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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3장 1-10절. 성전 미문의 앉은뱅이를 일으킴
1절.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Now Peter and John were going up to the temple at the ninth hour, the hour of prayer
제 구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Πέτρος δὲ καὶ Ἰωάνης ἀνέβαινον εἰς τὸ ἱερὸν ἐπὶ τὴν ὥραν τῆς προσευχῆς τὴν ἐνάτην.
Peter now and John were going up to the temple at the hour of the prayer, the ninth
‘올라갈새’(ἀνέβαινον)은 미완료과거로서(were going up) 계속 올라가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베드로와 요한’ 두 사람은 특히 친밀한 사도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유월절을 준비시키실 때도 두 사람을 보내셨고(누가복음 22:8), 예수님이 부활하신 무덤에도 같이 달려갔고(요한복음 20:3), 대제사장 앞에서 심문을 받을 때도 같이 있었고(사도행전 4:19), 예루살렘 교회가 사마리아 지역 새신자들을 위해 지도자를 파송할 때도 이 두 사람을 파송했습니다(사도행전 8:14).
‘제 구시 기도시간’이란 유대인이 하루에 기도 시간을 셋으로 구분한데 따른 것인데, 오전 9시와 저녁 제사드릴 때인 오후 3시와 해질무렵인 저녁 6시에 세 번 기도하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2절.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nd a man who had been lame from his mother's womb was being carried along, whom they used to set down every day at the gate of the temple which is called Beautiful, in order to beg alms of those who were entering the temple.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καί τις ἀνὴρ χωλὸς ἐκ κοιλίας μητρὸς αὐτοῦ ὑπάρχων, ἐβαστάζετο,
and a certain man, lame from womb of mother of him being, was being carried,
직역하면 ‘어머니 태에서부터 절름발이가 된 어떤 사람을 메고 오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앞의 동사(ὑπάρχων)는 현재분사로서(being) 원형(ὑπάρχω)은 ‘시작하다, 준비가 되다, 이다’(begin, to be ready, be)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메고 오니’(ἐβαστάζετο)는 미완료과거로서(was being carried) 계속 메고 오는 모습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ὃν ἐτίθουν καθ’ ἡμέραν πρὸς τὴν θύραν τοῦ ἱεροῦ τὴν λεγομένην Ὡραίαν
whom they placed daily day at the gate of the temple which calling Beautiful,
‘미문’이란 놋으로 덧씌워서(bronze sheathed) 아름답게 보인 문인데, 니카노르 문(Nicanor gate)이라고도 하는 성전 동쪽의 출입문입니다.
즉 이방인의 뜰(court of Gentile)에서 여인의 뜰(court of women)로 들어가는 입구 문이었습니다.
‘두는’(ἐτίθουν)은 미완료과거로서(they placed) 과거부터 습관적으로(customary) 두곤 했다는 뜻입니다.
뒤의 동사(λεγομένην)는 현재분사로서(calling) 현재 불리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τοῦ αἰτεῖν ἐλεημοσύνην παρὰ τῶν εἰσπορευομένων εἰς τὸ ἱερόν·
to ask for alms from those who going into the temple.
직역하면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제금을 청하기 위해’라는 뜻입니다.
‘구제금’(ἐλεημοσύνην)은 원래 ‘긍휼, 자비’(mercy, pity)란 뜻인데, ‘구제금’(alms)이란 의미로도 쓰입니다.
‘들어가는’(εἰσπορευομένων)은 현재분사이고(going), ‘구걸하기 위하여’(αἰτεῖν)는 부정사형 동사입니다(to ask for).
3절.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New American Standard Bible: When he saw Peter and John about to go into the temple, he began asking to receive alms.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ὃς ἰδὼν Πέτρον καὶ Ἰωάνην μέλλοντας εἰσιέναι εἰς τὸ ἱερὸν, ἠρώτα ἐλεημοσύνην λαβεῖν.
Who having seen Peter and John being about to enter into the temple,
‘들어가려’(εἰσιέναι)는 부정사형 동사이고(to enter), ‘함을’(μέλλοντας)은 현재분사로서(being about) ‘들어가려 하려는 것’을 가리키고, ‘보고’(ἰδὼν)은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seen) 확실하게 본 것을 가리킵니다.
구걸하거늘
ἠρώτα ἐλεημοσύνην λαβεῖν.
he was asking alms to receive.
직역하면 ‘그가 구제금을 받기를 요청하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구제금’(ἐλεημοσύνην)은 원래 ‘긍휼, 자비’(mercy, pity)란 뜻인데, ‘구제금’(alms)이란 의미로도 쓰입니다.
‘받기를’(λαβεῖν)은 부정사형 동사로서(to receive) ‘받기 위해서’란 뜻이고, ‘요청하고 있었다’(ἠρώτα)는 미완료과거로서(he was asking) ‘계속 요청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4절.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But Peter, along with John, fixed his gaze on him and said, "Look at us!"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
ἀτενίσας δὲ Πέτρος εἰς αὐτὸν σὺν τῷ Ἰωάνῃ, εἶπεν, Βλέψον εἰς ἡμᾶς.
Having looked intently now Peter upon him, with the John, he said, "Look unto us!"
‘주목하여’(ἀτενίσας)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looked intently)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단호하게 보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르되’(εἶπεν)는 단호하게 확신을 가지고 말하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보라’(Βλέψον)는 부정과거 명령형으로서(Look), 확실하게 보라고 단호하게 명령하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5절. 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nd he began to give them his attention, expecting to receive something from them.
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ὁ δὲ ἐπεῖχεν αὐτοῖς, προσδοκῶν τι παρ’ αὐτῶν λαβεῖν.
the and he was giving heed to them, expecting something from them to receive.
직역하면 ‘그래서 그는 그들에게서 무엇을 받기를 기대하면서 그들에게 계속 주목했다’는 뜻입니다.
‘얻을까’(λαβεῖν)는 부정사형 동사이고(to receive), ‘기대하면서’(προσδοκῶν)는 현재분사로서(expecting) 계속 기대하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바라보거늘’(πεῖχεν)은 미완료과거로서(he was giving heed) 계속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가리키고, 이 동사의 원형(ἐπέχω)은 ‘굳게 붙잡고 있다, 계속 바라보고 있다, 주목하고 있다’(hold fast, hold toward, pay attention)는 뜻입니다.
6절.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New American Standard Bible: But Peter said, "I do not possess silver and gold, but what I do have I give to you: In the name of Jesus Christ the Nazarene-- walk!"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εἶπεν δὲ Πέτρος, Ἀργύριον καὶ χρυσίον οὐχ ὑπάρχει μοι·
said however Peter, silver and gold none there is to me,
직역하면 ‘그러나 베드로가 말하기를, 은과 금은 내게 없다’는 뜻입니다.
‘이르되’(εἶπεν)는 부정과거로서(said) 단호하게 말하는 것을 가리키고, 뒤의 동사(ὑπάρχει)는 현재형인데(is), 원형(ὑπάρχω)은 ‘시작하다, 준비하다, 가까이 있다, 있다’( begin, be ready or at hand, be)는 뜻입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란 초대교회 당시 베드로와 같은 사도도 물질적으로 가진 것이 없었고, 재산을 가진 성도들이 자발적으로 바친 공동재산을 통해서 필요를 채울 수 있을 뿐인 것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오히려 사도들은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일에 전념하고, 교회의 재산 관리는 집사님들이 수행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6:4-5)
재미있는 일화가 전해져오고 있습니다.
유명한 토마스 아퀴나스가 당시 교황(이노센티우스 2세)을 찾아갔을 때, 교황은 많은 돈을 세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교황은 토마스 아퀴나스에게 “‘이제 교회는 은과 금이 내게 없다’고 말하는 시대는 지나갔소”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토마스 아퀴나스가 교황에게 “옳습니다. 교황이시여. 그러나 이제 교회는 일어나 걸어라고 말할 권능은 잃어버렸습니다”라고 했습니다(C.A. Lapidanus. by Baker).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ὃ δὲ ἔχω, τοῦτό σοι δίδωμι·
what but I have, this to you I give
직역하면 ‘그러나 내가 가지고 있는 것, 이것을 내가 너에게 준다’는 뜻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ἔχω)는 현재형이고(I have), ‘내가 준다’(δίδωμι)도 현재형입니다(I give).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너에게 준다’는 말은 참 멋있는 말씀입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ἐν τῷ ὀνόματι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τοῦ Ναζωραίου, (ἔγειρε καὶ) περιπάτει.
In the name of Jesus Christ of Nazarene, (rise up and) walk!"
‘일어나’(ἔγειρε)란 단어가 어떤 사본(Nestle, Westcort Hort)에는 없고, 어떤 사본(그리스정교회 본문, 비잔틴 본문, 스테바노스 본문)에는 있는데, 부정과거 명령형으로서 단호하게 일어나라는 뜻입니다.
‘걸으라’(περιπάτει)도 부정과거 명령형으로서(walk) 단호하게 걸어라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란 베드로와 요한의 권능이 아니라, 그리스도 되신 예수님의 권위로(by the authority of Christ)란 뜻입니다.
7절.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nd seizing him by the right hand, he raised him up; and immediately his feet and his ankles were strengthened.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καὶ πιάσας αὐτὸν τῆς δεξιᾶς χειρὸς, ἤγειρεν αὐτόν·
And having taken him by the right hand, he raised up him;
직역하면 ‘그리고 그가 오른손으로 잡아서 그를 일으켰다’는 뜻입니다.
‘잡아’(πιάσας)는 부정과거 분사이고(having taken), ‘일으키니’(ἤγειρεν)는 부정과거로서(he raised up) 확실한 의도를 가지고 단호한 모습으로 일으키는 것을 가리킵니다.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παραχρῆμα δὲ ἐστερεώθησαν αἱ βάσεις αὐτοῦ καὶ τὰ σφυδρά,
immediately then were strengthened the feet of him and the ankles
직역하면 ‘그러자 그의 발들과 발목들이 즉시 강건해졌다’는 뜻입니다.
‘힘을 얻고’(ἐστερεώθησαν)는 부정과거 수동태인데(were strengthened) 기동의 부정과거로서(ingressive aorist) 바로 강건해진 것을 가리키고, 이 단어는 ‘의학용어’(medical language)입니다.
8절.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With a leap he stood upright and began to walk; and he entered the temple with them, walking and leaping and praising God.
뛰어 서서 걸으며
καὶ ἐξαλλόμενος, ἔστη καὶ περιεπάτει,
and leaping up, he stood and began walking;
‘뛰어’(ἐξαλλόμενος)는 현재분사이고(leaping up), ‘서서’(ἔστη)는 부정과거로서(he stood) 단호하게 확실히 선 것을 가리키고, ‘걸으며’(περιεπάτει)는 미완료과거로서(began walking) 계속 걷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καὶ εἰσῆλθεν σὺν αὐτοῖς εἰς τὸ ἱερὸν,
and he entered with them into the temple,
‘들어가면서’(εἰσῆλθεν)는 부정과거로서(he entered) ‘들어갔다’는 뜻이고, 당당하게 들어가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즉 이방인의 뜰에서 여인의 뜰로 들어가고, 다시 유대인의 뜰로 들어가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방인의 뜰에서 여인의 뜰로 들어가는 것은 서쪽으로 들어가고, 여인의 뜰에서 유대인의 뜰로 들어가는 것은 북쪽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었습니다.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περιπατῶν καὶ ἁλλόμενος καὶ αἰνῶν τὸν Θεόν.
walking and leaping and praising the God.
‘걷기도 하고’(περιπατῶν) ‘뛰기도 하며’(ἁλλόμενος)는 둘 다 현재분사로서(walking, leaping) 우리 번역처럼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는 모습을 잘 묘사해주는 말입니다.
‘찬송하니’(αἰνῶν)도 현재분사로서(praising) 계속 찬송하면서 성전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즉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고 찬송하면서 성전으로 들어갔다’는 뜻입니다.
9절.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하나님을 찬송함을 보고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nd all the people saw him walking and praising God;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하나님을 찬송함을 보고
καὶ εἶδεν πᾶς ὁ λαὸς αὐτὸν περιπατοῦντα καὶ αἰνοῦντα τὸν Θεόν·
And saw all the people him walking and praising the God;
직역하면 ‘그리고 모든 백성이 걸으면서 하나님을 찬송하는 그를 보았다’는 뜻입니다.
‘보고’(εἶδεν)는 부정과거로서(saw) ‘확실히 보았다’는 뜻입니다.
‘걷는’(περιπατοῦντα)과 ‘찬송하는’(αἰνοῦν)은 둘 다 현재분사로서(walking, praising) ‘그를’(αὐτὸν)을 수식해주는 단어입니다.
10절. 그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라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nd they were taking note of him as being the one who used to sit at the Beautiful Gate of the temple to beg alms, and they were filled with wonder and amazement at what had happened to him.
그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ἐπεγίνωσκον δὲ αὐτὸν, ὅτι οὗτος ἦν ὁ πρὸς τὴν ἐλεημοσύνην καθήμενος ἐπὶ τῇ Ὡραίᾳ Πύλῃ τοῦ ἱεροῦ,
they recognized then him, that he was being the one for the alms sitting at the Beautiful Gate of the temple,
직역하면 ‘그 때 그들은 그가 구제금을 위해서 성전 미문에 앉아 있던 자라는 것을 알았다’는 뜻입니다.
‘앉아’(καθήμενος)는 현재분사이고, ‘있던’(ἦν)은 미완료과거로서(was being) 과거부터 계속 있었던 것을 가리킵니다.
‘알고’(ἐπεγίνωσκον)는 미완료과거로서(they recognized) 동작의 시작을 알리는 미완료(inchoative imperfect)로 알게 되었다는 뜻이고, 원형(ἐπιγινώσκω)은 ‘정확히 알다, 인식하다’( know exactly, recognize, perceive)를 뜻합니다.
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라니라.
καὶ ἐπλήσθησαν θάμβους καὶ ἐκστάσεως ἐπὶ τῷ συμβεβηκότι αὐτῷ.
and they were filled with wonder and amazement at that having happened to him.
직역하면 ‘그래서 그들은 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해 놀라움과 황홀함으로 가득찼다’는 뜻입니다.
‘일어난’(συμβεβηκότι)은 완료분사로서(having happened) 계속되는 결과(continuing result)를 가리키고, ‘가득찼다’(ἐπλήσθησαν)는 부정과거 수동태로서(they were filled with) 놀라움에 가득찬 과거의 확실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놀라움’(θάμβους: wonder)은 감정적으로 놀라는 마음을 가리키고, ‘황홀함’(ἐκστάσεως: amazement)은 지성적으로 놀랍게 여기는 것을 가리킵니다.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였던 사람이 베드로 사도를 통해서 기적적으로 나은 사실은 산헤드린 공회원들도 부인할 수 없는 참된 기적 사건이었습니다(사도행전 4:14).
앉은뱅이 거지
1. 성전 미문은 매우 아름다웠지만, 비참한 앉은뱅이 거지가 앉아 있었습니다.
이처럼 이 세상은 화려한 것 같지만, 내적으로는 비참한 곳입니다.
2. 앉은뱅이 거지는 물질을 구걸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영적인 문제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6장 33절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고 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
1. 두 사도는 인간적으로는 나이로 보나 성격으로 보나 잘 안 맞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기도 생활 하는 가운데 가장 잘 어울리는 콤비가 되었습니다.
즉 두 사도는 제 9시 즉 오후 3시에도 함께 성전에 가서 기도하는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렇게 둘이서 신앙적으로 잘 통했기 때문에, 최후의 만찬석에서도 베드로가 요한에게 머릿짓으로 누가 예수님을 팔 것인지 물어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부활하신 무덤에 달려갈 때도 베드로와 요한이 함께 달려갔습니다.
2. 두 사람은 앉은뱅이를 주목하여 보았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지나쳐버리는 사회적인 문제들을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1장 27절에 참된 경건은 고와와 과부를 환난 중에 돌아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3 두 사도는 보다 더 근본적인 것을 주었습니다.
즉 거지는 물질을 구했지만 두 사도는 거지가 동냥을 안 해도 될 치료를 베풀어주었습니다.
뿐 만 아니라 두 사도는 앉은뱅이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걷는 믿음과 기적>을 베풀어주었습니다.
그래서 이 앉은뱅이 거지가 예수님을 믿는 천국 백성이 되게 했습니다.
4. 한 걸음 나아가서 이 두 사도는 앉은뱅이 치료 사건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즉 사도행전 3장 19절에서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 무엇을 바라보아야 할까요?
① 은과 금을 바라보지 말아야 합니다.
② 사람을 바라보지 말아야 합니다.
예레미야 17:5-9. 무릇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이사야 2:22.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수(數)에 칠 가치가 어디 있느뇨?
시편 118: 8-9. 여호와께 피함이 사람을 신뢰함보다 나으며 여호와께 피함이 방백들을 신뢰함보다 낫도다.
③ 예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사도행전 3:6. 내게 은과 금은 없지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어라
히브리서 12장 2절 말씀과 같이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2. 앉은뱅이 신앙에서 벗어나서 일어나 걸어야 합니다.
① 복음성가(최용덕 작사 작곡): “나의 등 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 나의 인생 길에서 지치고 곤하여 매일처럼 주저 앉고 싶을 때 나를 밀어주시네. 일어나 걸어라. 내가 새 힘을 주리니 일어나 너 걸어라. 내 너를 도우리”
② 얻어먹는 거지 인생을 살지 말고, 일어나 걸어 다니면서 스스로 먹을 것을 구하는 건강한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스스로 기도하고, 스스로 성경 말씀을 통해서 영적 양식을 얻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전도하고, 남을 돕고 선행과 봉사를 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날마다 성령 충만하시고, 주님과 동행하시고, 복된 생활 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