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oy in God
어제, 안법의 자랑이자 영웅이신 지성찬 동문과 통화했습니다.
몇일전에 올린 '학생장 선거 흥행대박'이란 글을 보고, 연락을 주신 것입니다. 제가 글 중에 안성부터 서울까지 4.19혁명(3.15부정 선거에 항거하면서 시작)의 '민주의 횃불'을 들고 800명의 학생들과 함께 걸어 올라갔고, 내려와서 보고대회를 갖는데 있어,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학생장 이름 석자를 괄호 안(지성찬)에 써놓았는데, 그것을 보시고, 전화를 주신 것입니다. 참으로 반가왔습니다.
학교장으로 부임하여 그분에 관한 자료를 여러 곳에서 보았습니다. 참으로 자랑스럽게 다가왔습니다. 그러던 중에 학교에서 귀중히 여겨왔던 유물 가운데, '문예작품 당선집'이 있었습니다. 이 당선집은 이우종 선생님이 지도한 문예반원들이 전국대회에서 입상한 작품을 모은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보다가, 우연히 성찬씨의 작품을 보았습니다. 그것을 역사전시관에 넣어 놓았는데, 마침 제가 아는 분이 지성찬씨이여서, 그분의 작품을 펼쳐놓았습니다.
그런데 어제 그분, 지성찬씨에게 전화가 온 것입니다. 얼마나 반가왔는지.... 그분는 제가 당신 이름을 알고 있는 것이, 언급한 것이 고마워서 그렇게 전화했던 같습니다.
실은 저는 그분을 안법학교의 4.19 민주화의 안성 초석이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존경하는 마음으로 마음에 담아 두고 있었습니다. 한번을 꼭 만나고 싶었는데, 아니 생사를 알고 싶었는데, 그분이 전화를 주니, 얼마나 반가왔겠습니까?
통화 중에 지금 무슨 일을 하고 계신지를 대략적으로 알게 되었고, 그분께서는 시인이며, 문예인으로 널리 알려진 분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다음 블로그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다음에 만나기로, 그분의 그림 작품도 학교에 가져오기로 약속하고는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리고 방학을 맞아 모처럼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지성찬씨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활동 모습을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분이 알려준 블로그를 확인하며 그분의 작품을 읽다보니, 글이 참으로 맛있었습니다. 단촐하면서도 재미있고, 정자에 앉아 막걸리 한잔 먹어가며 작가의 옛날에로 빠져들어가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글이 참 좋았습니다. 글 가운데 '안성 예찬'이라는 글을 보고 있노라니, 안성이 내 고향인듯 착각에 빠져.... 나도 안성을 자랑하고 싶어, 그분의 글을 퍼다 나눠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글에 올립니다. 저도 어느새, 지성찬 작가님의 팬이 되었습니다. 하하하.
안성예찬(安城禮讚)
안성(安城)은 그 글자의 뜻과 같이 편안한 고장이라는 뜻이다. 언제부터 안성이라고 일컬어졌는지는 모르지만 조선시대에 큰 시장이 섰던 고장으로 경기도 충청남북도 지방의 물산의 집산지로서 유명한 고장이다. 20세기에 들어와서는 인근 다른 도시에 밀려 발전이 늦어진 고장이기도 하다.
비봉산이 도시를 어머니 품처럼 안으면서 그 앞으로는 안성천의 맑은 물이 흐르는 편안하고 평범한 도시다. 동으로는 멀리 일죽면이 자리하고 서쪽으로는 공도면에 걸쳐있고 남으로는 청용산이 병풍처럼 둘러진 서운면이 자리하고 있다. 옥산들로 펼쳐진 넒은 들판과 안성천을 따라서 동쪽으로 치닫는 넓은 들판이 풍요롭기만한 고장이다.
임꺽정이 출몰했다는 천년 고찰 칠장사며 남사당 본거지 청용은 민초들의 애환의 역사가 깃든 원초적 마음의 고향이기도 하다. 투박하면서도 매끄러운 옹기그릇과 방짜유기 제품은 안성마춤으로 유명하다.
섬바위골의 감나무는 가을을 더 풍요롭게 하였고 늦여름의 포도는 길손의 발걸음을 떼지 못하게 한다. 안성장날 포장집에서 끓인, 입맛에 딱 맞아 떨어지는 안성마춤 해장국은 안성만의 구수한 맛이고, 장날에 지게에 매달고 가는 자반고등어는 한 때 내륙지방의 시골 풍경이었다.
안성천에서 난장이 서면 힘깨나 쓰는 장사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어 황소를 놓고 힘자랑을 하였고 남사당 인형극은 민초들의 고달픈 생활을 어루만져주기에 충분했다.
해질녘 서커스단의 트럼펫의 구슬픈 멜로디와 북소리가 울리면 구경꾼이 구름처럼 모이던 시절도 있었다. “며느리의 설움”은 아낙네들의 고달픔을 달래주는 단골 메뉴였고 “홍도야 우지마라”는 젊은이들의 가슴을 흔들어놓기에 충분했으리라. 그 때는 서커스단의 단원을 무척 부러워하기도 하였는데 써커스단이 어느 날 시설물을 깨끗이 치우고 안성천 모래사장에서 사라지고 나면 어느 아가씨가 밤사이 써커스를 따라갔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떠돌기도 하였다.
정월 대보름날, 보름달이 눈부시게 빛나는 밤에 그 무슨 소원을 비는 건지 보름달을 향하여 수 없이 큰절을 공손하게 드리기도 하였고, 쥐불놀이는 마을 간에 싸움으로 이어지기도 하였으니 그 것은 악의 없는 놀이였다.
쇠전거리에 소시장이 서면 각처의 소들이 말뚝에 묶인 채 낯선 새 주인을 기다렸고 가을이면 농악소리도 심심치 않게 골목을 들썩거렸다. 새벽 미명에 비봉산 기슭의 예배당의 맑은 종소리가 아침을 깨우면 동쪽 하늘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하였다. 봄이 오면 언제나 도그머리 뒷산의 진달래는 꽃봉오리를 피우며 어린이들을 손짓하고 있었다. 날이 풀리면 개구리들이 알을 수북하게 쏟아내고 알에서 깨어난 올챙이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꼬리로 물장구를 치면 물고기로 착각하는 일도 자주 있었다.
풋보리가 아이들 키만큼 자라서 술렁이면 종달새 소리가 푸른색으로 하늘 높이 올라갔다가 온 들판으로 퍼져나갔고 그 때쯤이면 종달새는 몇 개의 알을 보리밭 둥지에 품고 있었다. 산딸기가 익을 때면 뱀이 조금은 겁이 나기도 하였지만 산딸기를 그냥 버려둘 수가 없었다. 산딸기가 빨갛게 익는 것을 보고 뜨거운 여름이 오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이 부는 날이면 빽빽하게 들어찬 동문리東門里의 미루나무 숲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기도 하였다. 먼 데 초가집에서는 어쩌면 등잔불 아래서 춘향전을 읽는 아가씨의 고운 음성이 들릴 것 같은 여름밤에 개구리는 실컷 목을 놓아 울기도 하였다.
여름밤에 원두막에서 참외와 수박을 먹으며 놀다보면 별은 밤하늘에 아름답게 수를 놓고 있었다. 벼가 누렇게 익어 가면 옥산들 넓은 벌판은 황금빛 고운 카페트였고 살찐 메뚜기를 병에 담다 보면 해는 저물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바쁘기만 하였다. 논둑 밭둑을 헤매다가 화려한 꽃뱀을 만났을 때는 두근대는 어린 가슴을 진정할 수가 없었다.
7월의 수밀도 복숭아가 보오얀 털을 벗을 즈음에 자두도 한껏 얼굴이 태양처럼 빨갛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고을마다 사과 배가 익어 가면 가을 하늘은 더욱 투명한 얼굴로 소년에게 다가왔다.
그 어린 소년들은 어디로 갔는지 이제 찾아볼 수 없고 서울에서 온 낯선 아이들이 오염된 안성천에서 피라미 대신 개구리를 잡고 있는 것을 보기도 하였다.
싱그런 아침 햇살을 받으며 시냇물의 은어들이 튀어오르고 풀섶을 걸어가다 풀무치가 놀라서 펄쩍 뛰는 꿈을 요즈음에 자주 꾸게 된다. 그런 꿈을 꾼 날이면 어린 소년 같이 늙지 않은 나를 발견하게 된다.
<안성예찬 安 城 禮 讚>
비봉(飛鳳)에 올라서면 옥산들이 넉넉하고
항시 젊은 청용산(靑龍山)은 자리 걷고 일어선다
안성천(安城川) 생수(生水)로 흘러 마을마다 살아있고
섬바위골 홍시처럼 열 이틀 달이 뜨면
동문리(東門里) 미루나무 숲, 잠들 줄을 모르는데
초집의 올린 등불은 가릴 수는 없어라
선율이 굽이치는 청포도 넝쿨따라
수많은 얼굴들이 떠오르는 포도알의
맺힌 그 이슬 속에서 한 세월을 보았느니
순박한 손끝으로 흙을 빚어 혼을 부어
가슴에 불을 질러 항아리를 구워내어
하늘도 천년(千年) 하늘을 불룩하게 채웠나니.
(필자의 <안성예찬> 전문)
<지성찬池聖讚 (시인, 수필가, 화가) 약력>
*1942년 충북 충주 출생, 경기 안성에서 성장,
*백성초등학교(6회), 안법중고등학교 졸업(안성)(9회), 안법고등학교 총학생회장
*연세대 상경대학 경영학과 졸업(61), 연세대 경제대학원 최고위경제과정(1995)
*1958년 교내백일장 현대시 장원(안법고등학교)
*1959년 전국학생백일장 현대시부 차상(성균관대학교 주최)
*1959년 전국학생문예현상모집 시조부 차상(국학대학 주최)
*1959년 전국백일장과 1980년 <시조문학>추천으로 문단활동.
*삼본물산(주)이사, 기영산업(주)대표이사, 미방기업(주) 대표이사 역임
*한국현대시조시인협회 사무국장, 이사, 한국시조시인협회 이사, 감사 등을 역임
*전국백일장 심사위원, 중앙일보 지상백일장 심사위원 등을 역임.
*시조낭독회 50여회 서울에서 개최함
*산문 “깨끗한 그릇”이 중학국어 1-2에 게재(7차 교육과정)
*가곡, 성가곡, 합창곡 칸타타 등 200여편의 노랫말 작사(작곡가: 이문승, 이병욱, 김국진, 심진섭, 이종록, 강창식, 권태복, 황덕식, 홍요섭 등)
*대표 노랫말 :작시 지성찬<백조>(이병욱 작곡 1978):한국가곡집 수록(세광출판사)
<바다 송정포>(강창식 작곡, 박현재 노래), <청평 가는 길>(구본철 작곡, 이승묵 노래)
<좌표>(심진섭 작곡), 별(박상훈 곡) 합창곡 <남사당 별곡>(심진섭 작곡) 등
*1990년 시집 『서울에 사는 귀뚜리야』가 우수文學작품 創作지원도서로 選定됨(문화예술진흥원)
*1999년 문예진흥기금 일천만원 지원받음(문화공보부)-시집『가을 엽서』
*2014 시집『인생의 지피에스』(세종도서 문학나눔 선정도서-문체부)
*제1회 스토리문학 대상, 자랑스런안법인상(안법고등학교 동문회)
*2010년 KEPA 미술공모전 특선(사랑의 진실과 허구( 94.5 x 74.5cm, 한지, 수채화),
*한국예술작가상(미술부문-열린시학)(2013),2014. 2월 현대민화 일상으로의 접근전 출품
<천국지옥도>
*2014. 4월 개인미술전시회(Funnel Art & Cafe),12월 대한민국기독교미술협회전 <특별상> 수상
*2015 으뜸상(시.서.화) 운향갤러리(광복 70주년 기념)
*산문 현대시창작법 <시인들이 가르쳐주지 않는 시창작의 비밀>을 시조세계에 분재
*문예지 월평, 계간평, 시집해설 등과 다수의 수필을 발표.
*시집:『서울의 강』『서울에 사는 귀뚜리야』『하늘에서 보낸 편지』『가을엽서』
『대화동일기』『인생의 지피에스』와 공동시집 다수.
*시조선집:『백마에서 온 편지』(우리시대 우리시조 100인선)
*산문집『깨끗한 그릇』
*가곡집 『겨울 피리』(지성찬 작시, 이종록 작곡)
*부활절 칸타타 『예수 그리스도 다시 사셨도다』(지성찬 작시, 심진섭 외 5명 작곡)
(2010년 4월4일 꽃동산교회에서 오케스트라 반주로 연주회를 가졌음)
*한국시조시인협회 이사, 감사, 선거관리위원장 역임
현재
한국음악저작권협회, 한국문인협회, 국제펜크럽 한국본부, 오늘의시조시인회의,
한국시조시인협회 회원, 가곡동인 시조창작교실 운영,
종합문예지<계간 스토리문학> 주간
백마문학회 고문, 백화문학회 고문,
참고로, 지성찬 선생님이 보내주신 작품 사진을 댓글에 넣었습니다. 감상하시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민족과 나라 사랑, 학교 사랑, 문화 사랑, 예술 사랑이 가득하신 지성찬 선생님을 알아가면 알아 갈수록 매력이 넘칩니다.
조만간 만남이 예정되어 있는데, 기대가 큽니다. ㅎㅎㅎ.
첫댓글 지성찬 동문의 사진과 작품
(학교 역사전시관에 전시된 작품: 안법고 2학년 때, 전국대회에서 입상한 작품)
멋진 안성의 넋이 느껴지네요. 학교와포도나무만 보았는데 안성순례를 언젠가 하고 싶습니다.
8년전에 아들과 안성 투어했던 기억이 나네요~^^
안성맞춤 방짜유기 박물관 , 남사당패 바우덕이 공연, 안성 포도 축제까지...^^
그리고 저희 본당 신부님이셨던 박요셉 신부님께서 안성성당으로 가셔서 아이들을 데리고 안성에 또 오게 됐지요.
그 때 공베르 신부님도 안법학교도 알게 되었어요.
미사를 드리고, 수영장이 있는 포도밭 농장에서 신부님과 아이들이 신나게 물놀이하고 맛있게 포도 먹으며 놀던 추억이...^^
또 영적지도 신부님이셨던 최인각 바오로 신부님께서 안법고 교장 신부님이 되셔서 찾아뵙게 되었지요..
지금은 안법고 영적은인...ㅋㅋ^^
안성과의 인연이 계속 되고 있어요~~~
저에게도 안성은 참 좋은 곳이에요~♥
지성찬 선생님의 작품
지성찬 선생님의 작품
지성찬 선생님의 작품