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 할게 / 임정자
남편 직장 때문에 우리는 낯선 도시에서 30여 년을 살았다. 원주, 광주, 대전, 세종을 아이들과 함께 다녔다. 그만둘 게 아니라면 '가라면 가야 하는' 직장인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타지에서 살았다. 남편은 늘 고향을 그리워했다. 퇴직 4년을 남겨놓고 대전에서 다시 광주로 왔다. 좀 익숙해져 안정할 만하면 새로운 곳으로 가야 했다. 좋은 사람들과 헤어지는 게 아쉬웠다. 아니 싫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만남의 횟수가 적어지면 만날 기회가 여의찮아 마음도 멀어졌다. 사람들과 정 붙이고 어우러지고 싶었다. 이젠 정착 할 곳이 필요하다. 어디서 살까 생각했다. 남편 회사 인근 광주로 갈 것인지, 고향 목포로 이사할 것인지. 또 남편은 퇴직 후의 살 집을 아파트보다는 전원주택에서 살고 싶어 했다. 딸, 아들은 객지에서 직장생활해 이 문제는 쉽게 답을 찾았다. 목포에서 바다가 보이는 전원주택에 살기로 했다.
땅을 사서 집을 짓겠다는 생각은 비용 부담으로 엄두를 내지 못했다. 석현동에서 혼자 사는 시아버님 집을 개조해 살려 했지만 재개발 때문에 아파트 부지로 들어 가 계획이 무산되었다. 부동산중개업소에서 소개받아 3년 전부터 이곳 주택에서 산다. 계약 전 남편과 약속을 했다. 난 풀 한 포기도 뽑지 않겠다. 집 관리는 당신이 책임져야 한다고 못 박았다. 15년이 된 낡은 집을 조금 고치기만 했다. 주택은 손 봐야 할 것들이 많았다. 이주일 수리를 한 뒤 이사를 했다. 잔디를 깎았다. 잡초를 뽑아야 하고 지붕 수명이 다해 보수도 필요했다. 스스로 해결이 어렵다면 큰 비용을 들여 전문가를 불러야 한다. 남편은 "집 관리는 내가 다 할게"라고 큰소리 쳤다. 1년은 열심히 했다. 주말이면 담벼락 담장 울타리를 페인트칠하고 소나무 전지를 했다. 텃밭에 상추, 고추, 가지, 방울토마토를 심었다. 부지런히 일했다. 딱, 거기 까지. 녹음 해 두지 않은 걸 후회하고 있다.
스물네 가구가 살고 있는 이 마을은 사계절 다 좋지만 봄이 제일 예쁘다. 개나리꽃, 수선화, 벚꽃, 철쭉, 모란 등 집마다 각기 다른 꽃들이 만발하다. 이맘때면 주꾸미, 낙지잡이 배 위에 빨간, 파란 불빛들이 반짝인다. 대도시 빛보다 더 찬란하다. 사방은 앞뒤 만 분간할 정도로 깜깜하고 밝은 달은 바다를 비춘다. 이젠 내가 정원을 가꾼다. 풀을 뽑고 블루베리 꽃이 떨어지면 열매가 열린다. 순환하는 자연을 본다. 맛있다.
우리집은 인기가 좋았다. 케이비에스 2(KBS2) 방송국 드라마 피디가 찾아왔다. 드라마 '학교' 촬영 장소를 물색하러 다녔다. 우리집을 둘러보고 마음에 들어 했다. 김해, 목포 두 곳 중 한 곳이 선택될 거라 했다. 연락이 없었다. 방송 탈 뻔했다. 놀러 온 남편 친구들은 하나같이 "저도 전원주택에서 살아보는 게 꿈이에요"라고 말했다. 말뿐이다. 다들 아내가 반대한다며 아파트에 산다. 정원에 잔디와 나무가 있고 데크에 식탁과 의자가 있어서 모여 술 마시기에 좋다. 주말마다 삼겹살을 숯불에 구웠다. 행복한 시간이었다. 3년이 지나자, 남편은 슬슬 진력이 나서 친구들을 부르지 않고 있다. 지금쯤 성황리에 벌어졌을 술상이 아직이다.
남편이 나와 약속한 "내가 다 할게"의 유효기간은 1년으로 끝났다. 동네 사람들과 기분 좋게 술 한잔하고 오는 날이면 바지 주머니에 명함이 들어 있다. 다음날 그것을 손에 들고 전화를 한다. "사장님, 여기 왕산입니다. 촌장님에게 연락처 받았습니다" 상대방이 무엇이라 말했는지 알 것 같다. "네, 기다리겠습니다."
첫댓글 오랜만의 글, 반갑네요.
예쁜 그 집에서, 삼겹살 파티 기다리겠습니다.
요즘 송화가루, 미세먼지가 너무 심해요.
저도 전원주택에 사는 게 꿈이랍니다. 그런데 실천하는 건 어려울 것 같아요.
신중하셔야합니다.
아내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재미있습니다. 지키지 못하는 남자들의 흔한 거짓말.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선생님도 흔한 거짓말 하시죠? 하하하
이런 못 믿을 남자들. 남아일언중천금은 어디로 갔나요?
저는 설득되지 않고 아파트에 살래요,
아마, 선생님도 남편분 곁으로 가지않을까 싶은데요? 더 나이들어서요. 이번 글도 패스할려다 일요일 저녁에 썼는데 여러번 읽어보니 교수님에게 혼날것 같아요. 하하하. 선생님 글공부 좀 나눔 해 줄래요?
예쁜 전원주택이 잘 그려집니다. 행복해 보이네요. 글도 재밌게 읽었습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어서 고맙습니다. 자랑질이 쑥스럽네요.
나도 아파트.
그건 모르는 일이에요. 세월이 더 흐르면 생각이 바뀔 수 있어요. 선생님이 글 쓰는 작가가 된다면 더욱...
@임정자 그렇잖아도 남편이 시골로 가고 싶어한답니다.
선생님께서 살고 계실 예쁜 전원주택이 상상됩니다. 저도 썩 예쁘지는 않으나 전원주택에 살고 있답니다.
그러시군요. 선생님은 부지런하시나요? 저는 좀 게을러서 남편이 다 합니다만..
방송국 피디가 눈여겨 볼 정도로 예쁜 집에 사시군요. 주택 관리가 쉽지 않죠? 충분히 공감합니다.
네, 맞아요. 관리가 좀 힘들어요. 선생님도 주택에 사시는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