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후반 서울 잠실 새마을시장. 지금의 선수촌APT에서 신천역 까지의 시장망권을 일컫는 말이지만 그때만해도 지금처럼 유흥업소가 골목마다 복잡하게 많지 않았다. 지금의 일본식 선술집은 구경도 못했지만 그흔한 비디오감상실 역시 탄생전 이었으니. 상권은 큰 가닥인 일반식당과 정통 레스토랑이 차지했고 나머지가 일반 술집이 자리했다. 상철은 일찌감치 고향을 뛰쳐나와 레스토랑에 취직했다. 직장서 배운 칵테일 제조술과 손님을 접대하는 서빙 능력은 나름 촌티나는 상철을 세련되게 보이게했다. 지금은 서울 시내에서 상철이 각인하고 있는 그런 정통 레스토랑을 찻기는 힘들것이다. 그 외에도 새마을 시장 골목에 새롭게 불어 닥친 유행이 한가지 더 있다면 노래연습장의 출현이었다. 대중앞에서 또는 지인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노랠 부른다는 건 흔치 않는 일로 어쩌다 가끔 큰 술자리 모임이 아니면 볼 수 없는 풍경이 아니던가 그러나 이젠 돈만 주면 혼자고 여럿이고 상관없이 바구니에 담긴 코인(코인자체도 그때는 동전 500원짜리임)을 넣고 부를 수 있으니 일본식 가라오케보다 좀더 건전하게 변형 되었다 볼 수 있다.
낮에 선이 누나의 전화를 받고부터 상철은 우울함을 감출 수 없었다. [바보같이 왜그래? 엄마가 우리한테 얼마나 잘했는데 은혜도 모르는 놈, 너 군입대 한다 소릴 듣고 논네 불편한 몸 이끌고 너 젤 좋아하는 인절미 만든다고 난리드만...... 듣고있는겨?] 상철은 수화기를 내려놓고 억제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다. 빠텐더의 생활을 접고 군대가는 상철을 위해 송별식을 해준답시고 고향 친구 몇몇도 상경중이다 서울에서 대학 다니는 친구도 있었지만 열등감이 앞선 나머지 연락을 하지않았다. 해소 되지 않는 갈증처럼 모질게 상철을 짓누르는 건 무었인가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 것을 가끔 부모님 방에 끼어 잔게 화근이었다. [난 그렇다치고 누난 진작부터 알고 있던거지? 왜 나한테 숨기고 여태 나만 모르고 지낸거야?] [안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잖냐] 선이는 나일 먹을수록 점점 어려만 지는 상철이 답답하기만 했다. 오히려 애늙은이 였던 어린시절이 그리웠다. 상철은 어린시절 동생 상만을 무던히도 괴롭혔다. 그때마다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던 아버지 눈길의 의미가 그냥 철없이 구는 상철을 마뜩지 않게 생각하는 정도 일거라고 짐작할 뿐. 그 속 깊은 사정을 몰랐다. 부모님 방에서 잠결에 두분이 싸우는 소리에 현재의 어머니가 친엄마가 아니라 이모라는 사실을...... 정확히 말하자면 선이와 상철을 낳고 죽은 친엄마의 여동생인 것을 알았다. 두분이 중매로 만난 이후로 이모는 선이와 상철 두남매와 같이 산다는 조건하에 지금의 아버지와 결혼 했다고 한다. 그 사실을 알고 난 이후부터 상철은 두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상만이가 눈엣가시처럼 들어왔다. 자기만이 받아야 할 사랑을 빼앗긴 걸 되찻아야 한다는 생각이 집착이 되고 그 어리석음이 깊어질수록 상철은 점점더 빠져 나올 수 없는 상실감에 늘상 젖곤했다.
친구들이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고향 친구들은 초등학교서 부터 고교까지 거의 같은 동문이라 서로서로 전부 아는 사이였다. 고향이 작은 시골 읍내인 탓에 멀리 큰 도회로 학교를 가기전엔 전부 같은 학교를 다닐 수 밖에 없었다. 오랜만에 만난 젊은 남자들의 술자리는 1.2차는 기본이지만 서서히 군입대 하는 친구들 송별식이 늘면서 마지막 술자리는 미아리 텍사스(지금은 흔적을 찻기가 힘듬)로 향하는게 공식이 되었다. 지금도 미스테리지만 미국의 큰 땅 덩어리 동네가 서울 한구석에 존재 한다는 거와 총각 딱지를 그런 창녀촌에서 떼야 하는 관습이 언제부터 생긴걸까? 군에 가는 친구를 위한다지만 기실 속내는 각자의 욕망이 더 컷으리라. 남자 인원에 맞게 한복 차림의 여자들이 들어왔다. 동작 빠른 친구들은 파트너와 술이 입에 닿기도전에 하나둘씩 사라졌다. 술자리가 농익을 즈음 파트너가 숫기없는 상철이 머뭇거릴 틈도 없이 손을 잡아 끈다. 2층의 자그마한 방안으로 끌려간 상철은 정육점 진열대 같은 불빛을 보고 몸을 으시시 떨었다. 노오란 개나리꽃 색깔을 한 한복을 입은 아가씨는 어느새 알몸으로 상철을 눕히고 배위에 올라 앉았다. 몸과 마음이 같을 수 없다드니 상철의 의지와는 반대로 피들은 끝 자락으로 맹렬히 몰려 들었다. 장난기 섞인 얼굴을 하고 들이대는 아가씨의 속눈썹, 검은 마스카라가 둥글게 뭉쳐 있다. 순간 상철은 아가씨가 눈을 깜박이면 그 덩어리가 바위가 되어 굴러 떨어질 것 같아 눈을 감았다. 아가씨는 허리를 꺽으며 상철을 아득한 절벽으로 밀어 넣었다. 무언가 잡아야 높은 곳에서 낙하 하지 않을 것 같아 상철은 상체를 벌떡 일으켜 세웠지만 이미 온몸의 힘을 빼며 떨어지고 있었다.
조금씩 깊은 어둠서 잠을 깨가는 가을 새벽길은 촉촉했다. 미아리 대지극장을 지나 솔샘길에 접어드니 길가에 떨어진 노란 은행잎이 깔깔거리며 굴러 다닌다. 순간 상철은 멀미 같은 불쾌감이 목구멍을 구타하며 밤새 먹은 알콜을 토해냈다. 이젠 바꿀 수 없는 현실에 수긍하고 잠시나마 이 사회를 떠나야 한다. 갈피를 못잡는 삼양동 사거리..... 전설적인 이름은 있지만 호적 없는 주소지 삼양동. 상철의 심정같은 희미한 가로등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모든 젊음을 버리고 떠나가야 한다 창백한 불빛을 한 유령같은 텅텅 빈 버스에 상철은 올라 탄다.
입영행 첫기차 표를 끊고 상철은 공중전화 앞에서 잠시 망설인다. 이내 입술을 깨물으며 개찰구를 지나 플랫폼에 서있는 기차에 오른다. <내가 무슨 자격으로 부모님의 사랑을 바랄 것인가> 이 정도면 되지 싶다. 이젠 부모님이 쉽게 아니 편하게 나를 내려 놓을 수 있게 내가 먼저 이 질긴 끈을 잘라야 한다. 그것이 차라리 상철에게 있어서 편한 선택이리라. 플랫폼으로 노부부가 황급히 들어 선다. 기찻칸 차창 여러 곳을 훑으며 누군가를 찻는 중년 여인. 양손에 보따리를 들고 따라 다니는 중년 남자. 기지개를 켜며 움직이기 시작하는 기차. 중년 여인은 그자리에 주저 앉으며 얼굴을 감싼다. 상철은 첨 알았다. 멀어져 가는 쪽진 머리가 그렇게 하얀줄을 눈부시게 하얀 것은 차마 쳐다 볼 수 없다는 것을...... 기차는 푸른 새벽 안개 사이를 고개 숙인 상철의 어깨를 흔들며 떠나간다
첫댓글 와우 !
내 얘기를 쓰는것같아
얼굴이 화끈거리네요
장독대님 쓴것 맞아요
재미있네요 ㅎㅎ
고등학교 졸업하면서 그당시 제스승님 이었던 현 명지대 모교수님이
내준 과제 작품중 하나입니다
아아아~주우 미숙합니다 ㅎ
우리집 가는 길목이 삼양사거리.고 윗쪽이솔샘 인대. 어찌 그곳지명을. 알까요 ? 살아 봣나요. ㆍ글. 잼나게. 기대하며?봅니다. 지금 쓴다면. 월씬 더 잘. 쓰실듯 합니다
서울에 산지 50여년이
되는데 웬만한 덴 두루두루 알지 않을까요ㅎ
단편 소설을 한참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작가로 등단,아님 방송국 피디 직업을 선택 하셨어면 좋았을덴데요.
글 잘 읽고 갑니다.
꿈 많던 문학 청년을
뒤로하고 살아 온지
오래라 이젠 먼지가 쌓이고 쌓여서 영감의
나래를 피기엔 너무
무뎌졌네요
오래된 파일을 정리하다가 부끄러움 무릅쓰고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ㆍ?
동시대를 살았기에 팔십년대의 옛 생각을 되새기게하네요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즐거운 휴일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