건너게 해 달라고 용왕님께 빌었다. 할머니의 기원이 간절했음인지 용왕으로부터 이런 계시를 받는다.
“내일 바다 위에 무지개가 뜰 테니 그것을 타고 섬으로 가거라.”
할머니의 꿈에 나타난 용왕의 예언은 바로 현실로 드러난다. 멀쩡하던 바다가 둘로 갈라지면서 마치 무지개처럼 휘어진 바닷길이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건너편 모도에서 가슴 졸이던 주민들은 이런 믿어지지 않는 기적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들은 환호성과 함께 징과 꽹과리를 치며 달려와 할머니를 맞았다.
그야말로 ‘모세의 기적’이 진도의 회동 앞바다에서도 현실화되었던 것이다. 자신의 기원으로 바닷길이 열리고 다시 가족을 만난 할머니는 스스로도 감격했으나 그 감격은 오래 가지 않았다. 호랑이도 자취를 감춰 주민들은 마을로 돌아왔으나 기력이 다한 할머니는 마을 해변에 오르자 그만 숨을 거두고 말았다.
이날 이후 마을 사람들은 할머니가 죽은 그 자리에 제단을 쌓고 매년 그날에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 또한 마을 이름도 호동(虎洞)에서 회동(回洞)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할머니가 죽은 2월 그믐께를 영등(靈登)살이라고 하는데 이는 할머니의 영혼이 바람을 타고 하늘로 올랐다는 데서 유래한다.
영등(迎燈), 연등(燃燈), 혹은 풍신(風神) 할망으로도 불리는 영등신은 제주도를 비롯한 남해안 일대에서 어업과 농업을 주관하는 바람신으로 추앙받는다. 이 풍신은 2월 초하루에 내려오는데 그때 딸을 대동하면 바람이 몹시 불고 며느리를 대동하면 큰비가 온다고 한다.
어떻든 바람의 신 영등할미는 산할미〔老姑〕, 물할미와 함께 우리 민족의 3대 신할미신앙을 형성한다. 특히 섬사람들에 있어 그들의 생업과 관련하여 이 바람신은 절대적인 존재가 되었다.
금년에도 어김없이 진도의 회동에서 모도까지 바닷길이 열릴 것이다. 회동 해변에는 이 현대판 ‘모세의 기적’을 보러 오는 손님들을 맞을 준비에 한창이다. 선착장 넓은 주차장에는 대형 호텔까지 들어서고 있다. 그 옛날 기적의 주인공 뽕할머니가 이런 또 다른 기적을 보고 지하에서 몹시 놀라지 않을까 걱정된다.
진도 회동 모세의 기적지
진도의 회동에서 본 모도. 뽕할머니의 기원으로 용왕이 바닷길을 열어 멀리 보이는 섬까지 걸어갈 수 있게 했다.
진도에는 벽파진할아버지라는 또 하나의 바람신이 존재한다. 신의 세계에서도 음양의 조화가 필요한 모양이다. 뽕할머니가 세상을 떠나던 그때쯤인가, 손님을 가득 실은 나룻배가 벽파나루를 떠나 감부섬으로 향할 때의 이야기다. 배가 막 나루를 벗어날 즈음에 홀연히 나타난 백발노인이 손을 좌우로 흔들며 출항을 막는다. 이번 항해는 위험하니 되돌아오라는 것인데, 아무튼 백발노인의 행동이 심상치 않음을 느낀 배가 선수를 돌려 벽파진으로 되돌아온다.
그러나 나루터에는 아무도 없었다. 회항이 잘못된 것이라 하여 다시 출항하려 할 즈음이었다. 그때 갑자기 돌풍과 함께 거센 풍랑이 일어 그제야 사공과 선객들은 백발노인의 존재를 의식하게 되었다. 바람신이 노인으로 변신하여 자신들을 구해 준 것을 깨닫고 이들은 나루터 옆에 당집을 짓고 이 백발노인을 당신으로 모시게 되었다.
벽파나루에서 본 울돌목 해협
벽파진할아버지는 뽕할머니와 짝을 이루는 바람신으로 추앙받는다. 임진왜란 때 충무공이 이 해협에서 대승을 거둘 수 있었던 것도 바람의 신, 벽파진할아버지의 도움이 아니었을까?
진도대교가 세워지기 전까지 진도의 관문이었던 벽파나루〔碧波津〕, 충무공 전첩비가 서 있는 언덕에 서면 멀리 울돌목〔鳴梁〕 해협의 전경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이 해협에서 대승을 거둘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바람신, 벽파진할아버지의 도움이 아니었을까?
바람신이 지배하는 진도는 예로부터 고난의 땅이었다. 그러나 진도인들은 그 고난에 굴하지 않고 이를 민속예술로 승화시키고자 했다. 일상 중에 노래와 춤은 오랜 세월 이 섬에 살아온 주민들의 삶 그 자체였다고 할 수 있다. 진도 섬사람들의 삶에 켜켜이 쌓여 있는 그 고난의 지층을 들쳐 보면 그들이 부르는 노래나 춤이 결코 예사롭지 않음을 느낀다.
돌아갈 기약 없는 유배지에서의 그 절망감, 한때 몽골군이나 왜구의 침탈로 무인지경의 고도가 되기도 했으며, 또 대몽항전을 벌였던 삼별초군이 무참히 패배했던 그 아픈 상처들, 그래서 강강술래, 진도아리랑, 남도들노래, 육자배기, 상여노래, 씻김굿, 다시래기 등 진도를 기원지로 하는 이들 노래와 춤 속에 이런 상처가 깊숙이 배어 있다.
사람이 죽어 저승길로 보내는 마지막 순간에도 진도인들은 울음 대신 북장구 어우러지는 풍물 소리로 그 허망함을 위로한다. 씻김굿의 전 과정도 이와 전혀 다를 바 없다. 새벽녘 굿이 끝나는 무렵 씻겨진 것은 망자의 원혼만은 아니다. 애잔한 대목에서 눈물 흘리고 사이사이 쉴 틈에 육자배기나 유행가 가락을 질러 넣는다. 뿐인가, 고풀이 대목에 이르러 자신이 걸어온 삶의 매듭과 옹이를 풀어내리는, 그 굿판을 지켜보노라면 산 자의 가슴속은 어느새 후련히 씻겨 있다. 씻김굿을 주관하는 무당의 흰옷은 극한에 이른 슬픔을 대변하는 그런 색깔이 아니던가.
이런 슬픔의 미학은 저 유명한 진도아리랑에서도 잘 드러난다. 정선아리랑처럼 진도아리랑도 청춘남녀의 비극적 사랑에서 비롯된다. 이런 사랑 이야기를 두고 진도 총각과 경상도 처녀 사이의 이야기라고도 하고, 또는 이 고장 출신의 소영공자와 설이향 사이의 이야기라고도 한다. 설이향과 소영공자는 굴재를 오가며 사랑을 나누던 사이였는데 무슨 연유에서인지 설이향이 버림을 받는다. 진도를 떠난 소영공자가 육지의 이쁜 처녀를 만나 혼인한다는 소문이 나돌자 설이향은 죽음으로써 그 아픔을 잊고자 한다. 그러나 그 죽음의 길도 여의치 않았으니 가슴을 찌르려던 비수가 엉뚱하게 자신의 머리카락을 자르고 만 것이다.
진도의 쌍계사
소영공자에게 버림을 받은 설이향이 이 절에 들어와 여승이 되었다고 한다. 밀양아리랑, 정선아라리와 함께 3대 아리랑의 하나인 진도아리랑의 근원설화라고도 한다.
이에 설이향은 그 길로 첨찰산 쌍계사로 들어가 여승이 되어 평생 수도의 길을 걷는다. 진도 쌍계사 계곡에 우거진 상록수림은 버림받은 여인의 한이 숲으로 우거진 것이라던가. 부요적(婦謠的) 성격이 강한 진도아리랑의 노랫말에 보이는, 그 거친 욕이나 상소리, 또는 한탄과 익살은 어쩌면 버림받은 여인의 저항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진도아리랑 이 고장 출신 소영공자와 설이향은 사랑하는 사이였는데, 무슨 연유에서인지 설이향은 버림을 받는다. 소영공자가 육지 처녀를 만나 혼인한다는 소문이 나돌자 설이향은 죽음으로써 그 아픔을 잊으려 하지만 가슴을 찌르려던 비수가 자신의 머리카락을 자르고 만다. 설이향은 그 길로 첨찰산 쌍계사로 들어가 평생 수도의 길을 걷는다. 또 진도 총각과 경상도 처녀 사이의 비극적인 이야기가 진도아리랑이라는 설도 있다. |
누구는 말하기를, 진도는 애잔한 아름다움을 가진 섬이라고 했다. 한국 남종화의 성지라 일컫는 운림산방(雲林山房)에 가 보면 이 말을 실감할 수 있다. 산방에 걸린 허소치(許小痴)의 그림만은 아니다. 첨찰산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봉우리가 어우러진 ‘빗기내’의 산골에 조석으로 피어오르는 안개가 구름숲〔雲林〕을 이루는 정경은 그대로 한 폭의 대형 그림이다.
진도의 운림산방
조석으로 피어 오르는 안개가 구름숲을 이루는 이곳의 정경은 그대로 한 폭의 산수화이다. 산방 앞의 연못을 배경으로 필자와 사진작가가 나란히 앉아쉬고 있다.
뿐인가, 공방 곁 작은 연못에 핀 수련이 탐스러움을 뽐내고 못 가운데 조성된 섬의 배롱나무가 꽃을 피울 때면 더욱 아름답다. 섬의 남단 남도석성(南桃石城)의 전경과 새떼처럼 옹기종기 모여앉은 조도(鳥島)의 섬 풍경 역시 애잔하기는 매한가지다. 좀 더 넓게 본다면 50여 개의 유인도와 2백여 개의 무인도를 거느린 진도군 일대의 자연경관이 한 폭의 그림 그대로라고 하겠다.
[네이버 지식백과] 바람신이 지배하는 민속의 보고, 진도 (물의 전설, 2000. 10. 30., 천소영, 김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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