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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너더리통신 90/180720]섬진강을 지키는 한 ‘사내’가 있다
여기 한 ‘사내’가 있다. 얼마 전부터 이 글을 꼭 이렇게 시작하고 싶었다. 여기에서 ‘사내’는 사나이, 젊은 남성을 일컬음인데, 꼭 사내를 고집하는 것은 왜인가? 어쩐지 사내는 좀 ‘육질적(肉質的)’이나 ‘원초적(原初的)’이란 느낌이 강하다. 실제로 만나 수인사를 하고 그의 고향을 가보니, 나의 오랜 생각이 더욱 맞은 듯하여 기뻤다. 누구 이야기인데, 이렇게 너스레를 떠는가? <섬진강 진뫼마을에 사랑비>라는 에세이집과 <진뫼로 간다>는 제목의 시집을 펴낸, 김도수씨가 그 주인공이다.
1959년생. 이제 두어 해 전 정년퇴직하여 고향에 드디어 정착했다. 말하자면 ‘평생소원’을 풀어분 것이다(얼마나 좋을까? 나는 언제나 그런 ‘홍복(洪福)’을 누릴 것인가?). 그가 2004년에 펴낸 첫 작품집 <섬진강 푸른 물에 징‧검‧다‧리>를 통독‧정독한 이래 언제든 불쑥 한번 만나 막걸리잔을 기울이고 싶었다. 그가 그토록 목 메이게(꿈속에서도) 사랑하는 고향 느티나무 밑이거나 정자에서 말이다. 그를 알게 된 것은 순전히 ‘전라도닷컴’이라는 희한한 잡지 덕분이었다. ‘전라도의 사람‧ 자연‧문화’만을 다룬다는 신조로 밀레니엄이 막 시작된 2000년 1월부터 펴내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거의 유일무이한 토속 지방잡지이다. 지난 7월호가 195호인데, 달마다 경이적인 기록을 달마다 어렵게 어렵게 갱신하고 있다.
그 잡지에 2쪽정도씩 글을 오랫동안 썼는데(나는 15년째 닷컴의 狂讀者이다), 아, 내공이 보통을 훌쩍 넘어, 그의 팬이 된 지 십 수년째이다(선수는 선수를 알아본다고 했던가? 흐흐). 두 권의 수필집은 닷컴에 연재된 것을 중심으로 엮은 것이다. 만나자마자 서로 호형호제(呼兄呼弟)하자고 한 것도 배짱이 대충 통했기 때문이다.
지난 설 연휴 기간 KBS의 다큐 프로그램 ‘공감(共感)’을 보신 분들은, 그 이름, 낯설지 않으리라. 내가 생각하는 ‘사내’는 일단 줏대와 뚝심이 있어야 한다. 근육질만 자랑한다고 사내는 결코 아니다. 줏대와 뚝심은 <우리 아버지 표현으로는 ‘초지일관(初志一貫)’이 되겠다. 환갑잔치때 네 아들에게 액자까지 준비해 써주신 가훈(家訓)이 ‘육친가화(六親家和)‧근면검소(勤勉儉素)‧초지일관’이었다. 그때는 누구나 환갑잔치를 해드렸는데-오죽하면 서울 직장에서 축하사절단이 왔으랴-지금은 칠순잔치도 웃음거리가 되다니, 격세지감(隔世之感)이 심해도 너무 심하다> 무엇인가? 한번 결심했으면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고(줏대),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하고야 마는(뚝심) 사람, 그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그놈의 가난’ 때문에 할 수 없이 남에게 팔려버린 고향집을 12년만에 기어이 되찾아(그전 주인이 학을 뗐다고 한다) 안방에 부모님 영정사진을 걸어놓은 사람(익숙한 장면의 사진을 보고 나도 재배를 했더니 사내는 고맙다고 했다), 오래 전에 사라진 고향 앞 강변의 징검다리를 마을울력으로 다시 놓은 사람(자랑에 신바람이 났다), 관공서 표지석으로 끌려간 고향 강변의 ‘허락바위’를 되찾기 위해 악착같이(담당 공무원 입장에서는 거머리가 따로 없었으리라) 민원을 제기, 결국 제자리로 환원을 시킨 유일한 일등공신(一等功臣), 시들시들 죽어가는 마을 정자나무를 온갖 애를 써 되살려, 그 나무에 환경단체 ‘풀꽃상’을 안겨준 사내.
어디 그뿐인가? 점입가경(漸入佳境), 갈수록 태산? 취직을 하자마자 맨먼저 이미 돌아가버린 ‘부모 용돈통장’을 만든 효자 중의 효자, 무엇을 하려고 통장을 개설했다던가? 생전에 부모가 땀 흘리던 밭두렁을 사서 대한민국에 틀림없이 하나 밖에 없을 ‘사랑비’를 입구에 세우고 주기적으로 막걸리를 올린다는 게 아닌가? 징하다, 그 은근과 끈기. 부럽다. 감히 따를 수 없는 그 효심(孝心). 그 유명한 화강암 빗돌 ‘사랑비’를 이번에 어루만져 보았다.
앞면에 이렇게 쓰여 있다. <월곡양반‧월곡댁/손발톱 속에 낀 흙/마당에 뿌려져/일곱 자식 밝고 살았네>. 읽다가 가슴이 먹먹하고 눈물이 핑 돌아 시선을 돌렸다. 뒷면을 보자. <제목: 일곱 자식들,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부모님께 바치는 ‘사랑비’ 본문: “취직하면 주말마다 술병 들고 진뫼마을로 달려오라”고 막내아들 보고 싶은 마음을/살아생전 그리 표현하던 내 어머니!/취직이 되고 보니 어머니는 이미 세상에 계시지 않았다./어머니의 그 말씀이 가슴에 사무쳐 첫 봉급 타던 날/통장 하나 따로 만들어 속옷값을 넣었고/그 뒤로 줄곧 이건 술이라고, 이건 겨울외투라고, 이건 용돈이라고, 차곡차곡 돈을 넣었다./그렇게 쌓인 돈으로 부모님 생전에 땀 흘리셨던/마을 앞 고추밭 가장자리에/자그마한 빗돌 하나를 세웠다./부모님을 향한 사랑과 그리움을 담았기에 ‘사랑비’라 이름했다./어머니 돌아가신 지 21년, 아버지 돌아가신 지 18년 되던/2006년 5월 8일이었다.>
유교(儒敎)가 국가이념인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의 나라, 조선 500년, 이런 비와 비문을 본 적이 있는가? 이것이 시(詩)가 아니면 무엇이 시란 말인가? 그는 이미 그때 시인(詩人)이 돼 버렸다고 생각한다. 효자의 다른 말이 시인인 것을.
박남준 시인은 그의 시집 <진뫼로 간다> 발문에서 “지독하다. 시집의 처음부터 끝까지 그의 마을 사랑과 절절한 사모곡이라니, 코끝이 짠하다. 가난해서 아름답고 따뜻한 이야기가, 지금은 떠나간 사람들이 살던 마을의 이야기가 한 편, 한 편 시로 다시 살아나서 마을 앞 강물처럼 반짝이고 있다.”라고 썼다. 왜 아니겠는가? 나도 그의 고향마을 앞 강물이 밤새 앞산을 보듬고 반짝반짝 흐르는 것을 바라보며, 그가 복원한 징검다리 위를 밟으며 보았다. 느꼈다. 그와 친구가 된 게 기뻐 울었다. 공선옥 작가는 “김도수의 글편은 지상에서 발견하는 천국의 문을 여는 열쇠”라는 상찬(賞讚)을 했다. 참, 대단하다. 징글징글헌 고향사랑과 섬진강 사랑. 누구를 일러 ‘섬진강(蟾津江) 시인’이라고 할 것인가?
신동엽 시인의 장시 ‘금강(錦江)’의 주인공 ‘신하늬’와 동학혁명의 위대한 지도자 전봉준 장군이 사내라면, 김도수, 그도 뚜렷한 사내다. 내가 굳이 사내라고 부르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며칠 장마비로 쓰러진 깡냉이(옥수수)대를 세우려 바삐 돌아가는 통에, 비록 빈대떡에 막걸리잔을 맞대지 못해 유감이었으나, 어찌 날이 그날뿐일까? 그의 건강을 빌 뿐이다.
글을 맺으려는데, 느닷없이 임태주 시인의 장시 ‘어머니의 편지’가 떠올랐다. 마치 그 사내의 ‘일편단심’ 어머니인 월곡댁을 보는 듯하다. 전문을 웹에서 복사하여 말미에 붙이지 않을 재간이 없다.
아들아, 보아라.
나는 원체 배우지를 못했다.
호미를 잡는 것보다 글 쓰는 것이 천만 배 고되다.
그리 알고, 서툴게 썼더라도 너는 새겨서 읽으며 된다.
내 유품을 뒤적여 네가
나의 편지를 수습할 때면
나는 이미 다른 세상에 가 있을 것이다.
서러워할 일도 가슴 칠 일도 아니다.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왔을 뿐이다.
살아도 산 게 아니고,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닌 것도 있다.
살려서 간직하는 건 산 사람 몫이다.
그러니 무엇을 슬퍼한다는 말이냐.
나는 옛날 사람이라 주어진 대로 살았다.
마음대로라는 것이 애당초 없는 줄 알고 살았다.
너희를 낳을 때 힘들었지만,
낳고 보니 정답고 큰 의지가 돼서 좋았고,
들에 나가서 돌밭 고를 때는 고단했지만,
밭이랑에서 당근이며
무우며 감자알이 통통하게 몰려나올 때
내가 조물주나 된 것처럼 좋았다.
깨꽃은 얼마나 예쁘더냐.
양파꽃은 얼마나 환하더냐.
나는 도라지의 씨를 일부러 넘치게 뿌렸다.
그 자태 고운 도라지꽃들이 무리지어 넘실넘실거릴 때
내게는 그곳이 극락이었다.
난 뿌리고 기르고 거뒀으니 이것으로 족하다.
나는 뜻이 없다.
그런 걸 내세울 지혜가 있을 리 없다.
나는 밥 지어 먹이는 것으로 내 소임을 다했다.
봄이 오면 여린 쑥을 뜯어다 된장국을 끓였고,
여름에는 강에 나가 재첩 한 소쿠리 얻어다 맑은 국을 끓였다.
가을엔 미꾸라지를 무쇠솥에 삶아 추어탕을 끓였고,
겨울엔 가을무 썰어 칼칼한 동태탕을 끓여냈다.
이것이 내 삶의 전부다.
너는 책 줄이라도 읽었으니 나를 충분히 헤아릴 것이다.
너 어렸을 적에 네가 나에게 맺힌 듯이 물었었다.
이장집 잔치마당에서 일을 돕던 다른 여편네들은
자기 새끼들 불러 전 나부랭이며 유밀과 부스러기를
주섬주섬 챙겨 먹일 때
엄마는 왜 못 본 척 나를 외면하였느냐고 내게 따져 물었다.
나는 여태 대답하지 않았다.
높은 사람들이 만든 세상의 지엄한 윤리와 법도를 나는 모른다.
그저 사람 사는 데는 인정과 도리가 있어야 한다는 것만
겨우 알 뿐이다.
남의 예식이지만, 나는 그에 맞는 예의를 보이려고 했다.
그것은 가난과는 상관없는 나의 인정이었고 도리였다.
그런데 그 일을 서러워하며 네가 물을 때마다
나는 매우 마음이 아팠다.
생각할수록 두고두고 잘못한 일이 되고 말았다.
내 도리의 값어치보다 너의 입에 들어가는 떡 한 점이
더 지엄하고 존귀하다는 걸 어미로서 너무 늦게 알았다.
내 가슴에 박힌 멍울이다.
이미 용서했더라도 에미를 용서하거라.
부박하기가 그지 없다.
네가 어미 사는 것을 보았듯
산다는 것은 종잡을 수가 없다.
요망하기가 한여름의 날씨 같아서 비가 내리겠다 싶은 날은
해가 나고, 맑구나 싶은 날은 느닷없이 소낙비가 들이닥친다.
나는 새벽마다 물 한 그릇 올리고
촛불 한 자루 밝혀서 천지신명께 기댔다.
운수소관의 변덕을 어쩌진 못해도
아주 못살게 하지는 않을 거라고 믿었다.
물살이 센 강을 건널 때에는
물살을 따라 같이 흐르면서 건너야 한다.
너는 네가 세운 뜻으로 너를 가두지 말 것이며
네가 정한 잣대로 남을 아프게 하지도 말아라.
네가 아프면 남도 아프고, 남이 힘들면 너도 힘들게 된다.
해롭고 이롭고는 이 원리를 기준으로 삼으면 아무 탈이 없을 것이다.
세상 사는 거 별 거 없다.
속 끓이지 말고 살아라.
너는 이 에미처럼 애태우고 참으며 제 속을 파먹고 살지 마라.
힘든 날이 있을 것이다.
힘든 날은 참지 말고 울음을 꺼내 울어라.
또는 더없이 좋은 날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날에는 꾹 참지를 말고 기뻐하고 자랑하고 다녀라.
이 세상 모든 것들은 욕심을 내면 호락호락 곁을 내주지 않지만,
욕심을 덜면 봄볕에 담벼락 허물어지듯
허술하고 다정한 구석을 내보여 줄 것이다.
별 것이 없다.
체면 차리지 말고 살아라.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없고 귀천이 따로 없는 세상이니
네가 너의 존엄을 세우면 그만일 것이다.
아녀자들이 알곡의 티끌을 고를 때는
키를 높이 들고 바람에 까분다.
뉘를 고를 때는 채를 가까이 끌어당겨 흔든다.
티끌은 가벼우니 머리 날려 보내려고 그러는 것이고,
뉘는 자세히 보아야 하니까 그러는 것이다.
사는 이치가 이와 별 다르지 않더구나.
부질없고 쓸모없는 것들은 담아두지 말고
바람이 부는 언덕배기 올라 날려 보내라.
소중이 여기는 것이라면
지극히 살피고 몸을 가까이 기울이면 된다.
어려울 일이 없다.
나는 네가 남보라는 듯이 잘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
억척을 떨며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
괴롭지 않게, 마음 가는 대로
순순하고 수월하게 살기를 바란다.
이제 혼곤하고 희미하구나.
자주 눈비가 다녀갔었지만 맑게 갠 날,
사이사이 살구꽃 피고
수수가 여물고 단풍물 들어서 좋았다.
내 삶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그러니 내 삶 가여워하지도 애달파하지도 마라.
나는 너를 사랑으로 낳아서 사랑으로 키웠다.
내 자식으로 와주어 고맙고 염치없었다.
부디 정성껏 살아라.
첫댓글 김도수씨에게서는 과거, 추억에 대한 집착 같은 것을 보았고....
임태주 시인의 장문의 ‘어머니의 편지’가 정말 어머니의 글이라면....
그 분은 철학자요, 문학가요 기타 등등이다.
아니 성인(聖人)이다.
왜냐면 머리로(지식으로)만 알고 떠든 사람이 아니라 자기 삶으로 실천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 글은 편지 정도가 아니라 경전의 주해서(註解書)다.
불행의 원인은 탐욕이요
행복의 씨앗은 지족이라는 경전 내용의 주해서다.
이 글을 요약하면 '知足과 사랑' 이라고 하겠다.
다음 구절이 더욱 와 닿는다.
'너는 네가 세운 뜻으로 너를 가두지 말 것이며
네가 정한 잣대로 남을 아프게 하지도 말아라.'
성인이 달리 성인이겠는가!
예수라고 죽음이 두렵지 않았겠으며
소크라테스라고 죽음이 두렵지 않았겠으며
안중근은 죽음이 두렵지 않았겠는가?
죽어야 될 상황이 닥쳤을 때 두려움을 극복하고 비루하게 피하지 않는 결기가 성인의 기질인 것이다!
나는 그런 성인을 존경하는 범인이다!
물론 (스스로 엄청 잘 나서) 그런 사람들을 존경하지 않는 범인도 있지만....ㅎ
시인은 당신의 어머니들을 '성인(聖人)'으로 만드는, '아주 특별한' 재주가 있다. 그래서 시인을 효자라고 하는 것을. 나는 불효자. 시인도 못되고, 효자도 못되고, 반거들충이가 되어서리. 흑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