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근처의 당근마켓 / 신영미

[햇살]

당신 근처의 당근마켓 / 신영미

갓 서른을 넘긴 제자와 각별한 사이다. 담임이 끝나고도 생일이라고 케잌을 들고 찾아와 놀래키고는 가끔씩 연락하여 만나다가 친구처럼 집에 놀러오기도 하고 그림을 그려 액자에 넣어 선물하기도 했다. 몇 해 전에는 함께 1박 2일로 서울에 미술관 여행을 다녀왔다. 제자가 미술관과 맛집을 예약해 계획된 시간대로 청계천에서 시작해 대학로에서 난과 커리를 먹고 미술관까지 알찬 여행을 하고 만보기로 걸음을 측정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같이 있으면 활기차고 시시콜콜 이야기 나누는 편안한 관계가 되었다.

작년에 결혼을 하고는 아기가 생겨서 요즘 세대들은 어찌 사는지 신혼집을 구경하고 싶어 놀러갔다. 결혼 날짜도 일년 전에 잡고 신혼집 꾸미는 일도 오랜 시간에 걸쳐 했었던 게 생각났다. 미리 계획하고 예약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다. 긴 연휴에 시리즈물에 푹 빠져 완결까지 보고는 잠에 취해 도착 시간을 대충 말하고는 마트에 들러 이것저것 사려니 더 늦어졌다. 이야기한 시간이 되자 배달시킨 음식이 딱 맞춰왔노라고 했다.

엘리베이터는 17층인데 5층 올라가는 속도로 빠르고 흔들림이 없었다. 새로 분양받은 집은 하자가 많아 보수하느라 바빴다고 했다. 사진을 찍어 보고서처럼 올리면 바로바로 수리는 해준다고 한다. 새집이 그렇다니 실망했다. 하기사 아는 동생은 대출을 받아 당시 신혼부부에게 인기가 가장 좋은 워너비 아파트를 샀는데 집에 물이 차서 가구들을 모두 망치고 한달 가까이 여관에서 생활하기도 했다.

집에는 아기가 이미 태어난 것처럼 선물 받은 아기 옷이며 유모차, 아기 침대, 모빌부터 온갖 것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사할 때는 집에 맞추느라 많은 옷과 짐들을 정리했는데 아기가 들어서고 나서는 혼수품도 아기에게 위험한 것은 치웠다 한다. 일년은 있다가 아기를 가질 생각이었는데 갑작스레 찾아와 예산과 관련된 계획들이 조금씩 틀어지긴 했지만 집안에 기쁨이 가득하였다. 짱짱이라고 부르며 요즘은 3D 입체 영상으로 누구를 닮았는지 벌써 알 수 있다고 했다. 친구들이 성격만 자기 안 닮으면 된다고 귀에 박히도록 이야기해서 이제는 단체 카톡에 사진을 안 올린다고 했다. 내가 보기에 성격은 제자를 닮으면 더욱 좋겠다.

아기가 일찍 나올 것에 대비해 미리 짐도 챙겨놓고 육아와 관련해 유투브로 이것저것 공부하고 있었다. 당근마켓 앱을 뒤지며 아기 용품을 구입하는 게 즐거운 일상이었다. 그곳은 중고물품을 직거래 하는 요즘 핫한 앱이었다. 동네 가까운 이웃들과 물품을 수수료 없이 거래할 수 있어 안쓰는 물건들을 내다 팔 수 있었다. 언젠가 친구가 집에 놀러 와서는 안입는 옷들을 당근마켓에 팔라고 말해서 포스트잇에 적어놓고는 귀찮아서 몇 개씩 쓰레기 분리수거할 때 아파트 이불, 헌옷 수거함에 넣어서 버렸다. 이제서야 당근마켓이 그곳이구나 생각이 났다. 제자는 부지런하고 알뜰살뜰하여 그런 것에 딱 맞았다.

앱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남편이 너무 많은 것을 구입할까 핀잔을 주기도 한단다. 아기가 생기면 주변에서 아기용품들을 많이 준다고 들었다. 비싸서 하나하나 다 사려면 부담이 크다고 했다. 아는 언니들은 아이들이 이미 많이 컸고 남편 쪽도 첫 번째 아이라 필요한 물품들을 얻기가 쉽지 않았다. 당근마켓은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최상의 곳이었다.

내가 사는 집에는 붙박이장이 베란다에 있고 안방에 장롱, 서재에 트여있는 붙박이장이 또 있다. 그러고도 옷들이 빡빡하게 쌓여 처분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언젠가는 한살림에서 입을 수 있는 헌옷을 모아 누구를 돕는다는 문자를 받았었는데 그마저 기간을 놓쳐버렸다. 마켓에 내다팔려면 하나씩 찍어 올리고 채팅으로 구매자를 만나야한다. 그런 번거로움을 감수할 것 같지는 않다. 집을 나갈 때 짐 정리하면서 헌옷 수거함으로 들어갈 예정이다.

[작은미소로]

선생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우리 딸도 당근마켓을 많이 이용하는데 버리기 너무나 아까운데 나누는 기쁨에 행복해 한답니다.
연결만 되면 집까지 가지러 오니까 힘들지 않았어요.

[이팝나무]

젊은 아이들은 아주 잘 쓰는 앱이더군요.
우리 집에도 처치곤란한 오르간이 있어서 복도에 내 놓은 채 몇 달이 갔는데 어느 날 사라졌더군요.
멀리 사는 딸이 당근마켓에 올리자 마자 실어갔다고 하더라고요.

저 역시 선생님처럼 하나씩 찍어서 사진을 올리고, 채팅으로 사람을 만나고...그런 번거로운 일은 잘 해 낼 자신이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