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을 맹세한 요하난 일행이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애굽으로 내려갑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의지하는 애굽을 바벨론을 통해 심판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8,9절 예레미야에게 다바네스에 있는 바로의 궁전 앞 광장에 바닥을 파고 큰 돌을 가져다 묻으라고 하십니다. 이는 심판을 알리는 상징 행위입니다. 베띠를 땅에 묻어 썩힌 것(13:1-7), 토기장이 손에서 터진 그릇(18:1-6) 아나돗의 땅을 매입하는 행위(32:6-15)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에게 생생하게 전하여 그들로 말씀을 더 잘 듣게 하려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말씀을 들려주고 자신의 뜻을 알려주시려는 하나님의 열심과 정성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10-12절 유다 땅의 징계를 넘어 애굽에서도 말씀을 들려주십니다. 그뿐 아니라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내 종이라 부르시며 그를 통해 애굽 사람과 신전을 초토화하실 것을 알리십니다. 이로써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도망칠 발이 없음을 보이시고, 자기 백성을 보호할 손이 없는 무능한 애굽 신의 실체도 알게 하실 것입니다. 유다 백성이 두려워해야 하는 존재는 애굽도, 애굽의 신도, 바벨론도 아닌, 하나님 뿐입니다.
1-3절 요하난 일행은 기대했던 말씀을 듣지 못하자 예레미야를 거짓 선지자라고 비난합니다. 예레미야의 말을 듣고도 우리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실 리 없다고 간단히 물리쳐버립니다. 이는 내 결정이 곧 하나님의 뜻이어야 한다는 교만이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면 실패할 것이라는 불신에서 비롯된 태도입니다. 수용하기 어려운 말씀 앞에서 더욱 겸손해야 하고 하나님을 더욱 신뢰해야 합니다.
4-7절 요하난뿐 아니라 모든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애굽으로 내려갑니다. 그들은 요하난과 함께 맹세했던 당사자들이고 모든 과정을 지켜본 증인들입니다. 당연히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았지만, 그들의 마음은 이미 애굽에 가 있었습니다. 애굽이 완전한 피난처가 될 것이라는 생각은 확신을 넘어 신앙이 되어 되었습니다. 그래서 요하난이 예레미야를 거짓 선지자로 몰고 바룩을 악한 주동자로 규정할 때, 내심 다행으로 여겼을 것입니다. 침묵하며 따라간 그들도 말씀의 반역자입니다. 공동체에는 그릇된 선택에 맞서는 목소리가 필요합니다. (매일성경, 2024.07/08, p.102-103, 애굽에 도착한 하나님의 말씀, 예레미야 43-13에서 인용).
① 순종을 맹세한 요하난 일행이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애굽으로 내려갑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의지하는 애굽을 바벨론을 통해 심판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예레미야에게 다바네스에 있는 바로의 궁전 앞 광장에 바닥을 파고 큰 돌을 가져다 묻으라고 하십니다. 이는 심판을 알리는 상징 행위입니다. 베띠를 땅에 묻어 썩힌 것(13:1-7), 토기장이 손에서 터진 그릇(18:1-6) 아나돗의 땅을 매입하는 행위(32:6-15)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에게 생생하게 전하여 그들로 말씀을 더 잘 듣게 하려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말씀을 들려주고 자신의 뜻을 알려주시려는 하나님의 열심과 정성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② 유다 땅의 징계를 넘어 애굽에서도 말씀을 들려주십니다. 그뿐 아니라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내 종이라 부르시며 그를 통해 애굽 사람과 신전을 초토화하실 것을 알리십니다. 이로써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도망칠 발이 없음을 보이시고, 자기 백성을 보호할 손이 없는 무능한 애굽 신의 실체도 알게 하실 것입니다. 유다 백성이 두려워해야 하는 존재는 애굽도, 애굽의 신도, 바벨론도 아닌, 하나님 뿐입니다.
③ 요하난 일행은 기대했던 말씀을 듣지 못하자 예레미야를 거짓 선지자라고 비난합니다. 예레미야의 말을 듣고도 우리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실 리 없다고 간단히 물리쳐버립니다. 이는 내 결정이 곧 하나님의 뜻이어야 한다는 교만이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면 실패할 것이라는 불신에서 비롯된 태도입니다. 수용하기 어려운 말씀 앞에서 더욱 겸손해야 하고 하나님을 더욱 신뢰해야 합니다.
④ 요하난뿐 아니라 모든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애굽으로 내려갑니다. 그들은 요하난과 함께 맹세했던 당사자들이고 모든 과정을 지켜본 증인들입니다. 당연히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았지만, 그들의 마음은 이미 애굽에 가 있었습니다. 애굽이 완전한 피난처가 될 것이라는 생각은 확신을 넘어 신앙이 되어 되었습니다. 그래서 요하난이 예레미야를 거짓 선지자로 몰고 바룩을 악한 주동자로 규정할 때, 내심 다행으로 여겼을 것입니다. 침묵하며 따라간 그들도 말씀의 반역자입니다. 공동체에는 그릇된 선택에 맞서는 목소리가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