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의 ‘5·18’, 민주화의 봄은 오는가?
최근세( 본지 논설위원, 함께하는 교회 목사)
민주화에 목숨을 건 미얀마 사태에서 80년 5.18 광주의 참상이 보여서 시민들의 투쟁이 더욱 와 닿는다. 미얀마 민주화 시위대에 동참하려 집을 나서는 아들에게 어머니는 말한다. "네가 오늘 밤 집에 돌아오든, 돌아오지 못하든, 나는 네가 자랑스럽다." 미얀마 군부의 쿠데타에 시민들의 항거가 얼마나 결연한 지를 잘 보여 주고 있다. 미얀마 군부는 쿠데타를 일으켜 국가 최고 지도자인 아웅산 수지 국가고문을 비롯한 여당 인사들과 인권 운동가 등을 대거 구금하고 수도를 봉쇄했다. 쿠데타로 700여명이 희생된 유혈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미얀마 시민들에 대한 군부의 폭력 행사를 규탄하고 평화적 행진으로 비폭력 시위를 이어가던 시민들도 이제는 무력대응을 준비하고 있다. 시위에 나서는 게 두렵지 않느냐? 라는 기자의 질문에, 청년은 답한다. 또 다시 군부의 독재 아래 살기 보다는, 반대 시위를 하다 죽는 게 좋겠다. "자유와 민주주의는 그대들이 절대 포기하지 말아야 할 꿈이다"라는 아웅산 수치 여사의 말이 미얀마 거리 시위대 청년들의 행동으로 들려지고 있다.
1962년 쿠데타로 집권한 군사정권은 미얀마를 통치했다. 53년 동안 막강한 영향력과 권력을 유지하며 경제를 파탄내자 참다못한 시민들은 1988년 8월 8일 민주화 운동을 일으켰다. 이른바 ‘8888 항쟁’이라고 한다. 이 항쟁은 옛 수도 랭군에서 10만 여명이 군사 정권에 맞서 참여했다. 당시 군사정권의 총에 3000여명이 숨졌다. 이에 아웅산 수치는 야당 인사들을 모아 민주주의 민족동맹(NLD)를 창설하고 의장이 된다. 25년 만에 총선이 열렸고, NLD 당이 이기며 어렵게 민주화 시대를 열었다. 국제사회는 그녀의 민주화 공로를 인정해 노벨평화상을 수여했다. 아웅산 수치는 국가고문으로서 국가지도자 역할을 해왔다.
미얀마에 왜 쿠데타가 발생했을까? 수지 고문이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은 2015년 총선 승리로 미얀마의 군부 통치를 끝냈다. 이어진 총선에서도 의석 80%를 확보하며 문민정부 2기를 열었다. 그러나 군부는 선거 결과에 승복하지 않았고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았다. 이에 분노한 시민들은 "구금된 지도자들을 석방하라" "군부 독재 타도" 시민들은 ‘저항의 뜻으로 세 손가락 경례’를 하며 시위를 진행했다. 쿠데타 항의 시위에 무력 진압으로 실탄 사격, 장갑차, 곤봉, 폭행, 최루탄…무차별 발포하다. 시민들의 시위는 평화시위로 진행되고 있지만, 미얀마 군부는 언론을 통제하고 시위 대응 수위가 높아지면서 폭력 진압을 서슴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도 수십 년 전만 해도 그 같은 아픔을 겪은 바가 있다. 우리도 짧은 기간 동안 격변의 시대를 지나며 실로 큰 고통을 겪었고, 그 가운데 한국교회의 기도와 노력, 그리고 세계교회의 지원으로 민주화라는 귀한 결실을 거둘 수 있었다. 미얀마에는 약 4,000명의 대한민국 국민들이 거주하고 있을 뿐더러, 한국교회의 많은 선교사가 파송되어 미얀마 곳곳에서 신실하게 섬기며 많은 사역의 열매들을 맺고 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군부의 폭정이 계속된다면 힘겹게 쌓아 올린 사역의 결과들이 한순간에 무너져 버릴 수도 있다.
우리도 세계교회에 진 빚을 갚아야 할 때이다. 어려울 때 친구가 진짜 친구라는 말도 있다. 어느 때보다 절박함을 느끼는 지금 우리가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면 선교에 기여할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미얀마는 인구의 89%인 불교 강국이지만, 기독교 인구가 전체 인구의 6% 이상으로 기독교의 교세는 계속 성장하고 있다. 교회는 미얀마에서 군부의 폭정이 중단되고 평화로운 민주화가 이뤄지도록 하기 위해 무엇보다 마음을 모아 기도해야 할 것이다. 미얀마에서 이 아픔이 속히 종식되며 자유와 정의를 수호하는 정권이 들어설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
광주 5.18 당시 보안 사령부의 통제를 받던 언론의 공백을 독일의 영상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와 같은 다른 나라 기자들의 목숨을 건 취재, 보도가 대신했다. 그들의 보도가 있었기에 광주는 고립되었지만, 세계적으로는 그 참상을 알리고, 우리 시민들의 항거를 지지, 연대하는 국제적 여론을 만들 수 있었다.
주 미얀마 한국대사관 앞에서 미얀마 여성이 한국어로 외친 호소이다. “무릎 꿇고 빌겠습니다. 제발 우리들 좀 살려 주십시요. 우리의 미래를 좀 도와 주십시요. 제발요.” 미얀마 민주화운동 지지 모금 운동, 마스크와 같은 생필품 지원 등이 필요하다. 우리가 받았던 것을 이제 베풀 때다. 광주의 정의가 미얀마에서도 봄이 오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