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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07주일 [방탕하지 않고 더러운 욕심으로 행하지 않는 교회] 김성현감독(강석준집사님 정리)
엡4:19 저희가 감각 없는 자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되, 죄에서 구원하시고, 이후에는 우리를 죄에 빠지지 않도록 보호하신다.
그러므로, 주의 교회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런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야, 자기들의 영혼을 지킬 수 있다.
그래서, 하나님의 구원하시려는 뜻도 이루고, 우리를 통한 구원의 완성도 잘 이루어질 수 있다.
[도덕적인 가르침은 쓸데없는 것?]
하나님의 말씀도 있고, 명령도 있고, 경고도 있는데, 어떤 사람은 영적인 것이 중요하다, 도덕적인 명령은 중요하지 않다고 한다.
이러면 큰일이다. 절대 그렇지 않다.
성경에 그렇게 많은 말씀이 있는데, 그중에 오직 영적인 것만 중요하다고 하는 것은 성경의 너무 많은 말씀을 버리는 것이다.
왜 그런 말씀들이 성경에 있을까.
이것은 한 말씀도 뺼 수 없는 생명을 위해 주시는 양식이기 때문이다.
그런 말씀들은 우리를 죄에서 지키려는 것에 목적이 있다.
죄는 어떻게 나타날까.
바로 악행으로 보여지는 것이다.
우리가 범한 죄는 행위로 나타나게 된다. 이것은 도덕적인 불의로 나타난다.
그래서, 죄는 악행 곧 불의한 도덕적 행위로 나타난다.
그렇게 본다면, 성경의 많은 경고는 도덕적 불의를 막으려는 것에 뜻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신약교회에서 복음을 오해한 자들에게 빈번히 일어나는 실수가 있다.
특히 한국교회가 발전하면서, 그런 실수를 많이 하도록 분위기가 되어 있었다.
믿음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도덕적인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하는 것이다.
더 이상 율법으로 억압하지 말라.
복음이 가져오는 기능을 설명하기 위해, 믿음을 강조했던, 바울의 일부 강조점을 가지고, 설명했기 때문이다.
마5: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물론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받는다.
너무 믿음을 극단적으로 강조하다보니, 전체적인 복음의 형태가 붕괴된 것이다.
그렇게 하면 안되고, 균형이 있어야 한다.
율법이 필요없다고 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행위는 필요없다고 한다.
믿음을 강조하다보니, 행위자체를 악하게 보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롬3:31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주님도 십계명과 사랑의 계명중 하나라도 버리면, 천국에서 지극히 작은 자라고 하셨다.
사도 바울은 주님의 뜻을 받아, 율법을 폐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굳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믿음이 중요하다면, 율법도 중요해야, 균형이 살아나는 것이다.
그만큼 율법의 권위가 서 있기 때문에, 믿음도 중요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믿음외에는 필요없다, 행위자체를 기피하자고 하면, 전부 무너진다.
롬6:1-2,12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 노릇 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은 맞지만, 악행은 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죄에서 구원받는 것이다.
죄는 처음부터 심각한 것이다.
그 훌륭한 이스라엘도 그것 때문에 고난을 받았다.
이스라엘은 모든 교회의 모태다.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면, 복이 있으리라는 말씀을 들었다.
그 말씀은 그들을 살리기 위한 명령이었다.
렘7:23-28 오직 내가 이것으로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내 목소리를 들으라 그리하면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겠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너희는 나의 명한 모든 길로 행하라 그리하면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나 그들이 청종치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도 아니하고 자기의 악한 마음의 꾀와 강퍅한 대로 행하여 그 등을 내게로 향하고 그 얼굴을 향치 아니하였으며 너희 열조가 애굽 땅에서 나온 날부터 오늘까지 내가 내 종 선지자들을 너희에게 보내었으되 부지런히 보내었으나 너희가 나를 청종치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고 목을 굳게 하여 너희 열조보다 악을 더 행하였느니라 네가 그들에게 이 모든 말을 할지라도 그들이 너를 청종치 아니할 것이요 네가 그들을 불러도 그들이 네게 대답지 아니하리니 너는 그들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며 교훈을 받지 아니하는 국민이라 진실이 없어져 너희 입에서 끊어졌다 할지니라
자기 악한 마음의 꾀와 강퍅한 마음으로 행하여, 그들은 결국 하나님께 등을 돌렸다.
그렇게 하지 말고, 말씀을 들으라고, 계속 선지자들을 보냈지만, 그들은 듣지 않고, 목을 굳게 하여, 오히려 그들의 조상보다 악을 행했다.
이것이 인류의 문제였다.
악을 행하는 것이 문제다.
경고해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경고하기 위해 보낸 선지자들을 오히려 박대하고, 죽였다.
만약 영적이라는 것이 중요하다면, 성경은 도덕적인 것을 영적이라고 한다.
개념이 변형이 된 것 같다.
영적이라고 할 때, 우리는 비물질을 말하는 것 같다.
영적인 것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죄를 범하고 있다면, 잘못하고 있는 것이다.
전혀 균형이 맞지 않는다.
우리는 범죄하지 않을 수 없다.
연약하다.
그러나, 범죄하더라도, 회개해야 한다.
우리는 연약해서 범죄할 수 있다. 그러나, 범죄해도 괜찮다고 하는 것과 자기의 연약함 때문에 아파하는 것과는 천지차이다.
아파하는 자에게는 천국이 주어질 것이다.
죄를 범하고, 하지 않았고가 문제가 아니라, 자기가 하나님의 긍휼에 의지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자.
그런데, 영적이라고 하면서, 발로는 사람들을 차고 있으면, 그 자체가 이중적인 범죄다.
겔3:17-21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깨우치지 아니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케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고 네가 악인을 깨우치되 그가 그 악한 마음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지 아니하면 그는 그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존하리라 또 의인이 그 의에서 돌이켜 악을 행할 때에는 이미 행한 그 의는 기억할 바 아니라 내가 그 앞에 거치는 것을 두면 그가 죽을지니 이는 네가 그를 깨우치지 않음이라 그가 그 죄 중에서 죽으려니와 그 피 값은 내가 네 손에서 찾으리라 그러나 네가 그 의인을 깨우쳐 범죄치 않게 하므로 그가 범죄치 아니하면 정녕 살리니 이는 깨우침을 받음이며 너도 네 영혼을 보존하리라
교회는 무엇 때문에 투쟁하고 있는가.
우리는 생명을 위해 싸우고 있다. 생명의 반대가 무엇인가.
악인은 행한 악행 때문에 죽는다.
그래서, 하나님은 생명을 얻으라고 경고하기 위해 선지자를 보냈다. 그것이 교회가 할 일이다.
우리의 투쟁은 생명을 쟁취하기 위해, 죄와 싸우는 것이다.
생명과 죄.
이것이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인류의 상황을 짊어지고, 구원하기 위한 불꽃으로서 애를 쓰고, 달려온 기독교회의 상황이다.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우리가 첫열매가 된 것이다.
우리는 인류투쟁의 선구자들이다.
롬13:8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타락한 심령은 사랑하기 어렵다.
사랑한다면, 율법을 완성한다.
율법 자체가 사랑하도록 하기 위한 가이드다.
형제를 사랑하지 않으면, 미워하는 것이다. 이것이 히브리적 표현이다.
사랑하지 않으면 살인한 것이다.
원래는 하나님처럼 사랑했어야 했는데, 이런 부분에서 인류 전체가 고장난 것이다.
미워하면 살인한 것이다. 그에게는 영생이 있지 않다.
사랑하지 않으면 생명도 없다.
원칙이 그렇다.
나는 모든 죄를 사함받았으니, 신경 안써도 된다.
그러면서, 율법, 행위 강조하지 말라고 한다.
율법을 버리는 것과 율법적 강화를 버리는 것은 다르다.
율법은 지켜야 한다. 그러나, 율법을 안지켰다고 정죄하면 안된다.
내가 먼저 죄인이다.
예전에 대학부에 그런 부분이 많이 있었다.
정죄하는 분위기 많았다. 가정에서도 미숙한 부모 때문에 사랑받지 못한 사람이 많다.
정말 엄마처럼 사랑해주어야 한다. 그래야, 구원이 소중한 것을 알게 된다.
율법주의적인 것은 좋지 않다.
행실은 중요하지 않다고 하면 안된다.
절대 그렇게 하면 안된다. 양심에게 묻지 말라고 하면, 씩씩하게 지옥에 걸어들어가는 것과 같다.
육신의 행위 때문에, 지금 벼락이 떨어지지 않는다. 불의한 자는 불의한대로 남겨두라고 하셨다.
억울하지만, 의롭게 하는 자는 의롭게 하도록 두라고 하셨다.
요5:25-29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또 인자됨을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그러나, 마지막에 하나님의 아들은 심판하는 권세를 가지고, 심판하신다.
의를 위해 애쓴 자에게는 생명을 주신다.
오늘은 보증으로 영생을 시작했지만, 그날은 진짜 영생을 시작한다.
그러나, 불의한 자는 무서운 심판을 위해 부르신다.
지금 악행은 중요하지 않다고 하지만, 그날 악행한 자를 심판하기 위해 부르실 것이다.
우리를 지으시고, 우리를 위해 죽으신 분이 심판의 자격을 갖고 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회개하고, 순종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이 다스려야 할 탐욕]
연약하지만, 변하려고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사람이 구원받은 자다.
그러나, 악행해도 무방하다, 양심에 묻지 말라고 하는 사람은 문제다.
우리가 침례 받은 후에는 깨끗한 양심으로 사는 것이다.
가장 하지 말아야 할 것은 교회에 대해서 악행을 가하는 것이다.
탐욕을 갖고 교회와 싸우는 것.
이 행위에 대한 결과는 너무 무서워서 입에 담을 수도 없다.
이런 생각 자체를 하지 말아야 한다.
교회는 주님의 구원의 손이다.
구원하려고 세워놓은 손인데, 사람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구원하는 손이며, 말씀이다.
하나님의 생명이 임하는 유일한 곳.
영원한 하나님의 자녀들이 태어나는 곳을 공격하는 것은 더 이상 회복할 수 없는 사람들이 하는 짓이다.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진리 : 의 & 도덕적 행실]
진리가 있고, 의가 있다.
진리는 일반명사인데, 변하지 않는 원칙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변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다.
요1:4,9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참 의는 하나님의 성품이다.
하나님 자신이 의다.
진리는 어디서 증거가 나올까.
몸이 부르르 떨리는 것이 진리가 아니다.
도덕적 행실에서 진리에 대한 증거가 나온다. 의도 행실로 나온다.
진리와 의는 도덕적 행실과 무관하지 않다.
그런데, 진리는 비물질적인 것이라고 하면서, 무시하면, 계속 범죄하겠다는 의미에서 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자신을 빛이라고 하셨다.
요3:19-21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진리를 쫓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사람들은 빛을 싫어한다. 악행을 계속 하기 위해서다.
행위가 쓸데 없다고 하는 생각은 오늘 이후로 버리기 바란다.
선한 행실로 죄를 이기라는 것이 그리스도 교회의 본질이다.
우리가 커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이 도우실 것이다.
우리의 타락한 마음을 막고, 하나님의 구원이 온전히 이루어지게 하자.
이 세상에 많은 일들이 있다.
싸워야 할 일들도 많다.
어떨 때는 억장이 무너져, 교회를 가야하나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영원한 생명을 위해 달려가기 바란다.
특히 자손이 있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나를 보고, 내 자녀를 사랑해주시도록 해야 한다.
절대적으로 자손에게 간다는 것을 기억하라.
[감각 없는 자 되어]
지난주에는 총명이 어두워지고, 마음이 굳어진다고 하였다.
영적인 감각이 어두워지니까, 영적 지식에 대해 무식해지고, 마음이 굳어져, 하나님과 떠난 상태가 된다고 했다.
마음이 굳어진 것을 오늘은 감각이 없는 자라고 반복해서 표현하고 있다.
엡4:19 저희가 감각 없는 자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누구든지 마음에 찔림이 있다.
아픔을 느낀다는 단어와 떨어져나간다는 단어가 섞여서, 감각이 없다는 의미를 갖게 되었다.
도덕적인 감각이 둔해져서, 더 이상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
그렇게 하므로, 이방인처럼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이방인은 그리스도인이 아닌 자들을 말한다.
모든 행실을 결정하는 마음이 타락해서, 동시에 하나님과의 관계도 무뎌진다.
도덕적인 것과 하나님과의 관계는 동시적이다.
애초에 자기가 하나님을 거절한 것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나타나는 현상이 방탕에 방임하게 되는 것이다.
[방탕에 방임하게 된다]
방탕, 더러움, 욕심, 성경에서 하지말라고 하는 대표적인 것이다.
막7:22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흘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광패니
방탕은 도덕적 기준을 넘어서서 타락된 상태다.
억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마음대로 하는 것을 방종, 방탕이라고 한다.
원래 헬라어 의미에서는 성적인 타락을 의미한다.
더 이상 훈련을 받을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이다.
성경은 방탕, 음탕 같은 의미로 쓴다.
롬13:13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벧전4:3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좇아 행한 것이 지나간 때가 족하도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인데, 번역과정에서 허술하게 보인다고 버릴 수 없다.
꼼꼼히 봐야 한다.
롬1: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이방인들이 방탕에 빠졌기 때문에, 그 정욕대로 하게 놔두신다.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방임한다는 것은 자기를 포기하고, 내어준다는 의미다.
이 말은 예수님에 대해서 쓰여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자신을 포기하고 내어주셨다.
롬4:25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우리 모두 그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여기 이방인들은 자신을 방탕에 넘겨주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이방인들의 특징이다.
[더러운 것]
참 그리스도인이 아닌 자들이 하는 행동이다.
'더러운 것', 성적인 타락, 간사함, 치사함, 사악함등을 말한다.
갈5:19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똑같은 더러움인데, 우리 말로는 부정으로 번역했다.
살전2:3 우리의 권면은 간사에서나 부정에서 난 것도 아니요 궤계에 있는 것도 아니라
살전4:7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케 하심이 아니요 거룩케 하심이니
우리는 가장 깨끗하고, 의로운 것을 나누어주는 자들이다.
[탐욕으로서 욕심]
'욕심으로 행하고'
욕심은 우리 말로는 건전한 의미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한 부분은 번역을 탐욕으로 해야 맞다.
자기에게 주어진 몫이 있는데, 그것을 넘어서 더 얻고 싶어서, 끊임없이 추구하는 것이다.
자기 것도 아닌, 남의 것을 얻기 위한 불의한 의지.
이 때, 도덕적 감각이 무너져 있고, 방탕에 자신을 넘겨주고, 그 다음에는 탐욕의 강력한 힘에 끌려다닌다.
성인이라도 컨트롤 못한다. 탐욕에 계속 끌려 다닌다.
이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반복적으로 탐욕의 연구를 하다보니, 습관적으로 주위에서 무언가를 얻을지 안테나가 곤두세워져 있다.
사람들을 만나도, 그에게 무언가 얻을 것이 있는지 살핀다.
이 사람들은 매사에 물질적인 것에 관심이 있다.
눅12:15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생명을 얻는 사람은 탐심을 버려야 한다.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은 것이다.
이익을 위해 남을 해치는 것.
주의 종들은 탐심의 탈을 쓰지 말아야 한다.
살전2:5 너희도 알거니와 우리가 아무 때에도 아첨의 말이나 탐심의 탈을 쓰지 아니한 것을 하나님이 증거하시느니라
벧후2:3 저희가 탐심을 인하여 지은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를 삼으니 저희 심판은 옛적부터 지체하지 아니하며 저희 멸망은 자지 아니하느니라
성경은 우리 인생을 분명히 꿰뚫고, 묘사하고 있다.
욕망을 채우기 위해, 하나님을 등지는 일은 너무 많다.
에라 모르겠다 하면서, 악행을 한다.
그 때, 하나님을 등진 것을 아무도 모르지만, 하나님은 아신다.
탐심은 우상숭배수준의 악이다.
골3: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탐심은 모든 죄의 뿌리가 된다.
탐심에 빠지면, 모든 것을 망치는 전면적인 멸망의 환경을 만든다.
시119:36 내 마음을 주의 증거로 향하게 하시고 탐욕으로 향치 말게 하소서
성경은 수천년전부터 탐심을 경계하고 있었다.
렘22:17 그러나 네 눈과 마음은 탐남과 무죄한 피를 흘림과 압박과 강포를 행하려 할 뿐이니라
겔22:27 그 가운데 그 방백들은 식물을 삼키는 이리 같아서 불의의 이를 취하려고 피를 흘려 영혼을 멸하거늘
하2:9 재앙을 피하기 위하여 높은데 깃들이려 하며 자기 집을 위하여 불의의 이를 취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
잘 넘어갔다고 생각해도, 넘어간 것이 아니다. 이 땅에서 화가 있거나, 하늘에서 심판을 받는다.
차라리 이 땅에서 화가 있는 것이 더 낫다.
막7:21-23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흘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광패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주님도 언급하셨다.
고전5:11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람하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후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토색하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
탐욕을 갖는 자는 교회에서 경계하라.
이런 자들과는 같이 먹지도 말라.
같은 교회내에서라도 하지 말라.
교회 바깥의 사람들이야 어떻게 할 수 없지만, 교회안에 있는 사람은 차라리 교회에서 쫓아내라.
탐심을 위해, 성도들을 이익의 재료로 보고, 선동한다.
이런 것에 습관이 되어 있는 것이 문제다.
'욕심으로 행하되'
여기서 행한다는 말은 직업처럼 업으로 행한다는 의미다.
['욕심으로 행하되' 탐욕을 업으로 삼음]
방탕에 내주어, 욕심을 통제할 장치가 없이, 끌려다니던 자를 탐욕이 지배하게 되고, 이제 자기의 더럽고, 악한 행위를 직업처럼 한다.
원어에 행한다는 의미는 직업이다.
단지, 행동한다는 의미와는 차이가 있다.
엡4:19 저희가 감각 없는 자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평소에 계속 노리고 있다.
평소에 아무 생각이 없다가, 그 때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 노리고 있다.
문제는 남에게 해를 끼치는 것이다.
[남에게 해를 끼치는데 무감각]
남에게 해를 끼치면서도, 자기는 괜찮다. 남이 어떻게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 아무런 느낌이 없으니, 마음껏 행한다.
또, 하나님에 대해서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
오직 자기의 마음의 망가진 욕구만 채우기 위해 행한다.
도움을 주겠다고 하면서, 이러면 좋다고 한다.
나는 절대 그런 사람이 주위에 없었으면 좋겠다.
나는 내 교회를 수호하기 위해 정신을 차려야 한다.
나도 강도를 막기 위해 애를 쓴다.
혹시 나를 통과하더라도, 하나님은 그를 잡아낼 것이다.
그런데, 계속 그렇게 하면, 하나님에 대해서도 무시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를 상실한 마음으로 그대로 둔다고 하셨다.
요8:44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일반은혜, 하나님은 사람들이 죄에 빠지지 않도록 돕고 계시다.
그런데, 양심과 마음이 무너진 사람은 더 이상 하나님의 진리와 의를 분별할 수 없다.
롬1:28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 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지적으로 개념을 말할 수는 있지만, 전혀 감각이 없어서, 느끼지 못한다.
의와 불의도 구분하지 못한다.
이런 상태가 되면, 하나님은 그를 상실한 마음으로 그대로 두신다.
이것은 하나님께 버림 받은 것을 말한다.
왜 탈락되었을까.
고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소리와 마귀의 소리가 함께 있을 때, 구분을 못한다.
진리가 있어도, 소용이 없다. 인식을 못하기 때문이다.
이 사람은 빈 진리를 대체하기 위해, 다른 것을 계속 찾는다.
롬1:24-32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 두셨으니 곧 저희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 받았느니라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 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 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저희가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하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
방탕에 계속 빠지는 사람을 하나님은 어떻게 하실까.
이것은 그냥 방치하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이 지속적으로 관여하셔서, 능동적으로 더욱 더러움에 빠지게 하신다.
이것은 너무 무서운 일이다.
그런데,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오히려 더 떳떳히 주장한다.
이 사람은 하나님에게서 자신을 끊고 있다.
그러면서, 자신은 거룩한 그리스도인이라고 말은 한다.
언젠가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에게서 자신을 끊음]
하나님을 연속해서 계속 버리다보니, 그렇게 된다.
그는 진리를 설교단에서 선포할 수는 있지만, 사실 그 안에 진리는 없다.
진리는 영생을 가게 하는 능력이 있다.
진리는 그 심령속에 예수님이 들어가게 한다.
그래서, 그런 감각이 없는 자들은 영적으로 소경이 되고 도덕적으로 붕괴한다.
그들은 세상사람처럼 서로 먹고 먹힌다.
딤후3:13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이 모든 것은 자신이 택한 선택이 원인이다.
영적 파산은 거기까지 간다.
도덕적 파산은 영적 파산이 되고, 영적 파산은 도덕적 파산이 된다.
회복할 수 없는 파산은 교회를 향해 악을 끼치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을 상대로 싸우는 것이다.
교회를 대상으로 탐욕을 부리는 것.
교회는 사랑해야 할 대상이다.
내 작은 사랑을 받아주소서.
사람들은 모르지만, 나의 사랑을 주님은 아신다.
엡4:20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이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은 하지 말아야 한다.
내게 소원이 있으니, 주께서 내 사랑을 기뻐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이방인 같은 자가 없기를 바란다.
성락교회가 언제까지 갈 지 모르지만, 마지막 날까지, 한명도 하나님 앞에 이방인 같이 타락한 자가 없기를 바란다.
사랑하는 자가 가득하고, 하나님 은혜에 감복하여, 평생 기쁨과 주신 보증으로 희망을 갖고 살기 바란다.
나는 우리 성도 모두를 하나님께서 이쁘게 봐주시길 바란다.
여러분 자손을 위해서, 정말 하나님께서 주신 사랑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원한다, 물려주어야 한다.
반드시 부모를 통해 전해진다.
내 자녀에게 타락이 없기를.
내 자녀를 사랑해주시길.
내 삶에 더러운 원수가 역사하지 않기를.
원수가 치면, 모든 것이 붕괴된다.
원수는 우리 생각을 빼앗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망친다.
이것을 어떻게 막는가.
주님 말씀하실 때, 순종하는 자들 되어야 한다.
굳어진 마음을 포기하고, 주님을 영접하라.
주께서 편하게 거하시게 하라.
교회를 상대로 절대 악행을 하지 말라.
교회는 내가 거듭난 곳, 내게 생명을 준 곳, 나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손이다.
내 영적 모태.
교회가 아프고, 무너지면, 어떻하는가.
내게 생명이 없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세상살이 힘들어도, 교회에 탐욕을 부리지 않기 바란다.
하나님 우리의 부족함을 용서하시고, 이제부터 순종하겠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되기 원합니다.
진리가 있고, 의가 있고, 말씀하실 때, 순종을 거듭하여, 영혼이 잘되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