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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禪軒 독서일기 2026년 5월 21일 목요일]
《 『환단고기』 [신시본기] <삼한비기> <대변경> 》 (46)
三韓秘記曰 伏羲 旣受封於西鄙 位職盡誠 不用干戈 一域化服 遂代燧人 號令域外 後 有葛古桓雄 與神農之國 劃定疆界 空桑以東屬我
又數傳 而至慈烏支桓雄 神勇冠絶 其頭額銅鐵 能作大霧 造九治以採得 鑄鐵作兵 造飛石迫擊之機 天下大畏之 共尊爲天帝子蚩尤 夫蚩尤者 俗言雷雨大作 山河改換之義也
蚩尤天王 見神農之衰 遂抱雄圖 屢起天兵於西 進據淮岱之間 及軒轅之立也 直赴涵鹿之野 擒軒轅而臣之 後遣吳將軍 西擊高辛 有功
부
[삼한비기]에 이르기를, 복희는 서쪽 변방에 봉해진 처음부터 자리와 임무에 정성을 다하였다. 무기를 쓰지 않고도 온 지역을 감화시켜 마침내 수인씨를 대신하여 지역 밖에까지 명령을 내렸다. 뒤에 갈고(葛古) 환웅이 신농의 나라와 더불어 강역의 경계를 가르고 정하여 공상 동쪽 땅이 우리에게 속했다.
또 몇 대를 지나 자오지 환웅에 이르렀다. 자오지 한웅은 귀신같은 용맹이 우뚝하게 뛰어났고 그 머리와 이마는 구리와 쇠로 되었다. 능히 큰 안개를 일으키고 구치를 만들어 주석과 쇠를 캐내어 무기를 만들고 돌을 날려 목표물을 맞추는 기계를 만들었다. 천하가 이를 크게 두려워하고 함께 떠받들어 천제의 아들 치우라 하였다. 대저 치우란 말은 속어로 번개와 비가 크게 내려 산과 강을 바꾼다는 뜻이다.
치우천왕은 신농씨가 쇠약해짐을 보고 마침내 뜻을 크게 품고 여러 차례 천병을 서쪽으로 일으켜 진격하여 회대의 사이에 웅거했다. 헌원이 황제의 자리에 오르자 곧바로 탁록의 벌판으로 나아가 헌원을 사로잡아 그를 신하로 삼았다. 다음에 오 장군을 보내 서쪽으로 고신씨를 공격하여 공을 세우게 하였다.
大辯經曰 神市氏 以佺修戒 敎人祭天 所謂佺 從人之所自全 能通性以成眞也
靑邱氏 以仙設法 敎人管境 所謂仙 從人之所自山 山産也 能知命以廣善也
朝鮮氏 以倧建王 敎人責禍 所謂倧 從人之所自宗 能保精以濟美也
故 佺者 虛焉而本乎天 仙者 明焉而本乎地 倧者 健焉而本乎人也
[대변경]에 이르기를, 신시씨는 전(佺)으로써 계율을 닦고 사람을 가르쳐서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이른바 전(佺)이란 사람이 스스로 완전이라 여기는 바를 좇아 성이 잘 통하도록 함으로써 참을 이루는 것이다.
청구씨는 선(仙)으로써 법을 만들고 사람에게 땅의 도인 관경을 가르쳤다. 이른바 선(仙)이란 사람이 스스로 생산하는 바를 좇아 명을 잘 알도록 함으로써 착함을 넓힘이다.
조선씨는 종(倧)으로서 왕을 세우고 사람들에게 사람의 도인 책화를 가르쳤다. 이른바 종(倧)이란 사람이 스스로 근본이라 여기는 바를 좇아 정신을 잘 지킴으로써 아름다움을 찾아 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佺)은 안 보이면서도 하늘에 근본을 두고, 선(仙)은 밝으면서도 땅에 근본을 두며, 종(倧)은 강건하면서도 사람에 근본을 둔다.
[논주] 이 부분의 글은 ’신시씨‘라 하여 시조 환웅을, ’청구씨‘라 하여 치우천왕을, ’조선씨‘라 하여 단군왕검을 신선 또는 특별한 인물인 ’전선종(佺仙倧)‘으로 신격화하여, 이들이 백성들을 가르치고 일하도록 하고 깨우치도록 함으로써 천지인, 하늘과 땅과 사람 세 중심이 서로 잘 어울려 살아가는 세상이 이룩된다고 말한다.
치우에 대한 서술은 [대변경]에 가장 양이 많고 자세하다. 원래의 자오지 환웅이란 호칭보다는 전쟁신을 강조하는 치우천왕이라는 호칭이 사용되고 있다. 자오지 환웅인 치우를 천왕이라는 칭호를 붙이는 정도를 넘어 ’청구씨‘라 하여 ’신시씨‘와 분리하여 동급으로 한 데서 볼 수 있다. 하지만 전쟁신(戰爭神)인 치우천왕과 선(仙), 명(命), ’선(善)‘은 서로 안 어울린다.
그런데 조선씨에서 ’以倧建王 敎人責禍‘는 본격적인 역사시대가 전개되기 시작하는 단군조선 시대부터 정치의 주체가 왕으로 굳어지는 현상을 알 수 있다. 그러면서도 사람들 스스로, 백성들 스스로 자성하여 정신과 생활을 잘 해나갈 수 있다는 믿음을 읽을 수 있다.
우리 민족의 고유의 삼신일체 사상은 세상의 중심이 하늘이 아니다. 하늘이 모든 것을 만들고 결정하지 않고 땅과 함께 어울려 사람들이 평화롭게 살아가도록 한다. 그 속에서 사람은 자주성을 갖고 주체적으로 사유하고 실천하는 존재이다. 그래서 ’從人之所自宗 能保精以濟美也‘이라고 하여 사람은 스스로 근본이라 여기는 바를 좇을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 한다.
특히 ’精以濟美‘는 깊은 뜻을 품고 있는 말이다. 사람이 살면서 만사만물을 지나가는 행인처럼 건성으로 보면서 살다가 죽으면 남는 게 아무 것도 없다. 그러나 만사만물을 유심히 보고 필요한 데에 정성을 쏟으면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고, 다른 사람이 볼 수 없는 것까지 볼 수 있다. 즉 대상 특유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이라 할지라도 건성으로 보면 나와 무관하다. 그러나 남들이 스쳐 지나가는 꽃이라 할지라도 내가 의미를 부여하고 유심히 보면 그 꽃이 크고 아름답게 보인다. 인생은 자기 몫이고 자기가 보기 나름이고 하기 나름이다. 오래도록 살면서도 삶의 아름다움을 발견하지 못한 사람은 그냥 한 생물의 한살이일 뿐이지만, 짧게 살면서도 삶의 아름다움을 깊고 무겁게 깨달은 사람은 한 생물로서의 한살이는 비록 짧지만 정신의 한살이는 깊고 무겁다. 인류 역사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살다 갔다. 저마다의 생물 한살이와 정신 한살이의 가치가 다르다. ’精以濟美‘, 짧은 문장이지만 [대변경]을 쓴 선인의 생각과 미의식을 읽을 수 있다.
환인-환웅-단군왕검의 역사에서 건국이념으로 강조되는 명분이 ’재세이화 홍익인간‘이다. 이것은 위에서 아래로 내리는 말이다. 그러나 원래부터 우리 민족은 인권과 평등 의식이 만연한 민주 평등사회였다. 역사에서 보면 다른 민족과 나라들처럼 모든 권력을 한 손에 쥐고 흔드는 전제군주가 희귀했다. 어쩌다가 연산군처럼 포악한 군주가 있으면 반드시 방벌했다. 환인시대와 환웅시대, 단군조선 시대에 나타난 9환이라는 씨족, 부족 집단부터 고려와 조선 시대 내내 사회의 근간은 씨족 집단이었다. 지금도 우리 사회는 다양한 씨족 집단들이 균형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 우리 민족 사회는 일인 숭배의 독재가 통하지 않는다. 아무리 지독한 독재도 수십 년을 넘기지 못한다. 우리 민족 고유의 사상인 삼신일체 재세이화 홍익인간에 뿌리를 둔 민주주의 평등공정 사상 덕분에 현대에서도 우리 한국인들은 이승만 독재, 박정희 독재, 전두환 독재, 윤석열 독재를 방벌하고서 민주주의 사회를 한층 단단히 하고 있다. 반대로 일본은 벌떼나 개미떼처럼 천황이라는 일인 지배 체제를 2천 년 동안 유지하면서 순종하는 행태를 견지하고 있고, 중국과 러시아는 일인일당독재 체제를 첨단과학 문명시대인 현대에도 유지하고 있다.
注曰 桓仁亦曰天神 天卽大也一也 桓雄亦曰天王 王卽皇也帝也 檀君亦曰天君 主祭之長也 王儉亦卽監群 管境之長也 故 自天光明 謂之桓也 自地光明 謂之檀也 所謂桓 卽九皇之謂也
韓亦卽大也 三韓曰風伯雨師雲師 加卽家也 五加 曰牛加主穀 馬加主命 狗加主刑 猪加主病 鷄加主善惡也 民有六十四 徒有三千
遣往理世之謂開天 開天故 能創造庶物 是虛之同體也 貪求人世之謂開人 開人故 能循環人事 是魂之俱衍也 治山通路之謂開地 開地故 能開化時務 是智之雙修也
[주]에 이르기를, 환인은 또한 이르기를 천신이라고 한다. 천은 곧 큰 것이요, 하나이다. 환웅은 또한 천왕이라고도 하니 왕은 곧 황이며 제이다. 단군은 또한 천군이라 하니, 제사를 주재하는 우두머리이다. 왕검은 또한 곧 감군으로 관경의 우두머리이다. 이 때문에 하늘로부터의 밝음을 환이라 하고, 땅으로부터의 광명을 단이라 한다. 이른바 환은 구환을 말하는 것이다.
한(韓)은 곧 크다는 뜻이다. 삼한은 풍백, 우사, 운사라 한다. 가(加)는 곧 가(家)이다. 오가를 말하자면, 우가는 곡식을 주관하고, 마가는 목숨을 주관하고, 구가는 형벌을 주관하고, 저가는 병을 주관하며, 계가는 선악을 주관한다고 한다. 백성은 64개 종족이 있었고 무리는 3,000명이 있었다.
세상을 다스리도록 내려보낸 것을 개천이라 한다. 개천은 고로 능히 세상 만물을 만드는데 이것은 바로 허(虛)와 같은 것이다. 인간 세상을 구한다 함을 개인이라 한다. 개인은 고로 능히 인간 세상의 일을 순환시킨다. 이는 사람들의 참된 마음이 함께 순행함을 뜻한다. 산을 다스리고 길을 내는 것을 개지라 한다. 개지는 고로 능히 때에 맞춰 필요한 일을 적절히 해낼 수 있으니. 이는 지혜를 함께 닦음이다.
三韓秘記曰 盖白頭巨岳 盤居大荒之中 橫亘千里 高出二百里 雄偉嶝峻 拇礫磅磚 爲培達天國之鎭山 神人陟降 實始於此 豈以區區妙香山 只係狼林西走之帳 而能得參於如許聖事耶 世俗 旣以妙香山爲太白 則其見只局 於東鴨綠水以南 一隅之地 便唱山之祖宗崑崙 欣欣然以小中華自甘 宜其貢使北行 歷累百年 而不爲之恥 是乃廢書而長嘆者也
然 今東方諸山 以太白爲名者 頗多 世俗 率以寧邊妙香山當之 實由於一然氏三國遺事之說 而彼等眼孔 如豆如太 安足以與之論哉
今白頭山 上有大澤 周可八十里 鴨綠松花豆滿諸江 皆發源於此 曰天池 卽桓雄氏 乘雲天降處也 妙香山 曾無一小洿 且不爲桓雄天皇肇降之太白山 不足論也
[삼한비기]에 이르기를, 대저 백두 큰 산은 넓디넓은 들판 복판에 든든하게 자리 잡았으니, 옆으로 천 리에 펼치고 높이로 이백 리에 솟았다. 웅장하고 위엄스러우며 크고 작은 자갈과 돌로 가득 찬 길고도 높은 비탈이 있어 배달천국의 진산이라 한다. 신인이 오르내림은 실로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하였는데 어찌 구구하게 묘향산이 다만 낭림산맥의 서쪽을 달리는 산맥을 잇는다고 하여 이에 능히 그와 같은 성스러운 일에 관계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세속에서는 이미 묘향산을 가지고 태백산이라고들 하는데, 즉 그렇게 본다면 우리 역사를 그저 동쪽 압록수 이남의 한구석 땅으로 국한하는 것이다. 산의 조종을 곤륜산이라 입을 모아 노래하고, 기쁘고 흐뭇한 마음으로 소중화를 자처하여 즐기면서 당연한 듯 조공 올리는 사신이 북쪽을 들락거린 역사가 백 년이다. 이를 치욕으로 알지 못하다니, 이에 내가 글을 폐하고 장탄식하는 바이다.
그런데 동방의 뭇 산을 태백의 이름으로써 불리는 바가 사뭇 많다. 세속에는 영변에 있는 묘향산으로 그것을 가리킨다 하니 이것은 일연씨의 [삼국유사]의 설에서 비롯된 것이니 저들의 눈구멍이 콩알과 같으니 어찌 함께 논하기에 족하겠는가. 지금 백두산 꼭대기에는 큰 연못이 있는데 둘레가 80리이며 압록과 송화, 두만강의 물줄기는 모두 여기에서 근원이 시작된다. 일컬어 천지는 환웅씨가 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오신 곳이다. 묘향산은 일찍이 한 웅큼의 물구덩이조차 없고, 또 환웅천왕이 처음 내려오신 태백산이 될 수 없으니 논하기에 부족하다.
[논주] 1280년경에 [삼국유사]가 써졌고, [삼한비기]는 1500년경이다. 1520년경에 이맥이 이 [태백일사]를 썼다.
환웅이 강림한 태백산이 묘향산으로 기록된 최초의 사서는 일연의 『삼국유사』이다. 그 이전의 모든 고사서에는 태백산이 지금의 백두산 또는 하얼빈의 완달산이다. 이 글에서 저자는 태백산이 백두산이라고 지정하지만 더 오래된 고사서에는 완달산이다. 백두산이 신성한 산이지만 사람이 살 곳이 전혀 못 된다. 천지가 신성한 곳이지만 사람이 오래 머물 곳이 아니다. 환웅이 하늘에서 강림했다는 것부터가 꾸민 신화이다. 그러므로 [삼한비기]를 쓴 이는 묘향산론자인 일연과 사대주의자들을 비판하는 민족 주체의식은 투철하지만 합리적인 사고를 한다고는 할 수 없다.
[삼한비기]가 쓰여진 조선 초기부터 환웅의 신시 설화를 민족주의에 이용하기 위해 태백산을 백두산이라고 주장하는 흐름이 나타났다. 이후 국난을 겪으면서 백두산론이 고착하였다. 그러나 이는 역사를 왜곡하는 것으로 민족주의의 올바른 전개를 위해서라도 삼가해야 한다. 일연이 시작한 묘향산론과 [삼한비기]가 시작한 백두산론 둘 다 비합리적인 역사 왜곡이다. 후세를 위해서 고사서들을 모두 모아 종합적으로 비교 검토를 통해 고대사를 정제할 필요가 있다. 신화와 설화, 가필과 조작 등 일체의 군더더기와 불순물을 걸러내고 고대사의 원형을 찾아내야 한다. 이러한 작업이 앞으로 한 세대 동안 꾸준히 펼쳐질 것이다. 나는 그러한 작업에 한 줄기 맑은 물줄기를 보태기 위해 이렇게 논주를 하고 있다.
魏書勿吉傳曰 國南有徒太山 魏言太皇 有虎豹熊狼 不害人 人不得上山稽溺 行逕者 皆以物盛去 蓋桓雄天皇之肇降 旣在此山 而又此山 爲神州興王之靈地 則蘇塗祭天之古俗 必始於此山 而自古桓族之崇敬 亦此山始 不驕尋常也 且其禽獸 悉沾神化 安棲於此山 而未曾傷人 人亦不敢上山稽溺而瀆神 恒爲萬世敬護之表矣 盖我桓族 皆出於神市所率三千徒團之帳 後世以降 雖有諸氏之別 實不外於桓檀一源之裔孫也 神市肇降之功悳 當必傳誦而不忘 則先王先民 指其三神古祭之聖地 曰三神山者 亦必矣
[위서(魏書)]의 <물길전(勿吉傳)>에 이르기를, 나라 남쪽에 위(魏)나라 말로 태황이라고 하는 도태산이 있는데, 범과 표범, 곰과 이리가 있지만 사람을 해치지 않고, 사람들은 산에 오를 때 소변을 보지 않았으며, 산길을 다니는 사람들은 모두 쓰레기를 담아갔다고 한다. 이는 아마도 한웅천왕이 처음 하늘에서 내려와 머물러 계신 곳이 이 산이기 때문이다. 또 이 산은 성스러운 이 나라의 왕업이 흥한 신령한 땅이므로 소도에서 하늘에 제사 지내는 오랜 풍습도 분명 이 산에서 시작되었을 것이고, 예로부터 환족의 숭상과 경배 또한 이 산에서 시작되었을 것으니 예사롭지 않다. 또한 그 짐승들도 모두 신이 행하는 조화에 젖어 들어 이 산에 편안히 안주하니 일찌기 사람을 상하게 한 적이 없다. 사람도 감히 산 위에 오르지 않고 오줌 누어 신을 모독하지도 않으며, 항상 끝없이 공경하고 보호하는 기준으로 삼았다. 대저 우리 환족은 신시가 이끄는 삼천 무리의 장막에서 나왔다. 후세로 내려오면서 비록 여러 씨성의 구별이 있지만 사실은 환단 한 줄기의 후예 자손에서 벗어나는 자 없으니, 신시가 처음으로 내려와 쌓은 공덕은 당연히 반드시 입에서 입으로 전하여 잊지 말아야 한다. 곧 웃대의 왕과 그 백성들이 삼신께 옛날에 제사 지내던 성지를 가리켜 삼신산이라 한 것은 또한 필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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