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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6월 11일 성령강림절 후 둘째 주일예배를 드리겠습니다.
찬송 38장입니다.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을 하겠습니다.
찬송 25장입니다.
헌금, 광고,
기도입니다.
성경 출1:1-22절(구82)입니다.
성가대 찬양입니다.
제목: 우리의 약함(고난)을 통하여
성령강림의 목적은 성령세례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요15:5)는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우리가 성령님을 통하여 하나님과 항상 함께 계신 주님과 연합하기 위해서입니다(요14:20). 이는 우리를 대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하여 율법(창조) 언약을 그의 죽음으로 다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는 성령님을 통하여 그리스도에 의해서 살아가 그의 열매를 맺는 새 언약(복음)의 사람입니다. 우리에게 새 언약(복음)대로 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을 통하여 이것이 어떻게 성취되는가를 확인하여 새 언약(복음)을 더욱 믿고 소망하기 원합니다.
오늘 본문(출1:1-21)은 요셉의 초청에 응한 야곱과 함께 각각 자기 가족을 데리고 애굽에 이른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의 소개로 시작합니다(1-5, 창46:8-27).
그들은 아브라함 언약을 계승하는 아브라함 언약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창12:1-3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12:7)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이것이 아브라함 언약의 내용인데, 이스라엘 자손의 증가를 반복(7, 12, 20) 강조하는 오늘 본문과 관계있는 것은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12:2)라는 약속입니다. 이 약속은 여러 번 반복되었습니다(창13:16, 15:5, 22:17, 26:4, 28:14, 35:11, 46:3). 오늘 본문에서 이 언약이 그들에게 어떻게 이루어졌을까요?
모세는 아브라함 언약의 ‘이스라엘 아들들’(1)을 “야곱의 허리에서 나온 사람”(5)이라고 정의합니다. 여기서 ‘허리’로 번역된 ‘예레크’는 단순히 ‘허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넓적다리, 엉덩이, 환도 뼈의 자리, 생산의 자리’ 등을 가리킵니다.
모세는 왜 그들을 ‘야곱의 몸에서 태어난 자’(창46:26) 또는 ‘야곱의 집사람(가문)’(창46:27)이라고 하지 않고, ‘야곱의 허리에서 나온 사람’(5)이라고 하였을까요? 이는 야곱이 ‘얍복 나루’에서 밤이 새도록 하나님과 씨름하다가 그의 일격을 받아 그의 허벅지 관절이 탈골된 후에 하나님으로부터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받았던 사건(창32:23-33)과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이스라엘 아들들’(1)이기 때문입니다. 창32:28절입니다. “그가 이로되 내 이름을 다시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여기서 ‘이겼음이니라(야칼)’라고 완료(과거)의미로 번역되었는데, 그것은 문맥상 미완료(미래) 의미인 ‘이길 것이기 때문이라’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이는 얍복 나루에서 야곱이 하나님과 겨루었지, 사람들과는 겨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헬라어 역본인 70인 경도 이것을 과거의 의미가 아니라, 미래의 의미로 번역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싸우다, 이기다)’와 ‘엘(하나님)’의 합성어인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하나님을 싸워 이기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이 싸우신다, 하나님에 의하여 이기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형제와 아버지를 속일 정도로 자기 뜻과 노력을 의지하였던 야곱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격에 의하여 환도뼈가 탈골된 야곱, 즉 하나님에 의하여 깨어지고 무너져서 자신을 의지할 수 없고 오직 아브라함 언약의 하나님만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야곱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곱의 허리’(5)는 하나님에 의해서 무너지고 깨어진 ‘고난의 자리’ 또는 ‘오직 믿음의 자리’를 의미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허리’가 상징하는 그들의 약함과 고난을 통하여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12:2)라는 아브라함 언약을 그들에게 이루신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의 허리에서 나온 사람들’(5)이 애굽에서 고난을 받을 것이 430년 전인 아브라함 언약을 세우신 장면에서 이미 예언되었습니다. 창15:13-14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이것은 아브라함 언약의 성취를 위하여 고난을 통한 그들의 믿음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야곱의 깨어진 허리로부터 나온 70인의 후손들이 이방(애굽)에서 아브라함 언약대로 무섭게 불어나서 그(고센) 땅에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7절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하고 불어나 번성하고 매우 강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여기서 동일한 의미의 동사가 네 번이나 반복되어 이스라엘 자손에게 아브라함 언약이 성취되었음을 강조합니다. 스데반 집사도 이것을 아브라함 언약의 성취로 해석합니다. 행7:17절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때가 가까우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번성하여 많아졌더니.”
여기서 우리말 성경에는 생략되었지만, 원문에 있는 ‘그러나’는 이스라엘의 열두 아들 세대는 다 죽었다는 6절과 대조되는 ‘이스라엘 자손’(7)은 새로운 세대임을 강조합니다. 이처럼 아브라함 언약은 당대만이 아니라 후대에까지 이루어지는 영원한 은혜 언약입니다. 성도 여러분, 아브라함 언약의 복의 약속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에게도 성취되고 있음을 아시기 바랍니다(갈3:7-8, 14, 29).
이제 모세는 아브라함 언약이 언약 백성의 더욱 강한 고난을 통하여 더욱 강하게 이루어졌다는 것을 설명합니다(8-14).
먼저 이스라엘 자손에 대한 바로의 억압 정책의 이유입니다(8-10). 첫째는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8). 그는 이방 민족으로 애굽을 지배한 익소스 왕조를 쫓아낸 순수 애굽인 혈통을 가진 ‘애굽 제 18왕조’의 세 번째 왕인 ‘투트모스 1세’입니다. 둘째는 9절입니다. “그가 그 백성에게 이르되 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이 우리보다 많고, 강하도다.” 셋째는 10b절입니다. “전쟁이 일어날 때에 우리 대적과 합하여 우리와 싸우고, 이 땅에서 나갈까 하노라 하고.” 당시 애굽의 제 18왕조는 쫓겨났던 힉소스 왕조의 재침입을 대비하였는데,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과 연합하는 것을 매우 염려했습니다.
이와 같은 애굽의 안보 문제와 이스라엘 자손의 노동력 손실을 그 이유로 제시한 바로는 자기 백성에게 이스라엘 자손의 인구를 억제할 지혜로운 정책을 세우자고 제안합니다. 10a절입니다. “자, 우리가 그들에게 대하여 지혜롭게 하자. 두렵건대 그들이 더 많게 되면.” 여기서 ‘두렵건대 그들이 더 많게 되면’(10)과 같이 조건절로 번역되었는데, 원래는 ‘지혜롭게 하자’의 목적인 ‘그들이 더 많게 되지 않도록’입니다. 성도 여러분, 세상의 관점에서 보면, 무조건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세울 정책의 이유를 자기 백성에게 논리적으로 제시하며, 의논하여 지혜로운 방법을 찾아가는 것을 보면, 이 바로는 지혜로우며 능력 있는 왕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면, 그들의 지혜로운 정책은 무엇입니까? 11절입니다. “감독들을 그들 위에 세우고,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하여, 그들에게 바로를 위하여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하니라.” 바로는 이스라엘 자손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고된 일을 시켜 성적 욕구의 감소로 그들의 증가를 억제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 결과는요? ‘그러나’의 12절입니다. “그러나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여 퍼져나가니, 애굽 사람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여.” 여기서 ‘`~하면 할수록 ~도 그만큼’이라는 수사구는 이스라엘 자손을 억압하면 할수록 비례하여 하나님은 그들에게 그만큼의 보상을 해주신다는 표현입니다.
그 결과는 아브라함 언약의 이스라엘 후손이 학대를 받으면 받을수록, 그들은 아브라함 언약에 따라 애굽인들이 두려워할 정도로 더욱 번성하여 퍼져나갔던 것입니다(12). 성도 여러분, 이것이 율법(창조) 언약을 다 이룬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 기초한 아브라함 언약(복음)의 능력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우리를 두려워할 정도 우리 안에 있는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롬1:16).
강제 노역으로 이스라엘 자손이 줄지 않고 오히려 더욱 증가하자(12a) 바로는 더 엄하고 어려운 노동으로 그들을 괴롭게 하였습니다. 13-14절입니다. “ 이스라엘 자손에게 일을 엄하게 시켜, 어려운 노동으로 그들의 생활을 괴롭게 하니, 곧 흙 이기기와 벽돌 굽기와 농사의 여러 가지 일이라. 그 시키는 일이 모두 엄하였더라.”
이 결과는요? 이것도 실패하였을 것입니다. 아브라함 언약은 언약 백성의 약함(고난)을 통하여 더욱 강하게 성취되기 때문입니다(12a, 고후4:7-12).
마지막으로 모세는 아브라함 언약은 사회적으로 천한 신분인 히브리 산파의 믿음을 통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더욱 성취되었다고 설명합니다(15-22).
이스라엘 자손의 증가를 억제하려는 강제 노역 정책이 실패하자, 바로는 히브리 남아를 살해할 두 단계의 정책을 택하였습니다. (세상적으로 지혜로운 왕이라고 할지라도 자기 이익(생존)을 위해서 살인죄를 범하는 한계를 가졌다)
첫째는 히브리 산파를 통한 히브리 남아의 간접 살해 정책입니다. 15-16절입니다. “애굽 왕이 히브리 산파 십브라라 하는 사람과 부아라 하는 사람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는 히브리 여인을 위하여 해산을 도울 때에 그 자리를 살펴서 아들이거든 그를 죽이고, 딸이거든 살려두라.” 여기서 ‘죽이고(하미텐)’는 사역(히필형) 동사로 ‘죽도록 만들고’입니다. 직접 죽이라는 것이 아니라 아들이 살도록 필요한 조치를 하지 말고 죽도록 내버려 두어 간접살인을 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산파들의 죄의식을 덜어주고, 살해 사실을 감추려고 한 것 같습니다.
성도 여러분, 지렁이와 같이 천대받던 히브리 신분의 비천한 산파들이 신격화된 바로의 그 왕명을 어길 수 있겠습니까? 그것을 어기고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였다면, 어떻게 하였을까요? 그 산파들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그러나’의 17절입니다. “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 아기들을 살린지라.”
그러나 그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애굽 왕의 명령을 어기고 히브리 남아들을 살린 것입니다. 그 이유는 단지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입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마10:28)라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그들은 신격화된 애굽 왕보다 하나님을 더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이 믿음입니다. 그들은 신학 공부를 많이 한 것도 아니요, 거룩한 성직자도 아닙니다.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는 지도자도 아닙니다. 무시당하는 히브리인 중에서도 천한 직업을 가진 사람입니다. 다만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믿음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모세는 오늘 본문에서 야곱과 그 열두 아들의 이름을 제외하고 다른 이름들을 소개하지 않았는데, 오직 그들의 이름을 ‘십브라’와 ‘브아’라고 소개하였습니다. 이는 아브라함 언약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그들의 믿음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성취되었기 때문입니다(20b). 성도 여러분, 오늘날에도 하나님은 새 언약(복음)이 성취될 이런 믿음의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어찌하여?’라는 책망과 재촉하는 바로의 질문(18)에 대한 산파들의 지혜로운 대답입니다. 19절입니다. “산파가 바로에게 대답하되 히브리 여인은 애굽 여인과 같지 아니하고 건장하여 산파가 그들에게 이르기 전에 해산하였더이다.”
히브리 여인들은 중노동에 동원되어 집안에만 있었던 애굽 여인들과는 달리 건강한 신체을 가지게 되었기에 산파가 이르기 전에 해산할 수도 있었고, 또한, 바로의 명령이 간접 살해 명령이었기에 산파들은 처벌을 받지 아니한 것 같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사 히브리 남아를 계속 살리게 하셔서 아브라함 언약이 그들의 믿음을 통하여 계속 이스라엘 자손에게 아루어지게 하셨습니다. 20절입니다. “하나님이 그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니, 그 백성은 번성하고 매우 강해지니라.” 그리고 하나님은 자신을 경외하는 그 산파들의 집을 흥왕하게 하셨습니다(21). 반면에 바로는 두 번째 살해 단계로 모든 백성에게 공개적으로 명령하여 히브리 남아가 태어나면, 무조건 나일강에 던지라고 하였습니다(22).
성도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 이스라엘, 새 언약의 백성입니다. 새 언약은 우리의 약함(고난)을 통하여 강하게 이루어집니다. 고후4:8-9절입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이처럼 여러 가지 고난은 자기를 부인하고 복음의 주님만을 의지하여 새 언약이 우리 믿음을 통하여 이루어지도록 도와줍니다.
그렇다면, 과거의 실패, 늙어가게 하는 세월, 예기치 않은 질병, 심지어 죽음까지도 두려워하거나 미워하며 부정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선한 섭리(복)로 알고 환영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의 약함을 통하여 자신을 부인하고 주님만을 믿기를 원하는 우리를 위해 보혜사 성령님이 오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천지가 흔들려도 새 언약대로 됩니다. 우리가 약할 때 새 언약대로 강하게 하십니다.
찬송 328장을 부르시고 다같이 기도하며 축도로 예배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