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럽게 사니 서울이란다
-민요 전승 동요 창작자를 위한 ‘오래된 미래’의 자양분
— 박경수 교수 저 『민요의 지역성과 장소사랑의 민요학』(민속원, 2026)을 읽고
-윤동재
평생의 화두가 빚어낸 귀한 결실
박경수 부산외대 명예교수가 필생의 역작을 펴냈다. ‘민요’와 ‘현대시’라는 두 줄기 화두를 붙들고 평생을 연구해 온 박 교수는 이번 저서에서 “민요의 지역성과 장소사랑(Topophilia)”에 깊이 있는 연구를 보여준다. 특히 그가 직접 발로 뛰며 채록한 부산·울산·경남 지역의 민요를 중심으로, 구비전승의 생명력이 어떻게 특정 공간과 결합하여 문화적 향기를 발산하는지 밀도 있게 해명하고 있다.
나는 민요 학자도, 전문 비평가도 아니다. 하지만 시와 동시를 쓰는 창작자의 입장에서 이 연구서가 내게 던지는 메시지는 자못 묵직했다. 박경수 교수의 말대로 “구체적인 장소가 문학 작품의 형성과 새로운 문화 창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라는 물음을 갖고 500쪽이 넘는 역저를 한 장 한 장 넘겼다.
들녘의 거친 숨결이 담긴 삶의 언어
첫째, 민요는 ‘장소’의 인류학이자 기록이다. 이 책은 구포의 손진태, 동래의 최상수, 울주의 정인섭, 함양의 고정옥 등 초창기 민속학자와 문학자들이 민요를 채집하며 품었던 열정을 복원해낸다. 그들에게 민요는 단순한 옛 노래가 아니라, 그 땅에 발을 붙이고 살았던 사람들의 숨결이자 역사가 응축된 ‘장소의 문학’이었다.
둘째, 민요 속에 흐르는 해학과 절묘한 언어유희다. 책에 소개된 <구포아리랑>과 <장타령>은 오늘날 읽어도 무릎을 치게 만드는 현대적 감각을 자랑한다.
담넘어갈 때는 큰마음묵고
문꼬리잡고는 발발떠네
청천靑天하늘에 별도만코
홀아비살님에 말도만타
문경聞慶새재 박달나무
홍독개방맹이로 다나간다
노다가소 노다가소
저달이지도록 노다가소
청사靑絲초롱에 불발켜라
죽엇든낭군郎君 도라오라
-<구포 아리랑> 부분
손진태가 채록한 ‘구포 아리랑’에서 후렴만 빼고 일부 소개해 보았다. 당시 ‘동래군 구포’ 거주 이경득이란 분이 제보한 것이라 한다. 남녀 연정의 표현이 실감이 나고 당시의 현실을 표현한 것도 공감이 간다.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남녀 간의 연정을 이토록 실감 나고 귀엽게 묘사할 수 있을까.
아가리크다 대구大邱장
너무널너서 몬보고
이山저山 양산梁山장
山이만아서 몬보고
코푸럿다 흥해興海장
밋거러버서 몬보고
ᄯᅩᆼ삿다 구례求禮장
냄새사나서 몬보고
-<구포 장타령>부분
아가리크다 대구大口와 대구大邱, 이산저산 둘 량의 양산兩山과 양산梁山, 코푸는 소리 ‘흥’과 ‘興海’, ᄯᅩᆼ사서 냄새나는 구린내와 구례求禮 동음이의어를 활용한 말놀이가 재미있다. <장타령>인데 오늘날은 <구포장타령>으로 명명되어 최근까지 전승되고 있다. 동음이의어를 활용한 말놀이는 삶의 현장 지혜와 낙천성이 빚어낸 언어 예술의 극치다.
셋째, 예리한 현실 비판과 시대적 아픔의 승화다. 일제강점기 아이들이 불렀던 노래 속에서 일본인을 ‘시루 밑의 곰팡이’에 비유하거나, 이(虱)의 생김새를 빌려 권력층의 꼴불견을 풍자한 대목은 서늘하기까지 하다.
일본 놈 꼬온 놈
시리 밑에 곰백이
-<왜놈을 보고> 전문
‘꼬온’는 마음에 거슬린다는 뜻이고, ‘시리’는 떡이나 쌀을 찌는 시루를 말한다. ‘곰백이’는 ‘곰팡이’를 뜻한다. 그러고 보면 일본 놈은 아니꼬운, 마음에 거슬리는 존재이고, 시루 밑에 낀 곰팡이처럼 몰래몰래 해를 끼치는 곰팡이와 같다는 것이다. 일제강점기 일본인을 대하는 우리 아이들의 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일제강점기 민요집에서는 이 작품이 빠져 있다고 한다. 박 교수는 아마도 일본의 검열을 의식해서 일 거라고 했다. 아이들의 비유와 비판의식이 남다름을 알 수 있다.
이야 요놈아 들어봐라
니발이 육발인들
서울한번 갔다왔냐
니조동이가 쪼삣한들
신간사또 내릴짝에
나발한번 불어봤나
니덩어리가 넓다해도
남해금산 지을짝에
돌한딩이 실어왔나
니가슴에 먹들은들
붓글한번 써서봤나
-<이虱(슬)노래> 전문
이의 생김새를 들어 비판하고 싶은 대상을 조목조목 비판하고 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이를 비판하기 위해 이렇게 했겠는가. 이를 꼴불견에 빗대어 비판한 것이다. 등, 주둥이, 가슴 등을 하나하나 들어서 비판 대상에 대해 날카롭게 반문하고 있다. 민요에는 이런 비판의식이 생생하게 살아 있다.
이등 저등 등창 나고 이등박문 간 곳 없네
우리나라 안중근이 양국충신 되었네
-<밀양 모심기 노래> 부분
이등 저등 등창이 나도록 괴롭힌 이등박문伊藤博文을 안중근이 사라지게 했다고 했다. ‘이등’과 ‘이등伊藤’의 동음이의어를 활용해서 이등박문의 지긋지긋한 괴롭힘을 비판했다. 안중근 의사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고 있다. 모심기를 하면서 이런 노래를 불러 마음에 맺힌 울분을 풀었다는 거다.
삼팔선아 문열어라 김일성이 손들어라
삼대독자가 내나간다 삼대독자 니만가나
사대독자도 내도간다 사대독자는 가거만은
우리선산이 묵어난다
-<삼팔선아 문 열어라> 전문
한국전쟁이 일어나 삼대, 사대 독자까지도 전선으로 투입된 현실을 가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이런 민요는 민요가 시대의 아픔을 치유하고 울분을 터뜨리는 유일한 통로였음을 증명한다.
넷째, 역설과 아이러니가 주는 시적 감동이다. 남해 창선도의 아이가 불렀다는 동요 <서울>은 압권이다.
서울서울 어대가서서울인가
한술밥을 멧놈이갈나먹어
서히사니 서울이란다
서울시세 오르고나려
여귀의 시세러라
-<서울> 전문
경남 남해의 자그마한 섬인 창선도에 사는 아이의 입을 통해 서울이 서러운 곳이라고 했다. 한 술 밥을 몇 사람이 갈라먹는 곳이고, 섧게 살아야 하는 ‘서러울 곳’이 서울이라고 했다. ‘서러울’과 ‘서울’의 말놀이가 슬픈 아이러니를 자아낸다.
오늘의 관점에서 보면 오히려 시골이 서러울 곳으로 바뀌어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낀다. 서울로 집중된 정치, 경제, 문화, 권력. 서울 아파트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 지역에서 사는 분들이 울화통이 터지게 하고 있는 현실을 돌아보면 이 동요의 사설은 오히려 귀엽기까지 하다. 거의 100년 전 아이의 입에서 나온 이 ‘서러울’ ‘서울’이라는 표현은 지금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통찰을 던진다.
내가 발 딛고 있는 장소에 대한 깊은 탐구 현대시가 돌아가야 할 영원한 고향
책의 말미에 실린 ‘민요소사전’까지 읽고 나니, 박경수 교수가 왜 평생 민요를 바탕에 두고 현대시를 연구해 왔는지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삶의 현장에서 길어 올린 민요의 사설들은 때로 기성 시인들의 세공된 전문적이고 현대적 감각의 언어보다 훨씬 더 생생하고 힘이 세다.
민요에 녹아 있는 말놀이 기법, 거침없는 비유, 그리고 날 선 현실 풍자는 시를 쓰는 나에게 행복한 숙제를 안겨주었다. 민요는 박제된 과거가 아니라 현대시가 뿌리를 내려야 할 비옥한 터전임을 이 책은 일깨워준다. 지금부터라도 민요와 전승 동요를 힘 자라는 대로 공부해야겠다.
전문적인 평설은 아닐지라도, 창작자로서 이 책을 읽고 이 책의 ‘삶의 현장의 펄펄 뛰는 말과 비유, 현실 비판 현실 풍자’와 ‘장소에 대한 사랑’은 앞으로 내가 쓸 시와 동시의 소중하고 넉넉한 자양분이 될 것이다.
역저를 통해 귀한 일깨움을 준 박경수 교수께 감사드린다. 다음 연구서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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